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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9/10/30 02:01:36
Name 유유히
Subject [일반] 세상에서 가장 비통한 찬양. '카치니의 아베 마리아'


2005년 12월 방영된 KBS 스페셜 '영원과 하루'의 시작 장면으로,
카톨릭대학교 신학대학의 입학식 장면입니다.

아시다시피, 카톨릭신학대학에서 신부가 되기 위해 공부하는 길은 멀고도 험난합니다.
학부만 해도 전체 6년의 기간과, 군대 2년(면제자의 경우 복지시설 봉사 3년), 해외 및 국내봉사활동 1년을 포함하여 총 9년간의 길고긴 수도생활을 해야만 합니다.
여자친구, 멋진 차, 월급날, 친구와 마시는 소주 한잔. 축구를 지켜보며 곁들이는 치킨과 맥주. 컴퓨터 게임, 밤늦게 주고받는 문자놀이.
그 모든 것이 금지된 '봉쇄구역'에서 10년에 가까운 철저한 금욕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제서품을 받은 뒤에도 '신부'라는 이름으로, 평생 밤을 홀로 보내야 합니다.

그 종신형에 가까운 감금을 그 누구도 아닌 스스로가 원하여
남들이 다 꺼리는 그 문을 열고 들어서는 젊은이들을 보는 순간,
눈물이 울컥 솟으려고 했습니다.

세속의 자유, 어쩌면 젊음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는 그 즐거움.
젊음을 온전히 포기하고, 그 대가로 오직 주님만을 찬미하기 위해 외롭고 가느다란 길로 들어선 형제들을 맞아 주는 것은,

이름모를 어느 자매님의 찬송가입니다.




제목 : Ave Maria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 Caccini
가사 : Ave Maria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반복)




많은 찬양과 성경에서 나오는 대로 오직 주님을 찬미하기 위하여 살아가는 삶이 기쁨만으로 가득할진대,
새롭게 신부가 되고자 들어서는 이들을 맞아주는 이 서글픈 노래는 대체 무엇입니까.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힘겨운 여정이 될 것입니다. 남들이 즐기는 육체와 정신의 많은 오락거리들과, 따뜻한 목소리로 속삭여주는 이성異性의 목소리를 당신은 더 이상 즐기지 못합니다. 당신이 겪을 괴로움과 고뇌를 차마 헤아리지 못하겠기에, 이 노래로 당신들을 배웅합니다. 세속의 당신은 죽고 주님의 종으로서의 당신만 남았으니, 저는 죽은 세속의 당신을 추모하며 장송곡을 부릅니다."







개인적으로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신념을 갖고 있지만, 한 길을 걷는 구도求道자로서 오로지 주님만을 바라보며, 신부가 되기 위해 살아가는 신학대학생들의 숭고한 삶은 저까지도 숙연해지게 만듭니다.
위 다큐멘터리의 캡처 요약본은 오늘의유머 '도봉구청'님이 제작하였으며,

http://todayhumor.dreamwiz.com/board/member_view.php?table=humorbest&no=248629&page=1&keyfield=&keyword=&mn=66777&tn=5&nk=도봉구청

링크를 따라가면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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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0/30 02:49
수정 아이콘
그나저나 참 심금을 울리는 목소리네요..
곱창파스타
09/10/30 02:51
수정 아이콘
무언가를 시작하려고 하는 저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영상과 글이네요.
지금 이 문을 열고 있는 저의 손이 -저의 선택에 대한 책임감으로- 저들만큼 무거웠는지
또 이 문을 열고 있는 저의 손이 -저의 선택에 대한 기쁨으로- 저들만큼 가벼울 수 있는지
다시 한번 저를 돌아보았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morncafe
09/10/30 03:27
수정 아이콘
유유히님// 좋은 곡 감사합니다. 구노나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가 상대적으로 더 유명합니다만,
전 이 노래를 가장 좋아합니다. 가장 '인간적'인 노래 같거든요.
우연히 첨 이 노래를 들었을 때, 제 가슴을 후비는 그 비통함을 아직도 잊을 수 없네요.
카치니의 아베마리아를 부른 가수들 중에서는 이네사 갈란테 (Inessa Galante)가 부른 버전을 가장 좋아 합니다.
정말로 인간의 입장에서 뭔가를 호소하는 듯한 느낌이 그대로 살아 나는 듯 해서..
여기 제가 유튜브에서 찾은 건데... 제가 들었던 것과 가장 유사해서 링크 달았습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8FvVInvO2vg
09/10/30 03:45
수정 아이콘
영상이 잘렸네요..ㅠ_ㅠ..
글만 잘 읽고 갑니다. 저번에 저걸 영상인가 사진으로 본 적이 있는 것 같네요.
09/10/30 10:30
수정 아이콘
대단하신 분들이죠. 저도 종교가 없기에 그런 대단함의 원천은 이해할 수가 없지만, 그래도 존경스러운 분들입니다.
09/10/30 12:49
수정 아이콘
어떤 면으로는 극한의 삶을 사는 분들이라고 볼 수 있지요.
그 끝에는 평온과 사랑이 있을지 몰라도 쉽지 않은 길을 가는 분들,
저 역시 신을 믿지 않지만 그 엄숙한 구도의 길에 존경을 표합니다.
강력세제 희더
09/10/30 13:41
수정 아이콘
카치니의 아베 마리아는 소프라노 이네사 갈란테의 노래 덕분에 우리 나라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누렸죠..
근데 문제는 이 곡이 오페라의 최초 작곡가들 중 한 사람인 초기 바로크 시대 작곡가 카치니의 진짜 작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현재 밝혀진 것으로는 블라디미르 바빌로프라는 구소련 작곡가가 1970년에 완성한 20세기 근현대음악이라는 점입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이름을 쏙 빼고 카치니의 아베마리아라는 이름으로 이 곡을 발표했다고 하네요.
카치니의 진짜 작품들을 들어보시면 이 작품의 스타일과 완전히 다른 작곡가라는 것을 쉽게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wish burn
09/10/30 19:07
수정 아이콘
저 역시 신을 믿지 않지만 그 엄숙한 구도의 길에 존경을 표합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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