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이번달 초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저작권법 개정안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개정안에 의하면, 이건 저작권을 지키려는 의도보다는 평소 눈엣가시로 보고 있던 여러 인터넷 소모임이나 커뮤니티들을 문닫게 만들려는 술책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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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저작권법 개정안은 인터넷에서 이용자가 반복적으로 불법 복제물을 올리면 문화부 장관이 해당 사이트 사업자에게 복제물을 올린 사람의 계정을 최대 6개월동안 정지시킬 수 있도록 했다.
대다수 인터넷 이용자들이 포털 사이트를 통해 블로그, 개인 홈페이지, ‘까페’ 같은 소모임 등을 이용하고 있다. 불법 복제물을 올렸다는 이유로 계정이 정지되면 개인 블로그 등 다른 서비스도 못쓰는 상황이 벌어지는 셈이다.
개정안은 특히 문화부 장관이 복제물을 삭제하라는 명령을 3회 이상 받은 게시판을 폐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저작권 침해가 심하다고 판단되면 ‘취급을 제한’하도록 명령할 수 있다.
문제는 계정을 정지시키거나 게시판을 폐쇄시키는 명령권을 문화부 장관이 갖고 있다는 점이다. 저작권 침해를 당한 피해자의 문제제기 없이도 정부가 자의적으로 저작권 침해를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후략)
<경향신문 이인숙 기자의 기사 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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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소개된 이번 개정안의 주요 Fact는 셋입니다.
1. 불법 복제물을 올린 사람의 계정은 차단한다.
2. 불법 복제물을 3회 이상 올려 경고를 받은 게시판을 폐쇄할 수 있다.
3. 저작권 침해는 문화부 장관이 자의적으로 판단한다. 저작권 소유 당사자의 고발 없이도 게시판의 폐쇄가 가능하다.
상황을 하나 가정해 보겠습니다. 평소 정권에 대한 충성심이 투철해서인지, 아니면 암암리에 위에서 내려온 공문에 의해서인지는 몰라도, 8급 공무원이 부인 주민등록번호로 모종의 아이디를 만듭니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다운받은 '불법 자료'를 평소 이명박이 설치류의 일종이 아니냐고 성토하고 있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가입후 올립니다. 불법 자료의 종류는, 뭐 노래 가사를 적는 것도 불법이라고 하니 글 마무리하는 곳에 '어머나 어머나 이러지 마세요'정도로 쓰기만 해도 되겠군요. 운영진으로서는 도저히 불법 저작권 침해 자료라고 판단하기 어려운 자료입니다.
그리고 나서 담당 공무원이 쨘하고 나타나 '어이, 불법자료를 올리다니, 안되겠어. 삭제 경고야' 라고 으름장을 놓습니다. 운영진은 도저히 납득할 순 없지만 어쨌든 글은 지웁니다. 하지만 지워도 상관없어요. 불법자료를 '방치'하는 게시판이 아니라, 불법자료가 적발되어 삭제 '경고'를 받은 게시판이 폐쇄 대상이거든요. 이 점이 중요합니다. 일단 걸리기만 하면 국물도 없다 이겁니다.
이 짓을 세번만 하면, 그 어떤 굴지의 커뮤니티라도 금세 문닫게 할 수 있는, 마법의 기술과도 같은 거지요.
그런데 이 '게시판'이란 것이 정확히 뭘 뜻하는지 몰라서 인터넷을 찾아봤습니다. PGR의 유머게시판이 저작권 위반 자료로 폐쇄된다면, PGR 웃긴자료 게시판을 새로 만들면 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었죠. 기사에는 이렇게 나와 있었습니다. 그 게시판이라는 것이 크고 작은 인터넷 소모임, 블로그, 미니홈피, 사이트, 포털!을 포함한다고. 포탈이라고! 저는 할말을 잃었습니다. 다음 뉴스에 달린 저작권 위반 리플 세 개만 있으면, 문화부는 얼마든지 다음을 합법적으로 폐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점은 네이버도, 야후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저는 이 소식을 듣자마자 왠지 다음이 걱정되었습니다. 현 정권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있는 사람들이 대거 포진한 다음은 그 어디보다도 우선 타겟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였습니다.
한마디로 '게시판'이란 것은 인터넷에서 만들 수 있는 가장 작은 미니홈피에서부터 가장 큰 대규모 포털까지 모든 것을 총괄하는 개념이었던 것입니다. 이현령비현령이란 말은 이날 쓰이기 위해서 옛날부터 전해 내려온 것만 같습니다. 그 어떤 것이든 저작권을 트집잡을 수 있습니다. 소설의 문구를 인용한다던지, 재미있는 사진을 올린다던지, 동영상 파일을 올린다던지. 트집잡으려고만 들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다양하게 잡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작권 침해의 경우 나경원 의원이 몸소 '걸린 다음 사과하면 된다'는 저작권 준수 수범사례를 만들어 주셨기에 일단 나경원 의원의 홈피가 폐쇄되지 않는 한은 안심해도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 폐쇄라는 게 저작권자의 주장 없이 문화부 장관의 판단(한마디로, 윗분들의 심사心思)에 따른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아주 자의적입니다.
예)
윗분1 : 거.. 전번에 노무현 죽었을때 광고낸다고 나댄 데가 어디야?
윗분2 : 그게.. PGR이라고... 오락 좋아하는 사람들 모인덴데...
윗분1 : 각하 불편하게 하는데는 문 닫아야지.
이런 대화만 이뤄지면 PGR문닫는 건 시간 문제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반대급부로, 대한민국어버이연합, 반핵반김국민협의회, 재향군인회 사이트에 불법 저작권 자료가 올라온다 해서 문화부가 폐쇄시킬 수 있을까요? 그러지 않을 겁니다. 그럴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PGR 폐쇄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어차피 자기네 보기에 정신이 이상한 사람들이고, 4대강, 용산, 세종시, 한명숙 의원 구속반대 등 시시건건 트집만 잡는 불순분자들 집합소 아닙니까.
제목에 쓴 PGR은 하나의 예일 뿐입니다. 한겨레신문 홈페이지, 다음 포탈, 안티조선 까페, 찍기만 하면 뭐든지 폐쇄시킬 수 있는 도깨비 방망이입니다. 이제 정부가 자기 맘에 안드는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본격적으로 통제하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서울시청 앞 광장, 광화문 광장, 덕수궁으로 모자라 인터넷까지 산성을 높이 쌓는 것을 보니, 참 이 정권은 광장이건 인터넷이건 일정숫자 이상의 사람이 모이는 걸 두려워하는 독특한 성격을 가진 것 같습니다.
뭐가 그렇게 두려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