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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0/01/13 02:35:08
Name 유유히
Subject [일반] 조롱의 자격
요새 무한도전을 보면, 아니 비단 무한도전만이 아니더라도, 각종 TV프로나, 신문, 라디오를 가리지 않고,
'영어 못하는 것'이 조롱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무한도전에 나온 외국인 게스트(앙리 등)가 영어로 뭐라 뭐라 하면, 멤버들은 어리둥절해서 눈치만 보고 있고, 방청객들은 그걸 보며 깔깔깔 웃곤 합니다. 그러면 시청자도 따라 웃습니다.

저는 그때마다 고개를 갸웃거리곤 합니다. 저 사람들은 저게 무슨 뜻인지 다 알아듣는 걸까..?
물론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제가 영어실력이 부족해서, 남들이 다 알아듣는 걸 저 혼자 모르고 못 웃는 걸지도 모르죠.

(여기서 이해를 돕기 위해 제 영어실력을 소개하자면, 정말 형~편없습니다. 원서를 더듬거리며 풀이하자면 남들이 한 페이지를 읽을 동안 한 문단을 읽을까 말까하며, 외국인과 대화할 때는 들을 때는 단어로 대충 의미를 때려맞추고 말할 때는 최대한 간단하게 자주 쓰는 표현만 애용하곤 합니다. 가장 자주 쓰는 말은, 파든?)

그런 걸 볼때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아십니까?

'아, 뭐라고 하는 거지? 자막 없으면 나도 잘 못 알아 듣겠는데. 방청객들이 막 깔깔대며 웃네? 저정도도 못 알아 듣는 건 바보라는 건가? 지금 나 바보라고 비웃는 거지? 영어 잘해야 예능을 보는 더러운 세상...'

예능을 보다가 피해망상에 시달리곤 합니다.

그래서 정말 궁금해서, 제 친구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여기서 잠깐 소개합니다. 제 친구 P군, CPA시험에 합격하여 현재 S회계법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전도 유망한 청년입니다. 왜 CPA를 했냐고 물어보면 영어 잘 못해도 돈 벌 길은 이것뿐이라며 너털웃음을 짓는 친구입니다.

P군 : "뭔 뜻인진 나도 잘 모르겠는데. 보면 웃겨."

유유히 : "(의아) 잘 몰라도 웃기다고?"

P군 : "그냥 대리만족 비슷한 거지. 애들끼리 누구가 뭐 모른다고, 와 하고 놀리면 내가 알건 말건 같이 놀리는 거 있잖아"

알듯 말듯 했습니다만, 어쨌거나 요새도 가끔씩 영어자막과 한글자막이 병행하여 나오는 외국인의 대사를 볼 때면 피해망상에 시달리곤 합니다.
아니, 제 피해망상을 넘어, 요새 TV와 벗삼아 지내시는 우리 어머니. 학교에 못 다니신 우리 엄마가 저걸 보면 무슨 생각을 하실까 싶어 걱정까지 됩니다.

꼭 외국인이 아니더라도, 예능프로에 영어가 자주 나옵니다. 의무교육까지만 졸업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영어들이긴 하지만, 제도권의 학교를 나오지 못하신 우리 부모님도 1박 2일을 즐겨 보시는데, 거기에서 출연진들이 은지원 등에게 '형이 영어로 뭐야?' 하면서 장난치고 낄낄대면 형이 영어로 뭔지 아마도 모를, 저희 부모님은 어떤 생각을 하실지요. 못 배운 한이 깊어지시지나 않을지, 걱정됩니다.

'조롱'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대중적인 개그코드 중 하나입니다. 키 작은 사람들이 웃음거리가 되고, 못생긴 사람들이, 뚱뚱한 사람들이 웃음거리를 자처하곤 합니다. 저는 이 웃음이 과연 건강한가에 대해 계속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습니다. 너희는 키가 작아. 너희는 못생겼어. 너희는 뚱뚱해.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지. 너희는 열등해. 우하하하. 마음놓고 웃음을 터뜨릴 수 있겠지요.

하지만 이수근씨나 하동훈씨보다도 키가 작은 사람이나, 매우 못생긴 사람들, 매우 뚱뚱한 사람들은 어떨까요. 그들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요? 물론 남들을 따라 웃을 수도 있을 겁니다. 영어를 잘 몰라도 그냥 덮어놓고 따라 웃는 저처럼 말이죠.

혹시 못생긴 옥동자, 뚱뚱한 신봉선, 영어를 잘 못하는 박명수를 보며 마음껏 웃을 수 있는 분.
제가 갖지 못한 조롱의 자격을 갖춘, 그런 분들이 계실까, 궁금합니다.




ps. 외국의 사례를 생각해 보니, 신기하게도 외국에서는 외모나 키, 몸무게, 어학실력을 가지고 놀려대는 개그프로그램이나, 영화나, 드라마를 본 적이 없는 것 같네요. 루저녀 파동에서 밝혀진 대로 '자신의 의지가 아닌 것을 조롱하지 않는다' 정신인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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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고이카
10/01/13 02:46
수정 아이콘
글 내용은 공감이 가는데 외국에서 그런 사례를 못보신건 그저 못보신거같네요..제가 봐온 바로는 외국이 더하면 더했지 모자라지는 않다고 생각하거든요.^^무엇을 조롱하느냐의 차이일뿐 개그의 기본이 조롱(?)임은 공통.
위원장
10/01/13 02:52
수정 아이콘
흠...
그냥 못생긴 사람을 본다고 해서 웃음이 나오지 않습니다. 단지 정종철씨는 그 외모를 어느 정도의 바탕으로 웃음을 유도 하는거죠.
그냥 뚱뚱한 사람을 본다고 해서 웃음이 나오지 않습니다. 단지 신봉선씨는 그 몸매를 개그의 소재로 이용할 뿐이죠.
(신봉선씨가 뚱뚱하다고 생각도 안하지만...)
조롱이요? 전 한번도 예능프로를 보면서 나오는 사람을 조롱하면서 웃어본 기억은 없군요
사실 웃음의 반은 tv에서 나오는 가짜웃음에 동조하며 웃는 경우라서...
10/01/13 07:14
수정 아이콘
개그의 기본이 외모 키 몸무게 등 비하하는건데 외국에서 본적이 없으시다니요;; 어딜가나 가장 기본적으로 쉽게 웃길 수 있는 소재인데요
그냥 생각없이 웃으면 되는 것 같습니다 깊게 들어가면 저런 생각이 드신다면 흠.. 굳이 스트레스 받으시면서 코미디를 볼 필요가 있나요?
아나키
10/01/13 08:05
수정 아이콘
저도 친구들과 TV를 같이봐도 웃는 코드가 좀 안맞아서 친구들이 TV보고있으면 그냥 컴퓨터를 독차지하고 게임이나 하는 편입니다.
대신 이말년이나 불암콩콩코믹스를 보고 미친듯이 웃기는 합니다.
그런데 '넌 그런게 싸이코같은 이해도 못할 만화가 웃기냐?'라고 하는 친구도 있더라구요.
그냥 깊게 생각 안하고 이런게 다 개인차인가보다... 요즘 트렌드가 이런건가보다....생각하고 있습니다.
10/01/13 08:45
수정 아이콘
아주 저급한 수준의 웃음이 통하는 이유는
시청자가 저급한 웃음을 원하기 때문이죠.
TV앞에서는 자신들도 사회의 속박에서 벗어나 멍청해지고 싶어서 그런거 아닐까요.

전 세계 공통으로 조롱이 웃음코드라는 것은, 전 세계의 인간들이 전부 타인을 비웃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포기하지 않는 근거이기도 하겠군요.
재밌는 세상입니다.
10/01/13 09:39
수정 아이콘
'조롱'이 기분나빠서인지 예능프로를 맘편히 보지를 못하겠더군요..ㅠㅠ
외모니 스펙이니 이런거 비하하는건 무관심을 넘어서 정말 싫어요. 저런 걸로는 절대 웃지 못하겠습니다.
코드가 안맞아서 많이 불편하긴 하지만 그냥 그러려니 삽니다.
10/01/13 10:26
수정 아이콘
음.. 전반적인 내용과, 의도에 대해서는 공감이 갑니다만,
외국에서 외모(외양)을 가지고 조롱하는게 없다는건 좀 동의하기 힘들군요.
외국 코미디프로를 많이 본 건 아니지만, 외국 시트콤이나 코믹영화('못말리는' 시리즈 등)을 보면,
그런 식의 웃음 코드가 상당히 많이 들어있던데 말이죠...

원래 저급한게 더 웃기는 법 아닌가요? 개인적으로는... 개그는 뭐니뭐니해도 몸개그가 최고로 웃기다고 생각합니다. ^^;;
나두미키
10/01/13 10:37
수정 아이콘
조롱이라기 보다는... 개그의 기본은 자기가 바보되거나 남을 바보만들거나.. 아닌가요...
외모나 언어 지상주의에 대해서는 참 안타깝다고 생각하지만, 그냥 웃고 싶을 땐, 웃어야 할 때는
생각없이, 부담없이 웃어야죠.......
오름 엠바르
10/01/13 11:14
수정 아이콘
글쎄요. 보통 영어를 못하는 상황이 웃음코드로 쓰이는 것은
연예인들이지만 실상은 우리랑 큰 차이 없구나 라는 의미에서 그런게 아닐까 싶습니다만. ^^;;
저희 모친께서 정말 재미있어 하는 것은 압구정 한 복판에서 연예인 밴을 보면
자기들도 연예인이고 방송계 종사자면서도 '연예인이다!!!'를 외치며 어린 아이들처럼 신기해하고 펄쩍펄쩍 뛰는 모습들이죠.
무한도전이 가장 성공한 요인 중 하나도 저런 우리와 큰 차이가 없는 그런 모습들 때문이라고 생각되고요.

저도 영어 굉장히 못합니다. 그래서 회당 출연료가 엄청나고 자기 관리 잘한다는 유재석이 영어울렁증을 호소할때마다
쟤도 나랑 큰 차이 없네 싶어서 재미있어요. 그게 컨셉트건, 실제건 간에 말예요.
로고스
10/01/13 12:14
수정 아이콘
본문에 동의하며, 조롱이든 풍자든 그 대상이 문제라 생각합니다. 예전에 김지하 시인의 '풍자냐 자살이냐'라는 글을 참 좋아했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를 조롱하는 것에 웃음을 터뜨리곤 하겠지만 그걸 건강한 웃음이라 할 수는 없을 겁니다.
10/01/13 15:07
수정 아이콘
갑작스런 몸개그(꽈당하고 넘어지는 슬랩스틱 개그)에 빵 터지는 것도, 사실은 조롱입니다.
굳이 영어 얘기를 하셨는데
유재석이 '자, 3곱하기 3은!' 했을 때 박명수가 정색하며 '야 하지마!!'라고 한다면 그 또한 웃길 때가 있습니다.
1박 2일에서 이수근이 세계 나라의 수도를 몰라 꼭 틀리면 저도 모르는 게 나올 때도 있지만 웃깁니다.
물론 그게 안 웃긴 분들도 있겠지만 그건 취향의 차이지
'그건 건강한 웃음이 아닙니다'라는 주장에는 애초에 건강한 웃음의 정의도 모르겠고, 동의가 안 가네요.

'xx가 나보다 못하다, 그래서 웃기다'라는 게 개그의 기본이자 인간의 본능 아닐까요.

개콘에 맹구, 오서방부터 해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왜 그렇게 바보캐릭터가 많이 나오는데요.
10/01/13 20:10
수정 아이콘
영어권은 모르겠으나 일본권에선 우리나라보다 몇배는 심한 외모나 키, 몸무게, 어학실력을 가지고 놀려대는 개그프로그램이나 드라마, 영화를를 엄청나게 많이 봐왔습니다. 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미국의 토크쇼에서도 위와 같은 것을 유머로 던지는 경우도 봤습니다.

일본에선 자신의 실패담이나 못 생긴 외모등을 '맛있다.'라고 표현합니다. 한국어로 표현하자면 '독하다' 정도의 의미지요.
그리고 꽁트나 쇼트꽁트, 만담등에서 가장 흔하게 사용합니다.

외국의 범위가 어디까진지 모르겠으나 가장 가까운 외국인 일본은 이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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