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술자리를 가졌다. 오후 3시부터 저녁 9시까지. 6시간동안 길다면 길고 이르다면 이르고 빠르다면 빠른 술자리. 모인 사람들도 참 다양하다. 4명이 모였다. 평소에 전혀 연관고리라고는 한 푼도 없을 사람들. 앞으로 그런 사람들을 다시 만날수 있을까라고 하면 No 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들.
1. 첫번째 소개할 여성은 평범한 대학생. 하지만 전에 프로게이머랑 사귄 적이 있다고 했다. 그것도 2명이나. 사실 난 안믿으려고 했는데 그녀가 가진 사진들을 보고선 믿을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술김에 작은 핸드폰 화면으로 본 것들이고, 혹시 그녀가 합성을 한건 아닐까 했지만, 그 사실들은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다 풀릴수 밖에 없었다.
사실 시작은 조용했다. 어느 여자가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 하는데 당당할 수 있는가. 사실 그것도 내가 다 풀어낸 것이다. 나야 스타판에 관심 가진지 8년이 다 되가고 한때 프로게이머까지 꿈 꿨던 사람이지만. 뭐 재능 없는거 알고 3개월만에 관뒀지만.
그녀가 프로게이머와 사귄 기간은 2년이 안된다고 했다. 2006년 말 부터 2008년 초 까지. 그녀도 다 아는건 아니였고 그래도 자신이 사귄 선수가 속한 팀에 대해서는 아주 잘 알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말해준 이야기들은 거짓말이라고 밖에 생각이 안들정도로 너무 정확하게 팩트에 들어 맞았다. 공개된 팩트와 공개되지 않은 팩트들 사이에서. 그 연관 고리를 채워준 것들. 그냥 그런가보다..하기엔 충격적인 이야기들도 있었고 그저 그냥 소소한, 서비스 안주로 나온 한치 대신 씹을수 있는 이야기들도 있었다. 뭐 그랬다. 뭐랄까. 그녀는 이 바닥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결국 듣다보면서 느낀건, 프로게이머도 결국 사람이라는 것이다. 참 내가 이 바닥을 좋아하게 만든 영웅들의 몰락기를 들으며 괜한 맥주만 들이켰다.
2. 두번째 남자는, 사진을 찍는 남자다. 내가 아는 프로페셔널에 가장 근접한 사람이고 참으로 사진에 관해서는 깐깐하다. 내가 사석에서 우스겟소리로 '픽셀(디지털 사진을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 하나 하나 보면서 따질 사람이다' 라고 할 정도로. 하지만 그 이외에는 참으로 좋은 사람이다. 술자리에서 이 사람이랑 있으면 이야기가 끊기진 않을 것이다. 그냥 참 재미있는 유머꾼인 사람이다. 물론 사진에 관한 것을 제외하곤.
이 남자는 참으로 많은 사진을 찍어왔다. 전문 사진가로 입문하기전, 캐논에 300D라는 카메라를 샀다가 1년만에 60만컷을 찍었고, 내장 플레쉬를 태워먹은 사람이다. 그리고 그 뒤로 프로로 전향했고, 수 많은 사람들의 사진을 찍었다. 연예인도 포함되어 있고..... 그러니깐 사진 찍는거에 대해선 돈을 쓰진 않는다. 모두가 돈을 주고 모두가 협찬을 해주니깐. 왜냐면 그는 프로니깐. 덕분에 내 짧은 사진 경력동안 많이 배웠다. 사실 지금도 스스로 어디 가도 왠만한 사람보다 사진을 찍는 방법론에 대해선 꿀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근데 사진은 수학이 아니라 예술이니깐. 난 못찍는다.
그는 내가 인정하는 프로다. 물론 변변한 학교도 나온 적이 없다. 우리나라 대학중에서 가장 좋다는 중앙대 사진학과를 나오더라도 성공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실력은 있더라도 인맥과 기존에 카르텔을 못 부시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대학도 나오지 않았지만 그걸 깨버리고 당당하게 활동하고 있다. 평소엔 유머러스 하면서도 자신의 본업에 있어서는 엄청나게 진지한. 그런 사람을 만나긴 참으로 쉽지 않다.
3. 그녀는 행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아니 준비한다기 보단 행정고시를 핑계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해야 정확한 것이다. 5년째 행정고시를 준비하고 있지만 작년에 1차에 붙은 것을 제외하곤 한 번도 제대로 된 시험을 본 적이 없다. 그녀 말로 '처음 시작할땐 열정을 가지고 시작했는데, 언제부턴간 그 간의 들인 노력이 아쉬워서 다른 것을 못하고 그냥 책만 듬성듬성 읽으면서 보내는' 그런 상황인 것이다. 늪에 빠린 사람 마냥.
5년동안 신림동에서 살았으니 신림동 고시촌에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이건 뭐고 저건 뭐고 어떻게 해야하는지. 하지만 시험에서는 참으로 약하다. 그녀와 같이 공부한 사람들중에 20%는 합격했고 나머지는 다른길을 가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도 그대로다. 참 뭐랄까. 사람이라는게 이렇게 시간을 보내도 되나 싶을 정도로 그녀는 널럴하게 살고 있다.
그녀는 참으로 이쁘다. 아니 그냥 이쁜거다. 물론 나이를 먹어가면서 요정같은 포스는 보이진 않지만, 그래도 이쁜건 어쩔수 없다. 이쁘니깐. 개개인의 취향을 따지기 전에 누가봐도 '오호 이쁘다.' 할 정도니깐. 물론 뭐 나야 이성으로 느껴지진 않는다. 나이차이가 많이 나서 그런것도 있고, 개인적으로 성향은 요즘 유행하는 말로 초식남? 뭐 그런거라 여자에 그렇게 매달리는 상황은 아닌지라.
그녀가 이 곳에서 배운 것은 3가지. 1. 행정고시에서 봐야하는 과목들. 2. 신림동 고시촌에서 살아가는 법. 3. 남자를 가려 만나는 법. 그녀는 남자를 참 많이 만났다. 아니 솔직히 여기서 그녀가 간택하는 수준이였겠지. 지금도 이정도면 어디가서 꿀리진 않는데, 만약 5년 전이라면...어휴..
외모가 독이 된거인지 모르겠어도, 그녀는 참 독하지 못했다. 남들은 하루 12시간씩 공부한다는 고시공부인데 그녀는 공부시간보다 데이트 시간이 더 많았으니. 이제부터 악 물고 한다지만, 고시라는게 악물고 해서 다 된다는게 아니니깐. 그래도 다행인건 그녀는 자신의 외모를 믿는 것을 버리고 미래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 미래가 너무 늦었을지 몰라도. 그래도 늦었다고 생각할때가 가장 좋은 시기라는게 그 바닥에 전통이니깐.
참으로 연관성 없는 사람들이 모여서 술잔을 기울이면서, 결국 마지막으로 나온 이야기는 왜 우리 인생은 이렇게 씁슬해야 하냐는 것이였다. 한 명은 자신의 과거가 씁슬했고, 한 명은 자신의 현재가 씁슬했고, 한 명은 자신의 미래가 씁슬했다. 그리고 난 그들을 보면서 나의 이야기가 되는 것 같아 씁슬했다. 그냥 뭔가 씁슬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3번 케이스......
1번, 2번의 자리에 누가 앉아있더라도, 3번이 있는 자리라면 그 자리가 씁쓸했을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는 씁쓸함 앞에서,
자기 인생의 만족스러운 부분을 꺼내기는 쉽지 않죠.. 누구나 갖고 있는 씁쓸함을 꺼내어 보여주는 것이 그 자리에서의
분위기가 아닌가 합니다..
저는 저를 무척이나 아껴주었던 누님 한 분이 생각나네요... 근 10년째 사법고시 [ 준비중 ] 이신..
씁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