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모 웨딩잡지에 반년 정도 연애상담 칼럼을 연재하고, 두어달 전부터 다른 곳에서 또 연애상담 칼럼을 쓰게 되었다. 오오, 연애칼럼 연재처 2곳이면 나름대로 연애상담 전문가라고 우겨볼 수도 있겠다. 물론 중이 제머리 못 깎는다고 내 연애는 언제나 후 아이고 에이 말을 아끼자. 어디까지나 연애 '상담' 전문이지 연애 전문가는 아니니까. 뭐,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대학에서 사회학을 깔짝, 심층면접을 깔짝, 페미니즘을 깔짝, 섹슈얼리티와 파트너링 이론을 좀 오래 공부한 자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이야기는 결국 연애 이야기 아니겠냐. 게다가 직업은 바텐더, 연애 이야기라면 수도 없이 듣는다. ask.fm/barTILT 이런 류의 익명의 질문 사이트가 있기도 하고.
그렇게 나이를 먹어 이제 나도 삼십 대다. 서른도 아닌 삼십대. 불륜이라는 단어가 바람을 대체하는 나이. 파혼과 이혼이 헤어짐을 대체하는 나이. 성병을 젊은 시절의 추억으로 웃어넘기기 힘들어진 나이. 단어가 바뀌고 무게가 바뀌며 중력이 바뀌는 나이. 에쿠니 가오리였나 요시모토 바나나였나 유미리였나, 스무 살 무렵 열심히 읽던 어떤 작가는 어떤 소설에서 이런 문장을 썼다. '여자는 나이를 먹을수록 중력이 강해지는 걸 느끼게 된다고. 뱃살이 늘어지고 가슴이 처지고.'' 남자도 마찬가지지 뭐. 발기는 굉장히 반중력적인 일이잖아. 많은 것들이 바뀌는데,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 지는 모르겠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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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 대의 연애상담이라. 이십대의 연애상담은 참 쉬웠는데. 일단 질문부터가 쉽다. 자기에 대한 이야기 없이 상황과 선택지에 대한 이야기만 있다. '이래저래한 상황이에요. 나는 이래저래 해도 될까요.?' 그냥 질러. 그게 다 경험이야.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봐야 알기는 커녕 통째로 마셔도 헷갈릴 나이라고. 그냥 해. 그리고 너 지금 이러저러한 점에서 멍청이짓 하고 있는거야 하고 훈수 두면 끝. 하지만 삼십대는 질문지부터 다르다. 질문지는 많은 경우 '구체적 자기 서술'부터 시작한다. 이를테면 20대의 연애상담이 '대학 동아리에서 우연히 이상형인 선배를 만났어요. '로 시작한다면 30대의 연애상담은 '나는 금융권에서 일하는 서른 두 살 독신남인데, 마지막 연애는 이러저러하게 끝났다. 그러다 우연히 영어회화 동아리에 가입하게 되었는데 거기서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났다.'로 시작하는 기분이랄까. 뭐, 자기를 구체적으로 바라보는 일은 중요한 일이니까. 하지만 왜 그렇게 '자기를 바라보게' 되었을까. 세상의 풍파란 그런 것일까.
연애에 대한 욕망이 떨어진다. 마음속의 불같은 낭만을 이십대에 모두 태워버렸는지, 아니면 단지 요즘의 시대가 살기 퍽퍽한 시대이기에 그런 건지, 그동안의 연애에서 받은 상처들이 너무 크기 때문인지. 아니면 다만 일에 치어 너무 바쁘기 때문인지. 이십 대의 연애 고민이 (하고 싶은데)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다, 는 톤이라면 삼십 대의 연애 고민은 (굳이 이 짓을 해야 하나 싶긴 한데)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톤이다. 그들은 '최대한 피해보는 일 없고 시간쓰는 일 없이 안정적으로' 무언가를 꾀해보려 한다. '연애'라는 단어를 무겁게 생각한다. 연애를 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 오히려 섹스파트너나 데이트메이트가 필요한 사람들. 그리고 섹스파트너나 데이트메이트를 유지하는 삼십대는 사람을 그리워하면서 외로워하지. 아 뭐 어쩌라고 인마. 그냥 연애를 해. 뭐가 그렇게 무서워. 뭐가 그렇게 달라졌어. 왜 갑자기 서른 되니까 세상의 도를 다 깨친 우울한 사람이 되었니.
연애시장 내의 남녀 권력관계에 약간의 변화가 생긴다. 이십대의 연애<시장>은 여성에게 호의적이다. 남자나 여자나 똑같이 돈이 없고, 남자는 여자보다 성욕에 불탄다. 삽십대의 연애 <시장>은 조금 달라진다. 아 잠깐, '여자 나이 크리스마스 케이크와 같지'라는 심플한 헛소리를 하려는 게 아니다. 삼십대 남성들은 더 이상 성욕에 불타지 않고 일이 바쁘다. 그리고 남녀임금비가 1:0.7도 안되는 이상한 사회 시스템덕에 돈을 벌기도 쉽다. 어여쁜 사회학과 여대생은 취직자리 잡기도 힘든데 체크남방의 공대생은 대기업 정사원으로 업그레이드된다. 그리고 한국 사회에서 '나이'는 연애나 결혼자원에서 여전히 중요한 자원이고. 20대 연애시장에서 '많은 자원'을 가진, 시장에서 우세한 남성은 몇 없다. 하지만 자원의 중요도가 변하는 30대 연애시장에서, 일부 남성은 자원 부자가 되고 일부 여성은 자원을 잃는다. 물론 여전히, 될 사람은 잘 되고 안될 사람은 안 된다만. 가끔 '나도 이제 30대니까 자연스럽게 간지가이' 라는 알수없는 근자감으로 가득찬, 20대랑 별로 달라진거 없는 30대 남자애들이나, '나는 이제 30대야 이제는 비참해졌어' 하는 20대랑 똑같이 적당히 잘 나가는데 자기연민하는 30대 여자애들 보면 답답하다. 아니야 니들은 똑같애. 그건 그렇게 '자연스러운' 과정이 아니야.
'결혼'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결혼은 해야 겠고. 라는 문장들. 이십대 초반에 비혼주의자였던 친구들도 요즘은 하나같이 '아 결혼은 해야 하는데'라는 말을 끼고 산다. 연애의 중요도는 줄어들었고 결혼의 중요도는 늘어났다. 통과의례 같은 건가. 십대에는 친구들과 몰려다녀야 하고, 이십대에는 연애를, 그리고 삼십대에는 결혼을. 보고 있자면 딱히 결혼이라는 관념을 이전보다 더 '진지하게' 고려한 것 같지는 않다. 그냥 이십대에 연애 고민하듯 결혼을 고민하는 느낌. 자, 이제 내가 사십대가 되어서도 연애상담질을 계속 한다면 내 주요 주제가 '이혼'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왜 갑자기 결혼일까. 모르겠다. 단지 내가 이걸 진지하게 고민해보지 않아서, 저들이 진지하게 고민하는 걸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법률적인 단어들이 자주 등장한다. 불륜이라든가 불륜이라던가 불륜. 내가 이십대였을 때, 그리고 이십대의 연애 이야기들을 들을 때는 그래도 유부남/유부녀랑 만나는 이야기를 이렇게 많이 듣지는 않았는데. 유부들과 만나는 것은 1)유부들의 원숙함 2)탈일상적 로맨스화 3)자기비극화를 통한 감정이입 뭐 등등 등등이 있는 것 같다. 니들 연애야 니들 자유니까 뭐라고 하고 싶진 않은데 권장할 만한 일은 아니다. 통계적으로 무의미하지만, 유부녀와 만나는 이야기는 거의 몇번 못 들어봤는데 유부남과 만나는 이야기는 지겹도록 들었다. 하긴, 유부남 좋지. 이런 시대에서 '결혼'을 통과했다는 건 뭐랄까 결승진출자 같은 느낌이니까. 결혼할 만한 인성과 결혼할 만한 능력을 갖추고 실제로 결혼까지 했으니 뭐 검증된 카드인건 맞는데. 게다가 연령상 경제규모도 나와 다른 수준일 거고. 게다가 그 비극적 로맨스 하며. 뭐 끌릴 구석이야 쓰자면 책한권도 쓰겠다만, 그런 <조건들>이 중요한 건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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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내가 관심법에 통달한 궁예와 같은 자라 '아 이런 질문을 한 익명의 질문자는 20대, 아 내 눈앞에서 술을 드시며 지나간 연애를 한탄하는 이 분은 30대' 이렇게 딱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떤 '경향성'을 추론해볼 수는 있는 일이니까. 그리고 가끔은, 이십대와 삼십대의 연애 문제가 아니라 '옛 시대'와 '지금 시대'의 차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초식남이니 뭐니 하는 이야기들. 뭐, 찬찬히 더 생각해보고 더 해봐야지. 사실 원래 '지금 시대의 연애'에 대한 글을 써보려고 했는데, 정리하기 너무 어려운 이야기들이 많아서 좀 더 '낮은 단계'의 이야기를 정리해보려고 이 글을 쓴 거다. 난잡한 느낌이 있어도 이해해달라. 조만간 좀 더 정리된 글로 찾아뵐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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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연애상담 어쩌고 한 김에 홍보 하나만 하겠습니다. 현재 엔씨소프트 블로그에서 연애상담을 연재한고 있습니다... '아만자'로 유명하시고 현재 한겨레 그림판에서 헌병대 체포조의 이야기를 다룬 DP를 연재하시는 김보통 작가님과 함께..
http://blog.ncsoft.com/?p=1309
'30대, IT인을 위한 연애상담'이라는 키워드는 그런대로 PGR과 잘 맞지 않나 마 그런 생각이 듭니다요...뭐 이런 게 항상 그렇지만 언제 짤릴 지 모를 일이기도 하고. 재밌게 읽어주시면 좋고 아니면 말고 뭐. 질문 올려주셔도 좋고 뭐.. 아무튼, 참 오랜만에 피지알에 글을 쓰는군요. 바빴습니다. 다들 건강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