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논문을 작업하다 불현듯, 언젠가 사귀던 사람이 이와 관련된 유사한 연구를 했다는 것을 떠올리고, 자기가 하던 작업을 내게 보내주었다는 것을 기억해내고, 고통스럽게 그녀의 이름을 찾아 메일함을 뒤지다가, 결국 찾으려는 메일은 찾지 못한 것 까지는 좋았다. 그렇다. 이 슬프고 고통스러운 작업이 좋게 느껴질 정도로, 이후에 펼쳐진 일들은 뭐랄까 슬펐다.
2004년의 내게 2004년의 그녀가 보낸, 둘 만의 싸이 클럽에 나를 초대하는 글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나는 2001년에 그녀를 만났고 2004년에 헤어졌고 그리고 곧 다시 사귀었고 2006년에 헤어졌고 2008년에 다시 반쯤 사귀었고
같은 것을 전공했었고 같은 직장에서 잠시 일을 했었고 같은 꿈을 꾸었었고 같은 노래를 불렀었는데.
이런 기억들이 나를 지나친 것 까지도 좋았다.
어쩌다 우연히 그녀의 블로그를 발견한 것부터가 문제였다. 문제라기보다는, 그녀가 나를 초대한 클럽의 주소를 이리저리 변형시켜 주소창에 넣은 것은 나였으니 그저 내 잘못이다. 그녀는 이제 안경을 끼게 되었고, 일신상의 사유로 석사논문을 잠시 미루고 있고, 힘든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거의 일 년 만에 그녀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내일 모래까지 작업중인 논문을 완성하지 못하면 갈아엎으라는 최후 통첩을 지도교수에게 받은 나는 딱히 슬퍼할 기력도 우울할 기력도 없다.
세상의 모든 유행가들에는 신경을 거슬리게 할 만한 건덕지들이 있다. 그런저런 이유들로 나는 잘못된 만남. 오래전 그날. 이등병의 편지. 스무살 등속의 유행가들을 듣지도 부르지도 못한다. 오늘은 두어 번 정도 들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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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면 좋을 것 같은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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