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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6/28 03:13:50
Name 루윈
Subject [일반] 그녀는 지금 내 차단 목록에 있다.
 그것은 생각보다 오래 전의 일일 것이다. 그녀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럼에도 아닐 것이라 외면하고 그녀에게 말을 걸곤 했다. 불편했지만 편한 척, 물어보고 싶었지만 묻지 않아가며 지푸라기나마 잡는 심정으로 대화를 이어가곤 했다. 명백한 미련이었다.
 그녀의 시선이 딴 곳으로 돌아가고, 나하고의 대화에 집중하지 않음을 반복적으로 느꼈다. 너무 뻔한 거짓말까지 섞어가며 대화를 피하기도 한다. 악의적인 거짓말이 아니다. 나 따윈 지금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 가슴이 쓰리다. 표정 관리가 안 된다. 그러나 그녀는 눈치채지 못했다.

 우리의 첫 만남은 괜찮았다. 우연한 기회로 만나게 된 우리는 서로에게 호감을 느꼈으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문자(톡)을 나눴고, 매일 하루의 시작과 끝 인사를 주고 받았다. 어느 날, 그런 생활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해서? 이유는 중요치 않았다. 우린 부딪혔고, 한동안 연락하지 못했다. 그렇게 나흘 정도 지났고, 다시 연락했을 때 그녀는 달라져 있었다. 그녀는 나와 멀어지고 싶어했다. 누군가는 이를 마음이 떠났다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그 당시 나에게 든 느낌을 그대로 표현해본다.

 이제와서 생각하는 것이지만 그녀와 사귀기 위해선 단 한 순간도 긴장을 놓쳐선 안 됐었다. 그만큼 인기가 많았고, 사귄다고 해도 언제 딴 남자들이 비집고 들어올 지 몰랐다. (썸이 좋게 흘러가던 상황에서도 수많은 남자들이 대쉬했었다) 그러니까 나하고 부딪힌 뒤 사흘 동안, 딴 남자와 썸이 났다. 확실하진 않다. 그러나 그 때 나는 이미 끝났음을 직감했다.

 나머지 행동들은 모두 미련이었다. 그녀는 원래 사람들에게 잘해주는 스타일이고, 나에게 하는 행동은 썸남이었던 사람이 발광하지 않도록 차근차근 떼어놓는 것에 불과했다. 그녀에게 물어보면 아니라고 하겠지. 애초에 물어볼 상황도 이제 아니다.
 그래서 차라리 물어봤다. 확실하게 말해달라 먼저 얘기하고 물어봤다. 잘 되가는 사람이 있냐고 물어봤다. 그녀는 호감가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수 많은 생각이 머리 속을 뒤흔들었다. 그러나 거기서 생각을 멈췄다. 언제부터냐, 누구냐 등 대충 알지만 확인해보고 싶은 구차한 질문도 떠오르고 붙잡고 싶기도 했지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무엇 하나 서로에게 도움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미련이란 이유로 그녀를 충분히 괴롭혔으니, 지금이라도 깔끔하게 돌아서야했다. 다음에 밥 한 번 먹자고 하고 돌아섰다.

 한 달 동안 행복했고, 한 달 동안 힘들었다. 꽤나 깊었던 지라 이별했을 때만큼 힘들었다. 그나마 이번에 나아진 것은 다시 전화해본다거나 찾아간다거나 하지 않을 것이고, 무엇을 잘했고 무엇을 못했고 따지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헤어짐에 수많은 이유를 붙일 수 있겠지만, 사람과 사람, 일대일 관계에서는 그저 생각하기 나름이다. 생각하는 것 자체가 낭비고, 바꿔보려는 노력은 헛되다. 그래, 나는 그것을 저번 헤어짐에 신나는 삽질과 함께 깨달았다. 밥 한 번 먹자고? 인사치레다. 다시 연락하는 것은 민폐다. 그래서 그녀는 지금 내 차단 목록에 있다.

-fin


ps. 당연히 모든 PGRer들의 글과 마찬가지로 픽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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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rekawa
14/06/28 03:21
수정 아이콘
ps를 보며 무릎을 탁치고 갑니다
14/06/28 20:51
수정 아이콘
다음엔 아는 사람 얘기라고 써야겠습니다 허허
태연­
14/06/28 03:48
수정 아이콘
어 뭐야 왜 내이야기가 여기에..
14/06/28 20:52
수정 아이콘
백현이랑 썸만 타신거군요
14/06/28 07:50
수정 아이콘
저 부르시는줄 알고 움찔했습니다.
14/06/28 20:53
수정 아이콘
반갑습니다
이카루스
14/06/28 09:17
수정 아이콘
상황은 약간 다르지만, 최근 힘들었던 이유들이 바로 이 글에 담겨있군요
많은 공감을 하게 됩니다.
14/06/28 20:53
수정 아이콘
지나면 금방이지만 당장은 너무 힘들죠.

하하..
오도바리
14/06/28 18:58
수정 아이콘
픽션에 너무 진지하게 댓글을 다는걸수도 있지만
보통 처음엔 여자가 그냥 예의, 또는 이미지관리 차원에서 톡을 나눴을 확률이 높죠 크크
14/06/28 20:58
수정 아이콘
글 내용과는 별개로, 대부분의 여성분들이 예의상 최소한의 대화는 나누죠. 대화를 통해 뭔가 끌어내지 못하는 한 그대로 끝이지만, 친근감이 쌓이면 가끔 연락하는 사이 정도는 되더군요.

물론 글에서는 진지하게 썸타는 관계였다 입니다
14/06/29 10:44
수정 아이콘
이부분에 대해서 남자들이 헛갈리는게
여자들이 여자친구랑 하는 걸 보세요
종일 카톡하고 두시간씩 통화하고 영화보고 맛집가고 분위기 좋은 까페 찾아가구 그래요
이성 감정 보단 친해지고 싶은 사람 만나면 하는 짓이죠 예의차리는것과도 쫌 다르구요
극소수의 내추럴본 섹시남이 아닌 다음에야 보통 이러다 어떤 계기로 인해 그냥 친구가 남자로 보이기 시작하는데 본문 남주가 여기서 실패한듯
여자입장에선 간만 보는 남자로 보였을수도 진짜 짜증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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