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초등학교(내가 다니던 시절에는 국민학교) 6학년 시절에 우리 반에는 약간 못생기고, 키도 작고, 공부도 정말 못하는 여자애가 있었다. (편의상 그 친구를 '영희'라고 부르기로 하자.) 초등학생 때의 나는 키가 작은 편이었고, 내 가까운 곳에서 일어나는 일 외에는 거의 관심이 없는 조용한 녀석이었기 때문에, 나와 접촉이 거의 없는 영희에 대해서는 별 다른 관심이 없이 잘 살고 있었다. 당시에 우리 반은 매달 짝을 바꾸는 것으로 되어 있었고, 아마도 방학을 앞둔 초여름의 어떤 때에 나는 영희와 짝이 되었던 것 같다. 내 반경 1m 이내에 영희가 들어왔기 때문에 나는 처음으로 영희에게 관심을 보이게 되었고, 영희의 주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처음 알게 되었다.
영희는 (그 당시에는 그런 용어를 쓰지는 않았지만) 소위 '왕따' 취급을 받는 아이였다. 특이한 것은 같은 여자애들과는 잘 어울리고 편안하게 잘 지내는 데 반해서, 남자애들 사이에서 놀림과 괴롭힘을 지속적으로 당하고 있었다. 나는 사실 영희에게 큰 관심이 없던 편이었기에 영희가 왜 놀림을 당하는 대상이 되었는지 이유를 알지 못했다.
짝으로 대하는 영희는 내가 생각하기에는 괜찮은 애였다. 똑똑한 아이라거나 보면 대번에 호감이 가는 아이는 아니었지만 얘기를 나누기에 어려움이 없는 아이였고, 특별히 짜증나게 하는 구석도 없었을 뿐더러, 호의를 베풀면 그에 대해서 자신도 호의도 답할 줄도 아는 아이였다. 나는 왜 그 시절에 주변의 녀석들이 영희를 '싫다'고 표현하고, 놀리고, 때렸던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가 보기에는 그 애가 두드러진 잘못을 한 것은 별로 없어 보였고, 단점이라는 것도 그 정도 단점은 우리 반 아이들 50여 명(그 당시에는 초등학교 한 반이 50명이 넘었다.) 중에서 몇 명은 가지고 있을 법한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릴 적이나 지금이나 나는 정의감이 넘치거나, 부당한 것을 참지 못하고 나서는 성격은 아니었기에 그냥 그렇게 영희와 나의 한 달은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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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잖아요, 형.'
얼마 전에 스웨덴에서 있던 학회에 후배 한 녀석과 같이 다녀온 일이 있다. 호텔에서 제공되는 조식 부페에서 식사를 하면서 그 녀석은 어릴 적 고무줄 놀이를 하던 이야기를 했다. 그 녀석이 말하는 고무줄 놀이란, 고무줄을 하면서 노는 것이 아니라, 고무줄을 하면서 여자애들이 놀고 있으면 그 줄을 끊고 달아나는 것이었다. 나는 어릴 적에 그런 일에 무심한 편이었기에, 다른 녀석들이 왜 그런 장난을 하는지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 녀석에게 어린 시절에 왜 그런 장난을 하면서 놀았는지 물어 보았다. 그때 그 녀석이 웃으면서 한 대답이 이것이었다.
'재미있잖아요, 형'
그게 왜 재미있을까? 고무줄을 끊고 달아나면 여자애들은 화를 내고, 달아난 녀석들에게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결국은 분해서 울고 마는 때가 많은데, 그게 왜 재미있을까? 그 녀석은 그걸 보는 게 진정한 고무줄 끊기의 묘미라는 것이었다. 그 녀석에게 여동생이 있었기에, 여동생이 그런 일을 당하면 화가 나지 않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 녀석의 대답은 이것이었다.
'아, 그럼 그 자식들을 때려줘야죠. 그걸 가만히 놔둬요?'
문득 먼 타국에서 그 녀석을 때려주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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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타블로에 대한 글들을 보면서, 문득 영희의 생각이 다시 났다. 그 친구와 나눴던 얘기나 그 친구의 성격과 같은 것은 솔직히 거의 기억나는 것이 없다. 사실 그 당시에 내가 짝을 했던 여자애들 중에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 애들이 많고, 얼굴 정도는 기억나도 이름까지 기억하는 애는 거의 없다. 그런데 영희는 얼굴과 이름, 그리고 그 녀석과 있었던 몇 장면들이 지금도 기억에 남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정작 그 아이에 대해서 기억이 많이 남는 건, 그 아이가 우리 반의 대표 왕따였다는 것이었다.
지금도 나는 6학년 때 우리 반 녀석들이 영희에게 그렇게 대했는지 잘 모른다. 그런데 후배 녀석의 대답을 통해 어렴풋이 그때의 상황을 이해하게 되었다. 못 생기고, 공부도 못했던 영희는 그 녀석들의 그런 놀림에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가 없었고, 결국 화만 내거나 분해서 울고 말 때가 많았는데, 아마도 그 녀석들은 내 후배 녀석들처럼 그게 재미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니까 그 녀석들에게는 영희를 놀리는 일이, 일종의 고무줄 끊기와 같은 '놀이' 혹은 '게임'이었던 셈이다. 상대를 화나게 만들거나 울려야 끝이 나는, 그리고 그것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당하는 입장에서는 아주 잔인한 게임인거지… 몇 명이 그 부당한 게임을 시작하고, 그것이 재미있으면서도 누구도 금지하지 않는 (혹은 못하는) 게임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너도 나도 동참하게 된다. 결국 몇 명의 장난이 다수의 횡포로 이어지게 된다.
문득 궁금해진다. 영희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어딘가에서 잘 지내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