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예전 했던 한 대통령 선거 이후 많은 것이 바꿀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아니 그때 선출 되었던 대통령이 많은 것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정치는 권위주의 시대를 넘어 완전한 민주주의를 이루기 바랬고,
경제는 기존의 대기업과 성장 중심의 경제를 넘어 보다 분배와 경제 정의가 실현되기를
바랬습니다.
또한 사법 역시 마찬가지 변화를 원했다고 봐도 될 것입니다.
87년 체제 이후 많은 시간이 지났고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이러한 목적은 사실상 우리
사회에서는 엄청난 변화를 수반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우리는 대통령에게 급진적인 변화를 원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임기 동안에 만약 급진적인 변화가 이루어 졌으면 우리는 어떻게 받아 들였을까요?
아마 일부는 급진적인 변화를 받아 들였겠지만, 대다수는 이러한 변화를 반대했을 것입니다.
아니 그의 임기에서 변화는 아주 온건하고 천천한 변화 였지만, 대다수는 이러한 변화에 곧
염증을 느꼈습니다. (물론 천천하고 온건한 변화 때문에 그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분명 대다수는 변화 자체에 염증을 느꼈던 거죠.)
그리고 우리가 변화를 이끌기 원했던 대통령은 온건한 변화 때문에 결국 투표로 심판 받게 되었
습니다.
이러한 선거에서 급진적인 변화를 바라면서 실재로 임기간의 변화에서 대해서 극도로 염증
을 느끼는 유권자의 이러한 이율 배반은 우리나라 유권자 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개혁 정부는 언제나 초반의 인기에 비해 언제나 나중에 인기가 없다는 건 인류 역사에서 수없이
찾아 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예외의 경우도 있긴 했습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와 같이 개인적인 카리스마로 극복하거나
프랭클린 루스벨트 처럼 영악한 흑막정치와 적당한 타협으로 불안정한 개혁을 이끌어낸 사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그냥 놔둬도 인기가 붙어 다니는 정치인이었기에 가능했고, 그들의 변화는 급진
적이지 않고 개혁적인 면에서도 완전하지도 않은 변화였습니다.
이런 결과를 봤을 때 사실 민주주의의 선거에서 급진적인 변화를 기대한다는 건 무리가 있습니다.
결과적인 면에서 급진적인 결과를 이끌어 낼 수도 없을 뿐더러 우리 스스로도 변화자체를
싫어 뿐더러 급진이라는 말을 붙으면 더욱 본능적으로 이에 대한 공포감을 느낍니다.
(급진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혁명을 보았을 때도 수많은 사람이 죽고 재산을 잃었다는
점에서 이러한 공포감은 당연합니다.)
결국 변화는 민주주의 정치를 신봉한다면 천천히 시간이 지나야 이루어지는 것이죠.
하지만 우리는 다음 선거 때에는 다시 이러한 점을 알아 차리지 못하고 급진적인 변화를
꿈꾸며 그 변화를 이끌 사람을 꿈꿀 것입니다.
더욱 후보 중 하나가 '청념하고 도덕적이며 능력까지 있어 보는 인물'이라면 더욱 그러한
기대를 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그가 대통령이 된다면 다시 우리는 그가 주도한 변화를 증오할 것입니다. 그가
급진적이라면 더욱 증오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결국 그를 불태움으로써 변화를 주도한
그에게 벌을 주게 될 테지요.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우리의 변덕의 희생양들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습니다. 사실 민주정에서
선거를 통한 급진적인 변화의 기대를 하지 않고 시민 스스로 천천히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는 다양한 정치적 행위를 하는게 가장 긍정적이고 이상적인 양상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사례를 보기 힘든 만큼 많은 경우 민주정에서 긍정적인 변화는 이러한 변덕의 희생양들에게
이루어 집니다.
그리고 그토록 우리가 욕했던 변덕의 희생양들은 그 뒤를 잇는 무능한 자들의 시간을 지난
후에 재평가 받게 되죠. 그가 이끈 변화가 긍정적인 것이었으며, 그가 꾸었던 꿈이 적어도
우리 사회에 긍정적이었다는 점을 말이죠.(뭐 그 뒤를 다른 유능한 사람들이 잇는 경우도
많긴 합니다. 이런 경우에 지극히 현실적인 사람이 뒤를 잇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경우는
진짜 그나라가 '되는' 나라라는 증거겠지만요. )
하지만 아무리 시민들의 변덕을 통한 변화가 긍정적인 면을 이끌어 낸다고 해도 이런 식의 변화
는 적어도 저에게 씁쓸한 면이 있습니다. 정작 비난을 들어야 할 우리가 변덕의 희생양들에게
지나치게 비난하는 행태는 마음에 절대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생전에 재평가를 받지 못하고 수많은 비난 끝에 실의 끝에 죽었을 경우는 더욱 그러하죠.
아무튼 TV를 보다 좀 씁쓸하게 몇가지 생각을 들어서 한자 적어 봅니다. 참고로 제가 초반에
적었던 '그'에 대한 평가는 제 개인적으로 그리 높지 않다는 사족을 붙입니다. 시어도어 루스
벨트 처럼 좀 무식한 면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죠. 하긴 TR 처럼 무식하게 하면서도
인기를 유지하는 재능은 좀처럼 갖기 힘든 재능이니 뭐라고 하긴 좀 그렇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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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자기 계층이 이익보면 장땡이고 자기 손해보면 무조건 반대하는 이기적인 사람들 투성이라..
개혁이나 변화를 꾀하면 결국 부작용이 발생될 수밖에 없지만 그 영향이 적도록 점진적으로 하고
사회적 약자가 우선적으로 피해보지 않게끔 하고 여유있는 자들은 약간의 손해를 감수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지..
여담입니다만 아이러니하게도 '변화' 때문에 까인 대통령 정권 때의 변화보다, 그를 심판하기 위해 당선된 대통령의 다 끝나지도 않은 임기 동안의 변화가 더 급진적인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