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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0/01/13 11:36:44
Name likeade
Subject [일반] 나의 잃어버린 10대
저는 디자이너입니다.
돈받고 나름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저에 대해서 뭐라하긴 그렇지만, 그럭저럭 만족도 높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굉장히 평탄한 삶을 살았고, 재능에 맞춰서 필요할때 적당히 공부해서 제 삶에 계속 도움을 주고 있는 좋은 대학에 들어갈수 있었고, 대학생활 열심히 안해서 좀 떨어지는 스펙은 제 능력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서 작은회사부터 들어가서 대기업까지 왔습니다.
별다른 일탈도 안했고, 사회가 필요로 하는 수준에서 한번도 떨어져본적이 없습니다.
지금은 두아이의 아빠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몇년간 저에게 드는 생각은...

내 가치관이나 사고, 디자이너로써의 역량은 왜 이제서야 이정도일까...입니다.

거의 시행착오도 없는 나름 효율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공부만 죽어라 한것도 아니고, 놀만큼 놀았고, 사회에 관심을 가질 만큼 가졌습니다. 나름 경험을 쌓았고, 주변사람들도 좋게 평가해주지만...

왜 내나이 30대 초중반에서야 이정도 수준이 된걸까...20대 초중반에도 충분히 이룰수 있는 수준인데...

제가 천재였기를 바라는게 아니라, 제 현재 가치관과 사고하는 수준이 현대의 30대로써 부족함은 없지만, 그 수준이라는게 20대에 충분히 이룰수 있는 그리 높지 않은 수준이라는게 너무 안타깝습니다.

뭐가 문제였을까....

일단 제가 내린 결론은

나의 잃어버린 10대입니다.

순응하고 일탈이 없는 저의 성격은 대한민국 교육 시스템에서 거의 벗어난적이 없습니다. 조금 더 효율을 위해 재능을 보인 미술쪽으로 진로방향을 틀은것 외에는 별다는 체크포인트가 없습니다.

10대때 했어야하는 사랑, 일탈, 성취, 시련, 열정 등등...다양한 경험을 전혀 쌓지 못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20대에 높은수준의 성취를 이뤄냈어야 했는데...
인생의 가장 역동적인 시기인 20대에서야 10대때 했어야하는 가장 기본적인 경험을 하는데 소모했다 생각이 듭니다.
너무 경직된 사고로 디자인을 접했고 사회를 바라봤습니다.

10대때 억지로 공부했던것들이 제가 사회에 적응하는데 도움이 된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대학간판은 사회에서 정말 편리하더군요. 저희 부모님이 저를 닥달할만 했지요...
하지만 그것을위해 포기한것들이 너무 크네요.
꼭 군대같아요. 2년2개월 포기한 시간들...사회를 알고 적응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지만, 결국은 비효율적인 시간낭비일뿐...

대한민국 디자이너의 수명은 굉장히 짧습니다.
저도 얼마 안남았어요. 그렇다보니 이런 상황이 매우 답답하고 아쉽네요.
뒤늦게 깨달아가는 30대의 제 디자인실력은 늘고 있는데...저를 써줄수 있는 환경은 곧 끝난다는게...
미리 좀 펼칠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넋두리를 pgr에 배설(...)하고 갑니다.

아마 30분만 지나도 이글이 창피할거 같아요.

인생은 되돌릴수 없지요.
그래서 제 자식들은 저같이 안키우고 싶은데 가능할지 모르겠네요.
안정적인 부분은 포기하기 어려우니까요.
자식낳고 보니까 제가 효자였던거 같더라구요. 부모님 걱정시켜드린적이 별로 없거든요.
나 자신만 포기하면 나쁘지 않은 삶이군요...

4살딸, 2살 아들이 10대가 되는 10여년뒤 저는 어떤 부모가 되어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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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13 11:41
수정 아이콘
같은 문제로 고민하고 계셨군요..
저도 이상향을 희망하면서도 현실적인 시스템에서 벗어나지를 못했다는 걸 깨닫고 후회중입니다..T.T
시스템에만 맞추느라 진정 제가 원하는 것에 필요한 것들을 아직도 갖추지 못했네요..;;
likeade님도 저도 힘냅시다-!
The HUSE
10/01/13 11:46
수정 아이콘
다들 그렇게 삽니다.
그게 인생이기도 하구요.
완벽하다면, 사는 재미가 없잖아요. ^^
지금이라도 그런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부럽습니다.
전 지금도 하루하루 그냥 그렇게 사는데. ㅡㅡ;;
morncafe
10/01/13 12:02
수정 아이콘
역으로 생각해보면, 과거의 그런 과정이 있었기에, 지금의 모습이 있는 게 아닐까요?
의미 없는 가정이긴 하지만,
만약 likeade님이 지금 후회아닌 후회 하는 삶을 살았더라면, 지금의 모습은 없었지 않았을 까 생각해 봅니다.
그럼 또 다른 후회를 했을 지도 모르구요.
지금처럼,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는 것, 그게 가장 중요한게 아닐까요?

힘내세요.. :)
켈로그김
10/01/13 12:06
수정 아이콘
저는 10대에 연애를 못해봤습니다. 잠시 만난적이야 있지만.. 연애라기는 좀 그랬죠.
그래서인지 20대 초중반에 무수히 많은 삽질을 허공에 대고 했지요.
지금도 기억이 날 때면, 부끄러운 마음에 자다가도 벌떡벌떡 깹니다. 손발은 이미 오그라들어 사라진지 오래죠 -_-..;;

하지만, 그런 삽질들이 밑거름이 되어 나름의 연애관이 확실하게 형성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뭐... 인생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열심히 살아야 하는 거겠죠.
글쓴님에게도 분명 지금의 마음가짐이 훗날 득이될거라 생각합니다.
10/01/13 12:10
수정 아이콘
켈로그김님// 도..동지이군요! 역시 인생 다 그런 건가 봅니다..으하하-
프리온
10/01/13 12:34
수정 아이콘
이글을보며 든 생각이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청년의 일탈과 열정이 얼마나 창조적이고 파워풀한지
전 한국의 비보이들을 보며 느낍니다
기성세대의 좋지않던 시선,미래의 불확실함,군대크리라는 장벽을 넘어서 세계의 정상에 선 그들을 보면
적어도 예능분야에선 정규코스가 아닌 일탈이 따로 주는 창조적에너지가 분명 존재하는듯 합니다
Who am I?
10/01/13 12:59
수정 아이콘
여전히 방황하고 있고 막막한 20대의 마지막이라...뭔가 섬뜩하게 공감이되는군요.

...그래서 전 30대 백수가 목표입니다. 으하하하...;;
10/01/13 14:02
수정 아이콘
위의 글을 보면 한 분은 새로운 선택을 하고자 하고 있고
글쓴 님은 자기 분석을 하고 있군요.
십대에 사랑 일탈을 못해보셨다면.,.. 지금이라도..하하.
십대든 삼십대든..어느 때든 성장은 할 수 있지 않을까요..
10/01/13 15:11
수정 아이콘
20대후반에서 지금까지도 쭉 이어져오고 있는...
저의 자존심과 열등감을 자극하는 어떤 '상황'이 아니었다면, 지금쯤의 저는 그나마 지금의 성취도 없는, 매우 한심하게 살고 있었을겁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죠...

삶의 대부분이 안정적이 된 지금은 저를 성장으로 이끌어 가는 것은 쉽지 않은것 같아요.
자식이 둘달린 가장으로써는 일탈은 커녕 작은 모험도 쉽게 감행할수 없고, 대부분의 일에 있어서는 '성장'보다 '안정'이 최선의 가치이기 때문에요...
하지만 이대로 시스템이 완전히 순응해버리면 그냥 '꼰대'가 되버릴것 같아요...

디자이너 되겠다고 고등학교때 미대입시준비한것 부터 대학원 중간에 접을때까지 딱 10년을 넘게 준비했습니다.
이정도로 만족하고 순응하고 살겠다고 10년간 한번도 생각해보적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제 한계에 좌절하고, 부족함을 한탄하면서 위와 같은 글을 쓰고 있는것이....이런 이유라도 찾지 않으면 스스로가 너무 한심하게 느껴질까봐 그런가봐요.
리콜한방
10/01/13 15:53
수정 아이콘
추천 한 방
10/01/13 15:59
수정 아이콘
남에게 하는 말은 자신에게 하고픈 말이라고들 하죠.
저 자신도 성장하고픈 욕망이 아직도 있나봅니다.
안정이라는 말을 ...가족의 필요를 넉넉하게 충당해주는 역할이라고 이해한다면 그래도 좋을 겁니다.
이미 훌륭한 가장이니까요.
성장의 범주를 또다른 성취로 삼자는 말은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경계를 소박하게 잡고 계신 거 같아서...글 남겼구요.
지금의 생각 자체가 성장 촉진제가 아닐까요.
조금 자신에게 너그러우셔도 좋을 거 같습니다.
하긴...이런 차분한 분이니 안정이 가능했겠지요.
cutiekaras
10/01/13 16:38
수정 아이콘
그래서 역시 뭐든지 최고가 되려면 모험을 해야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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