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 스스로의 동의 혹은 부정의 여부와는 관계없이 어떠한 감정의 뿌리를 바탕으로
몇번이고 자신의 생각을 최대한 이성적, 논리적으로 피력해야 할 때가 있다.
그것이 타인과의 갈등해소를 위한 합리적인 방법이되었건 지적 우월감을 증명하여
상대의 승복을 위한 자기만족이되었건, 그 의도의 진정성에 대한 의문을 품기도 전에
스스로 입을 다물고만다.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 표현하고 싶어하는 존재이기에 목적이나 수단, 본질이 변색되거나
위치가 뒤바뀌더라도 그것을 부정(혹은 망각)한 채 끝임없이 짓껄이고, 내뱉고, 곱씹어야만
만족하는 마스터베이션 위에 살아가고 있는건 아닐까.
나의 침묵이, 당신의 어떠한 정서적 동요와 감정의 파편 쪼가리를 수용해주리라.
이 짧고 얉은 도식적인 이해라는 가면 뒤에, 당신을 향해 날이 선 칼날이 겨뉘어 있으리니.
나의 입안에 침묵한 채 잔뜩 웅크리고 있는 혀는 여전히 시퍼렇게 날을 갈고 있음을.
Silence. 2
별이 지다.
내가 보기엔 그리 찬란하게 빛나던 별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보잘것 없도록
초라한 별도 아니었지만, 사람들은 동요했다.
어떤 이들은 진 별에 대해서 애써 이성적인 척, 혹은 무관심한 척했다.
어떤 이들은 진 별에 대해 분석적인 통찰과 그것이 시사하는 바에 대해 논했다.
소수의 무리들은 이미 바다에 잠긴 별을 이용하고자 찾으려 했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끊임없이 동요된 감정을 표현하기 바빴다.
그들은 자신의 슬픔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들은 자신의 분노에 대해 이야기했다.
절망, 회의, 후회, 걱정.. 여러 빛깔의 감정들이 쏟아져나왔다.
그들이 연거푸 뱉어낸 감정의 기포들은 바람이 되어 다시 그들을 훝고 지나갔다.
어떤 이들은 별이 진 사실보다 본인들이 뿜어낸 바람에 휩쓸리기도 했다.
자신의 슬픔에 대해 슬퍼했고, 자신의 분노를 향해 분노했다.
시간이 흘러 바람이 바람을 만나 뒤섞기고, 흩어지고 구름이 되어 잔잔한 비를 뿌릴 때가 오면,
그들은 기억할까.
자신의 감정들을. 기억들을.
바람이 태풍이 되어 돌아와 그 곱절이상의 감정의 무게를 짊어지게 되고 나서야 돌이켜 볼지도 모른다.
입을 닫은 채 그들을 바라보며 바람과 구름에 대해 생각하던 어느 한량은 자조하며 쓴웃음을 짓는다.
그리고 소리없이 울먹인다.
그리고 별이 진 텅 빈 하늘을 바라본다.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Silence. 3
말로해도 올바로 전달되지 않는건, 차라리 침묵하는 게 낫다.
<무라카미 하루키 - 해변의 카프카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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