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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9/09/25 14:46:29
Name swordf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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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일반] 역사) 나폴레옹- 사람은 변하는게 좋은거다?




1, 무능한 남편 만나 국정을 책임지다 나폴레옹 때문에 홧병나 죽은 프로이센 왕비
2, 대육군 척탄병 깃발

아마 많은 사람들이 역사상 위대한 군인 중 하나로 뽑을 사람 중 하나가 나폴레옹일 겁니다.
일부 역사가들 중에서는 나폴레옹과 비견할 수 있는 사람은 알렉사드로스 대왕 밖에 없다고 이야기
하기까지 하더군요.
하긴 코르시카 출신의 하급 귀족이 대혁명이라는 소용돌이에서 유럽의 지배자까지 올랐으며, 거의
모든 전장에서 유럽의 모든 열강을 상대로 승리했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니까요.
하지만 재미있는 건 1805년을 기점으로 나폴레옹의 전쟁 스타일은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1805년 전
1) 전쟁을 이기는 건 화력이 아니라 발이다.
서풍의 광시곡을 사신 분들이라면 클라우제비츠가 비프로스트 군을 상대로 한 전술의 원형이
매뉴얼에 적혀 있다는 건 아실 것입니다. 바로 그 메뉴얼에 적혀 있는 전투가 울름 전투라는
나폴레옹의 유명한 전투 중 하나 입니다.

영국과 아미엥에서 평화 협정을 맺은 후 유럽에서 평화가 올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
습니다. 영국과 나폴레옹 모두가 다 상대방을 쓰려 뜨릴 시간을 버는 것에 불과했죠. 결국 영국
은 돈을 통해 러시아, 오스트리아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 드리는 성공합니다. 즉 3차 대프랑스
동맹의 탄생입니다.

이 때 오스트리아 최고 사령관을 내세운 사람은 군에서 유망한 오스트리아 황제의 동생 칼 대공이
아닌 강경파 마크 장군이었습니다. 마크 장군의 전략은 단순했습니다. 프랑스-독일 남부 국경 지역 중
방어하기 쉬운 울름에서 프랑스 군의 공격을 방어한다. 그리고 증원온 러시아 군과 합세 나폴레옹을
물리친다.

결과는 나폴레옹은 울름에 오긴 했습니다. 문제는 프랑스 쪽과 오스트리아 쪽 양쪽 모두에서 왔다는
게 문제 였죠. 즉 나폴레옹은 기만작전으로 울름 쪽으로 병력을 집중 시킬 것 처럼 한 후 다수의
병력을 북 독일로 우회하여 마크의 군대를 울름에서 포위, 섬멸해 버렸습니다.

이는 프랑스 군의 신속한 진군을 통해 가능한 작전이었죠. 이전투를 두고 한 병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황제 폐하는 손이 아닌 발로 싸우시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2) 승기를 잡으면 끝까지 추격해 적의 저항의지를 말살하라.- 아우어슈테트-예나 전투
한편 프로이센은 나폴레옹이 러시아-오스트리아 연합군을 아우스터리츠 전투(흔히 3황제 전투라고 불리는)
에서 물리친 후에야 뒤늦게 대프랑스 동맹군의 일원으로 나폴레옹과 싸우게 되었습니다. 이런 프로이센의
적대 행위를 나폴레옹은 처벌하기 위해 빠르게 북상하여 프로이센과 두 전장 아우어슈테트와 예나에서
싸우게 됩니다. 결국 이 두전투 모두 나폴레옹이 이기게 되죠.
그런데 더욱 역사에 남는 건 그 후의 추격전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은 프로이센 군이 다시 전열을 정비하는
걸 막기 위해 빠르게 프로이센 패잔병들을 추격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행렬은 발트해까지 이어지게
되고 프로이센 패잔병들은 아무 것도 못하고 프랑스에 항복해 버리게 됩니다.
후에 워털루에서 나폴레옹과 싸우게 되는 블뤄허도 이런 포로 들 중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프로이센군
의 굴욕은 추가적으로 두가지 효과를 발생시켰습니다. 하나는 반프랑스의 선봉장이자 사실상 프로이센의
지배자인 아름다운 왕비 루이제 폰 메클렌부르크를 홧병으로 죽게 만들었으며, 프로이센 국민들에게 반
프랑스 감정을 심어주긴 했으나 저항의지를 분쇄시켜 버렸습니다.

1805년 이전의 나폴레옹은 이 두가지를 철저히 지켰습니다. 가장 유명한 아우스터리츠 전투나 마렝고, 피라미드
전투 같은 전투도 이러한 원칙을 지킴으로써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 1805년 이후 전투는 어떨까요?
3) 바그람 전투- 황제는 오직 정면승부다!!!
1809년 다시 오스트리아- 러시아는 영국의 지원을 받아 다시금 새로운 대프랑스 동맹을 결성합니다.
이번에 오스트리아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던 사람은 황제의 동생이자 황제에게 질투심을 한 몸에 받아
전 전쟁에서 좌천당했던 명장 칼 대공이었습니다. 그는 수도 빈을 포기하고 도나우 강 이북의 바그람
에서 프랑스군과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한편 나폴레옹은 오스트리아 군과 싸우기 위해서는
도나우 강을 건너야 했습니다. 만약 1805년 나폴레옹이라면 오스트리아 군 앞의 강을 건너지 않고
상류나 하류 부분을 우회했겠지만, 이번에 그런 것도 없었습니다.
나폴레옹은 적 정면에 두개의 다를 건설하고 3개 군단을 이 다리를 통해 상대방 정면을 공격했습니다.
좁은 다리는 많은 병력들에 의해 교통 체증이 일어 났고, 정면의 오스트리아 군은 무난하게 나폴레옹
군대를 막아 내는 성공합니다.
하지만 결국 적의 맹공을 견디어 내며 프랑스 군이 도하에 성공하고, 나폴레옹의 부하 다부의 분전과
물량의 힘으로 결국 바르람에서 오스트리아 군을 몰아 낼 수 있었습니다. 양측 모두 각각 4만 명의 병력
을 잃었으며, 전투의 성과는 보잘 것 없었습니다. 물론 곧 휴전 조약이 맺어지긴 했지만, 오스트리아
군이 저번처럼 완전 패배가 아니었기 때문에 조약에서 처벌도 약할 수 밖에 없었죠.

4) 워털루 전초전- 리니 전투- 황제는 추격 같은 거 없어도 이긴다.
나폴레옹은 러시아 원정과 그 뒤를 이은 연합군의 공격에 결국 몰락하게 됩니다. 하지만 엘바에 유배
되었던 그는 곧 복귀해 다시 대프랑스 동맹군과 싸우게 되죠. 이 때 나폴레옹의 가장 처음 목표가 된건
벨기에에 주둔하고 있었던 웰링턴 공작의 영국-네덜란드 연합군과 블뤄허의 프로이센 군이었습니다.
이 때 나폴레옹은 부하 네에게 영국군과 싸우도록 하고 자신은 주력을 이끌고 리니에서 프로이센 군을
패배시킵니다. 만약 1805년 이전의 나폴레옹이라면 빠르게 기병을 통해 후퇴하는 프로이센군을 추격
하여 붕괴시켜 버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때 나폴레옹은 무려 하룻동안 부하들과 리니의 전장을 둘러 보며 전쟁의 참상에 대해 대화
하면 시간을 보냈습니다. 결국 다음날에야 뭔가 생각 난듯 부하 그루쉬에게 프로이센군을 찾아
섬멸하도록 시키죠.
그러나 이미 그루쉬가 프로이센 군을 찾았을 때, 프로이센 군은 와브르에서 전열을 가다름고, 나폴레옹
과 웰링턴이 싸우고 있던 워털루에 증원군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결국 워털루 전투 당일 저녁 영국군이 거의 패배 직전에 이르렀을 때, 프로이센 군은 전장에 합류, 결국
워털루에서 프랑스군은 패배해 버리고 맙니다.

1805년 이후 나폴레옹은 이렇게 정면 승부와 소모전을 선호 했습니다. 포병의 숫자는 늘어 났고, 대신
기병의 숫자는 감소했습니다. 또한 병력의 수는 엄청 증가했고, 질은 엄청 감소했습니다.
제가 예로 든 전투를 빼고도 보로디노, 라이프치히 등등의 전투에 대부분 그러했습니다.

나폴레옹의 이런 성향이 변한 이유로 역사가들은 몇가지 답을 내놓고 있습니다.
1, 병력의 질이 하락했다. - 병력의 질이 하락했기 때문에 어려운 전술을 포기해버렸다는 설입니다. 이는
러시아 원정 이후의 고참병 부족과 질 좋은 말의 부족 때문에 충분히 설득력이 있는 설입니다.

2, 황제이기 때문에 자신의 권위를 세우는 정면승부를 고집할 필요가 있으며, 그리고 그렇게 하더라도
이길 자신이 있다. . - 허세와 일종의 자기 과신 같은거겠죠. 이는 바그람이나 워털루에서 자주 보입니다.
상대방 장군- 즉 칼 대공이나 웰링턴-을 깔보거나 상대의 군대- 특히 오스트리아, 러시아, 영국군-을
무시하는 경향이 1805년 당시에 많이 보이긴 합니다.

3, 병 때문이다.- 일단 치질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때문에 말타기 힘들어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약간의 조울증 같은 것도 있었죠. 특히 이런 모습은 워털루에서 자주 보입니다. 리니 전투에 승리 후에
우울증 양상을 보입니다. 그리고 아마 여러 병이 있었던 것 같고, 이 병들 때문에 몸 움직이는 게 힘들거
나 귀찮았기 때문에 정면 승부 쪽을 고집했다는 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이런 스타일 변화는 결국 나폴레옹 스스로를 파멸 시켰습니다. 또한 1차 대전 당시 프랑스 군은
이런 스타일 변화를 발전으로 보고 이런 나폴레옹적 정면승부와 소모전을 토대로 전술을 발전시킵니다.
그리고 그 대가는 초기 어머어마한 인명피해로 이어지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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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9/25 15:10
수정 아이콘
재밌게 읽었습니다. 이런 글들 좀 많이 올라왔으면 좋겠네요.^^
나이트해머
09/09/25 15:19
수정 아이콘
러시아 원정 이후의 프랑스군은 신병 중심에 추격전을 벌여야 할 기병전력은 거의 다 괴멸된 상태였죠. 기동전과 전과확대가 불가능하단 소립니다. 물론 이시기에도 나폴레옹은 전쟁에서는 사기스런 모습을 보였지만 말이죠. (뤼첸 전투와 바우첸 전투에서 러시아-프로이센 동맹군이 연거푸 털렸슴.)
그리고 원래 리니 전투는 네 장군이 나폴레옹의 명령대로 제대로 영국군 밀어내고 왔으면 거기서 프러시아군은 포위섬멸당했을 겁니다. 기병전력이 워낙에 부족하다보니 어쩔수 없었달까...
라이시륜
09/09/25 17:11
수정 아이콘
병이 있었다는 이야기 중에
나폴레옹이 위궤양을 만성으로 앓아서
그를 그린 대부분의 초상에서 그는 손을 배 위에 얹고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루뚜님
09/09/25 17:50
수정 아이콘
재밋습니다. ^^
오우거
09/09/25 19:07
수정 아이콘
예나 지금이나 전쟁의 승패를 가름하는 건 기동성인가요????

본문에서 언급된 알렉산드로스(알렉산더) 대왕을 세계전사(戰史)에서 최고의 스타로 만들어준

이수스 전투에서도 기병을 적극 활용한 기동력으로 숫적우위의 페르시아군을 안드로로 보내버렸는데.....

이후에 한니발과 스키피오도 마찬가지구요.....나폴레옹도 이런 스타일인건 처음 알았네요...재밌습니다...^^
거침없는몸부
09/09/25 19:17
수정 아이콘
역시 기동성이 관건이군요...
프로토스에 기동성이 뛰어난 지상유닛만 있었어도 저그에 이렇게 밀리지는 않을텐데...
내일은
09/09/25 20:07
수정 아이콘
저도 나폴레옹의 패배 원인을 오랜 전쟁으로 숙련된 기병이 부족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고대나 중세 때도 그랬지만 나폴레옹 시기 때도 기병은 징집으로 해결되는게 아니라서...
I.O.S_Lucy
09/09/25 22:03
수정 아이콘
전격전이 오버랩되는군요.
09/09/25 23:16
수정 아이콘
히틀러의 초반 승리가 자기 능력이 아니라 구데리안와 롬멜의 전격전술때문이었고, 그 승리가 자기 능력으로 된 것이라고 믿고 전선을 직접 지휘하면서부터 패전의 나락으로 떨어진 것인데, 혹시 나폴레옹의 경우도 비슷한 것 아닐까요?
귀염둥이
09/09/26 00:09
수정 아이콘
OrBef2님// 나폴레옹은 자기스스로의 능력이 출중했죠. 나폴레옹의 군사적인 능력은 정말 역대 본좌급중에서도 1~2등을 다툴겁니다.

그리고 히틀러도 그렇게 무시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 전격전과 전차의 중요성을 일찍 깨달은 선구자들은 구데리안이나 롬멜, 만슈타인말고 다른나라에도 몇명 더 있었죠. 대표적인 사람이 프랑스의 드골이고요.

근데 다른나라의 선구자들은 그나라에서 제대로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전격전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도자들은 귀를 귀울이지 않았죠. 근데 히틀러는 전격전을 어느정도 이해했고 적어도 초반에는 충분한 기회를 줬죠.

프랑스가 6주만에 무너진것은 구데리안이나 롬멜이 뛰어났기 때문도 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히틀러도 어느정도 능력을 발휘했기 때문이죠.
09/09/26 00:23
수정 아이콘
귀염둥이님// 헐 그런가요. 나폴레옹은 당시에 프랑스만이 가지고 있었던 국민 개병제의 덕도 좀 봤고, 러시아에서 날씨때문에 진 것이 아니라 전투에서 몰살당한 것이고, 뭐 이런 식의 뒷 얘기들을 좀 듣다보니 '뭐야 별거 아니네?' 라는 생각이 자연히 들었었는데, 과유불급이라고, 제가 실제 이하로 평가절하했었나보네요.
나이트해머
09/09/26 00:27
수정 아이콘
OrBef2님// 러시아 원정 이후 독일 전역을 보면 그런 말이 쑥 들어갑니다. 프랑스 대육군을 러시아에 다 파묻고 신병만 남았는데도 나폴레옹에겐 붙을때마다 져버려서 결국 동맹군이 내놓은 방법이 '나폴레옹은 피하고 부하들만 두들겨패자' 였죠. 휘하 원수들도 못난 원수들은 아니었지만 신병 끌고 이겨먹을 수준은 아니어서 결국 죄다 깨져나갔고(동시기 나폴레옹은 혼자서 계속 이겼음) 동시에 눈치만 보던 여타 유럽 제국들까지 죄다 끌어모아 라이프치히에서 나폴레옹군 20만을 상대로 38만을 끌어모아 집중구타해서 결국 이겼죠. 사실 이때도 나폴레옹이 아우스터리츠 때의 전술적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면 오히려 동맹국이 털려버렸을 가능성까지 나옵니다만, 제아무리 나폴레옹이라도 장기간의 전쟁으로 인해 좀 노쇠해진 편이여서...('노쇠해진' 게 신병 끌고 정예병 중심의 적군을 닥치는 대로 격파하는 수준. 전성기 시절엔 이인간이 얼마나 굇수였는가를 알 수 있지요.)
Siriuslee
09/09/26 01:37
수정 아이콘
나폴레옹은 진정 괴수지요.
사기케릭;

러시아원정 실패는 러시아군의 초토화작전때문이 아닌가요?

프랑스군의 기동력에는 병참생략이 뒷받침 되는데,(약 5일분의 식량만을 가지고 기동, 이후 점령지에서 식량조달)
러시아군의 초토화작전으로 점령지에서 식량조달이 어려워지고, 본국에서의 식량수송도 여의치 않은 상황..
겨울철을 대비 하지 않은 원정준비 등등
결국 병참의 한계상황에서 러시아군의 역습, 패배

은하영웅전설에 나오는 제국령침공작전에 라인하르트의 초토화작전이 바로 러시아의 초토화작전을 본뜬거 같은데 말이죠 ^^
(결국 동맹측 주력군 궤멸과 주요장성의 전사로 이어지죠.)
09/09/26 01:46
수정 아이콘
나이트해머님// 오호 그렇군요. 언제 시간나면 한번쯤 관련 자료들을 봐야겠네요. 근데 밀리터리쪽에 조예가 거의 없는 관계로, 부대 배치 이런걸 봐도 이게 뭐가 대단한건지 읽히질 않아서 말이죠!!
09/09/26 04:54
수정 아이콘
OrBef2님// 스타에 대입해서 이해하셔도 되지 않을까요.. ^^
대량살상무기가 등장한 현대전이라면 이야기가 좀 달라지기는 합니다만.. 나폴레옹시대정도라면..
단순히 저글링 쌈싸먹기만 생각해봐도 전투시 기동력을 이용한 포위섬멸과 각개격파는 어렵지않게 이해되실겁니다..

나폴레옹이 사기캐릭인 것은 맞지만 역시 전쟁의 완성을 위해서는
위에분이 언급한 병참등 단순히 주요 전투의 승리외에도 필요한 것이 더 있죠..
단순히 군사 총책임자가 아니라 황제의 자리에 있어서 전투력과 정치력을 결합시키지 못했다는 점에서..
카이사르는 물론 요즘 자게에 많이 언급되는 제갈량보다 한수 아래일 수 밖에 없을겁니다..
그런 점에서 한니발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지만.. 한니발은 카르타고의 장군이었지 황제는 아니었으니까요..
swordfish
09/09/26 13:03
수정 아이콘
ph님// 그런 평가는 좀 잔혹하군요. 실제 나폴레옹의 정치력이 없었다면 황제자리에 오르지도 못했을 겁니다.
아마 나폴레옹의 라이벌이자 라인 방면 사령관이었던 모로 정도의 삶을 살았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는 결국
자신의 출생의 한계를 뛰어 넘어 황제에 자리에 오르죠. 많이 아니꼬아 하는 사람과 심지어 증오하는 사람들
을 물리치고.

황제로써도 치세도 전쟁을 많이 했다 빼고는 나쁘지 않습니다. 나폴레옹 법전은 그를 유스티니아누스와 이름
을 같이 하게 만들었고, 그가 추진했던 공업화 등 여러가지 정책은 그가 물러 난 후 프랑스 정국이 요동치지만
않았더러라도 프랑스가 영국에게 그렇게 산업에서 심각하게 밀리는 상황을 만들지는 않았을 겁니다. 경제
정책면에서 돈은 많이썼지만 화폐를 대량 유통시키는 우 정도는 범하지 않을 정도로 건실한 사람입니다.
또한 중앙은행을 만든 사람도 나폴레옹이죠.

대외 정책 면에서도 마찬가지. 물론 수많은 실책은 이 대외 정책에서 벌어진 거긴 하지만, 그래도 최종적인
그의 야망은 프랑스제국의 유럽 지배가 아닌 현대의 유럽 연합 수준의 공동체 형성이라고 본다면 이를 달성하기
위해 꾸준하게 한 겁니다. 러시아랑 친해지려 했으며, 오스트리아에게는 온건하게 다가가려 했죠. 문제는
상대가 당대의 천조국 영국이었다는 문제죠. 돈은 마음껏 뿌리고 외교는 외교대로 음흉하게 잘 하는, 이당시
영국이 뿌려댄 뇌물과 군사지원만 하더라도 2차 대전의 미국의 랜드리스에 비견될 수 있는 것입니다.
실탄 면에서 절대로 나폴레옹은 영국을 이길 수 없다는 나폴레옹 외교의 큰 한계점입니다.

그리고 병참- 사실 이는 역시도 억울한 면이죠. 현지 수집이라고 해도 실재로 기동력을 위해서 그렇게 한
것도 있지만, 바다가 영국이 점령한 이상 말을 이용해야 하는데, 이는 당대에는 엄청한 한계가 있는 것이었습
니다. 프랑스 국경에서 발트해 연안 동프로이센까지 원정을 해야 했는데, 그 거리 만도 카이사르의 원정
거리는 가볍게 넘어 섭니다. 그 이전에 그 거리를 넘어 서는 사람은 알렉산드로스 대왕 정도 밖에 없고요.
그 비난 받던 러시아 원정 역시도 병참 면에서 당대 최대였습니다. 준비를 안한 건 아니였다는 이야기죠.
하지만 그 대군을 보고 억하고 바로 항복할 줄 알았던 러시아가 자기 주변을 다 불태우고 항전할지는 몰랐거든
요. 그나마 보로디노 전투에서 이기니까 모스크바까지 가면 항복할 줄 알았는데 그래도 러시아가 안하니까
기다립니다. 그리고 한계에 이르러 철수하게 된 겁니다.
또한 당시 왠만한 모든 국가도 다 그렇게 살았습니다. 교통수단이 보잘껏 없었거든요. 마차가 많으면, 마차
운용할 건초 수래가 더 많이 필요할 테니까요. 그나마 배로 실어 먹는 영국군이야 잘 먹는 편이었지만요.
그마저도 보급 규정을 못지키는 경우가 간혹 있을 지경이니까요.
내일은
09/09/26 19:30
수정 아이콘
러시아에서 나폴레옹의 패배는 러시아적 마인드를 이해 못했던 것도 큽니다.
초토화작전이라는게 러시아나 중국에서나 가능한 작전이지 계몽주의가 팽배했던 유럽 대륙에서는 상상도 불가능한 작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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