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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9/11/24 21:07:40
Name ㅇㅇ/
Subject [일반] 화전민 세대
국사시간에 잠깐 들어본 단어일것이다. '화전'
빈 땅에 불을 질러 재를 만들고 그 재를 거름삼아 농사를 짓는 농법
가장 원시적인 농법으로서 몇번 농사를 지으면 땅에 양분이 남지않아 황무지가 되어
다른곳으로 옮겨가면서 농사를 짓는다

가난하던 일제강점기 시절, 일제에 땅을 수탈당하고 가진것없이 여기저기 전전하며
화전으로 생계를 연명하던 서민들이 많았다
가진것 하나도 없이 산골짜기 깊은곳에 숨어 들어가 임자없는 땅 먼저 차지하여 선을 긋고
그곳이 내땅인냥 불을 질러 나온 재를 쥐어짜듯 거름삼아
씨뿌리고 목구멍에 풀칠할 밥한풀 얻어내면 그것이 1년농사였다
그마저도 없으면 나무 뿌리 캐어먹고 산나물 캐어먹고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텨나가며 일제의 수탈을 피해 도망다녔을 것이다

현대사회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밤중에도 대낮처럼 불을 키는 세상이지만
밥통만 열면 기름진 쌀밥을 퍼먹을 수 있는 세상이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모양새는 화전민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초중고 학창시절 한창 여기저기 뛰놀며 풍부한 감성을 얻어야 할 시기에
네모칸 작은 책상에 구겨앉아 흰것과 검은것이 번갈아있는 문제집만 수두룩하게 후벼판다
그래도 예전엔 고등학교때만 했지, 이제는 초등학교, 아니 입학전부터란다
조기교육에 입시준비라며 아직 김치도 제대로 집어먹지 못하는 애한테 과외선생님을 붙여준다
무럭무럭 자라나야할 땅에 온전한 거름을 주지 못하고 어려서부터 활활 불타오른다
마른 풀위에 활활 타오르는 화전처럼 우리의 젊은 시절은 그렇게 아무 기초없이 그저 활활 타오른다

자식의 체력은 공부에 쏟고 부모의 체력은 등록금에 쏟아 대학에 들어갔다
들어가서도 여전히 거름은 없다
지성의 요람은 어디가고 취업의 학원만 남아있다
면죄의 자유가 주어지는 4년의 시간동안 혈기왕성한 20대는 자유를 쓰는것보다 자유를 억압하는것부터 배운다
젋음의 향기를 지워가며 도서관에서 토익책을 들여다보며 보내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누가 더 많은 땅을 불태우느냐 싸움이다 어짜피 올해 한해 입에 풀칠하는게 우리의 목표이다
내 영역을 넓히기 위해 옆사람의 영역을 빼앗는다. 먼저 자리잡은 사람이 화전의 임자이다.
내 스펙이 더 높으면 옆사람을 이길 수 있다. 그래서 더 좋은 직장을 차지해야 한다.
이땅이 좋으면 이땅이 좋다고 우루루 몰려간다 저땅이 좋으면 저땅이 좋다고 우루루 몰려간다.
그렇게 치열하게 물어 뜯는 전쟁을 계속한다

그렇게 노력하여 드디어 직장을 얻었다. 양분이 충만한 화전이다.
하지만 이땅의 양분은 한번 농사 지으면 모두 사라진다. 비정규직이다.
거름을 주지않은 땅에서 자란 곡식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이것이라도 있어야 풀칠을 한다.
내가 얻을 곡식을 다 얻고나면 이 땅은 나의 땅이 아니다.
젋은 시절을 다 바쳐 얻어낸 소량의 곡식만 남고 나에게 가진것은 하나도 없다.
집한채, 차한대 뽑기는 고사하고 작은 가정하나 꾸릴 여유조차 없다.
꿈? 미래? 상상도하기 힘든 단어들이다. 이미 나의 화전은 지력을 상실하였다.
옆땅으로 넘어가기 전에 연명해야 한다. 알바를 뛰며 나무뿌리를 캐어먹는다.
그렇게 인고의 시간을 견뎌내고 얻은 것은 또다른 화전이다. 다시 반복이다.
그렇게 계속 태우고 계속 곡식을 얻으며 인생의 시간을 소비해 간다.

저 산 아래 넓은 평야 옆에 친일파 지주의 아들은
방금 한 따끈한 햅쌀밥에 떡갈비 한점 얹어 맛있는 저녁식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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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떠올라서 한번 써봤습니다.
이시대 사람들은.. 참 슬픈 사람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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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eRious
09/11/24 21:11
수정 아이콘
다 맞는 말씀이시네요. 읽어내려가다보니 삶이 고통과 악순환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ㅠ_ㅠ
어디부터 고리를 끊어야 잘 돌아갈까요?
ROKZeaLoT
09/11/24 21:19
수정 아이콘
저는 비록 그 화전민의 생활에서 벗어나고자 유학을 택했습니다만,
막상 와보니 여기도 자갈밭이네요.. 에휴... 물론 저희 부모님은 여전히 화전을 일구며(?) 그놈의 돈을 벌기위해 고생하고 계시구요..
뭐 그래도 어쩝니까..주어진 것에 만족하며 열심히 살아야죠..
예전에 중학교 때 아버지께서 "너하고 딴놈들하고 차이점이 뭐야? 다들 똑같은 사람이야. 열심히 하는놈이 살아남는거야" 라고 하셨을때,
철없던 제가 "사람마다 출발선이 다르잖아요" 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나네요..

제가 그때 아버지에게 무슨짓을 한건지......
09/11/24 21:22
수정 아이콘
슬프군요.

우리 나라가 어쩌다가 이렇게 된 것인지..
MetalTossNagun
09/11/24 21:23
수정 아이콘
좋은글입니다.. 왠지 서글프네요. 요즘따라 우울한데 이글을 보니 슬퍼지네요. 하긴 삶은 슬픈거겠죠. 언제 진심으로 웃을날이 올지.
선데이그후
09/11/24 21:27
수정 아이콘
흠..
Daydreamer
09/11/24 21:29
수정 아이콘
우리 나라만 이렇다기보다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점점 '누군가 일어서면 결과적으로 다들 일어서야 하고' '한번 일어서면 경기 관람을 포기하기 전까지는 앉을 수 없는' 야구장 효과의 모습으로 모든 인간사회가 변해가지 않을까 합니다.
릴리러쉬
09/11/24 21:32
수정 아이콘
추천합니다.
소금저글링
09/11/24 21:50
수정 아이콘
그러나 정작 문제는

전체의 80%나 되는 화전민들이 자신들은 화전민인줄 모르고

밑에서 따슨밥 먹는 20% 지주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게 문제겠죠...

나도 화전민이지만 열심히 하면 20% 지주가 될수 있다 생각을 하지만

결국 20% 지주가 되는 길은 해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막힙니다.
(교육을 통한 신분 상승의 통로도 이미 우리나라는 막혀 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언젠가 20%의 지주가 되야 되기 때문에 그 20%의 지배체제의 논리를 따르려고 하니

자신이 속한 80%의 삶은 점점 황폐해져가고 한해 한해 힘들어가겠죠.

화전민(노동자)이 화전민 의식(노동자 의식)을 가지지 못하고

지주(자본가)의 의식을 가진 한국이 자본주의의 극한을 달리는 모습을 앞으로도 우린 계속 볼 수 있을테고요.

언젠가는 그 화전민의 밭도 없어진다면......
아나키
09/11/24 21:57
수정 아이콘
빈부격차를 떠올리다가 갑자기 생각난건데 혹시 '중산층'의 정확한 구분기준이란게 학문적으로 정의가 되어있는건가요.
얼마 전 아버지와 '중산층은 없고 부자와 서민만 있다'는 말을 하다가 "근데 중산층이 뭐지?"에서 대화가 단절... -_-;
wish burn
09/11/24 22:15
수정 아이콘
아나키님// http://www.carlife.net/bbs/board.php?bo_table=freeboard&wr_id=36880&sca=&spt=-1974&page=341
가운데를 이야기하는 건 아니군요.
중산층=중간층이라기보단 중산층=중상층인 듯..
Daydreamer
09/11/24 22:53
수정 아이콘
소금저글링님// 님 얘기를 들으니 불현듯 몇 년 전에 아는 형님이 제게 해준 얘기가 생각납니다. "경영학이란, 일반 종업원들을 어떻게 하면 사장처럼 생각하게 할 것인가"라고... 이 글의 논리를 적용하자면 "80%의 화전민에게 어떻게 하면 20%의 지주인 것처럼 생각하게 할 것인가"라는 것이 되겠군요.
멀면 벙커링
09/11/25 01:15
수정 아이콘
자영농으로 성장할 생각을 해야지..왜 다들 지주가 되려고 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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