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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7/08 17:30
어느시대이든지 전쟁영웅을 좋아하는 군주는 없지요...
전쟁영웅은 대중의 인기도 좋을 뿐더러 군 장악력도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반기를 들 수있는 '잠재적 적'이라서 전쟁이 끝나면 내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테니...
14/07/08 17:30
윗 내용과 상관없이 역사를 일방적 선악대결로 몰아가는 게 참으로 불편하더군요.
덕분에 당시 상황과 인물에 대한 이해가 너무 단순해져버려 오히려 역사를 제대로 못 보는 느낌이에요. 대중들이 받아들이긴 쉽겠지만.... 역사는 단순해질 수록 왜곡되기 마련인지라..
14/07/08 17:33
선조입장에서는 어쩔수 없었죠
당장 아들들도 민중들때문에 일본군에게 포로로 잡혔는데요 뭐... 전세계적으로 볼때 전쟁영웅을 홀대한 사례는 차고 넘치죠 물론 선조가 잘했다는건 아닙니다.
14/07/08 17:35
견제한 이유야 이해는 되죠
크킹만 해도 신하가 잘한다고 왕권 낮춰주고, 작위 주고 그러고 싶지 않으니까 물론 그렇기 때문에 선조가 맘에 안드는 겁니다.
14/07/08 17:45
남송의 악비와 이순신을 보면 아주 묘하게 닮았습니다. 전쟁 영웅에게는 찬역 혹은 죽음 뿐이죠. 조금 멀리 보자면 한나라의 한신도 같은 경우구요.
이순신이 일부로 노량해전에서 전사했다는 설도 이런 면에서는 신빙성이 있죠. 해전 대 해전에서는 포탄, 침몰 사망이나 백병전 제외하고 주장이 조총맞고 죽을일은 거의 제로에 가깝거든요. 요즘 M4같은 총기도 아니고 엣날 조총의 경우는 2백미터만 떨어져도 살상 효과가 제로에 수렴하니까요. 갑옷을 받혀입었다면요. 자살하기엔 해놓은 업적이 폄훼당하고 위신이 서지 않고, 살아서 승전보 올리자니 전라 경상 충청 3도 왕국을 만들수도 없는 노릇이고 가장 좋은건 조선을 지키고 마지막 전사니까요. 그러나 저러나 정도전 끝나고 저 역사저널 보면 아나운서 말고 패널쪽에 글래머 여자분이 하나 보이는데 누군가요? 계속 눈이 안가고 싶은데 역사 설명보단 눈이 딴데로 가서 집중이 안되요.
14/07/08 17:51
아마 이다지 선생님 말씀하시는 거 같네요. 자세한 건 이다지로만 검색해보시면 정보와 또한 원하시는 여러 가지를 얻으실 수...
14/07/08 18:09
노량해전은 명량 못지않게, 어쩌면 그보다 더 심각하게 혈전인 해전입니다.
이순신이 지휘했던 전투중 전사가 가장 많은 게 노량해전이에요. 게다가 지휘관 전사도 적지 않은데다 명나라 장수 등자룡도 노량에서 적의 총탄에 맞아 죽습니다. 원래 전쟁이 끝나고 퇴각하는 적을 잡으려 할 때 그 저항이 가장 격렬한데다, 적의 세력에 타격을 주는 목적이 아닌, 섬멸을 목적으로 한 전투인지라 백병전도 치열했고 근접전이라 지휘관이 죽는게 그렇게 있을 수 없는 사건인 건 아닙니다.
14/07/08 18:31
네 저도 음모론은 믿지 않습니다. 단지 이순신 입장에서는 그 죽음이 본인에게 가장 명예롭고 자손도 보존할 방법이라고 판단하였으면 그랫을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 말씀드린겁니다. 해전에선 격전이라 해도 주장 (이순순 진린)이 타는 대장선은 왠간하면 조총 따위로 사살할순 없습니다. 제가 왜장이고 사살 가능하다면 오로지 대장선의 주장 탑승 브릿지만 집중 사격을 하라고 지시했겠죠.
해전의 가장 큰 전사는 침몰로 인한 수장, 두번째는 대표 직격탄, 세번째는 백병전 정도죠...조총이나 활은 그렇게 큰 임팩트를 주진 않았습니다.
14/07/08 19:05
임란도중 상선에서 나왔던 전사자의 대다수는 조총에 희생됬을 것이라는 게 정설입니다.
그리고 이순신이 지휘한 전투중에서 침몰로 인한 수장으로 희생된 조선병사는 한 명도 없습니다. 노량해전을 제외하고는 백병전을 허락한 전투도 거의 없으니, 전사자의 대부분은 조총에 희생되었을 겁니다.(당시에는 화포의 사거리가 대단치 않았기 때문에, 조총에 전혀 피해를 받지 않고 포격전을 펼치는 건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당시 조총의 사정거리는 형편없는 수준이었습니다만(활보다도 떨어지는 수준) 관통력 자체는 상당했습니다.
14/07/08 19:31
노량해전에서 그런 상황이 나왔습니다. 전체 사상자가 제대로 나오진 않았지만 지휘관이 이상할 정도로 많이 전사했죠. 전사한 장수만 10여명, 여기에 전라우수사 안위도 중상을 입었습니다. 통제사겸 전라좌수사 전사, 전라우수사 중상이면 남은 건 경상우수사 이순신 정도였죠.
추가로 시마즈가문은 매복했다가 조총으로 적장을 노리는 전술로 유명한 가문이었습니다. 스테가마리라고 하죠 당시 일본에서 배에 대포를 싣는 건 정말 보기 드물었고 노량해전에서 근접전이라면 모를까 백병전이 일어났다는 기록은 (등자룡 외에는) 딱히 나오지 않습니다. 전사한 장수들의 배도 침몰했다고 하지 않구요. 이덕형이 보고한 거에서 군관 등 30여명이 전사했다 하고 출철르 알 수 없는 280명설이 있는데, 이걸 생각해도 장수들의 전사율이 너무나도 높습니다. 그리고 이순신이 탄 상선에서는 언제나 유리하게 싸웠던 임진왜란 때도 조총으로 인한 사상자가 꾸준히 나왔습니다. 사천해전에선 직접 조총탄을 맞기도 했죠. 마찬가지로 조선군 역시 알려진 거에 비하면 화포의 비중이 그리 크지 않습니다. 화포로 때리고 화살로 적병 죽이고 불화살로 적선 불태우는 방식이었죠. '이순신은 원거리에서 화포로~' 이게 워낙에 크게 알려져서 그렇지 조총이든 활이든 임팩트 큽니다.
14/07/08 22:37
노량해전에서 지휘관급이 줄줄히 부상 내지는 전사합니다. 대장선은 조총 따위로 사살할 수 없다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이미 임진년에도 통제사가 어께에 총상을 당했듯 언제나 대장선의 지휘관도 저격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14/07/08 18:24
이순신이 마지막 해전에서 전사를 선택한 게 아니라,
이순신이 전사를 했기 때문에 노량해전이 마지막 해전이 된 겁니다. 그리고 노량해전은 처음부터 회군하는 적의 퇴로를 노골적으로 틀어막고 섬멸전으로 끌고 가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야간에 벌어진 전투였기 때문에 자연히 상당한 혈전이 벌어졌고, 이순신 장군님이 전사한 것도 크게 무리는 아닙니다. 임란내내 상선에서도 항상 전사자가 나왔으니까요. 애석하게도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님이 그 희생자가 된 거죠. 전투중 지휘관의 전사가 사기에 미치는 엄청난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이순신 자살설을 주장하는 것은 고인의 명예를 깎아내리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순신 장군님이 본인의 위신을 지키기 위해서 병사들을 위험속에 내팽개쳐 뒀다는 말밖에는 안 되니까요.
14/07/08 18:33
자살설이 아니라 전사를 하는 쪽을 선택한거죠. 어짜피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으며 철군이 떨어진건 전쟁 종료와 마찬가지니까 마지막 전투인건 맞구요. 그 후로 전투를 만들려하면 일본 침략 밖엔 없는데 그럴 여력이 여명 연합군 누구에게도 없었죠. 고인을 욕되게 하는게 아니고 고인이 가장 죽더라도 죽음에 충실할 수 있는 계기는 분명히 있었다고 봅니다.
14/07/08 18:49
말씀하신 추측을 학계에서는 자살설이라고 부릅니다. 이미 학계에서는 논파된(더 정확히 말하자면 제대로 정립된 적도 없는) 추측입니다.
그리고 이순신이 당시 노량해전이 마지막 전투라는 걸 알아차렸을 방법은 없습니다. 애초에 순천왜성에 주둔하고 있는 왜병의 기동조차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었는데요. 이순신의 대전략은 노량해전에서 퇴각하는 왜군을 완전히 제압한 후, 순천왜성을 다시 공격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이 도망갔으면 당연히 노량해전과 마찬가지로 추격했겠죠. 실제로도 조명연합군은 노량해전이 끝난 후 남해도를 샅샅이 수색했습니다. 노량해전에서 도망간 고니시만 해도, 이순신이 전사하지 않았더라면 거제도에서 재차 요격됬을 가능성이 큽니다. 처음부터 노량해전의 전략적 목표물은 고니시였으니까요. 이순신이 전사하지 않았더라면, 노량해전 이후로도 전투가 일어났을 겁니다.
14/07/08 17:48
역사 잘 아시는분이 지적하시겠지만
이순신 장군은 출정을 거부한적이 없습니다 다만 출정했을때 이미 가토는 상륙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은하영웅전설의 양왠리정도 되야 상륙 저지했을겁니다
14/07/08 18:02
잘나가는 무장을 견제하던게 선조만 그런게 아닙니다.
원래 권력이라는게 그렇습니다. 착한 공신은 죽은 공신일뿐.. 무슬림 확장기 초반에 정말 무슬림을 캐리한 한 장군이 있습니다. 할리드 이븐 알 왈리드 - 알라가 뽑아든 검 http://rigvedawiki.net/r1/wiki.php/%ED%95%A0%EB%A6%AC%EB%93%9C%20%EC%9D%B4%EB%B8%90%20%EC%95%8C%20%EC%99%88%EB%A6%AC%EB%93%9C 이베리아 반도의 레콩키스타 초기 레온-카스티야 연합왕국을 역시 캐리하던 한 장군이 있습니다. (이건 좀 논란이 있긴 합니다만..) 로드리고 데 비바르 - 엘 시드 http://rigvedawiki.net/r1/wiki.php/%EC%97%98%20%EC%8B%9C%EB%93%9C 공통점은 모두 다 권력자에게 견재를 받았다는 것.. 할리드 이븐 알 왈리드는 지휘권을 박탈 당하고(낙하산에게 빼앗기고..), 일개 기병 지도자로 취급되었지만, 그 낙하산이 멍청하지는 않아서 할리드 이븐 알 왈리드의 조언을 받아 그 이후 군단을 잘 유지합니다. 그리고 그가 이끌던 기병은 Mobile Guard 라고 정예기병이됨.. 엘시드는 알모라비드 술탄 유수프의 군대에게 위기에 처한 레온-카스티야 국왕 알폰소를 구해주기 까지 합니다만, 그 후 결국 (다시) 추방되어서.. 혼자 추종자들을 이끌고 발랜시아를 점령합니다. 발랜시아는 곧 유수프의 공격을 받아, 엘 시드가 사망하고 다시 무슬림의 세력으로 들어간 후 125년간 캣홀릭 세력에서 벗어나 있었습니다.(후에 아라곤 왕국이 재점령 후 발렌시아 왕국을 생성)
14/07/08 18:16
선조가 이순신을 견제한건 나라 박살나던 상황이 아닙니다.
이미 왜의 공격을 막고 충분히 여유가 생기자 견제하기 시작한 것 입니다. 임진년 1592년 4월 왜군의 기습을 받아서 의주까지 피난가지만, 계사년 1593년 2월 행주대첩으로 전황을 반전 시킨 후 조선이 의병, 수군 제외하고 뽑은 [관군]만 13만명입니다. 그러니까 임진왜란으로 전국이 왜적과 싸움으로 개판난건 약 10개월 정도 밖에 안되는 기간입니다. 이 이후 전장은 전라도와 경상도로 국한 되었고, 그것도 대규모 전투는 몇번 없고(진주성 전투 정도) 거의 교착상태에 빠져있었습니다. 약 5년간이요.. 이순신장군이 파직된건 바로 이때입니다. 1597년.. 이때 이미 관군도 3만명정도로 줄였던 상황입니다.(도원수 권율 휘하 병력) 그외 수비는 명군에 의존하고 있었죠.
14/07/08 19:13
선조가 김덕령(참 말이 많은 장군이긴 하지만)등 다른 장수를 손 봐준 것도 한시름 넘긴 이후의 일입니다.(한창 급했을 땐, 손 봐줘야 한다는 신하들의 요구를 스스로 거절하기도 합니다) 물론 선조가 잘했다는 건 아닙니다만..
14/07/08 18:35
확실히 예전처럼 선조는 왜 이순신한테 그런거야? 바보아냐? 라고 생각하기 보다 여러가지 면을 생각할 수 있게 되었네요.
정도전같은 드라마도 그렇고.. 여러 글, 리플들을 보면서 말이죠. 선조가 왜 그랬는지 이해도 가구요. 그래도 선조는 싫다는거..
14/07/08 18:47
실제로 이순신이 반역과 전혀 상관 없는 인물이였더라도 국민인식이 중요한거죠.
왕보다 더 인기가 많아버리면 곤란하죠. 그렇다 하더라도 선조가 어느정도 욕을 먹을 수 밖에 없는 부분은 있지만 방송보면서 그런부분은 배재하고 너무 좀 심하게 씹는다는 느낌은 들더군요.
14/07/08 19:09
뭐 후세에서 저 두 인물을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보면 이미 결론은 난 거죠...
한 사람은 역대 최고의 위인...한 사람은 찌질이...
14/07/08 19:21
애초에 왕은 선조였으니 왕이 그런 상황을 만든 것 자체에서 할 말이 없긴 하겠죠. 그 와중에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면 있었던 거지만...
14/07/08 19:25
한가지 하고싶은 말은, 관행이 그 사람을 정당화 시키는건 아니죠.
다들 그랬다, 이유를 붙이면 핑계없는 무덤없다고 봅니다. 다들 관행대로 했는데 하필 세월호가 지금 터져서 재수없게 걸린거라는 말과 다를봐 없기에 다른 왕도 그랬다는게 선조를 정당화 시켜주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14/07/08 19:46
권력자의 입장에서 보는 전쟁영웅이란 그럴 듯한 상황이 되면 가장 먼저 목을 날려야 할 존재죠.
선조를 딱히 옹호하려는 건 아니지만, 그도 이순신을 날려버려도 별 일 없을 상황이라 믿었을 겁니다. 다만 원균이 상상 이상의 존재였을 뿐...
14/07/08 19:57
나름의 이유는 있었지만 이율곡이 만나자는걸 이순신이 거절했을 때 서인들은 이순신을 앞으로도 우리편 아니라고 본 것 같습니다.
http://mirror.enha.kr/wiki/%EC%9D%B4%EC%83%81%EC%9A%A9%20%EA%B3%B5%EA%B8%88%ED%9A%A1%EB%A0%B9%20%EB%88%84%EB%AA%85%20%EC%82%AC%EA%B1%B4
14/07/08 22:44
애초에 당시 서인은 소수파이고 그나마도 2차 진주성 전투에서 다수가 전사하여(호남의병장의 과반수가 서인 의병장인데, 김덕령을 제외한다면 거의 다 전사, 병사합니다. 특히 2차 진주성 전투에서 괴멸적인 피해를 입죠. 호남 의병 활동을 기록한 호남절의록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당파의 인재 대부분이 사라진 시점입니다. 윤두수나 이항복 정도가 유력 인사로 살아남고, 전후엔 사실상 이항복이 당파의 수장급 위상을 지닌다 보면 됩니다. 서인의 판단은 큰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북인이죠. 남인과 충돌이 가장 잦았던 당파이자 임란 전후로 의병활동을 내세워 조정을 장악해 나가던 당파가 북인입니다. 그리고 이순신은 남인의 수장인 류성룡의 직계인맥에 가깝고. 류성룡을 날려버리기 위해 이순신을 공격한다!는 것은 연려실기술에도 거론되는 주장입니다.
14/07/08 20:09
평택 할머니네 내려가면 원균장군묘...라고 있는데 어렸을때는 이순신을 도운 훌륭한 장군이었다 들어서 오오...장군묘라 뭔가 멋진데 싶었는데 나중에 진상을 알고 가서 똥을 싸질르고올까...했었죠.
14/07/08 22:16
왕조국가에서 왕권을 위협하는 수하는 나라를 침탈하는 외적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왕 입장에선 왕조가 바뀌건 나라가 망하건 똑같은 거니까요. 문제는 통상대감이 왕권을 위협한 적이 없다는 거였죠. 전쟁이 완전히 끝나고 견제했어도 되었을텐데 말이죠.
14/07/09 00:53
충무공이 몇천의 정예기병을 사병으로 거느리고 있던 태조 이성계도 아니고 육군도 아닌 수군 거느린 양반을 진짜 왜 그리 못살게 굴었는지 ㅠ
14/07/08 23:06
전쟁영웅이 견제받고 그러는게 흔한일이긴 하고, 이순신보다 더 억울하게 혹은 잔인하게 당한 사람들도 충분히 찾아볼 수 있죠.
근데 어쨌든 선조는 개 동기가 있다고해서 악행이 악행이 아닌게 아니고 전례가 많다하여 악행을 커버할 수 있는 것도 아니죠
14/07/09 08:31
관행이 그 사람을 정당화 시키는건 아니죠.
다들 그랬다, 이유를 붙이면 핑계없는 무덤없다고 봅니다. (2) 쓰레기인건 변함이 없을것 같네요. 선조, 인조 최악의 투톱.
14/07/09 11:26
상황이 인물을 만드는 영향도 큽니다.
그런 의미에서 커다란 외적 요소가 없었음에도 조선의 시스템을 박살내 그것을 회복하는데 50년 가까이를 낭비하게 만든 연산군이야 말로 최악의 왕이죠.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선조나 인조의 경우엔 그 자리에 다른 왕이 왔다 하더라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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