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아는 잡 지식과, 이종욱 교수의 책 <화랑세기>, <화랑>을 참고하여 적어봅니다.
1편 덕만파에 이어 2편 미실파 를 정리 해 봤어요.
2) 미실파
미실궁주 : 드라마에선 덕만의 중간보스급으로 나옵니다.(끝판대장은 비담) 모든걸 다 가졌는데, 단지 황후만 못된 분이죠.
미실은 2세 풍월주 미진부공과 묘도부인 사이에 태어난 딸입니다. 재색이 뛰어났고, 진흥과 진평에게 총애를 받았다고 합니다. 첫사랑은 사다함이며, 태후의 명으로 억지로 세종과 혼인하고 또 태후에 의해 쫓겨났다가 다시 불려오고 세종을 남편으로 두면서, 설원랑, 미생과 정을 통했고 진흥왕, 금륜태자, 동륜태자(진지왕),진평왕에게까지 총애를 받았습니다. 세종으로 하여금 설원공에게 풍월주를 물려주게하고, 설원공으로 하여금 문노에게 풍월주를 물려주게 하고, 미생과 보종에게 풍월주를 양보하게하고, 유신이 풍월주가 되게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정리해보면,
미실이 섬겼던 왕이 세명(진흥, 진지, 진평), 섬겨던 태자가 한명(동륜), 섬기거나 정을 통한 풍월주가 네명(사다함, 세종, 설원, 미생), 임명한 풍월주가 7명(설화랑, 문노, 비보랑, 미생랑, 하종, 보리공, 유신공) 본인이 풍월주를 폐하고 원화가 된 기간이 5년(568-572; 이기간 풍월주는 원화가 대체)입니다. 미실의 죽음은 잘 모르겠습니다. 미실이 병들자 설원공이 기도하며 미실의 병을 대체하겠다고 했고 마침내 그 병을 대신하여 죽습니다. 이때가 606년인데, 설원공이 58세 때죠. 미실은 이때 자신도 곧 따라 하늘로 갈 것이라 말합니다. 7세기 초기에 사망하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그러니 632년에 중년의 나이로 임금이 된 선덕여왕과는 부딪힐 일이 그리 많지 않았을 겁니다)
미실의 리즈(?)시절은 진흥왕말기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진흥왕이 병 때문에 내정을 살피지 못하고 궁주들과 놀기에 바빴죠. 이때 미실은 지소태후와 함께 내정을 마음대로 처리했으며, 세종, 설원, 미생이 외정을 마음대로 했습니다.
미실에 관한 내용은 넷상에 자세히 나온 것이 많아서 이쯤으로 마칠게요.
미생공 : 미실의 동생이며 원래 7세 풍월주 설원랑에 이어 풍월주가 되어야 했는데, 미실에 이해 밀려납니다. (8세 풍월주는 문노, 9세 풍월주는 문노의 제자 비보랑)
그리해서 서른여섯 살에 10세 풍월주가 됩니다.
4세 풍월주 이화랑의 부제가 토함공인데, 이분은 사다함의 형입니다. 토함공은 진지왕을 보좌하기 위해 부제의 자리를 사다함에게 줍니다. 미생랑은 진지왕(금륜태자), 동륜태자와 함께 토함공에게 여러 가지를 배웁니다. 얼굴이 아름답고 애교가 많아서 두 태자들에게 사랑받았다네요. 미생은 만덕에게 춤을 배우고, 그 춤을 다시 여러 공주들에게 가르쳤는데, 가르치는 과정에서 사사로이 관계를 가졌답니다. 미생은 12세에 사다함의 낭도가 되었는데, 말을 못타서 아버지가 미생을 쫒아 내려고 했다고 합니다. 미실이 말려서 겨우 남았는데, 문노에게 <말도 못타고, 검도 못쓴다>고 혼내자 사다함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미실)의 아우입니다. 얼굴이 아름답고, 춤을 잘 추어 여러사람을 위로할 수 있으니 받아달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미생은 이같이 검을 싫어했습니다. 문노를 싫어해서 경의를 표하지 않아서 사다함이 몹시 곤란해 졌습니다.
여차저차 해서 미생이 풍월주에 오르는데, 이 시기 화랑도의 파벌이 생겨납니다. 애초에 문노와 맞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을지도 모르죠.
10세 풍월주 미생의 제위시 화랑도는 5개의 문파로 나뉩니다.
1. 통합원류(통합파) : 임종, 대세, 수일등이 중심. 귀천을 가리지 않고 인재등용을 하여 국력을 강하게 하려는 파. 문노파 중에서 가장 용맹한 자들이며, 미생공의 부제(2인자)인 하종이 재주가 없다는 이유로 미생랑에게 불복했으나, 미생랑이 이를 제압하지 못함.
2. 미실일파 : 하종, 주륜공등이 중심. 대원 신통인 자를 받들려고 하는 파.(아마 세종, 설원공도 여기에 속했겠죠)
3. 문노일파 : 보리랑, 숙리부 등이 중심. 진골 정통을 받들려는 파로, 지소태후의명을 따르고 가장 권력이 많아 옛 규정을 지키려는 파, 문노가 세종에게 충성을 바쳤기에 하종과는 다투지 않았음.
4. 이화류 : 정숙태자를 풍월주로 삼고 원광을 부제로 삼으려는 파.
문노정파 및 통합파 중 혼성된 자들로 이루어짐.
*정숙태자는, 진흥왕의 넷째아들. 세종의 형제. 2세 풍월주 이화랑의 사위. 12세 풍월주 보리공의 장인어른.
*원광은, 12세 풍월주 보리공의 형으로 4세 풍월주 이화랑의 아들인 원광법사를 말하는 것 같네요.
5. 가야파 : 천주공을 풍월주로 하고 서현랑을 부제로 삼으려는 파. 통합파 중의 가야파.
*천주공은 진흥왕과 월화궁주의 아들입니다. 월화궁주는 가야 이뇌왕의 딸입니다.
*서현랑은 가야 마지막 왕 구충대왕의 손자죠.
미생은 3년 후 하종에게 풍월주 자리를 넘겨줍니다. 부귀하게 자라서 아랫사람의 마음을 잘 모랐으며 색과 재물을 좋아해서 신망이 크지 않았습니다. 드라마에서도 잠시 나왔지만, 아들만 백명이나 되어서 다 기억도 못했으며, 한번 눈길만 주면 따르지 않는 여자들이 없었다고 합니다.
아들을 매우 사랑해서, 잘못해도 나무라지 않고, 명절엔 아들들을 거느리고 어머니를 뵈러 갔는데, 어머니가 아이들의 어미를 다 구별하지도 못했다네요. 미생과 닮지 않은 아이가 있으면, 그아이가 어디가 너와 닮았냐고 물었는데, 그때마다 미생은 닮은부분을 다 대답하며 감싸주었답니다. 관리들에게도 책망하지 않아서 좋은 재상이란 평가를 받았다고 합니다.
드라마상의 인물과 가장 매치가 잘 되는 분이 바로 미생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정웅인씨가 좀 능글맞게 나오고 나이 들어 보이지만, 그 성격이나 행동들이 화랑세기의 미생과 가장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세종전군
: 이사부와 지소태후의 아들, 진흥왕의 동생임 6세 풍월주입니다. 5세 풍월주 사다함의 부제가 설화랑이었는데, 설화랑을 밀어내고 6세 풍월주가 됩니다. 드라마에선 특별한 내용이 없지만, 화랑세기를 보면, 이분은 미실을 정말 사랑했습니다. 미실을 사랑해서 미실과 혼인하고, 미실이 모종의 이유로 내쳐지자 매우 괴로워했고, 미실이 다시 돌아오자 기뻐 미친 듯이 달려갔다고 기록되어있죠. 사다함 역시 세종에게 미실을 빼앗기지만, 죽기직전에 세종에게 풍월주를 물려줍니다. 미실 또한, 사다함의 유언을 받드는 것이 예의라고 부추겨, 세종이 풍월주에 오른 것이죠. 세종은 미실에게 잡혀 산 것 같습니다. 세종은 이후 풍월주에서 물러나고 미실에게 자리를 물려줍니다. 그래서 6세 풍월주 세종과 7세 풍월주 설원랑 사이 5년간 풍월주가 없고 그 역할을 원화 미실이 합니다. 세종은 청렴결백하며 평시에는 재상으로 정치를 했고, 전시에는 장군으로 출정했습니다. 태후에게 효도하고, 대왕에게 충성스러웠고, 미실에게는 좋은 남편이었습니다. 어떠한 그릇된 판결조차 하지 않았으니 화랑중의 화랑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설원공 : 7세 풍월주, 드라마에서는 문노의 라이벌이며, 신분이 낮아서 위험한 임무를 많이 수행합니다. 미실이 세종보다 설원공을 더 사랑하는 것처럼 느껴지더군요. 화랑세기속의 설원공은 어떤 인물로 묘사될까요?
설원공은 미실의 첫사랑 사다함과 한 배에서 난 형제였습니다. 사다함의 아버지는 구리지이며, 설화랑의 아버지는 설성이지만, 둘다 어머니는 금진낭주입니다. (금진낭주는 사다함의 친구 무관랑과도 정을 통하죠) 설원랑의 아버지는 사다함 아버지의 낭도였으며, 금진낭주는 초대 풍월주 위화랑의 딸입니다. 설원공은 원래 5세 풍월주 사다함의 부제였지만, 사다함이 요절하면서, 어린 설원공에게 풍월주 자리를 물려주지 않고, 세종에게 물려줍니다. 이후 설원공은 세종의 부제가 되고, 미실에 의해 세종다음 풍월주 자리를 차지합니다. 드라마에선 일편단심으로 나오지만, 설원공의 부인은 미실이 아니라, 준화낭주입니다. 준화낭주가 누구냐면, 1세 풍월주 위화랑의 딸이자 4세 풍월주 이화랑의 누나, 그리고 3세 풍월주인 모랑공의 부인이었습니다. 설원공은 18년간 과부로 지낸 준화낭주(당시 38세)와 혼인하여 아들까지 얻습니다. 그 아들이 설웅인데, 세상 사람들은 1세 풍월주 위화랑의 손자라며 매우 존경 했다고 합니다. 설원공이 준화낭주와 혼인한 것은 미실의 권유였는데, 과연 준화낭주를 아내로 삼자, 신분문제로 지적하는 사람들이 없이 다 복종했다고 합니다. 좀 충격적인 내용이 있습니다. 설원공은 준화의 딸 준모와 정을 통해 임신까지 시키죠. 비록 친 아버지는 아니지만, 계부가 딸과 정을 통해 아이까지 낳게 한 것은 당시로서도 아주 특이한 경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과연, 준화가 매우 화를 냈는데, 설원공은 다급해지자 미실에게 구걸하고, 미실은 미생에게 준모를 거두라 명합니다. 준모는 미생의 부인이 된 후 미모라는 설원공의 딸을 낳습니다. 이 미모는 훗날 하종의 아내가 됩니다.
설원공은 문노공과 대립하는걸로 나오는데, 미실은 미묘하게 문노의 편을 들어줍니다.
나머지는 덕만파 문노부분에 설명되어 있으니 다시 읽어보시면 도움이 될 듯 합니다.
설원공은 549년에 태어나서 606년에 죽습니다. 미실궁주가 이상한 병(성병으로 추정)에 걸려 여러달 일어나지 못하자, 밤낮으로 옆에서 모시고 미실의 병을 자신이 대신하겠다고 밤마다 기도했는데, 하늘이 그의 기도를 들어줍니다. 결국 미실의 병을 대신해서 죽습니다. 이때 미실은 슬퍼하며 자기도 곧 따라 갈것이라 말합니다.
하종 : 드라마에서 하종은 미실과 세종의 아들로, 천방지축으로 눈치없고 조금은 모자라게 나옵니다. 화랑세기의 하종은 564년에 태어났습니다. 중간의 이야기들은 생략하고, 여차저차해서 미실은 세종을 섬기게 되는데, 세종이 미실에게 빠져들어 기동을 못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에 태후가 전군이 감당하지 못할까 염려하여 미실을 궁에서 내칩니다. 궁에서 나온 미실은 개의치 않고 사다함과 정을 통하고 결혼을 약속합니다. 태후는 세종에게 융명을 아내로 맞게 하지만, 세종이 미실을 잊지못해 병이 납니다. 태후가 어쩔 수 없이 미실을 다시 불러들이고, 마침내 낳은 아들이 하종입니다. 하종은 미생의 부제로 11세 풍월주가 되고, 이화공의 아들 보리공을 부제로 삼습니다. 이게 문제의 시작이었죠.
하종의 어머니는 대원신통 미실궁주, 보리의 어머니는 진골정통 숙명공주였기에 파벌이 생겨버립니다. 이후 갈등이 점점 심해져 보리공을 끌어 내리려 할 처지에 까지 이르자, 보리공이 울며 하종에게 하소연 합니다. 평소 보리공을 사랑한 하종은 보리공의 아버지이자 4세 풍월주 이화랑에게 가르침을 청합니다. 이때 이화랑은 하종에게 권세를 버리고 도를 구해서 참된 삶을 살라고 충고합니다. 이화랑의 충고를 들은 하종은 바로 보리공에게 풍월주자리를 물려줍니다. 그래도 낭도들 사이에서 불화가 이어지자, 이번엔 사도태후가 나서서 낭도대회를 열고, 이화랑과 세종으로 하여금 연회를 베풀어 화합하게 하고, 불만이 많은 사람들을 다수 등용시킵니다. 이 시기 서현랑을 전방화랑으로 삼았는데, 이때부터 가야파가 다시 세력을 키우게 됩니다.
보종 : 16세 풍월주입니다. 드라마상에선 설원의 아들이며 그래도 하종보다 조금 뛰어난 인물이죠. 화랑세기에 나오는 보종은 드라마에서 보다 훨씬 매력적이며 대단한 인물입니다.
보종공에 대한 묘사를 보면, 순정만화 왕자님 저리가라입니다.
매우 상세히 되어 있어서 그 부분들을 적어봅니다.
<공의 성품은 청아하였고, 문장을 좋아하였으며...정이 많았다. 사람들을 위하여 웃고 울었으며, 온화함과 순량함은 마치 부녀자와 같았다.(괜히 사슴보종이 아니었군요) 사람들이 병들어 고통을 받는 것을 보면, 슬프고 불쌍하게 여기는 것이 마치 자기가 아픈 것 같았다. 새와 짐승에 대해서도 또한 그러하였다. 한 마리의 벌레나 한 포기의 풀도 해친 적이 없었다. 선과 악, 이와 해를 나누지 않았다. 술과 여자를 좋아하지 않았다. 늘 작은 청려에 걸터앉아 피리를 불며 시가를 지나가면 사람들이 공을 가리켜 ‘진선공자眞仙公子’ 라고 하였다. 얼굴은 관옥과 같았고 손은 마치 하얀 새싹과 같았다. 그림을 잘 그려는데, 인물과 산수의 절묘함은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 호림(호재)이 사랑하여 부제로 삼았다. 정이 마치 부부와 같아 스스로 여자가 되어 섬기지 못하는 것을 한스러워 하였다?>
21세기 동인소설 내용이 아니라, 김대문의 화랑세기에 보종공 부분의 내용중 일부입니다.
뒤로 갈수록 가관입니다.
<궁주가 일찍이 그 바라는 바를 물었더니, 공이 답하기를 “어머니와 더불어 같이 죽는 것입니다” 하였다. 궁주가 웃으며 “네가 색은 좋아하지 않고 나와 같이 죽기를 원하니, 또한 무슨 뜻인가?” 하였다. 공은 “나를 사랑하는 것이 아무도 어머니만 못합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살 수가 없습니다” 하였다. 궁주가(다시) “네가 사랑하는 여자가 없는 까닭에 오로지 어미에게 정을 쏟는 것이다. 아름다운 사람을 택하여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어찌 손자를 볼 것인가?” 하였다. 공이 “무엇을 아름답다고 합니까?” 하자 궁주가 “너와 같은 사람이 아름답다. 얼굴은 옥과 같이 아름답고, 입술은 마치 붉은 연지와 같으며, 눈은 아리땁게 빛나고, 말에 정情의 뿌리가 있는 자이면, 또한 가하지 않겠느냐?” 하였다. 공이 답하기를 “정의 뿌리는 갈래가 많고, 아리땁게 빛나는 것은 속기 쉬우며, 붉은 연지와 옥과 같은 아름다움은 몸을 지키는 보배가 아닙니다” 하였다>
이처럼, 보종공은 매우 아름답고, 어머니에게 효심이 깊은 인물로 그려져 있습니다.
보종공은 문노와 윤궁의 딸 현강을 아내로 맞이하지만, 정을 통하지 않고 호재(호림)를 불러 같이 살았습니다. 호재가 현강과 정을 통해 딸을 낳자, 현강을 호재에게 넘겨주고 자신은 혼자 살았습니다. 미실이 왕실 여자들에게 보종의 마음을 사로잡는 자에게 상을 주겠다고 했지만, 아무도 이루지 못했는데, 나중에 보명궁의 딸 양명공주가 보종의 마음을 얻어 두 딸(보라, 보량)을 낳습니다. 보명공주는 비록 보종의 아내였지만, 두명의 남자를 더 가졌습니다. 한명은 보종의 조카인 모종(하종의 아들)이고 다른 한 명은 염장(17세 풍월주, 보종의 부제)이었죠. 보종은 일부러 모종과 정을 통하게 도와주고, 아들을 낳자 손수 양도란 이름을 지어줍니다. 양도공은 22세 풍월주가 됩니다.
보종공은 원래 14세 풍월주 호림(호재)의 부제였으므로 15세 풍월주에 올라야 했지만, 덕이 부족하다며 유신공에게 자리를 양보했습니다. 자기보다 동생이지만, 유신공을 공경해 주었다고 합니다. 유신공이 부담스러워서 보종공에게 형이 어찌 아우를 두려워 하냐고 묻자, 보종공은 유신공은 천상의 해와 달이고, 나는 인간의 작은 티끌이라고까지 말하죠. 보종공은 유신공 다음 풍월주가 되는데, 이때 유신공이 낭도들에게 <너희가 선仙을 배우자면 보종형님을 따르고, 공을 세우려면 나를 따르라>고 말하죠. 보종에 대한 찬사는 끝이 없습니다. 낭두들에겐 항상 아재비(아저씨)라고 불렀으며, 염장공을 부제로 삼으면서도 마치 형처럼 섬겼고, 얼굴이 늘 어린아이와 같았다고 하며, 또 늘 콩죽을 먹고 고기를 싫어했다고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정원의 여러 종류의 고목을 보고, 물고기와 학을 기르며 그 사이를 거느렸다고 적혀있습니다.
(보종공에 대한 찬사는 보종공조가 끝날때까지 이러집니다)
미실궁주가 죽자, 보종은 미실을 따라 죽지 못한것을 죄로 여겨, 문을 잠그고 홀로 기거하며 미실이 쓴 수기 700권을 베껴 집에 간직했으며, 미실의 초상을 그려 걸고, 아침 저녁으로 절하였다고 합니다. 풍월주들 모임에 가면, 늘 아랫자리에 앉아서 오직 예,예만 할 뿐이었지만, 유신공이 병이 나자, 그동안 숨겨왔던 의술을 펼쳐 유신공을 치료하기도 합니다.
(유신공은 나라에 큰 일이 있으면 칠성회를 열어 반드시 보종에게 묻고 해결했다고 합니다)
칠숙&석품 : 화랑세기에는 자세한 기록이 없습니다. 그냥 17세 풍월주 염장공에게 진압당했다고 나오죠. 삼국사기에 보면, 이찬 칠숙은 진평왕 53년(631)5월에 아찬 석품과 반란을 꾀하였는데, 왕이 알아차리고 칠숙을 잡아 동시(東市)에서 목을 베고 구족을 멸했다. 그리고 아찬 석품은 도망하여 백제 국경에 이르렀다가 처자식을 보고 싶은 생각에 나무꾼복장으로 몰래 집에 왔다가 잡혀 처형당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이들이 정치적으로 죽었는지, 아니면 정말 반란을 도모했는지 모르겠지만, 다음해에 선덕여왕이 왕에 오른 것으로 봐서, 칠숙과 석품의 반란은 선덕여왕의 왕위계승에 결과적으로 좋은 영향력을 준 것 같네요. 안타깝지만, 소화는 칠숙과 이어지면 안되겠네요.
다음엔, (제마음대로분류한) 중립파에 대해 적어볼게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