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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5/03/27 11:24:27
Name 두괴즐
Subject [일반] <위플래쉬>를 보고 쓴 일기. (스포有)
일기라, 반말체입니다. 양해바랍니다.
스포도 있어요.


ㅡㅡㅡㅡㅡㅡㅡㅡㅡ

[감상문] 위플래쉬 (2014), 다미엔 차젤레.
: 광기를 먹고 사는 한 예술혼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나.


<0>

나는 어려서부터 광기를 동경했다. 음악을 위해 학교를 중퇴한 서태지의 열정이, 프로게이머 임요환의 “나만큼 미쳐봐”라는 언명이, 만화 <드래곤볼>에서 끊임없이 자기 학대를 통해 한계를 넘어서는 그 분노와 폭력이. <위플래쉬>는 광기를 먹고 사는 한 예술혼에 대한 이야기다.

대학시절 같이 글을 쓰던 선배가 있었다. 그도 나와 같이 광기를 동경했다. 하지만 차이가 있다. 나는 광기를 동경하면서도 끊임없이 일상의 중심으로 퇴행하는 인간이었다. 친구가, 애인이, 가족이, 현실이 있는 곳으로 자꾸만 뒷걸음질 쳤다. 반면 선배는 반복적으로 광기에 경도됐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와 그의 간극은 벌어졌고, 그는 나를 몰아세웠다. 선배가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우회하는 길을 자꾸만 만들었다. <위플래쉬>를 보면서 선배가 생각났다. 감지 않아 기름이 낀 머리와 땀냄새나던 구겨진 셔츠, 들고 다니다 놓고 가던 책들. 우리는 앤드류를 닮았었다.


<1>

<위플래쉬>는 미국 최고의 음악 학교인 셰이퍼에 들어간 한 학생의 드럼 연주를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그 신입생이 바로 앤드류다. 그 소리를 듣고 누군가가 걸어온다. 그는 이 학교의 선생인 플렛처다. 플렛처는 학교의 메인 밴드인 ‘스튜디오’의 지휘자이기도 하다. 영화는 이 둘의 광기어린 대결과 그것으로 포식하는 예술혼을 보여준다.

앤드류는 좋아하는 여자에게 고백하지도 못하고, 아버지의 취향에 맞는 팝콘을 먹는, 소심하고 착한 청년이다. 반면 플렛처는 폭언과 폭행을 아무렇지 않게 일삼는 극악한 선생이다. 전혀 달라 보이는 이 두 사람은 서서히 서로를 닮아간다. 아니, 서로 닮아간다기보다는, 앤드류가 플렛처를 닮아간다고 해야 옳다. 그것의 배후에는 예술혼이 있다. 플렛처는 ‘스튜디오’ 밴드의 학생들을 몰아세우면서, 끊임없이 자신의 음악적 한계를 넘어설 것을 강요한다. 대부분의 연주자들은 주눅이 들고 시선을 회피할 뿐이다. 반면 앤드류는 서서히 플렛처의 시선을 피하지 않게 되고, 심지어 노려보게 된다.

앤드류의 아버지와 플렛처는 상당히 대조적인 인물이다. 아내 없이 앤드류를 키워낸 아버지는 다정하게 아들을 다독이고 안아 줄 수 있는 사람이다. 반면 선생 플렛처는 연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아무렇지 않게 의자를 앤드류에게 던지는 그런 인간이다. 앤드류는 플렛처에게 서서히 경도되어 가는 듯 보이는데, 사실 이것은 필연적으로 보인다. 영화의 초반에 앤드류는 아버지와 함께 극장을 간다. 영화가 상영되기 전, 아버지는 학교생활에 대해 묻는다. 앤드류는 플렛처가 자신의 연주를 그냥 보고 나간 이야기를 한다. 아버지는 “다양한 선택지”가 있으니까 괜찮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너도 내 나이가 되면 시야가 넓어지고 그것이 인생이다’는 말을 한다. 앤드류는 아버지에게 대답한다. “그런 ‘시야’는 나에게 필요 없다.”

인상적인 상황은 또 있다. 가족 모임으로 보이는 한 식탁에서 앤드류는 재즈 드러머 찰리 파커에 대해 아버지와 설전을 벌인다. 아버지는 “알콜 중독, 마약 중독으로 34살에 죽는 건 성공이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앤드류는 “90살까지 아무 일 없이 조용히 살다 죽는 것보단 34살에 죽고 더 오래 기억되는 것이 훨씬 낫다”고 말한다. 영화의 후반부에 비참한 무대를 서고 좌절한 앤드류를 끌어안으며 아버지는 “이제 집으로 가자”고 하며 위로한다. 하지만 앤드류는 아버지를 등지고 다시 무대로 돌아가 광기의 연주를 한다. 근심어린 표정으로 아버지는 아들을 훔쳐보고, 플렛처는 돌아온 앤드류를 더욱 자극해 예술혼에 복무시킨다. 친아버지가 앤드류에게 필요해지는 상황은 꿈이 좌절되는 경우이고, 앤드류에게 플렛처는 꿈의 실현을 위한 음악의 아버지가 된다.


<2>

플렛처의 가학적인 교육법은 더 나은 연주자를 육성하기 위한 것으로 포장되고, 따라서 정당화된다. 물론 이 영화가 그것을 일방적으로 지지하고 있지는 않다. 영화는 플렛처의 교육법에 의해 한계를 뛰어넘은 학생이 얼마나 비극적으로 죽어가는지를 알려준다. 앤드류 이전에 플렛처에게 교육을 받고 큰 성취를 이룬 케이지라는 학생이 있었다. 케이지는 음계도 다룰 줄 모르는 열등생이었지만, 플렛처를 만나 링컨 센터의 수석자리에까지 오르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편집증과 우울증을 떨치지 못하고 끝내 자살한다. 앤드류도 플렛처를 만나 끊임없이 자신의 한계 앞에 서게 되고, 지랄발광하며 넘고자 발버둥을 친다.

플렛처는 케이지의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교육법을 철회하지는 않는다. 그에게 있어서 케이지의 죽음은 부수적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한계를 넘어 음악적 성취를 이룩했다는 것 자체에 있다. 플렛처는 케이지에게 지속적으로 레전드 드러머인 찰리 파커를 상기시킨다. 찰리 파커는 원래 특출난 드러머가 아니었다. 그는 형편없는 연주를 하다가 조 존스가 던진 심벌즈를 얻어맞고 망신을 당한다. 그 후 그는 좌절하고 스틱을 놓은 것이 아니라, 강렬한 오기를 가지고 극단적인 훈련을 한다. 1년 후, 찰리 파커는 새로운 차원의 연주를 선보이고 전설이 된다. 플렛처가 가하는 폭력은 이와 같은 것이었다. 플렛처는 “그만하면 잘했어(good job)”라는 말을 가장 혐오한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연주자는, 그 자리를 머물며 연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앤드류는 이런 플렛처를 증오하기도 하지만, 결국 동일한 곳을 바라보는 사람이다. 영화의 마지막 무대에서 플렛처는 앤드류에게 복수를 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이 역시도 하나의 낚시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플렛처는 자신이 학교에서 추방된 이유를 정확히 모르는 척 하지만, 앤드류가 무대에 오를 때, “내가 핫바지로 보이냐? 네가 불었잖아.”라고 말하며, 공지하지 않은 음악을 지휘하며 그를 궁지로 몬다. 폭언에 의한 것이든, 물리적 폭력을 가하든 간에, 한결같은 효과는 궁지에 몰아붙이고 그에 따른 파격을 기대하는 것이었다. 플렛처가 앤드류에게 제공하는 마지막 무대는 복수극으로도 보이지만, 이러한 압박의 궁극적 변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 영화를 보는 나는 짜릿하면서도 불편하다. 무대의 긴장감은 나의 방종을 일깨우며 나를 무대의 외부로 추방한다. 나라면 아버지의 품에 안겨 집으로 돌아왔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이 옳을까? 예술에의 목적을 위해 자기를 학대하고 친구와 애인을 등져야 하는가? 나는 역시나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선배는 매번 나를 추궁했다. “너는 결국 문장을 창작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고급독자에 그칠 것이다.” 그 때 나는 성실함이 광기를 넘어설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여전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편이다. 다만, 여실히 깨닫고 있는 것은 도약의 필요이다. 꼭 광기에 의존할 건 없지만, 강렬한 열망과 비약적 몰입을 창작은 필요로 한다. 나는 의도적으로 무리하지 않는 길을 찾아다녔지만, 그렇게 해서는 도약은 무리다. 광기를 동경해 왔지만, 내 안의 보수성은 나를 보호해왔고, 그 덕에, 문화 소비자의 자리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옷들을 이제는, 벗어 볼 때가 온 것이다.


<3>

<위플래쉬>가 발산하는 에너지는 엄청나다. 플렛처가 앤드류를 자신의 스튜디오 밴드에 합류시키고 연주를 하게 한다. 플렛처는 앤드류에게 자신의 템포에 맞춰 드럼을 칠 것을 요구한다. 앤드류는 그에 호응하며 스틱을 두드린다. 하지만 플렛처는 성에 차지 않는다. 아주 미세한 템포의 차이까지 구별하기를 원한다. “서두른것 같냐 질질 끈 것 같냐?(Were you rushing or were you dragging?)” 윽박을 지르는 플렛처는 앤드류의 뺨을 갈기며 박자를 체감하게 만든다. 이것은 이 영화의 한 장면이지만, 템포를 이용한 긴장감은 영화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이러한 방식은 이 영화에서 가장 로맨틱한 장면에서도 등장한다.

앤드류는 누구도 아닌 자신이 플렛처의 스튜디오 밴드에 영입되었다는 자긍심을 갖는다. 그리고 그 자신감으로, 계속 눈여겨 왔던 영화관의 직원에게 데이트 신청을 한다. 그런데 그녀는 느닷없이 “나가라(Please, Go away)”고 한다. 물론 이것은 농담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뜬금없는 대사가 영화를 손쉽게 이완의 길로 가는 것을 막는다. 데이트를 하는 상황에서도 그렇다. 가장 달달한 첫 데이트의 상황에서도 꿈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면서 은근한 긴장감이 흐른다. 서로가 지금 다니고 있는 학교에서 겉돌고 있다는 공통점을 발견하지만, 그럼에도 그러한 유대감으로 긴장감을 손쉽게 봉합하지 않는다. 느닷없는 교통사고, 메인 드러머가 된 직후 등장하는 새로운 라이벌(실은 새롭지 않은) 등은 더 말 할 것도 없다.

이 영화는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며 상승하지 않는다. 오히려 긴장에 긴장을 더하는 방식으로 상승한다. 덕분에 관객은 여간해서는 등받이에 등을 기대지 못한다. 플렛처가 앤드류를 눈여겨보게 된 것이 ‘더블 타임 스윙’ 때문이었다. 더블 타임 스윙은 기존의 악보를 2배의 속도로 연주하는 것을 말한다. 이 영화의 호흡도 이와 유사하다. 기존의 악보가 갖고 있는 긴장감을 충분히 누리고 있다고 관객이 느끼고 있을 때, 이완의 길로 가지 않는다. 오히려 속도를 2배로 올려 더욱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영화는 그렇게 해서, 끝까지 간다.

<위플래쉬>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그것이 다루고 있는 아이러니한 주제를 숨 가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광기는 가만히 앉아서 충분히 성찰하게끔 나두는 놈이 아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독촉하고 위태롭게 내던지며 끝장을 보기를 강요한다. 이 영화는 그러한 예술혼적 광기를 내버려두어 그 속도에 올라탄다. 그래서 예술적 성취의 한 양상을 체감적으로 느끼게 해준다. <위플래쉬>는 영화라는 매체가 가진 특성(편집, 연출, 연기, 각색, 음향 등)을 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영화만이 보여 줄 수 있는 방식으로 우리를 주목시켰다.


<0>

그렇게 나를 옥죄던 선배의 행방을 알 수 없다. 그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그의 전 여자친구가 자살을 한 아침이었다. 나는 창작을 하는 장에서 벗어나 있었고, 선배는 떠난 나에게 왔다. 그는 그녀의 마지막 전화를 받지 못한 자신을 자책했고, 두렵고 외로워서 나를 찾아왔다고 했다. 나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그렇게 혼자서 술을 마시던 선배는 나에게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시간이 흘렀고, 먼 궤적을 돌아, 다시 창작 앞에 서 있다. 선배의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고, 이제야 선배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 때 우리에겐 플레쳐와 같은 선생이 없었다. 선배가 앤드류이자 플레쳐 같았다. 많은 적들 사이에 선배는 있었지만, 나는 그의 순수함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끈질김은 나도 지치게 했다. 지금에서 생각해보면 그의 그런 고달픔은 먼저 알게 된 자의 불안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에게 ‘고급 독자’를 넘어서야 한다고 끊임없이 항변했던 것 일게다. 그 말은 날 향했지만 또 자신을 향한 것이었을 테니깐. 플레쳐를 만나 앤드류처럼 되고 싶진 않지만, 지금 이대로 머물고 싶지도 않다. 희생 없이 욕심만 채우려는 내가, 이렇게 앉아있다. 드럼 스틱이 허공을 돌다 결국, 떨어진다. 다시 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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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ound30
15/03/27 11:35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좋은 글에 토를 달아 죄송하지만 찰리 파커는 드러머가 아닙니다. 색소포니스트죠. 위플래쉬에 자주 언급되고 또 심벌즈를 맞은 일화때문에 드러머인줄 아시는 분들이 많은데 전설적인 재즈 색소폰 레전드입니다. 트럼펫에 마일즈데이비스라면 색소폰에 찰리파커와 같이 말이죠.
재즈 하는 사람들끼리는 악기 구분없이 실력있는 뮤지션을 리스펙 하기때문에 다른파트여도 위화감없이 예로나온것이고
실제로 앤드류가 가장 닮고 싶어하는 드러머는 버디 리치입니다. 재즈 뮤지션으로서의 대중성은 대표곡들을 꼽아볼때 살짝 부족하지만 화려한 테크니션으로써 모던 드러밍에 미친 영향력은 역대드러머중에 탑입니다. 현대드러머들에게 (락,재즈 쟝르 가릴것없이) 가장 존경받는 드러머중의 한명이죠.
앤드류가 빠른 드러밍에 집착하는 이유도 사실 버디리치와 같이 드러밍의 새역사를 쓰고 싶었던게 아닐까? 마 그리 생각하며 봤습니다.
두괴즐
15/03/27 11:51
수정 아이콘
찰리 파커가 드러머가 아니군요. 지적 감사합니다. 저는 당연히 드러머인줄... 저의 빈약함이 여기서 또. 풀썩.
핸드류가 즐겨 듣던 드러머였든 버디 리치와 플렛처가 얘기하던 찰리 파커를 동일인으로 착각했었네요.
재즈는 완전 문외한인데,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지구사랑
15/03/27 11:36
수정 아이콘
천재성을 갖지 못한 (적어도 스스로를 천재라고 생각하진 않는) 사람이 천재가 도달할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최선을 다하라 라는 말은 좋은데 최선이란 단어가 사실 불명확하죠.
극한의 광기가 아닌, 나름 합리적인 또는 지속 가능한 방법으로 그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은 있을까요? 영화를 보며 생각하던 화두입니다.
광기가 아닌, 합리적인 최선(?)으로도 가능하다고 아직도 믿습니다.
두괴즐
15/03/27 12:20
수정 아이콘
사실, 천재성이라는 타이틀은 사후적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어떠한 성취를 보고 환원해가는 것이죠. 서태지는 자기가 학교를 때려친 것을 합리적 선택으로 이해하더라고요. 자기는 음악을 하고 싶은데 학교에 있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고. 그래서 부모님께 끊임없이 어필하고 설득했다고 하더라고요. 설득을 위한 가출 감행 등. 그것도 일종의 광기의 한 형태일까요?
15/03/27 14:03
수정 아이콘
아마 그사람이 대기만성형 천재인지 아닌지를 미리 알수는 없지 않을까 싶네요.

결국 어떤 성취를 해내는 사람은 천재가 될테고 성취를 해내지 못하면 천재가 되지 못하는 것이겠지요.
BetterSuweet
15/03/27 11:39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위플래쉬에 관한 평중 가장 와닿았던 글이었던거 같아요.
나는 플레쳐/앤드류와 아버지의 삶 중 어디즈음에 있는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게하네요.

ps.찰리 파커는 드러머가 아니라, sax....
두괴즐
15/03/27 12:24
수정 아이콘
얼마전 친구가 자신의 블로그에 그렇말을 올렸더라고요. "나이가 들어서 좋은 점은, 더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나는 공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했어요. 어렸을 적에는 자신이 가치있다고 믿는 것에 대해 순수한 열정(배타적인 열망으로)으로 마꾸 뛰어들곤 했는데, 나이가 드는 이것저것 고려하게 되고, 또 이렇게도 저렇게도 살아간다는 생각에 완만해지고요.

앤드류가 19살이 아니라 39살이었으면, 플렛처도 별수 없지 않았을까 생각하기도 해요. 어쩌면 그것이 더 건강한 삶을 주었을지 몰라도.
마스터충달
15/03/27 11:57
수정 아이콘
위플래쉬가 담고 있는 이야기에 대한 논의는 참 활발한데
이 영화가 가진 영화만의 미덕이랄까요. 그런 지점에 대해서 다루는 글은 보기가 힘들더라고요.
개인적으로는 스타일 측면에서 더 장점이 많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런 부분이 언급되는 것이 참 반갑네요.
두괴즐
15/03/27 12:26
수정 아이콘
저도 영화라는 매체를 분석적으로 비평할 만큼 이해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 사실상 영화에 대한 것은 인상비평에 가깝고, 제 일기를 쓴 거예요. 영화적 특성을 조목조목 분석하는 글들을 저도 읽어보고 싶네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John Swain
15/03/27 12:15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추천드립니다.
두괴즐
15/03/27 12:26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
류현진99
15/03/27 12:22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플래처 행태를 '예술혼'을 가장한 '광기'에서 기원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제자의 죽음을 애써 포장(우울증에 의한 자살이 아닌 자동차사고)할뿐만 아니라, 자신의 폭력성을 '제자의 음악성을 끄집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정당화하는 논리들은 '성공을 위해서는 어떤 수단을 사용해도 되는가'라는 원론적인 윤리적 질문을 떠올리게 됩니다.
예술학교가 아닌 일반학교에서 유사한 사례가 발생했을 때도 플랫처를 좋은 교사로 생각할 수 있는가라고 물어볼 때, 많은 사람들은 '성공'을 명분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반윤리적 교사라는 낙인을 찍을 것 같기도 하거든요.

이런 논쟁거리될 수 있는 주제를 효과적으로 담아냈기에 '위플래시'가 정말 잘 만든 영화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
두괴즐
15/03/27 12:33
수정 아이콘
맞아요. 다만 차이는 있는 것 같아요. 우리가 흔히 학창시절에 만나는 선생님은 공부를 못하는 사람을 때리죠. 하지만 플레처는 반대예요. 못하는 아이들에게는 관심이 없어요. 음악적 성취를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겨지는 상대에게 집착하죠. 물론 그의 폭력적인 방법론에 대한 윤리적 비평은 가능할 거예요. 저도 영화를 보면서 참 아이러니했던게 저러한 선생님을 극도로 혐오하는 저 자신을 발견하면서도, 한계를 뛰어 넘는 모습을 보고 싶은 예술적 욕망이 공존하더라고요. 제가 좋아하는 음반들 중에도 그러한 극단적인 자기 학대를 통해 이룩한 음악들도 있고요.

사실 같이 영화를 본 선배는 이 영화를 굉장히 혹평했어요. 그 형은 "예술적 성취라는 명목 아래 폭력을 정당화하는 영화"로 보더라고요. 저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이야기했는데, 한편으로는 충분히 그렇게 볼 수도 있다고 봐요.
류현진99
15/03/27 12:51
수정 아이콘
예. 저는 이 영화가 '폭력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폭력을 정당화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이야기하는 영화라고 생각하는 쪽일 뿐아니라, 주제의식과는 상관없이 영화를 표현하는 방법(연출, 촬영, 조명, 음악)이 대단해서 정말 좋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
두괴즐
15/03/27 13:32
수정 아이콘
맞아요. 제가 영화 테크닉 쪽으로는 별 식견이 없긴 한데, 그래도 연출이나 촬영, 조명, 음악 등도 좋았던 것 같아요. 무엇보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든 뿌듯함은 영화기 때문에 가능한 전달 방식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수의 콘서트나 음반 혹은 소설이나 그림으로는 전달 될 수 없는 방식의 감명이었거든요. 매체 간 우위의 문제가 아니라, 매체적 특성의 차원에서요. 참 좋았어요.
류현진99
15/03/27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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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공감합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건 촬영과 편집이었는데요.
주인공 앤드류를 쫓는 것같은 카메라워크로 인물의 동선을 옥죄고, 극단적인 클로즈업을 통해 감정의 진폭을 규정해서 끊임없는 긴장감과 불편함을 만들어냄과 동시에 음악만 시작되면 반복적인 클로즈업을 뮤직비디오처럼 온갖 감정을 쏟아내듯 악기와 악기를 연주하는 손과 입을 탐미적으로 훑으면서 만들어낸 것이 이게 바로 영화라는 매체의 강점을 극대화했다는 생각 들었습니다. ^^
그림자명사수
15/03/27 12:37
수정 아이콘
이 글도 역시 열린 결말이군요...
그 선배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광기를 통해 긍국의 경지에 올랐을까요?
아니면 그 광기에 잠식 당했을까요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두괴즐
15/03/27 13:34
수정 아이콘
플렛처가 없었기 때문에, 광기는 방황하다 흩어졌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제는 많은 시간이 흘렀고, 그래서 그 선배랑 이런 이야기들을 나누고 싶은데, 그 선배도 나도 인간관계가 넓지 않았고 서로 겹쳐지는 관계가 좁았기 때문에, 지금은 닿지가 않네요.

여전할지, 흩어졌을지, 궁금합니다.
Nasty breaking B
15/03/27 13:05
수정 아이콘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깔끔하네요.
두괴즐
15/03/27 13:34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
할머니
15/03/27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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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다니던 대학교에는 고시를 하던 사람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 바닥은 다들 한번씩 공부에 있어서 전성기가 있었던 사람들간의 경쟁이니, 더이상 보통 재능과 노력으로는 눈에 띄지가 않아요. A는 하루에 10시간을 공부한다더라. 그럼 B는 11시간. C는 12시간. 어떤 사람은 밥먹는 시간이 아까워 아침을 폭식하고, 점심을 두유로 때우고 밤 12시에 집에돌아가 저녁을 먹으며 하루 14시간을 넘게 공부해요. 시험이 다가올 때즘 다들 모여서 밥을 먹다보면 10시간 공부하던 A와 B는 허리디스크에 걸렸고 , C는 역류성 식도염에 걸려서 헛구역질을 한시간동안 해대고, 어떤 사람은 시험 한달전부터 먹기만 하면 구토를 해서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했더군요.

더 잘하고싶은데, 더 걸게 없다면서 할 수 만 있다면 시험출제위원에게 섹스라도 한번 해주고 합격하고 싶다며 농담을 하던 그 시절이 영화를 보면 생각이 나더라구요. 마약이 공부에 도움이 된다면 마약을 구했겠죠. 원래 배팅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 판을 잡기 위해 더욱 많은 베팅을 하게 되니까요. 결국 10시간하던 A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높은 성적으로 합격하더군요. B는 A에게 10시간밖에 안했기 때문에 떨어진거다 라고 혹평하던데요. 그 시절,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게 가학적 폭력행위를 가하는걸, 사람들은 열정 혹은 높은 재능이라고 말하더라구요.

그래서 앤드류가 아버지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편집되었다는게 너무 아쉬웠네요. 이게 열정이라고? 이래도, 이렇게까지해도 이게 열정으로 보인단 말이야? 열정이 아니라고? 그러면 이 카라반 연주는 어때. 이래도 이게 무의미한 가혹행위야? 라는 질문이 더 선명했으면 서사적으로도 정말 매력적이었을 것 같은데.
두괴즐
15/03/27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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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었군요. 저는 국문과 출신이라 동기들이 공무원 준비를 많이 했었죠. 대부분 이후의 행방을 모르고, 가까웠던 한 친구만 주기적으로 만납니다. 그 친구도 합격을 하기까지 거의 2년의 시간을 칩거의 삶을 살았죠. 집을 나와 고시원에서 친구도 가족도 거의 만나지 않는 삶을 살았어요. 같이 만나던 친구들의 모임이 있을 때 종종 그의 고시원에 가기도 했는데, 담배 한대 같이 피는 정도 이외의 시간은 내어주지 않았죠. 친구가 그런 선택을 한 것은 하고 싶어서라기 보단 생존 때문이었는데, 다행이 지금은 그 목표를 달성하고 그럭저럭 지냅니다.

앤드류의 아버지는 앤드류가 광기의 연주자가 되길 원치 않았을 거예요. 그래서 카라반 연주를 하는 경의적인 모습을 보고도 걱정스러운 표정만 짓죠. 반면 플렛처는 희열을 느끼고. 관객의 입장에서 카라반을 연주하는 앤드류를 보면서 쾌감을 느꼈는데, 만약 내 아들이 저렇다면 심정이 또 다를 것 같아요.
검은책
15/03/27 14:54
수정 아이콘
좋은 글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추천!
두괴즐
15/03/27 15:25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
파르티타
15/03/27 14:54
수정 아이콘
정성스런 리뷰 잘 읽었습니다.
저도 하나만 딴지를 걸자면, 극중에 자살한 선배의 이름은 케이지가 아니라 케이시 (아마도 Casey)로 들렸던것 같네요.
두괴즐
15/03/27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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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그렇군요. 사실 이 글에 나오는 한글표기명은 네이버영화의 표기를 따른 것이랍니다. 생각해보면 '케이시'에 가까웠던 것 같긴하네요.
6년째도피중
15/03/28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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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플래쳐가 결코 '각성'을 위해 앤드류를 무대위에 올리지는 않았노라고 굳게 믿는 입장입니다만... 그래도 말씀하신 내용들은 상당히 공감가는 것이 많습니다.
영화는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그보다 영화의 감상들이 영화를 보고나서 영화를 본 사람들사이의 대화가 불편했죠.
'필요악', '내 안의 잠자는 열정', '현대교육은 천재를 만들 수 없다', '천재만이 천재를 알아본다' 류의 대화들이 튀어나오면서 어느 정도 서로 공감한다고 생각되던 사람들 사이에 날카로운 대립점을 만드는 경험을 했습니다. 서로의 교육관, 혹은 세계관을 알 수 있게 해준 영화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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