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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9/10/30 22:20:50 |
Name |
노란당근 |
Subject |
[일반] 본격 신종플루 투병기 1 |
다들 신종플루때문에 걱정이 많으실텐데요, 호되게 앓고 이제 거의 다 나은 신종플루확진자로서... (--v)
다른 분들께 도움이 되실까 싶어서, 또 저도 궁금한 것도 은근슬쩍 끼워넣어 볼 겸 글을 씁니다.
의학적인 참고를 위해 일단 저는 34세 여자입니다.
워낙에 평소에 건강체질이라 감기 한 번 안 앓고 지낸다고 큰소리 치다가... 제대로 한 방 맞은 케이스죠.
지난 주 토요일 할로윈 때문에 코스트코에 갔더랬습니다. 사람도 많고 먼지도 많고 어째 목이 매캐하니 아파오더라구요.
몇시간 돌면서 신나게 쇼핑을 하고 나니 계속 잔기침이 콜록콜록 나오더군요.
하지만 무지한 저와 동행은 먼지 때문이라고 속단! 해버렸습니다.
"어쩐지.. 거기 너무 먼지가 많더라.. 먼지엔 삼겹살이 최고지.. 콜?"
그렇지만 몸이 점점 안 좋아지면서 으슬으슬 춥길래 집으로 돌아와 버렸습니다.
집에 굴러다니던 성분과 출처를 잘 알 수 없는 약을 먹고 잠들었죠.
그렇지만 다음날도 별반 나아지지가 않더라구요. 몸도 어째 뜨끈한 것 같고..
열을 재 봤더니 37.3~4도에서 왔다갔다 했습니다. 종일 집에서 쉬면서 종합감기약과 쌍화탕을 사먹었는데
저녁때 다시 재보았더니 37.8도가 되었더라구요. 겁이 덜컥 난 저는 해열제를 먹고 보기드물게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출근하려고 일어나봤더니 열이 떨어졌더라구요. 그러면 그렇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출근을 했습니다.
(근데 대부분 신종플루 걸리신 분들이 처음에 먹는 약은 듣는다더라구요. 아마도 일반 감기약으로 고치셨다는 분들이 이런 케이스가 아닐까 싶습니다)
오전에 평소보다 약간 바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점심식사가 흡사 모래알 같더라구요. 꾸역꾸역 먹으면서 식사 후에 병원을 가겠다고 결심했죠.
그렇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일은 언제나 계속되는거죠..--; 좀처럼 틈이 나질 않아서 두시 반 정도가 되서야 회사 앞의 작은 병원을 갔습니다.
오전에 쟀을 때는 분명 열이 36.5도였는데 그때 느껴지는 체감은 분명히 그걸 넘었더라구요.
의사선생님께 증상이 토욜부터 시작되었고 오전에 열이 36.5도랬더니 의사선생님이 청진기 대보시고 하더니
"머 그냥 감기네요. 약 처방드릴테니까 삼일 드세요" 하십니다.
그런갑다 나오다가 병원에 비치된 체온계가 눈에 띄었습니다.
"저 저거 좀 재봐도 되나요?" "네.. 그러세요"
열은 38.5도... --; 갑자기 열이 확 더 받더라구요.
다시 가서 열 난다고 얘기했더니 이 분..바로 마스크를 꺼내 쓰면서 저에게도 하나 주시더군요 --;
"흠.. 신종플루 증상이랑 8~90% 일치하네요. 타미플루 처방해 드릴까요? 큰 병원 가도 검사만 하지 결국엔 타미플루 줘요"
네.. -_-;; 무지 신뢰 갑니다.. 소견서 받아서 거점 병원으로 갔습니다.
그때가 4시정도 됐었는데 거점 병원은 한마디로 아수라장이었습니다. 그나마도 성인 내과는 줄이 좀 짧은 편이었고,
소아청소년과는 11시에 왔다는 부모가 그때까지도 아이 검사를 못 봤다며 동동거리고 있었고 다들 이러다가 병 걸려 가겠다며
한 마디씩 하고 있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컨테이너 안에 사람들이 가득 차 있어서 앉을 자리는 고사하고 서있기도 불편할 지경이었거든요.
그나마도 접수를 마쳐야 안으로 들어가는 거지 접수하는 곳은 밖에 있어서 꼼짝없이 밖에 서서 기다려야 하더라구요.
기다리는 동안 슬슬 열이 오르는 기분이 들더라구요. 약간씩 어지러운 증세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다섯시 반 경에 검사를 들어갔는데 거기서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언제부터 증세가 있으셨어요?" "토요일 저녁부터요"
"주위에 확진 환자 있으세요?" "아니요, 아직은.."
"열은요?" "아까 재보니까 38.5도 이던데요"
"검사하시고 확진 나오시면 약 타러 나오시면 되요. 일단 일반 감기약 처방해드릴께요"
이렇게 나가다가 그냥 쫓겨나겠다 싶어 역시 옆에 있던 체온계를 집어들었습니다.
"이거 좀 써도 되죠? 삐~39.2도네요."
(병원에서 환자 왔을 때 체온은 대체 왜 안 재는 건가요? 이거 진짜 궁금합니다. 환자가 몇 도였다고 하면 그걸 그냥 데이터로 삼나요?)
그래도 타미플루 처방 안해주더라구요. 확진 나오면 다시 병원으로 나와서 받아가라면서요.
거기서 싸울수도 없고 굉장히 찜찜한 기분으로 나오는데 뒤에서 간호사가 불러세우더라구요.
"열이 높으시니까 교수님이 그냥 처방 받아가시래요."
어질어질한 머리를 겨우 가라앉히면서 약을 타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검사결과고 뭐고 상관없이 저는 제가 신종플루라는 확신이 들더라구요. 왜냐, 이런 식으로 아픈 건 처음이었거든요.
이렇게 열이 오르는 경우도 없었고 기침이 계속 나오는 경우도 없었구요. 저녁때가 되니까 코가 막히면서 콧물도 나더군요.
병원에 있으면서 집과 회사에 전화를 다 해뒀습니다. 부모님께는 예방차원에서 근처 동생네로 가시라고 했고 조카에게도 오지 말라고 했구요.
회사에도 전화를 걸어서 앞으로 며칠간 못 나갈거라고 얘기 해뒀습니다.
집에 들어가기 전에 가족들에게 집에 과일이랑 주스랑 물이랑 사다놓고 죽도 갖다 놓으라고 얘기했습니다. 혼자 앓을 생각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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