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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8/08 00:24
난중잡록은 의병 조경남장군의 개인적인 경험만을 토대로 한 사료입니다. 역사적인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부 신뢰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이순신 장군의 업적이 박정희 대통령을 통해 가공된 것이 없진 않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재야 역사가들을 통해서 폄훼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크게 사료들을 종합한다면 이순신 장군은 틀림 없이 시대의 영웅이자 기적을 이룩한 지휘관인 것은 부정 할 수 없는 사실이며 원균 장군이 이순신 장군이 이룩한 해군 전력을 말아 먹은 것 역시 부정 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것만 생각한다면 판단은 쉽게 될 것입니다.
09/08/08 00:24
이순신의 3패가 무슨 전투인지 근거는 나와 있나요?
참조로 이순신을 최초로 부각시킨 사람은 정조이며, 그 다음은 (아이러니하게도) 러일전쟁 직전의 일본 해군입니다. 일본해군이 당시 해군의 중요성을 강조하려고 적장이었던 이순신을 많이 띄웠죠. 그 다음이 박정희라고 할 수 있는데, 박정희야 국가주의자였으니 역사상 최고의 전쟁영웅인 이순신을 띄운건 당연한 듯 합니다. 해당 서적에서 원균을 왜 그렇게 띄우려고 했는지 모르겠지만, 원균은 욕먹을 짓 했습니다.(반발심을 이용한 노이즈마케팅?) 이순신이 임난초기 수천도 안되던 수군을 기르고 길러 2만이 넘게 육성해 놓았는데, 한번 패전으로 전멸시켰는 걸요.
09/08/08 00:27
일본군은 전국전쟁을 치룬 후라 육군이 쎘죠. 이건 당연한 것이고...
한국군이 수군이 쎘다... 이건 이순신이 있기 때문인 것이죠. 전적으로...
09/08/08 00:27
happyend님// 그런가요? 제가 본 책에서는 정조라고 되어 있더군요. 정조가 왕권을 강화하려고 충신이었던 이순신을 띄웠다고... 뭐 제가 전문가도 아니고 줏어 들은 거니 잘 모르겠군요 ^^;;
09/08/08 00:28
수군화력은 세계최강이라기보다는 '최고'였을것 같구요. '최강'은 아무도 모르죠.
중원의 왕조가 국력을 군사력에 몽땅 올인하면 머릿수 자체로는 상당히 많이 나오고 임진왜란보다 1000여년 전에도 전투병 100만 동원이 가능했는데, 인구가 늘어난 후대라면 암만 일본육군이 강했다고 하더라도 거기에는 상대가 안될듯 합니다. 전투는 이겨도 전쟁은 지겠죠. 전면전의 경우, 화약이나 식량 등의 보급의 문제도 있을 것이고..
09/08/08 00:28
戰國時代님// 제가 지금 기억이 뚜렷하게 나지는 않는데요. 아마 재야 역사가들을 통해서 패전 기록한 것이 일본군이 점령한 육지를 탈환하지 못한 것 일 겁니다. 사실 육군의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여서 패전 기록하기가 애매할 뿐더러 출전을 감행한 것도 선조의 압박이 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09/08/08 00:29
보통 저기에 3패... 라고 되어 있는 건 요새화된 항구에 꼭꼭 숨어있는 일본 함대를 때려잡는 데 실패한 것, 또는 항구를 점령 못한 것을 졌다고 말하는 경우가 태반이죠.
그런데 그걸 말하는 사람들 중에 그시대, 아니, 이후 수십년 뒤에도 요새항구 점령은 세계 그 어떤 해군도 거의 해내기 어려운 난제중의 난제였다는 걸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더군요. 이건 사람의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기술력의 문제인데 말이죠.
09/08/08 00:31
이순신 장군은 선조 이후로는 대부분의 왕들이 부각시켰죠. 그런데, 조선 왕들이 부각시킨 건 조상인 선조를 욕되게 하는 거라 정치적 부담이 있다는 건 생각해 주는 사람이...
09/08/08 00:34
아 참 이순신 장군의 전적에 관련된 말은 "이순신 장군이 일본 수군과 해전을 한 것은 23전 또는 24전이 아니라 16전으로 13승 3패를 기록했으며, 또 16전 중 실제로 해전다운 해전은 단지 세 차례에 지나지 않았다.”라고 이 책은 쓰여 있더군요..ㅡㅡ;;;;난감;;;
그리고 책이 역시나 조선까라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는 것이 27명의 조선 임금 중에서 명군이라 일컬을 수 있는 임금은 세종과 정조 둘뿐이고 그나마 밥값을 한 임금은 광해군·효종·태종·세조·영조 등 다섯 명, 밥값은 못했지만 죽값이라도 한 임금은 성종과 숙종이며, 나머지 임금들은 임금이라 부르기에는 너무 하찮은 존재”라는 주장을 이 책을 쓰신 분이 적었더군요..;;;; ;;;왠지 책을 괜히 빌린 듯한 느낌이;;;;저자를 확인해 보고 빌렸어야 되는건데 왠지 재미있을 것 같아서 빌렸더니;;;;;
09/08/08 00:34
戰國時代님// https://ppt21.com../zboard4/zboard.php?id=ACE&page=1&sn1=on&divpage=1&sn=on&ss=off&sc=off&keyword=happyend&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724
제가 예전에 쓴 위 글에 근거가 있고요, 요약하자면, 이순신 계열은 동인(남인)계열로, 임진왜란의 책임을 지고 몰락할 운명이었지요. 이후 인조반정 이후에도 실제 집권당은 서인이었고요. 그러나 삼전도의 치욕을 당한 인조는 이순신장군을 통해 '민족적 자존심'을 회복하려고 하는데요,이때 조카인 이분에 의해 최초의 전기형식인 '이순신 행장'이 만들어집니다. 제기억이 맞다면 이분은 이순신 장군의 최후에 함께 있었던 인물일 겁니다.
09/08/08 00:41
원균을 깎아 내린다라... 글을 쓰신 분도 분명히 말씀하시지 않으셨으니까? 세계 최강 조선 수군이라고. 그런데 그 수군을 단 일격에 말아 먹은 장군이 원균입니다. 그리고 그 이전에도 별 볼일 없는 장군이었는데, 묘하게 선조 때문에 1등 공신 된 후로 택도 없이 이순신 장군의 라이벌 처럼 여겨지는 거죠.
세계 최강의 조선 수군이라는 말 역시 좀 우스운 말이죠. 원양 항해 능력도 없고, 함선 크기도 당시 유럽에 비해 별로 크지도 않았는데 말이죠. 당대 사용했던 갈레온 보다는 확실히 작은 배죠. 단 두 나라 다 연안 전투 능력 밖에 없었고, 이런 상황에서는 보다 홈그라운드와 이순신이라는 명장, 이에 특화된 판옥선 때문에 조선 수군이 유리한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우위도 이순신라는 지휘관이 사라지니 사라진 것이죠. 반면 최강의 일본 육군 역시 디씨에서 수없이 논쟁된 떡밥입니다. 뭐 논쟁할 가치도 없는 겁니다만.... 수효는 기록상 일본보다 서양 군대가 적었겠지만, 서양 군대는 실재 전투병 숫자만 카운트 한다는 면에서 실재로도 그렇게 큰 수가 날지도 의문입니다. 또한 아무리 일본이 전국시대 때문에 실전 경험이 많았다고 하더라도, 이는 유럽 군대도 마찬가지. 오히려 더 혹독한 전투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기 면에서 마찬가지죠. 별볼일 없는 일본의 기병대에 비해(말 품종도 좋지 못하고 기병 전술도 그리 좋지 못했습니다. 다케다 가문의 기병 전설 같은 건 그냥 뻥에 가깝습니다.) 좋은 품종의 말에 기병 전술만 수없이 개발된 유럽 기병대에 이기기 힘들죠. 또한 무기도 소규경의 아큐버스 총(조총)을 무장한 일본군에 비해 유럽 군대는 보다 대구경의 머스킷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포병은 뭐 언급 할 필요도 없습니다. 너무 차이가 현격해서. 조선이 초전에 대패한 이유는 조총이라는 무기에 대한 생소함, 제승방략 체제의 병맛, 그리고 군역의 노역화로 인한 병력의 질의 감소 때문입니다. 포 같은 경우에는 조선 쪽이 오히려 나은 편이었죠.(만약 있다면....) 또한 지휘관 급에서도 대규모 정규전에 대한 경험 부족도 상당히 크다고 생각합니다.
09/08/08 00:57
나이트해머님// 그래서 영국 해군 같은 경우에는 일단 항구를 봉쇄해버리죠. 아예 못나오게. 괜히 배에 있는 해군이나 해병대를 투입 해봤자 피해만 클테니 말이죠.
이순신 장군이 구상한 계획도 이런 봉쇄입니다. 그냥 서쪽으로 못오게 막아 버리는 거죠. 그런데 위쪽에서는 이순신 장군에 대한 질투심과 이러한 전략에 대한 이해 부족 때문에 부산을 공격하라는 무리한 요구를 했습니다. 뭐 조선 수군이 원양항해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영국 해군 처럼 보다 직접 적인 봉쇄가 가능했겠지만, 그런건 조선 수군에게 기대하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그럴 배도 없고, 항해 지식도 부족하니까요.
09/08/08 01:18
하나 배우고 가네요..
인조가 이순신을 정치적으로 이용했었다는 것을... 개인적으로 역사배우면서 연산군보다도 인조라는 왕이 너무나 싫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광해군과 소현세자... 두 별이나 지게 하다니요... 소현세자의 아내와 아들까지 비참하게 죽였죠.. 도저히 아버지라곤.. 후우..
09/08/08 02:19
임금에 대한 평가는 '조선바보론(?)' 식의 조선 때문에 우리 역사가 이래 축소되었다...라는 주장과 연계되어있는 듯한 느낌이네요.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조선이 문치주의를 표방하면서 군사력이 많이 약해진건 사실입니다만 전 대의 고려왕조 등에 비교해서 그렇게 까지 떨어지는 존재일까 하는 의문은 듭니다. 저도 조일전쟁 당시 일본 육군은 월드클래스 레벨 이라는 식의 주장을 봐왔습니다만 무리가 있는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애당초 스펙 자체가 밀리는데, 그걸 지난 전국시대에 큰 발전을 이루면서 많이 성장한 정도 라고 할까요. 해전이 아닌 육전에서도 조선군의 승리가 더 많습니다. 전투에 있어 조선군의 공격으로 시작된 전투가 더 많았고, 관군 주도의 승리가 많았습니다. 이는 침략군으로서 원정 전투를 펼치는 일본군이 밀리는 것은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겠지만, 일본 육군이 조선 육군을 박살을 내놨다고 보기는 좀 힘들지 않나 싶습니다. 실제로 조선 육군의 오합지졸들이 추풍낙엽처럼 무너진건 상주 전투, 용인 전투등 대부분이 초기에 이뤄진 전투들이죠. 전황이 오래되면서 군세를 정비한 후의 조선 육군도 꽤 강한 편이었습니다. (전쟁 말미로 갈 수록 조선군이 방어하는 일본군을 공격하는 형세였는데도 말이죠.)
09/08/08 02:20
저의 윗 댓글에 첨언을 좀더 하자면, 조선군의 주요 장수는 전쟁 초기에 전사율이 상당히 높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전쟁이 장기화 되며 주요 지휘관들의 전투 경험이 다시 쌓여가기 시작한것도 승전을 거두는 데 있어 분명 일조를 했을것이라 생각합니다.
09/08/08 02:24
인조는 쿠데타로 집권하고 당의 세력에 떠밀리는 허수아비같은 존재
그 와중에 청에 쓸려버리고 비참한 항복까지 아마도 자기주장과 합리화가 지나친 왕이지 않았나 싶네요 자신의 것을 지키려다 보니 결국 아들까지 죽여 버리고 말죠
09/08/08 08:29
원균이 있던 경상우수영과 박홍이 있던 경상좌수영은 각각 1만 2천씩의 병력과 75척의 판옥선을 장비한 조선 최고의 함대였습니다.
이억기의 전라우수영은 병력 5천에 판옥선 30척, 이순신 장군의 전라좌수영은 병력 4천에 판옥선 25척입니다. 그러나 원균과 박홍은 싸워보지도 않고 150척 판옥선 다 불태우고 도 to the 주 했죠. 원균이 뭘 무찔렀답니까 꼴랑 자기 따라 도주한 3척 끌고와서 장졸들 다그쳐서 죽은 일본 수군 시체에서 목베기나 했지. 뭐 다른사료 다 집어치우고 원균이 10척이나 잡았다면 이순신 장군님 초기 해전당시 일본수군이 판옥선에대해 감 못잡고 그렇게 무력하게 당했었겠습니까? 그리고 어딜봐서 조선수군이 세계최강인지 모르겠네요; 판옥선이란 배가 화포도 장비하고 원양에는 적합하지 않으나 근해에선 나름 높은 기동성과 조종성을 가진 배는 맞는데 근본적으로 수군을 징집하는데 짧게 번을 도는게 아니라 6개월 씩 해버려서 수군 뽑혀서 가면 집안 살림 말아먹는다고 애시당초 수군 안가려고 열심히 도망다니던 시스템이고, 임란 당시에도 다들 수군만은 기피해서 이순신 장군이 병력 문제로 의병들이랑 감정 안좋은게 여러번 드러납니다. 자기 관할에서 수군병력 빼간다고요. 장수들 질이 좋았느냐? 병력이 좋았느냐? 이순신 장군 삭탈관직 당해서 의금부로 끌려가서 고문당할때 원균은 칠천량해전에서 판옥선 150척을 상실하고 그간 쌓아온 조선수군의 기본적인 인프라를 다 날려버립니다. 원균이 바보 멍청이라 그렇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밑 사람들이 주장이 멍청해도 싸우면 이길수 있다 이런 마인드였으면 그정도로 참사는 안났겠죠?
09/08/08 11:03
남북한 모두 군사력 랭킹 top10안에 드는 군사강국입니다. 북한이야 뻥이 섞였다고 해도 핵을 빼고 남한 군사력을 능가하는건 미국, 러시아, 일본, 프랑스, 독일, 영국뿐일걸요.
09/08/08 11:06
임란당시 흔히말하는 조총은 아퀴버스중에서도 특히 사냥용총을 복제한 것입니다. 물론 일본내에서 개량하긴 했지만 당시 유럽의 머스킷보다는 성능이 딸리고 기병은 말할것도 없이 초라하지요. 유럽은 커녕 임란때 여진족들 게릴라에 관광당하고 조선으로 쫓겨왔었지요.
조선육군이야 일본군보다도 약하고 해군은 그래도 해볼만 합니다. 원양능력이 극히 딸리지만 근해에서 당시 영국해군과 싸운다면 싸움이 될 것 같습니다. 전함의 스펙이나 포의 스펙은 아직까지는 엇비슷하거든요. 다만 유럽쪽은 티크목이 수입되고 17세기초반부터 배가 대형화되면서 그 격차가 안드로메다로 벌어지게 되지만요.
09/08/08 11:08
임란당시 장교들의 질은 괜찮았습니다. 다 왜구와 여진등과 놀며 실전을 경험한 무장들이었거든요. 오히려 문제는 최고지휘관들이었습니다. 문관들이 군사에 대해 모르니까 삽질해서 말아먹은 전투가 많지요. 그래서 권율장군이 본좌지요. 소시적에 건달짓하던 경험으로 문관출신인데도 뛰어난 통솔력을 보여주었지요.
09/08/08 11:27
사실 원균 명장론 내지 이순신 패전설이 왜 이렇게 계속 나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두 X 소리인게 밝혀진게 언제적 이야기인데.........
웃기는 게, 이런 걸 주장하는 사람들은 뭔가 새롭게 보일려고 잘난 척 하는 경우도 태반이고, 그리고 이순신 장군과 원균에 대한 분명한 '이중 잣대'로 평가하려는 의도까지 보인다는 점입니다.
09/08/08 11:30
그리고 정치적 의도로 이순신을 깎아 내리고 원균을 띄운 것은 선조였지요. 이것은 전란 이후 공신 책정에서 드러나는데, 전장에서 싸운 사람보다 자기 옆에서 같이 도망가면서 따라다닌 '호종공신'을 더욱 더 챙겨주는 아주 아슷흐랄한 책정 기준을 보여줍니다....;;
09/08/08 11:49
왜는 육군이 세계최강? 한마디로 헛소리-_-입니다 (그 책 저자 누군지 알고 싶군요-_-)
이순신 장군의 화려한 전과에 묻히긴 했지만, 실제 임란 초기만 제외하면 일본육군은 조선관군(육군)한테도 번번히 발렸습니다. 정기룡 장군 같은 분은 일본군을 상대로 60여차례의 크고 작은 전투에서 무패를 자랑했으며, 권율 장군 역시 이치 전투(조선군 천명 vs 일본군 만명)나 행주산성에서 대승을 거두었구요. 하다못해 희대의 먹튀 명나라 군대도 제대로 맘먹고 싸우면 종종 일본군 발랐습니다-_- (맘 먹은 적이 거의 없어서 문제지...) 정유재란 시 소사평 전투에서 일본군은 명군과 하루에 일곱 번 싸워서 일곱 번 다 지기도 했습니다-_-
09/08/08 12:09
저도 그 책의 저자가 누군지 궁금하네요.
역사와 군사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그저 조선을 까기 위해서 쓴 사람 같습니다. 학창시절에 역사 관련 수업 시간에는 제대로 안하다가 저런 이상한 소리나 하는 분 보면 안습입니다.
09/08/08 15:40
원균 명장론은 이미 X소리라는게 밝혀 졌죠...
150여척의 판옥선 7척의 거북선을 쓰지도 못하고 꼴아박고 도망간 원균을 명장이라고 한다면 권율, 강감찬 같은 장군들은 神으로 불려야 할듯 "임진왜란" 이라는 소설에서 나왔듯이 아주 사소한 전투에서 패한것도 기록한 일본측에서 원균에게 패한 기록은 단 한건도 안나왔다는 이야기만 봐도 말 다했죠. 이순신 장군이 대단한것이 전투에서 이긴것도 그렇지만 중앙의 지원을 받지 않고 자급 자족으로 군대를 이끌었다는 점이죠. 한산도에 자체 보급을 가능한 기지를 건설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지휘관이라고 생각합니다. 기껏 구축해놓은 한산도 기지를 원균이 말아먹었지만 명량해전이후 다시 재건했다는 사실도 소름돋을 만한 이야기죠.
09/08/08 15:56
독재자가 띄웠다고 해서 띄운 인물이 폄하되는것은 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이순신장군 관련된건 뭐랄까요 모르는걸 알 수록 더 대단하다고 해야하나 하는 그런 생각이 있습니다. 특히 칠천량 해전이후에 진짜 아무것도 없는 삼도수군통제사 맡아서 명량해전에서 승리할떄까지의 이야기를 보면 인간인가 싶을 정도죠;;
참 우리나라에서 조선 깍아내리면서 고려 고구려 찬양하는 사람들 보면 참 답답한 마음이 들떄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제가 역사 전공자도 아니고 약간 관심을 가지고 역사책을 읽는 수준이지만 좀 보다보면 조선이란 나라가 참 대단한 나라구나 하는 생각이 들떄가 많은데 말이죠 제국주의시대에 외국에 직접 나라를 뺴앗긴 원죄(?)로 인해서 죽도록 까이는 것이 안타까울 뿐.... 그리고 조선의 좋은 임금에 태종이 없다는게 어이가 없네요 왕자의 난으로 이복동생을 죽이고 아버지에게서 왕위를 뺴앗다 시피했지만 임금으로서의 업적은 나라를 창건했다라고 봐도 다름이 없는걸로 알고있는데 말이죠;
09/08/08 17:32
조경남의 난중잡록은 다른 사서와는 다릅니다.
사실을 바탕으로 자신의 의견을 다루는 일반적인 사서가 아니라 자신의 의견은 전혀 없이 다른 사람들의 책, 말, 심지어 행장까지 전부 들쑤셔서 다 베껴 적은 책입니다(단적으로 난중잡록 안에서만 해도 원균의 최후에 관해서 3가지 이야기가 나옵니다 -0- 싸우다 죽었다, 도망가다 죽었다, 살아서 도망친 후 버로우탔다 -0-). 당시에 어떤 말들이 있었는가에 대한 자료는 되겠지만 사료적 가치는 높다고 할 수 없습니다.
09/08/08 17:43
이순신 파직 후 원균이 통제사가 되어 처음으로 치룬 전투가 기문포 해전입니다. 원균정론을 쓴 이재범 같은 원균옹호론자들이 가장 자랑스럽게 얘기하는게 이 기문포 해전입니다. 원균은 기문포에서 왜적 47명의 수급을 벤 후 장계와 함께 올려보냅니다. 선조는 이 보고가 올라오자 기분이 좋아서 원균의 품계를 당장 올려주라고까지 합니다. 그러나 며칠 후 경상우병사 김응서의 장계와 일본측의 항의문건이 올라오자 사태가 급변합니다.
당시 기문포에 상륙한 왜군들은 전투병이 아니라 나무하러 온 일꾼들이었고, 김응서가 허가한 벌목증도 가지고 있었습니다(이 시기에는 휴전협상이 한창 진행중이라 벌목증 교부가 가능했습니다). 다음 날 그 소식을 듣고 기문포에 상륙한 원균은 대함대를 보고 놀라서 도망치는 왜병들을 술과 고기를 먹여 잘 달래어 돌려보냅니다. 그러나 왜병들이 배를 타고 돌아가려 하자 뒤에서 포로 쏩니다 -0-;;;;; 하지만 포가 빗나가고 열받은 왜군들은 그들을 잡으러 선봉에 섰던 고성현령 조응도의 배에 올라탑니다. 그리고 조응도를 포함해 그 배의 모든 병사들이 왜병에 의해 죽습니다 -0- 하지만 왜병들도 결국 모두 죽었고 원균은 그들의 수급을 베어 전공으로 보고합니다. 하지만 죽은 조응도가 다스리던 고성현령에서는 현령이 죽었으니 새로 현령을 임명해 달라고 김응서에게 태클을 걸었고 김응서는 놀라고 화나 선조에게 바로 장계를 올립니다 -0- 거기다 일본 측도 휴전협상 중에 일어난 원균의 행위를 맹비난해(그런데 일본 측의 항의서에는 사망자가 32명이라고 했는데, 47급의 수급을 바친 원균은 나머지 15급은 어디서 얻은 걸까요? 뭐... 뻔하겠죠 -0-) 결국 원균의 승진은 취소됩니다. 이 이후는 더 말할것도 없습니다. 네, 칠천량 해전입니다 -0-;;;;;;;;;;;
09/08/08 17:50
수군에 대해서도 말하자면...
조선수군이 강했던 건 사실입니다. 조선수군의 주력함선인 판옥선은 일본수군의 주력함선인 세키부네보다 1m 이상 높이가 높았고 선체도 훨씬 단단했습니다. 일본수군이 주력으로 쓰던 전법인 배끼리 부딪혀서 구멍내고 상대 배에 올라가서 칼로 썰어버리기-0-가 판옥선에는 먹히지 않았습니다. 배의 강도 차이가 커서 두 배가 부딪혀도 세키부네만 파손될 뿐이었고 설령 갈고리로 걸어 두 배를 잇더라도 1m의 높이 차이를 오르려다 조선수군에게 팔다리가 잘리는 일도 허다했습니다. 그렇다고 원거리 포격전을 하기엔 더 힘들었죠. 일본군의 포는 배에 고정시켜 놓는 것이 아니라 줄에 매달아 놓고 쐈습니다. 이유는 고정시켜 놓으면 포를 쏘는 반동 때문에 세키부네의 선체가 파손되기 때문이었죠 -0- 줄에 매달아놓고 쏘니 당연히 정확도는 안드로메다로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0-;
09/08/08 20:00
그때 조선수군이 세계 최강이었나... 그 시대 단위로는 최강이라 불러도 되겠죠.
유럽 함선들이 물론 16세기에도 600톤, 700톤짜리가 건조되긴 했지만, 포르투칼은 2000톤급까지도 만들 능력이 있었다지만, 기본적으로 유럽 해군은 그시대까지는 징발된 상선 중심의 해군입니다. 당연히 크기도 제각각, 탑재 함포도 제각각. 이걸 지휘통솔 하는 것도 어렵고. 여기에 150여톤 넘어가는 상선도 별로 많은 게 아니고. 반면에 조선 수군은 150여 톤에 달하는 배수량의, 유럽 해군 내에서도 수준급의 고급 전투함 클래스인 판옥선을 제대로 된 지휘통제 하에 250여 척(완전 편재시)에 달하는 숫자를 확보하고 있었습니다. 단일 국가로 이정도 수준의 해군력을 지닌 국가는 그시대 유럽 어디에도 없었죠. 원양항해 능력에선 좀 부족하지만, 전투력 면에서는 세계 최고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게 17세기로 넘어오면 천톤 이상의 함선들이 슬슬 각국에서 튀어나오기 시작하면서 뒤집히죠. 1500여 톤 수준의 함선이면 단순 무게만 비교해도 판옥선의 열배니... 그것도 한두척씩 최상급 클래스로만 만들어지는 게 아니게 되고.
09/08/08 20:09
일본 육군 세계 최강설은 뭐, 가끔씩 나도는 소문에 가깝죠.
스페인 단독으로도 그때 일본을 이길 수 있을 겁니다. 전 유럽과 아메리카 일대에 걸처 2,30만을 유지, 보급해내던 국가니까. 거리의 문제가 있을 뿐이지.
09/08/08 21:26
음... 인정하기 싫지만 당시 일본 육군은 거의 최강아닙니까? 돌격대 1500명으로 조선 육군 5만명 괘멸... 그리고 당시 그들의 사무라이 정신만해도..
09/08/08 22:48
드래곤애쉬님// 말씀하신 예시는 아마 용인에서 북상하는 근왕군 5만명을 와스자카가 휘하 기병 천 여기로 격파한 전투를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속칭 용인전투) 이때 조선 육군 5만명은 현역 군인도 아니고 호남 지역의 남자를 모아 근왕(왕을 모시기 위해) 하기 위해 북상하던 병력이었죠. 이 전투에서 5만명이 한번에 와해 (궤멸이라 하셨는데 와해가 더 적합한 표현으로 보입니다) 된 것은 지휘관이 5만여 병력을 단일부대로
통솔했기 때문입니다. 분산배치 했다면 일격을 맞고 전병력이 그대로 와해되진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전투 양상 또한 정면 승부를 펼친것도 아니고, 와스자카가 근왕군 5만명이 용인 주변 산자락에 진치고 있는데 식사중이란 보고를 받고 그대로 정예기병으로 급습, 5만명이 꽁무니 빠지게 달아난것입니다. 개전 초 조선 육군의 허접함을 보여주는 사례일지언정, 일본 육군이 월클급(?) 이란 예시로는 좀 힘들것 같네요.
09/08/09 04:46
sinfire님// 한국은 미국,러시아,중국 제외시 맞습니다.터키는 조금더 쳐지구요.
미국>>>러시아>>넘사벽>나머지국가는 육해공+전략무기 모두에 해당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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