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전역후, 진로에 고민을 할쯤 새롭게 다가온 사랑이 있었다.
군 전역전에 잠깐 알게된 여자애, 전역후 반겨주며 이런저런 이유로 몇번 만났는데, 뜬금없이 새벽에 오빠는 자기 어떻게 생각하냐면서,
혹시나 자기를 여자로 보지 않는다면 더이상 잘해주지 말라고 한다. 아, 또 이렇게 되는 스토리다.
친한 동생으로 지내고 싶지만, 여기서 거절하면 더이상 예전처럼 지내지는 못하겠지.. 그래서 받아들인 고백
애초에 나에게 연애 란것은 다른이들과의 틀린 개념이다.
불 타오르며 뜨겁고, 열정적인 이런것의 개념은 나에겐 없다.아니 없었다.
연애 란것은, 그냥 옆에 항상 여자가 있고 어딜 갈떄마다 따라 다니는 애가 있는 수준, 최소 고등학교떄부터 20대 중반까지 나에게 연애란 그런 개념이었다. 그래서 어느 연애와 다를거 없이 무미건조한 연애를 시작한다.
그떄까지 여자친구는 수없이 사겼지만, 1년을 넘긴 연애는 없었다.
이 아이는 먼가 특별했다, 22살이었는데 자취를 시작해 나름 그나이에 아파트 전세에서 살고 있는 여자였다.
대기업 생산직이 직업이였던 여자애. 나는 진로 고민 백수. 실업계 고등학교를 자퇴후 뭐 지식도 기술도 없던 그냥 저냥 흔한 평균이하의 남자.
군전역후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 나도 멋모르고 공부를 시작했다. 대학을 가봐야지. 나름 집안학력도 좋은 편이라 좋은대학이 얼마나 대단한지 개념도 없었을때니깐, 뭐 알겠지만 수험생이란 가난하다
그래서 특별 하다고 잊지 못하는거 같다. 돈없는 나를 위해 데이트 비용을 100프로를 부담 했던, 공부 하라고 오토바이 사준 ,
목 아프다고 마사지샵을 데려갔던, 고기를 좋아한다고 고기데이를 만들어 사줬던, 열거하자면 끝도 없다.
그래서 나는 어떘을까,
첨엔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평생을 그렇게 자라왔으니깐,
그렇게 여자들이 잘해주고 준 사랑을 받지 못해 떠나는게 지금껏 사귄 여자들의 전형적 스토리.
근데 꾸준히 감동적으로 장기간으로 받아본적은 처음 이었다.
이떄쯤에 내가 가치관이 흔들리고 변하기 시작했던거 같다.
주지 못하는것에 대해 받는것이 미안해지고, 눈치를 보게 되고, 그게 길어지니 자존심은 있어서 어딜가자고 하면 돈없는 이유를 고백하지
못하고 화를 냈던거 같다. 매 연애는 한 여자가 남자를 돌보는 식의 연애, 뒷바라지 하는 연애였다. 난 그래도 무미건조 해보였나보다 그래서
그 상황에서 여자는 매번 집에서 운다고 했다. 나는 그당시 이유를 알지 못했다. 내맘은 안그랬는데 표현방법에 문제가 있었나,
여자는 늘 불안해 했다.
그 아이는 어린나이에 대체 뭘보고 그런 희생적인 사랑을 한거였을까.
지방에서 공부가 실패했다. 고등학교 자퇴하던 나에게, 연애를 병행하던 나에게 당연한 결과 였을지 모른다.
집안과 상의 끝에 서울로 올라갔다. 여자친구에게는 사정을 잘 말하고, 나름 꽤 큰 투자였다.
관리 해주는 학사, 그리고 관리 잘해주는 학원 양쪽 생활터가 휴대폰도 금지 되있는 상황.
미친듯이 공부했던거 같다. 성적도 밑바닥이었으니깐, 아마 수능성적이 평균 5등급이었으니깐 말이다.
여자친구도 잊고 공부만 했던거 같다. 나는 정말로 절박하게 공부만 했다. 나름 전통있는 학원에서 성적도 안나오는 내가 학원을 그만둔다고 하니깐, 그동안 공부 태도를 통해서 올장학금을 받으면서 다니게 배려 해줬으니깐 말이다.
공부에 몰두한 만큼 여자친구는 소홀해졌다. 둘의 관계는 반비례였다.
한달에 한번정도 지방으로 내려간 데이트는 어색함이였다. 그렇게 수능을 3달남기고 우리는 헤어진다.
2년반년을 뒷바라지하고 3달을 남기고 헤어진다. , 헤어짐의 이유를 돌아보자면 전적인 나였다. 나름 그당시는 너무 나쁜넘이었다.,
공부에 몰두했다가 전적인 이유가 아니었다 좋은 대학을 가게되면 더 좋은 여자를 만나야지 라는 생각도 있었고,
나름 재수생들의 대쉬도 몇번있어서 그걸 즐기는 내태도에도 문제가 있었다.
이별 한달간은 너무 멀쩡했고,오히려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2달째부터는 약간 그리워서 연락은 해봤는데 거절당했었다.
언제라도 내가 손을 뻗으면 다시 잡을수 있다고 생각 했었던거 같은데 뜻대로 안되니 그떄부터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수능날 따듯한 전화한통은 왔었다. 그동안 고생했던거 빛을 보라고..
수능을 보고 대학을 붙었다.. 이떄는 다시 잡으면 돌아 올거라고 생각을 했다.
다시 찾아가 연락을 시도 했지만 , 거절 당했다. 그렇게 나만 바라보던 여성들도 돌아서면 한없이 냉정해 질수 있구나
그때 그여자애가 나한테 해주던말을 잊지 못한다. 마치 영화 엽기적인그녀에서 차태현이 전지현 맞선상대에게 해주던말의 뉘앙스와 비슷하다.
그래도 나를 많이 아껴주는 느낌이 드는 말들이었다, 물론 비수가 꽃힌 말들도 있었지만..그리고 그말들은 내가 살아가는 방식에 있어
귀감이 될떄도 있다. 난 너무 어렸던 아이 였나보다.
그해 12월 ~2월은 참 가슴이 많이 아팠다. ..생각이 너무 나더라 부질 없었던 내태도에 대한 반성도..
그리고 느껴지는 공허함...목표를 이루었는데 기쁘지가 않다, 쓸쓸하다.
그렇게 나는 다시는 오지 않을 여자를 놓쳤다는 후회를 뒤늦게 알아서.. 근 1년간은 폐인처럼 지냈다,
오죽 하면 학기 초반 나는 땅만보고 걷는 사람이라는 애기도 들렸 었으니깐, 그 1년간은 내잘못에 대한 반성의 시간 이였다.
무미건조하게 시작된 사랑이, 그렇게 나를 지독한 고통으로 몰아갈줄은, 받기만 한사랑이 최후에는 그렇게 괴로울수 있다는것을 알았다.
제일 괴로웠던것은 나는 너덕에 이렇게 성장하고 변했는데, 그 변함을 너가 몰라준다는, 그리고 지금 너는 없다 라는 생각이었다.
다른여자에게는 안된다 ,내가 원래 이런넘이 아니니깐, 너로 인해 변한거니깐 그러니간 내가 그동안 해주지 못한 사랑 하지 않았던 사랑을 받을수 있는 자격의 여자는 너 여야만 했으니깐. ' 너로인해 나의 변한 모습이 다른 여자에게는 원래 좋은 사람이구나 인식을 시켜주기가 싫었다.
그렇게 나의 잘못으로 끝난 사랑의 이야기가 끝나고, 그 여자애는 3년후 착한 남자를 만나 결혼했다.
그래서 지금도 가끔 그여자애의 블로그를 들어가보며 감성에 젖어가며 스스로 담배를 무는 내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그 누구보다 행복하길 빈다. 진심으로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이성에게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자라왔다,
그래서 사랑을 주는법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던거 같다. 고맙기보다는 당연한줄 알았던 느낌이랄까,
나름 고등학교떄는 얼짱 출신이였고 , 재수생,대학생때는 내손으로 필기를 한게 손꼽을 정도로 여자들이 많이 해주었었다.
이미 고등학교 자퇴하면서 군입대전까지 여자들이 일하는곳에서 밤 생활을 하며 돈을 벌었던 나에게, 대학생들의 어장관리는 일도 아니었다.
외모에 대한 자신감과, 어떻게 할때 여자의 마음을 살수 있는지는 어린 여자들에게 나에게는 너무 대수롭지 않은 일들이였고. 주변에 있던 남자들은 애초에 나를 경쟁 상대로 보기엔 연륜의 차이가 컸다.
나는 그이후로 연애를 안했다 아니 두려웠다. 데이트상대는 있었지만 애인은 없었다. 처음으로 느껴보는 무기력함과 반성 그리고 두려움에,
받았던 고백들은 자신이 없어서 접어두었었다. 그냥 현 상황을 즐기기만 했다. 그리고 또 4학년 시작된 내 수험생활,,
거짓말같이 똑같은 상황에서 연애를 시작하게 된다..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여자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