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화이글스 6회에서는 92 ~ 98년에 이르는 7년간을 생으로 잡아먹은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무려 85 ~ 93년에 이르는 9년을 한회에 넣어버렸습니다.......
절취선----------------------------------------------------------------------------------------------------------------------
1985년, OB는 드디어 대전에서 서울로 연고지를 옮겼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새로운 선수들이 OB에 들어왔습니다. 대표적인 선수가 바로 연속경기 출장 2위인 622경기 연속 출장기록을 가지고 있는 김형석선수입니다.
일단, 84년 비록 큰 의미는 없지만 전후기 통합승률 1위를 했을 정도로 탄탄했던 전력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었던 OB는 충분히 강팀으로 불릴만 했습니다.
타선에는 신경식, 윤동균, 김우열, 유지훤, 조범현, 김경문등 원년의 우승을 이끌었던 멤버에다 김형석, 김광림, 박종훈등 83년에서 85년 시즌 시작전까지 들어왔던 신진멤버들이 가세했으며 마운드에서는 계형철, 김진욱, 최일언, 윤석환 그리고 "짱꼴라" 장호연등이 버티고 있었습니다.
OB는 주변의 예상대로 전기리그 55경기에서 29승을 하며 전기리그 2위에 오릅니다. - 1위는 아시다시피 삼성라이온즈입니다. - 하지만, 후기리그에서는 22승으로 5위에 머무릅니다.
그리고 1985년 시즌은 아시다시피 전무후무한 삼성라이온즈의 통합우승으로 막을 내립니다.
그 당시, OB의 선수들을 살펴보면, 슬러거 김우열이 이제 시력저하와 노쇠화등이 겹치며 0.242라는 저타율을 기록 선수생활을 마감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고, 83년에 기대를 모았던 한대화는 타율마저 2할초반대로 떨어진데다가 김성근감독과의 불화가 겹쳐 이제는 트레이드 대상으로 전락했습니다.
하지만, 83년 우리나라 프로야구 첫 신인왕이었던 박종훈은 0.342의 고감도 타율을 기록하며 장효조에 이은 타율 2위를 기록했으며, 신인 김형석 역시 3할의 타율을 기록하며 중심타자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84년에 데뷔했으나 썩 좋은 성적을 올리지 못한 김광림 역시 3할을 치면서 팀의 미래가 되어줍니다. 그리고, 윤동균, 신경식같은 원년 멤버역시 자신들의 실력을 발휘해줍니다.
마운드에서는 계형철, 김진욱, 최일언이 11승, 10승, 10승을 기록하며 녹록치 않음을 과시했고, "짱꼴라" 장호연은 이제 서서히 자신의 전성기를 열어가기 시작합니다.
1986년, 한대화를 해태타이거즈로 트레이드하고 김우열을 빙그레이글스로 보낸 OB베어즈. 이 해에는 초고교급 투수였던 윤학길과 선동렬에게 각각 커다란 쓴맛을 안겨주었던 "비운의 천재" 박노준이 입단했습니다. 하지만,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각각 혹사당했던 박노준은 프로무대에서는 이름에 걸맞지 않는 성적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 그래도 100이닝 이상을 던지며 2점대 자책점으로 활약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평가는 솔직히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
마운드에서는 작년에 10승으로 선방해준 최일언이 221.2이닝을 던지면서도 1.58이라는 훌륭한 평균 자책점으로 버티며 19승 4패의 성적으로 승률부문 타이틀과 다승 2위, 평균 자책점 3위에 오르는 수준급 활약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장호연 역시 165.2이닝을 던지며 13승에 1.90이라는 평균 자책점으로 팀의 기둥투수가 되어줍니다.
타선에서는 3년 연속 3할을 쳤던 박종훈이 2할중반대로 처졌으나 오랜만에 유지훤이 2할 중후반대의 타격솜씨를 보여주었고, 윤동균, 신경식이 건재했으며 특히 김형석. 2할 후반대의 날카로운 방망이실력과 더불어 후기리그 마지막 경기였던 롯데전에서 보여주었던 활약. - 2점 뒤진 상황에서 롯데의 특급 투수 최동원을 상대로 동점 2점 홈런을 때려내며 역전승의 발판을 만들어주었습니다. -
OB는 전기리그에서 23승 29패 2무로 5위에 머물렀으나 후기리그에서는 33승 19패 2무로 해태타이거즈와 공동 1위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합니다.
플레이오프에서는 원년 한국시리즈에서 격돌했던 팀인 삼성라이온즈와 대결했습니다. 한순간 한순간마다 피말리는 혈전이 치루어졌고, 1차전에서는 패배했으나, 2, 3차전을 연속으로 따내며 한국시리즈 진출에 유리한 고지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4차전과 5차전을 연속으로 내주며 결국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합니다.
1987년, 장호연과 최일언이라는 막강한 1, 2선발을 소유한 OB베어즈. 거기다가 계형철, 윤석환, 김진욱등 수준급 투수들도 보유했습니다. 타선에서도 김광림과 김형석이 3할을 치며 활약해주었고, 박종훈, 윤동균, 신경식등 중견멤버들도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불사조" 박철순이 다시금 마운드에 돌아와 - 사실 1984년 한해만 쉬었지만 - 5경기에 등판해 2승에 2점대 자책점으로 비록 예전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팀의 정신적 지주로 활약했습니다.
OB베어즈는 장호연 - 최일언 - 계형철 - 윤석환 - 김진욱 - 박철순 - 황태환등이 버티는 마운드에 김형석 - 김광림 - 윤동균 - 신경식 - 박종훈등이 활약한 타선을 바탕으로 전기리그에서 31승으로 2위를 차지합니다.
후기리그에서는 24승으로 5위에 머무르지만, 전기리그에서 2위를 차지했기 때문에 플레이오프에 진출합니다.
플레이오프에서 만난 상대는 해태타이거즈. 부활한 박철순등의 활약으로 1차전을 내주었지만 2, 3차전을 따내며 한국시리즈 진출에 유리한 고지를 밟은 OB. 하지만, 4차전과 5차전을 내주며 또다시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합니다.
1988년, 개막전에서 "무탈삼진 노히트노런"을 기록한 장호연과 김진욱 - 계형철등의 투수진이 여전히 버티고 있었던 OB. 윤석환이 주로 마무리로 활약하며 13승과 14세이브를 올릴정도로 크게 활약했습니다.
타선에서는 신인 송재박이 3할에 13홈런을 치는 깜짝 활약을 보였주었으며, 원년멤버 양세종이 돌아와 2할 후반대를 치는 활약을 해줍니다. 3년간 좋은 활약을 보여준 김형석이 2할 초반대로 주저앉았지만 김광림이 3할을 치며 고른 활약을 보여주었고 원년멤버 윤동균이 주저앉았지만 신경식이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전기리그에서 34승을 거둔 해태타이거즈와 빙그레이글스에 밀리며 3위를 했고, 후기리그에서는 23승으로 밑으로 태평양을 제외하면 아무도 없이 MBC와 함께 공동 5위에 머무르며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합니다.
1989년, 갑자기 황폐해져버린 마운드. 김진욱이 11승으로 최다승 투수가 되었습니다. 장호연이 9승, 최일언이 7승으로 약간 주저앉았고 작년에 13승과 14세이브를 올린 윤석환은 2승 1세이브로 완벽하게 무너져내렸습니다.
타선에서는 3할타자가 한명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천재" 박노준이 0.298이라는 좋은 타율에 25개의 도루를 기록하며 OB타선을 이끌었고, 꾸준한 김형석이 2할 후반대의 타율에 10개의 홈런을 곁들이며 중심타선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학다리" 신경식도 2할 중후반대의 타율에 25개의 도루를 기록하며 역시 팀의 타선을 이끌어나갔습니다.
하지만, 황폐해져버린 마운드 탓인지 OB는 5위에 머물렀습니다.
1990년, 마운드의 상황이 더더욱 심각해져버렸습니다. 이제 10승투수가 한명도 없었으며, 작년에 11승투수였던 김진욱은 2승 12패, 장호연은 5승 8패, 최일언은 LG트윈스로 트레이드되었습니다. 원년 멤버 계형철은 2승 13패를 기록합니다. 최다승 투수는 작년에 데뷔한 구동우로 155이닝을 던지며 9승을 챙깁니다.
타선에서는 박노준이 주저앉았으며, 신경식도 이제 서서히 무뎌져가고 있었습니다. 김광림과 양세종은 부진에 허덕였습니다.
그래도 김형석이 2할 8푼을 기록하며 12개의 홈런을 때려냈고, 서울라이벌 팀 LG에서 건너온 김상호가 2할 중후반대의 타율에 14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앞으로 중심타자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팀은 35승 80패 5무라는 역대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며 처음으로 꼴찌를 기록합니다.
1991년, 마운드는 도저히 나아질 상황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부활한 박철순이 7승에 3점대 자책점으로 버텨주었고 89년에 데뷔한 김동현이 10승, 앞으로 OB의 에이스로 성장할 "배트맨" 김상진이 10승으로 팀의 마운드를 이끌어나갔습니다.
타선에서는 "학다리" 신경식을 삼성라이온즈로 보냈으나 김형석이 1루수로서 신경식의 빈자리를 훌륭하게 메워주었습니다. 거기다가 언제나 꾸준하게 2할 8푼대를 기록했으며 홈런도 11개를 때려주었습니다. 박노준이 다시 돌아와 0.293이라는 좋은 타율에 19개의 도루를 기록하며 재기했고, 김광림이 부진을 떨쳐버리고 3할을 쳐준데다가 도루도 20개를 기록했습니다.
신인 강영수가 비록 타율은 0.238이었지만, 15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일발장타의 위력을 갖춘 타자로 모습을 보였고, 89년에 데뷔했지만 썩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김종석이 2할 중후반대를 기록하면서 앞으로 중심타자로 성장할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김상호가 0.208이라는 빈타에 허덕였습니다.
하지만, 타선에서 좋은모습을 보여주었어도 마운드가 망가져버린 OB는 51승으로 각각 53승과 52승을 기록한 LG트윈스와 신생팀 쌍방울레이더스 밑에 깔리며 또다시 꼴찌를 하고 맙니다.
1992년, "짱꼴라" 장호연이 재기에 성공하며 16승을 거두었습니다. 신인 김상진도 11승을 올리며 앞으로의 가능성을 크게 보여주었습니다. 박철순이 꾸준히 7승을 거두며 마운드를 뒷받침하며 마운드를 재건하는데 어느정도 성공했습니다.
그 외에도 해태에서 건너온 이광우가 7승을 올려주는 등, 89년부터 이어져온 마운드의 황폐기는 어느정도 극복되었습니다.
타선에서는 중심타자 김형석이 0.281이라는 꾸준한 타율에 16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활약한 외에도 김상호가 3할에 12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활약했고, 90년에 데뷔했으나 그동안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임형석이 0.290이라는 좋은 타율에 홈런을 무려 26개나 때려내며 대활약해주었습니다.
작년에 일발장타의 위력을 보여주었던 강영수가 타율은 0.217로 더 낮아졌지만 홈런은 18개를 기록하며 일발장타의 위력을 또다시 뽐내줍니다.
하지만, 유난히 강자가 많았던 1992년. OB는 5명의 3할타자 - 전준호, 이종운, 박정태, 김민호, 김응국 - 를 배출하며 남두오성이라는 황금타선을 구축한데다가 17승을 올린 신인 염종석과 역시 17승으로 마운드를 지킨 터줏대감 윤학길이 있는 롯데자이언츠, 역대 세번째로 20 - 20을 달성하며 0.360이라는 고타율로 2년 연속 수위타자에 오른 이정훈, 첫 40홈런의 주인공 장종훈, 다승왕과 구원왕을 석권한 송진우, 89, 90년 연속으로 최다안타를 기록한 이강돈등이 버틴 빙그레이글스, 전통강호 삼성라이온즈, 한국시리즈 초유의 4연속 우승을 기록한 해태타이거즈등에 밀리며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합니다.
1993년, 1991년 말 이재우감독에 이어 지휘봉을 잡은 윤동균감독의 리빌딩이 본격적으로 성공적인 궤도로 접어들기 시작한 해입니다. 원년 유격수 유지훤이 빠진 자리를 또다른 유격수 김민호가 접수했으며, 마운드는 김상진 - 권명철 - 강병규 - 장호연 이렇게 4명의 투수가 두자릿수 승수를 기록하며 재건에 성공했습니다.
타선에서도 김형석, 김상호, 이명수, 김광림등이 크게 활약했으며 특히 김형석은 0.306이라는 좋은 타율에 147개의 안타를 때려내며 최다안타 타이틀을 차지, 선수생활의 커리어 하이를 찍습니다. 김광림도 3할을 치며 활약했고 생애 첫 골든글러브를 받습니다. 2루수 이명수가 0.283이라는 타율로 활약했고, 김광림 - 김상호 - 김형석등의 타자들은 상대 투수들을 충분히 겁먹게 했습니다.
그리고 팀은 오랜만에 66승으로 3위에 오르며 포스트시즌에 진출합니다.
준플레이오프에서 만난 상대는 서울라이벌 LG트윈스. 1차전에서 2 : 1로 패배했으나, 2차전에서는 1 : 0으로 승리합니다. 하지만, 3차전에서 패배, 결국 준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합니다.
이렇게 OB베어즈의 9년을 다루어봤습니다. 분명, 겨울잠이라고 불릴정도로 나쁜 성적을 기록한 때는 연속으로 꼴찌를 기록한 90, 91년 정도였고 좀 더 넓게 잡아도 88 ~ 91년 정도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원년우승팀이라는 명예는 서서히 잊혀져 갔고, 그들이 다시 한번 그 명예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또다른 우승이 필요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OB는 성공적으로 끝마친 리빌딩을 바탕으로 다시한번 우승컵을 가져갈 수 있을까요?
다음회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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