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의 은사님이 한 분 있습니다.
김제시에서 작은 학원을 하나 운영하십니다.
머리가 크고 나서는 좋은 말벗이 되어주시는 선생님과 어느날 이야기를 나누다가 선생님이 "생즉고라고 말씀하십니다".
학원 규모가 큰 편이 아니고 그마저도 어렵게 공부하는 아이들을 위해 베푸면서 사시는 분이라 '아! 선생님도 고달프게 사시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웬걸? 어렵게 공부하는 친구들을 지켜보는게 마음아파서 삶이 괴롭다고 하십니다. 선생님을 10년 넘게 보아왔지만 아직도 선생님을 잘 모르나봅니다.
오늘 저녁에 20살 남자아이 하나를 데리고 선생님을 찾았습니다. 편부모 가정에서 자란 이 아이는 어릴적에 반항심이 많았습니다. 뭐랄까요, 저는 어릴적 이 아이의 모습에서 어른에 대한 불신, 사회에 대한 불신, 사랑에 대한 불신을 느꼈건 것 같습니다.
아이가 고등학교를 타지역으로 진학하는 바람에 한 동안은 이 아이를 보지못했습니다. 중학교 때 공부를 제법 잘했던 아이는 열심히 공부했지만 원하던 결과를 얻지 못했고, 집에서 독학하며 재수를 하고 있었습니다. 엄마를 통해 소식을 전해듣고는 아이의 상황이 안타까워서 오늘 함께 선생님을 만나고 왔습니다.
아이가 편부모 가정에 태어난게 아이의 잘못일까요?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인강 하나 들을 때도 고민해야하는게 아이의 잘못일까요?
변변치 못한 끼니와 변변치 못한 환경 속에서 공부해야 하는게 아이의 잘못일까요?
전부터 "소말리아나 아프리카에 태어나지 않은걸 감사해야한다", "북한에 태어나지 않고 남한에 태어난걸 감사히 여겨야 한다"라는 말을 싫어했습니다. 상대적 행복은 감사의 대상이 아니라 아픔의 대상입니다.
생즉고.
사는 것은 괴로운 일입니다.
다만 괴로운 일은 줄어들되,
괴로워하는 마음만큼은 줄어들지 않길,
그것이 나의 삶이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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