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말체인 점 양해바랍니다.*
[영화공간] 내가 뽑은, 2013년을 빛낸 올해의 영화배우 5인
개인적으로 2012년, 그러니까 작년 한국영화계를 빛낸 최고의 배우 다섯을 꼽으라면
[광해]의 이병헌,
[내 아내의 모든 것]의 류승룡,
[도둑들]의 김윤석,
[범죄와의 전쟁]의 하정우,
[도둑들]의 전지현을 그 자리에 넣겠다. 그렇다면 올해는 어떨까? 오늘 글은 내 개인적으로 뽑은, 2013년을 빛낸 최고의 영화배우 5인방에 관한 이야기이다.
5. 류승룡 (7번 방의 선물) – 작품의 질을 뛰어넘는 자연인의 매력
사실 배우 류승룡이 가장 빛난 해는 2013년이 아닌 2012년이었다. 물론 배우 개인적인 커리어 측면에서 봤을 땐, 생애 첫 단독 주연에 천만 돌파 흥행, 그리고 대종상 남우주연상까지 거머쥔 올해가 그의 배우 인생의 최고의 절정기일지 모르나, 내 개인적으로는 2012년의 류승룡이 가장 인상깊고 멋졌다.
[내 아내의 모든 것]의 치명적인 카사노바 성기 역으로 수많은 여심을 뒤흔들고, 임금을 보필하는 위엄있는 도승지 허균 역으로 열연한
[광해, 왕이 된 남자]까지. 만약 이병헌이 없었다면 2012년은 단연 류승룡의 해였을 것이다. 어쨌든 그 여세를 몰아 2013년 최고의 흥행 영화인
[7번방의 선물]로 흥행력과 연기력을 동시에 인정받으며 원톱 주연으로 우뚝 선 배우 류승룡.
개인적으로 류승룡이란 배우의 가장 큰 매력은 연기력도, 카리스마도 아닌 자연인 류승룡의 있는 그대로의 인간적인 매력이라고 본다. 사실 관객들의 눈은 매처럼 날카롭고 귀신같은 면이 있어서 스크린 이면에 감추어진 자연인으로서의 배우의 본질을 곧잘 캐치해내곤 한다. 결국
[7번방의 선물]이라는 작품 자체에 대한 비판과 논란은 있을지언정, 류승룡이란 배우의 호연에 대해선 이견이 없다는 점은 류승룡의 연기력과 더불어 배우 자체의 인간적 매력이 관객들에게 얼마나 어필하는 지를 증명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른바, 작품은 싫어도 배우는 사랑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그만의 치명적인 매력. 이렇듯 오랜 배우 생활 끝에 최고의 영광을 손에 쥐며 정점에 올라선듯한 그이지만 류승룡의 연기 인생은 이제 막 시작일 뿐이며 이 기세를 이어가기 위해선 그만큼 차기작이 중요한 시점이다. 그리고 류승룡의 차기작은 내년 여름 개봉을 앞두고 최민식과 함께 호흡을 맞춘
[명량-회오리 바다]로 알려져 있다. 과연 이 작품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그의 또 다른 매력을 기대해본다.
-영화 속 명대사 : "이용구, 1961년 1월 18일 태어났어요. 제왕절개. 엄마 아팠어요. 내 머리 커서.."
4. 이정재 (신세계, 관상) – 배우는 배우다
사실 배우 이정재가 연기력으로 주목받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많은 이들이 알다시피 배우 이정재는 1998년작
[태양은 없다]를 통해 제20회 청룡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일찍부터 연기력을 인정받은 스타였다. 하지만 마치 과거의 이병헌이 그랬던 것처럼, 청춘스타 출신의 이정재 또한 본인의 스타성에 가려 배우로서의 연기적 역량이 그동안 대중들에게 충분히 어필되지 못한 측면이 있다. (오래도록 많은 이들에게 이정재는 '연기 잘하는 배우'이기보다는,
[모래시계]의 스타 '재희'였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엄밀히 따지면 올해 갑자기 이정재의 연기력이 급상승하며 물이 올랐다기보다는, 그동안의 묵묵한 노력과 배우로서의 꿋꿋한 한걸음 한걸음이 이제야 대중적으로 인정을 받았다고 보는 편이 맞다.
올해 유독 많은 이들의 지지와 사랑을 받긴 했지만 그는
[태양은 없다]에서도 그랬고,
[하녀]에서도 그랬고,
[도둑들]에서도 그랬듯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소화해내며 배역의 크기에 상관없이 제몫을 훌륭히 다하는 성실하고 멋진 배우였다. 결국 이러한 그가 새삼 관객들의 주목을 받게 된 데에는 최민식, 황정민, 그리고 송강호에 이르는 대한민국 최고의 연기파 배우들에게 한치도 밀리지 않는 연기 내공과 존재감을 보여준 것이 주요했다. 영화
[신세계]에선 최민식과 황정민이라는 거물급 연기파 배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함은 물론, 영화 속 캐릭터들 가운데 가장 위태롭고 복잡한 내면을 지닌 이자성이라는 캐릭터를 이정재 본인만의 스타일로 훌륭하게 소화해냈으며
[관상]에서는 카리스마 넘치는 악역 수양대군으로 분하며 대한민국 대표배우 송강호에게 한 치도 밀리지 않는 묵직한 존재감과 포스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이러한 이정재를 보며 드는 생각 하나, 스타든 뭐든 역시 '배우는 배우다'. 이른바 '배우다움'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대표적인 스타가 바로 이정재가 아닌가 한다.
-영화 속 명장면 : 수양대군 첫 등장씬
3. 하정우 (베를린, 더 테러 라이브) – 이 정도였었나?
류승범, 박해일, 조승우, 유지태, 강동원 등으로 대표되는 충무로의 내로라하는 30대 남자배우들 가운데서도 하대세 하정우는 단연 돋보인다. 아니, 돋보이는 정도가 아니라 어느새 송강호, 김윤석, 최민식, 이병헌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무섭게 성장한지 오래다. 1978년생, 만 35세 나이의 배우 하정우. 찍는 작품마다 연기력과 흥행력을 인정받으며 평단과 관객의 찬사를 동시에 받는 배우. 사실상 이렇게 다작하면서 삐끗함 없이 꾸준하게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가는 배우는 충무로 전체를 통틀어 하정우가 유일무이하다. 대한민국 최고의 연기파 배우로 칭송받는 송강호, 김윤석, 최민식, 이병헌, 황정민, 설경구 등과 비교해보면 하정우가 이어온 커리어의 족적은 더욱 진하게 두드러진다. 그는 올해도
[베를린],
[더 테러 라이브]를 통해 본인의 연기력과 흥행력을 유감없이 입증해낸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에 만족하지 않고
[롤러코스터]를 통해 신인 감독으로서의 연착륙에도 성공하는 만행(?)을 선보이기까지 한다.
이 정도까지 되면 사실상 독보적이라는 표현이 어울릴만 하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사실상 대한민국 영화계에서 하정우만큼 다작하면서도 꾸준하고 한결같이 본인의 클래스를 증명하는 배우도 드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을 뒤짚어 반대로 생각해보면 2005년작
[용서받지 못한 자]부터
[더 테러 라이브]까지 그동안 배우 하정우가 뒤돌아보지 못한 채 너무 자신을 소진시킨 채로 앞만 보며 달려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빈약한 내러티브의 작품을 오로지 원톱배우 한명의 힘으로 멱살잡듯 일으켜 세우며 완성시킨
[더 테러 라이브]의 하정우의 모습에서 이러한 배우로서의 누적된 피로감와 고독감, 그리고 정서적 허기가 느껴졌다면 나만의 착각일까? 오래 전 <무릎팍 도사>에 출연한 배우 황정민이 이런 식의 말을 한 적이 있다. "30대 시절에는 '어떻게 하면 연기를 더 잘할까'에만 몰두하며 치열하게 노력해왔다면 40대에 들어선 지금은 '이정도면 됐지, 더 어떻게 잘해?'라는 생각으로 연기를 즐기고 있다." 라고. 이 말을, 8년여의 세월을 거침없이 달려온 배우 하정우에게도 그대로 전해주고 싶다. 막말로 '이 이상 뭘 더 어떻게 잘하나?'. 이제는 좀 여유롭게 작품을 즐기며 성숙해가는 그런 배우 하정우의 느긋한 모습을 기대해본다.
-영화 속 명대사 : "그러니까~ 폭파하시라고."
2. 황정민 (신세계) – 이렇게 잘할 수는 없다
사실
[신세계]은 숨은 공신은 황정민이라기 보다는 최민식이라고 보는 게 맞다. 엄밀히 말해 황정민이
[신세계]에서 가장 화려하고 눈에 띄는 캐릭터를 맛깔나게 표현해냈다면 최민식은 가장 튀지 않지만 캐릭터들을 중간에서 조율하며 묵직한 존재감을 유지해야하는 강과장이라는 캐릭터를 훌륭히 소화해냈다. 한마디로 황정민은 '잘해야 하는' 캐릭터를 잘해냈다면, 최민식은 '잘하기 어려운' 캐릭터를 잘해냈다. 이렇게만 놓고본다면 황정민 대신 최민식을 꼽아도 이상할 것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정민을 선택한 이유는 간단하다. '잘해도 이렇게 잘할 수는 없기 때문'. 자칫 잘못 접근하면 평면적으로 빠질 수 있는 정청이란 인물을 황정민은 특유의 소화력으로 입체적이고 매력적인 캐릭터로 완성해냈다. 한마디로
[신세계]의 정청을 연기한 황정민이라는 배우는 대체 불가라고 본다. 최민식이 맡은 강과장 캐릭터에 김윤석이나 한석규, 천호진 등의 배우들이 어렴풋이 떠오르는데 반해 정청 역은 다르다.
단언컨대 송강호도, 그리고 하대세 하정우도 황정민만큼 정청이란 캐릭터를 맛깔나고 찰지게 표현하진 못했을 것이다. 적어도 '정청'이라는 캐릭터 하나만 놓고 보자면 그렇단 얘기다. 결국 아무리 캐릭터 자체가 화려하고 연기적 테크닉을 마음껏 뽐낼 수 있는, 탐스러운 캐릭터라 해도 누가 소화하냐에 따라 그 빛깔과 색채는 천차만별로 달라지게 마련이고 같은 차원에서 황정민이 연기한
[신세계]의 정청이라는 캐릭터는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찰지고 매력적이었다. 이렇듯 한 편의 영화 안에서 종횡무진하는 황정민의 활약을 보고 있자니, '3.3혁명'으로 불리는 곰TV MSL 시즌1 결승 3경기에서 이승원 해설이 김택용을 두고 격정적으로 내뱉은 말이 떠오른다. "이렇게 잘할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잘할 수는 없어요!"
[신세계]의 황정민이 그랬다. 2013년, 올해를 빛낸 단 하나의 캐릭터를 선정해야 한다면
[신세계]의 정청이 그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영화 속 명장면 : 부두창고 빗물 세수씬
1. 송강호 (설국열차, 관상, 변호인) – 작품 속의 또 다른 작품
2013년을 빛낸 최고의 캐릭터가
[신세계]의 정청이라면, 올 한해를 빛낸 최고의 배우는 바로 송강호가 아닐까. 사실 그동안 여러 글들을 통해 송강호에 대한 얘기를 너무 많이 해서 이제는 별로 할 얘기도 없을 지경이다. 너무 완벽한 작품에는 아무 말 없이 엄지 손가락을 치켜드는 것 외에는 달리 찬사와 경외를 표현할 방법이 없는 것처럼 송강호의 연기도 마찬가지다. 송강호라는 배우를 딱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작품 속의 또 다른 작품'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흔히 '감독의 예술'이라고 일컬어지는 영화라는 매체 안에서, 감독과 동등하게 배우 본연의 아우라를 뿜어내며 배우의 연기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리는 배우. 그가 바로 송강호가 아닐까. 결국
[살인의 추억]이 봉준호의
[살인의 추억]이자, 송강호의
[살인의 추억]이고,
[변호인]이 양우석의
[변호인]을 뛰어넘어 송강호의
[변호인]인 것처럼 말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이지만 황정민이나 하정우 등의 배우가 뛰어난 '프로페셔널'이라면 송강호와 최민식 등은 '예술가'에 가깝다고 본다. 딱 잘라 분류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송강호라는 배우에게는 배우로서의 기술력과 전문성을 뛰어넘는 예술가적인 면모와 아우라가 있다.
어쨌든 올해의 영화 얘기로 넘어와 보면,
[설국열차]의 남궁민수는 그리 인상 깊지 못했다. 이것이 캐릭터의 문제인지, 달라진 할리우드식 촬영 시스템에 대한 적응의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설국열차]에서의 송강호의 연기는 나쁘진 않았으나, 어딘가 송강호스럽지 않은 면이 있었다. 어쨌든
[설국열차]의 스포트라이트는 송강호가 아닌 틸다 스윈튼에게 쏟아졌고 이것은 온당한 결과라고 본다. 그리고 후속작인
[관상]에서 송강호는 계유정난에 휘말린 관상가 내경 역할을 맡아 희극과 비극을 한몸에 담아내는 특유의 생활 연기를 선보이며 이름값을 톡톡히 해낸다. 그리고 영화
[변호인]. 개인 리뷰에서도 언급했지만 작품으로서의
[변호인]은 범작 수준이다. 그리 뛰어나지도, 그리 못나지도 않은 수준의 작품성. 하지만 이 영화 안에서 변호사 송우석 역할을 맡은 송강호의 연기만큼은 누가 뭐래도 '명작'이다. 말 그대로 '작품 속의 또 다른 작품'. 혹자는 송강호를 일컬어 '생활 연기의 달인'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미국 타임지에선 '무관심, 무신경한 듯한 연기가 트레이드 마크인 배우'라고 설명하기도 했으나, 내가 볼 때 송강호는 그냥 뭐든 다 잘하는 배우다. 연기의 종류와 색깔을 가리지 않고 본인만의 방식으로 자유롭게 소화하며 펼쳐내는 잡식성 배우. 이 이상 무얼 더 바라랴. 이런 배우의 연기를 즐기며 그와 동시대를 살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감사할 뿐이다.
-영화 속 명대사 : "이런 게 어딨어요? 이라면 안되는 거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