(전략)
...굴원이 강가에 이르러, 머리를 풀어헤치고 물가를 거닐면서 시를 읊었다. 그의 안색은 초췌하였고, 모습은 야위었다. 어떤 어부가 그를 보고 "그대는 삼려대부(三閭大夫)가 아니십니까? 무슨 까닭에 여기까지 이르렀습니까?" 라고 물었다. 굴원이 대답하기를 "온 세상이 혼탁하나 나 홀로 깨끗하고, 모든 사람들이 다 취해 있으나 나 홀로 깨어 있어, 이런 까닭에 추방당하였소" 라고 말하였다. 어부가 묻기를 "대저 성인이란 물질에 구애되지 않고 능히 세속의 변화를 따를 수 있는 사람입니다. 온 세상이 혼탁하다면, 왜 그 흐름을 따라 그 물결을 타지 않으십니까? 모든 사람이 취해 있다면, 왜 그 지게미를 먹거나 그 밑술을 마셔서 함께 취하지 않으십니까? 어찌하여 미련한 자존심만을 움켜잡고 추방을 자초하셨습니까?" 라고 하였다. 굴원이 대답하기를 "내가 듣기로, 새로 머리를 감은 사람은 반드시 관을 털어서 쓰고, 새로 목욕을 한 사람은 반드시 옷을 털어서 입는다고 하였소. 사람으로서 또한 누가 자신의 깨끗함에 더러운 오물을 묻히려 하겠소? 차라리 흐르는 강물에 몸을 던져 물고기의 뱃속에서 장사를 지낼지라도, 또 어찌 희디흰 결백함으로서 세속의 더러운 먼지를 뒤집어쓰겠소!" 라고 하였다.
그리고 나서 "회사(懷沙)" 라는 부(賦)를 지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화사한 첫여름이여,
초목이 무성하구나.
상심하여 늘 애달퍼하다가,
서둘러 남쪽 땅에 닿았네.
멀리 내다보니,
차마 못 견딜 고요함뿐.
한은 가슴에 올올이 맺히고,
몸은 비통한 곤경에 빠졌네.
그 가슴 어루만지며,
고개 숙여 옛일을 되뇌이네.
모난 나무를 깎아 둥글게 하려 하나,
불변의 법도는 바꿀 수 없는 법.
애초의 마음을 바꾸려 하나,
군자가 천시하는 바로다.
내가 생각해온 정책과 법도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네.
마음이 곧고 성품이 굳은 것은,
현인들이 찬미하는 바이나,
솜씨 좋은 장인이 다듬지 않으니,
그 누가 굽고 바름을 헤아리겠는가?
검은 무늬 어둠에 처하였는데,
맹인은 빛나지 않는다 하네.
이루*가 눈을 가늘게 뜨니,
맹인은 장님으로 여기네.
흰 것을 검은 것으로 바꾸어 놓고,
위의 것을 아래로 뒤집은 것이로다.
봉황은 새장 속에 갇히고,
닭과 꿩은 날개짓을 하네.
옥과 돌을 뒤섞어서,
하나의 저울로 재는구나.
대저 저들의 더러운 마음이,
나의 좋은 바를 알지 못하는 바로다.
등진 것 무겁고 실은 것 많으나,
함정에 넣고 묶어 벗어날 수 없네.
아름다운 옥을 움켜잡고 있으나,
보여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네.
성 안의 개들은 무리지어 짖어대고,
괴이한 것만 보면 짖는구나.
준걸을 비방하고 의심하는 것은,
본디 졸속한 자의 추태이다.
재능을 안으로 감추고 있으니,
사람들은 나의 이채로움을 모르네.
재료가 쌓여 있어도,
사람들은 나의 재능을 알아주지 않네.
인의를 거듭 쌓았고,
근후(謹厚)함을 부유한 것으로 알았네.
순(舜)임금 같은 분을 만날 수 없으니,
누가 나의 진실을 알겠는가!
예로부터 서로 병존하기 어렵다 하나,
어찌 그 까닭을 알겠는가?
탕왕과 우 임금은 오래전 사람이라,
아득하여 추종할 수 없도다.
어긋남을 꾸짖고 분함을 바꾸어서,
억제하고 기운 차려 보도다.
혼란의 시절 만났어도 변절하지 말고,
이 의지가 후세의 모범이 되기를 바라노라.
북으로 걸음을 옮기려 하니,
해는 뉘엿뉘엿 저물어 가는구나.
시름도 풀고 슬픔도 버리고,
이제 죽음에 임하노라.
콸콸 흐르는 원수(沅水), 상수(湘水)여,
갈라지며 빠르게 흐르는구나.
먼 여로는 잡초로 뒤덮여
요원하게 뻗어 있구나.
더욱더 슬픈 심정을 읊노라면
탄식만이 길어지도다.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데,
누구와 마음을 같이 나누겠는가?
충정과 고결함을 지녔어도
이토록 벗이 없구나.
백락(伯樂)**이 죽고 없으니,
천리마를 누가 가려주겠는가?
인생이 받은 운명이란
제각기 정해져 있도다.
마음을 굳히고 뜻을 넓히면
그 나머지야 무엇이 두려우랴?
쌓이는 애통함은 애처로워,
탄식만이 길어지도다.
세상이 혼탁하여 알아주지 않으니,
누구와 마음을 같이 나눌 수 있을까?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임을 아는 까닭에,
무엇을 안타까워하리오?
분명히 군자에게 고하노니,
나는 장차 표상이 되고자 하노라.
그리하여 바위를 품고 마침내 멱라강에 빠져서 죽었다.
굴원이 죽은 뒤에 초나라에는 송옥, 당륵, 경차 등과 같은 무리들이 있어서, 모두 문사를 좋아하여 부(賦)로써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모두 굴원의 함축성을 모방하였지만, 끝내 감히 직간(直諫)을 표달하지 못하였다. 그후로 초나라는 날로 쇠락하여, 수십년 뒤에는 결국 진나라에 의해서 멸망당하였다. ...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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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대단히 좋아서 백 보 바깥까지 정확하게 볼 수 있었다는 전설상의 인물입니다.
**춘추시대때의 사람으로 말을 잘 부렸다고 합니다.
-사마천 지음, 정범진 외 옮김, 까치 동양학 총서 26권 사기 5, 사기열전 上, 권 84 굴원가생열전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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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읽으신분들-대단하십니다. 스크롤 내리신 분들-당연하죠;
그냥 아까 댓글달다가 생각나서 가져왔습니다.
어려서 사기 굴원편 보면서 "뭐야 이인간 대충 맞춰살지 잘난척 쩐다" 그랬었죠. 까칠한 태사공도 유독 굴원한테는 빠심만 가득하셔서;
제가 보기엔 한과 슬픔만 가득 품고 죽은 것 같았는데, 태사공은 "나도 처음엔 성지순례가서 눈물 떨구고 그랬는데, 알고 보니 이게 죽음과 삶을 일체로 보고 인생 성패에 개의치 않는 초탈한 경지라. 내 이전 생각을 흔쾌히 버리게 되었다" 그러고 있구... 못마땅했었는데.
슬픈 일 있고 다시 읽어보니 새롭네요.
아내의 소환조사날 새벽 경호원 심부름 보내고 고향마을 바위 위에 홀로 선 어른 남자의 심경을 제가 짐작이나 하겠습니까만
정치인 자살이라고 어디서 히틀러까지 들고 나오는 것보다야 그냥 조용히 회사나 읽는게 낫겠습니다.
상징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냥 이런 사람이 있었답니다.
멱라강에서 고기 잡던 백성들은 그 시신이라도 건져 보려고 떼를 지어 배를 몰고 나왔다고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