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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06/19 00:29:11
Name 자이체프
Subject [일반] 갑신정변을 따라 걷다.
  지난주 토요일과 일요일. 부산에서 올라온 모 대학 답사팀과 함께 북촌 일대의 갑신정변 유적지들을 돌아봤습니다. 지금은 강남공화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강남의 위세가 대단하지만 조선시대때는 북촌이 한양의 중심지였습니다. 원래 계획은 우정총국부터 갑신정변의 사건들이 벌어졌던 곳을 순서대로 찾아가볼 생각이지만 여러가지 여건상 북촌일대의 유적지들과 함께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왜 하필 권력가들이 모여 살았을가 하는 의문은 북촌 일대를 걸으면서 사라졌습니다. 궁궐 바로 옆이라는 거리적인 이점과 더불어 야트막한 언덕길을 오르자 인왕산은 물론이고, 서울 중심가가 눈 앞에 환하게 펼쳐지더군요. 내려다본다는 느낌이 지배하고 있다는 느낌과 얼마나 통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곳에서 서울을 내려다보면서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었습니다. 북촌은 한옥이 잘 보존되어 있는 것으로 유명한데, 근현대 건축사를 연구하시던 동행자분의 말에 의하면 전통 한옥은 아니고, 일제 강점기 시절 갑자기 늘어난 경성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지어진 일종의 개량한옥이라고 하더군요. 안내를 해주시던 전문해설사분도 도시형한옥이라고 설명해주셨습니다. 다만, 북촌 일대 거주하시는 분들은 관광객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시는지 출입금지라는 표지판이 한글과 영어, 그리고 일본어까지 적혀있는게 보였습니다. 신탁통치를 찬성했다는 이유로 암살당했던 송진우의 저택을 비롯해서 북촌에 거주했던 유명했던 인물들의 집들을 둘러봤습니다. 그리고 지도교수님을 비롯해서 학생들이 열띤 토론을 벌였는데 듣는 것 만으로도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언덕길을 올라 정독도서관에 있는 김옥균의 집터를 봤습니다. 옆에서는 한참 공사중인데 김옥균의 집터임을 알려주는 표지판은 무심하게 더위를 견디는 중이었습니다. 갑신정변은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당대의 대사건이었고, 어쩌면 지금까지 그 여파가 미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곳에서도 교수님은 경제사를 전공하신 분답게 새롭고 참신한 얘기들을 해주셨고, 저는 땀에 젖은 채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김옥균과 박영효의 집은 물론이고, 그들의 제거 대상 일순위였던 민영익의 집까지 모두 근처였다는 겁니다. 한 마디로 이웃사촌끼리 칼부림을 했던 것이죠. 당시의 사건은 물론 근대 우편제도에 대한 자료들이 남아있는 우정총국과 안동별궁자리까지 둘러봤습니다. 안타까운던 격변의 시대를 거치면서 대부분의 유적들이 현장임을 알려주는 표지석만 남아있었다는 점이죠. 인사동이나 종로 근처라서 가끔씩 지나다녔던 곳인데 답사라는 타이틀을 달고 설명을 들어가면서 걷게 되니까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었습니다. 주변을 돌아보면 생각보다 많은 역사와 마주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낙원동쪽으로 빠져서 그곳의 명물인 모듬전에 막걸리를 마시면서 이런 저런 얘기들을 주고 받았습니다. 다들 지식이 높으신 분들이라 귀를 쫑긋 세우는 것 만으로도 많은 도움이 되었죠. 갑신정변에 관한 여러가지 생각들을 정리하는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김옥균보다는 그를 암살했던 홍종우에게 더 관심이 많습니다. 흔히 그를 암살했다는 것 때문에 보수파가 아니냐는 오해를 사곤하지만 홍종우는 조선 최초로 프랑스로 간 인물입니다.  최초의 프랑스 유학생이라고 설명하지만 실제로 그는 공부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기메 미술관에서 춘향전이나 심청전 같은 것을 번역했었죠.  김옥균의 암살에 가담하면서 역사에 이름을 남기기는 했지만 단순히 암살자로만 남기에는 대단히 복잡한 인물입니다. 홍종우가 김옥균을 암살한 이야기와 당시 상황에 대해서는 다음에 기회가 있을 때 해드리겠습니다. 이 부분은 개인적으로 연구를 많이 했고, 알려진 것과는 다른 부분들도 많이 있거든요.

대한제국 시절, 공사관 거리라고 불렸던 정동일대의 유적지를 돌아보는 것으로 이틀간의 답사를 마무리했습니다. 답사팀들은 부산으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서울역으로 떠났고, 저는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지나온 역사를 잔뜩 품은 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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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 ne sais quoi
12/06/19 00:38
수정 아이콘
으익... 다음 기회는 언제 오나요? 재미있게 읽고 있었는데 '기'만 써주시고 가시면 -_ㅜ
그래도 잘 읽었습니다. 다음 편 기대할께요~
자이체프
12/06/19 00:46
수정 아이콘
조...조만간에 정리해서 올리겠습니다. 홍종우는 정말 할 말이 많은 인물이죠.
눈시BBver.2
12/06/19 00:58
수정 아이콘
흔히 "구한말"이라 불리는 시대... 정말 복잡하고 손 대기도 무섭더군요.
그러니까 빨리 승전결 다 해 주세요 ㅠ
12/06/19 01:16
수정 아이콘
참 기대가 됩니다.
잔뜩 품지만 마시고 밖으로도 품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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