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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9/11/03 16:29:51
Name 굿바이레이캬
Subject [일반] 부산오뎅 갖고 당진으로
S대 75학번 출신인 이 아저씨는 76년도쯤의 이야기를 하나 해주셨습니다. 그 당시 월남의 패망으로 학교 휴교령이 떨어졌고, 지방 출신의 학생들은 대부분 고향으로 내려갔었습니다. 지금에 비해 학생들은 가난해서 서울에 남아있던 사람은 드물었습니다. 이 아저씨 고향은 부산이라고 합니다. 넉넉지 못한 가정 형편에 지금도 고구마, 감자는 아주 싫어한다고 합니다. 어릴적부터 너무 많이 먹어서 지금은 냄새조차 싫다고 하더군요.

이 시기에 아저씨는 친한 친구 두, 세 명과 함께 아껴뒀던 쌈짓돈을 갖고 어렵사리 기차비를 만들어 같이 부산으로 내려갔습니다. 오래간만에 친구 고향으로 가는 기쁨은 친구들도 아저씨와 같았습니다. 아저씨 집은 형편이 좋진 않았지만 서울에서 온 귀한 손님이기에 이 아저씨 형수님께서 극진히 손님들을 대접했다고 합니다. 잠은 아저씨 형님댁 옥상에서 텐트를 치고 해결했다고 합니다.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았지만 서울 손님에게 뭔가 극진히 대접할 거리를 고민하던 아저씨 형수님은 그 당시 부산에서 흔히 먹던 오뎅을 대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서울이나 이외의 지역에서는 맛보기 어려웠던 오뎅이 부산에서는 정말 흔해 빠진 음식이었던 것입니다. 돈을 조금만 지불해도 풍성하게 살 수 있었던 것이 바로 부산오뎅이었습니다.

지금이야 부산오뎅이라는 이름하에 밀가루(소맥)가 대부분으로 맛이 퍽퍽하지만, 이 당시 부산오뎅은 말 그대로 생선 튀김에 가까웠습니다. 냉동이나 냉장보관이 어려웠던  시기라 항에 배가 들어오면 판매가 안 된 생선들은 대부분 튀김으로 만들어 그 유명한 부산오뎅으로 재탄생됐던 것입니다. 밀가루보다 생선살이 대부분이었기에 지금의 오뎅과는 차원이 다른 맛이었습니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 아저씨의 형수님은 부산오뎅을 한가득 사가지고 와 서울손님들에게 대접했습니다. 아저씨 형님은 그래도 동생 친구들이고 오래간만에 외지에서 온 사람들인데 고기라도 대접하라고 했지만, 아저씨께서는 외지 사람들에게는 고기보다 오히려 부산오뎅이 더 가치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아저씨와 친구들은 옥상에 텐트를 치고 부산 앞바다를 보며 쓰디쓴 소주와 부산오뎅을 안주 삼아 풍성한 잔치를 벌였습니다. 시원한 부산 앞바다에서 흘러 나오는 짭쪼름한 바다 내음은 비록 소주와 오뎅 뿐인 잔칫상을 더욱 풍성하게 해 주었고, 친구들은 뭐가 그리 맛있느지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고, 끝이 보이지 않는 부산오뎅을 끊임없이 갈구했습니다. 그러다 한 친구가 입 안에 부산오뎅을 가득 넣은 채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습니다. 아저씨께서는 의아한 눈초리로 말을 건넸습니다.

“니 너무 맛있어서 우나? (낄낄낄) 왜 느닷없이 우노?”

“아....너무 맛있어서. 그런데 고향에 계신 부모님은 생전 이런 맛있는 걸 못 드셔 봐서. 부모님 생각하니까 눈물이 나네”

잔칫집 분위기는 순간 얼어붙었습니다. 그 친구의 눈물이 얼마나 계속 쏟아지는 지 아저씨와 다른 친구도 같이 눈물이 나올 것 같았습니다. 아저씨는 먹던 소주잔을 내려놓고 힘있게 말했습니다.

“이놈아, 뭐 이게 별거라고. 걱정 마라. 내가 챙겨줄테니 니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갖다 주거라”

아저씨는 형수에게 말해 부산오뎅을 잘 포장하여 다음날 바로 친구에게 주며 고향인 당진으로 떠나라고 했습니다. 지금이야 부산에서 당진이 금방 갈 수 있는 곳이지만 이 당시에는 하루가 넘게 걸리는 먼 거리였습니다. 게다가 오뎅은 상할 수 있기 때문에 당진으로의 부산오뎅 공수는 어려워 보였습니다.

아저씨 친구는 새벽같이 일어나 굴비를 엮은 듯한 모양의 오뎅을 싸들고 당진으로 출발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기차 안에서 창문을 열고 부산오뎅을 엮은 줄을 매달아 놓고 바람을 통하게 해 당진에 도착할 때도 부산오뎅은 상하지 않고, 잘 버텨 주었습니다.

아저씨 친구는 당진에 계신 부모님과 할아버지께 얼른 맛을 보여드리고자 어머니께 밥상에 내 달라고 했습니다. 어머니도 태어나 처음으로 생긴 부산오뎅에 얼른 남편과 시아버님께 드려야겠다는 마음에 서둘러 밥상을 차리셨습니다.

밥상에 오른 부산오뎅은 검은 간장에 졸여진 조림형태로 나왔고, 친구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맛있게 드시면서 세상에 이런 음식도 있구나라는 말을 남기셨습니다. 친구 또한 가족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즐거운 마음으로 어머니 얼굴을 쳐다봤는데, 어머니는 식사를 하시는 내내 부산오뎅에 손을 대질 않았습니다. 아들은 다시 눈물이 나오는 걸 억지로 참으며,

“어머니, 드셔보세요. 맛이 아주 좋아요. 생선 냄새가 아주 좋아요”

“만들면서 많이 먹었어. 난 이제 안 먹어도 돼”

어머니는 혹시라도 상할지 몰라 간장에 소금까지 넣어 아주 짜게 부산오뎅 조림을 해 놓으셨습니다. 중요한 날에 반찬으로 내 놓으려고 했지만 결국 나중엔 상하게 됐지만요.




이 아저씨는 모 대기업 임원이시고, 당진으로 부산오뎅을 갖고 갔던 이 친구는 현재 모 대학 교수님이십니다. 두 사람은 가끔 만나 술을 한잔 기울이면 늘 이 일화를 이야기 하십니다.

“세상에 그렇게 맛있는 부산오뎅은 없을 것이야. 그런데 왜 지금은 그런 오뎅이 안 나오는 건지”

“니 그때 그렇게 맛있었나? 실은 부산 사람들은 하도 많이 먹어서 별로 좋아하지도 않아”

시간이 흐르고 세상이 변하면서 옛날에는 흔하고, 값어치 없던 것들이 지금은 귀해진 것들이 많습니다. 100년도 살지 못하는 인간에게 세상은 하찮은 것의 소중함을 일깨워주지만 꼭 우리는 지나서야 후회를 할 뿐입니다.

지금도 우리 주위에 흔해 빠진 것들이 10년, 20년 후에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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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찐개미
09/11/03 16:38
수정 아이콘
좋은 글입니다.
추천 꾹
스웨트
09/11/03 16:38
수정 아이콘
그럼요. ^^ 아 훈훈한 글이라 추운 날씨에 기분이 더 좋아지는 거 같습니다.
어릴때 동네형들과 검댕이 묻혀가며 먹었던 짚불에 구운 감자는 아직도 기억이 나네요.
(지금은 먹을래야 먹을수도 없고.. 먹어도 그때 맛이 안나구요..)
그나저나 당진..고향얘기 나와서 왠지 더 정감이..흐흐
09/11/03 16:53
수정 아이콘
원효대사의 썩은 해골바가지물 과 비슷한 내용인가요??

저도 5~6년 전쯤에 다니던 지지리 박봉에 시달리던 회사(월 100만원 수준) 다닐때, 회사지하 분식집에 치즈라면을 팔았는데 치즈라면을 그때 처음 먹어봤습니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대충 눈치보고 내려와서 먹는 그 치즈라면맛이 당시 우울하던 시절을 조금 보상해줬습니다.

몇년이 지나도 그당시의 치즈라면맛을 그 어떤데서도 느낄수가 없었네요.
R U Happy ?
09/11/03 17:09
수정 아이콘
노래제목은 잘 기억 안나지만 ~~ 모든것이 변해가네 ~~ 라는 곡이 떠오릅니다.
아직 나이는 어리지만 주위를 보면 많이 변한 것 같기도 하네요 ^^

날씨도 추워지는데 이런 훈훈한 글 감사합니다 (..) 추천 꾹 !!
와룡선생
09/11/03 17:15
수정 아이콘
서울와서 느낀건데 부산오뎅 참 유명하더군요..
요즘 어릴적 고향 구포국수도 유명해지는거 같아서 흐믓~
09/11/03 17:16
수정 아이콘
저 대학다닐때는(95~6년도) 같이 자취하는 친구와 갑자기 포장족발에 꽂혀서 원없이 먹어보는게 소원인적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날잡고 그 비싼걸(?) 10개를 쌓아놓고 둘이서 신나게 먹고 그 다음부터는 입에도 대지 않았던걸로 기억합니다 크크

지금 생각해보면 그 맛대가리 없는걸 왜 그렇게 좋아했는지 ^^
A_Shining[Day]
09/11/03 17:21
수정 아이콘
R U Happy ?님// 이번 리쌍 6집의 변해가네 라는 노래가 아닐까요 ^^

몇살 먹지 않은 저지만 많은걸 느끼게 하는 좋은 글이네요 ^^
와룡선생
09/11/03 17:23
수정 아이콘
A_Shining[Day]님//원곡은 고 김광석님의 변해가네입니다.
R U Happy ?
09/11/03 17:50
수정 아이콘
A_Shining[Day]님// 와룡선생님// 찾아보니 제가 들었던 곡은 동물원 버전이군요 ^^;;
09/11/03 18:41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우리 곁에 흔해빠져있는것들이 나중에는 어떻게 될지는 정말 모르겠네요..
PGR에 당진이라는 지명이 나와있어서 클릭하고 좋은글 일고 추게로 클릭하고^^..

당진이라는 곳이 정말 예전에는 대전이나 서울 등 어디든지 가기 힘든 촌동네였지만
지금은 이제 성장할 도시겠네요^^. 부산도 6~7시간 안팍이면 갈 수 있고...

제가 20년이상 살아온 제 고향과 집이 있는 당진이라는 지명을 이런 좋은글에서 봐서 참 좋네요^^..
09/11/03 18:49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추천 한번 누르고 갑니다.
그대만있다면..
09/11/03 19:12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추천꾹!
ilovenalra
09/11/03 19:19
수정 아이콘
5월 축제 이후로 처음 마트에서 부산오뎅이라고 되있는 걸 사서 오뎅국을 했는데~
막 이 글을 읽습니다 ^^
갑자기 날씨가 많이 추워졌는데~ 너무 따뜻한 글이예요.
잘 읽고 갑니다~
하루키
09/11/03 19:39
수정 아이콘
팍팍한 사회에 이런글을 보니 마음이 절로 따뜻해지네요..
眞綾Ma-aya
09/11/03 21:54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전에 쓰신글도 그렇고 천천히 읽으면 미소짓게 만드는 글 같아요. ^^
언제 냉면에 소주한잔 하면서 이야기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근데 부산오뎅이 예전엔 참 맛있었겠군요.
요즘엔 부산오뎅이라고 이름만 붙여놨지 그냥 마트에서 파는 싼 오뎅들과 다를게 없더라구요. -_-
09/11/03 23:20
수정 아이콘
아.. 친구 어머님..

“만들면서 많이 먹었어. 난 이제 안 먹어도 돼”

많이 드시긴 무슨.. 아흑;;
칼 리히터 폰
09/11/04 00:50
수정 아이콘
당진이란 단어보고 깜짝 놀래서 클릭했는데

글 내용도 좋네요

어린시절의 추억도 새록새록 떠오르고...
제가 사는 당진도 과거와는 사뭇 다르고 앞으로도 변해갈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슬프기도하고 기대도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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