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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9/07/17 12:45:58
Name 교회오빠
Subject [일반] 드라마 선덕여왕과, 화랑세기 선덕여왕 -1-
선덕여왕 재미있게 보고 계시나요?
비전공자 입장에서, 학문적으로 깊은 연구를 한 것은 아니지만,
나름 역사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특히 신라사에 흥미가 있던 터라, 선덕여왕은 닥본사 하고 있습니다. 화랑세기를 재독하면서, 회원분들에게 흥미로운 몇 가지를 알려드리고 싶어서 글씁니다. 이종욱교수의 화랑세기, 화랑을 참고했습니다.
제가 필력이 딸려 글을 재미있게 못 쓴다는 것이 정말 아쉽네요.



1. 드라마 선덕여왕, 화랑세기속의 드라마 선덕여왕

드라마 주요 인물들과, 화랑세기속에 나오는 동일 인물들을 비교해보았습니다. 모두 다 비교할 수는 없고 중요인물 몇몇만 살펴봤어요. 제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분들은 제외시켰고, 드라마 상에만 존재하는 인물과, 이미 드라마에서 빠진 인물은 적지 않겠습니다.
편의상 제 기준으로 인물들을 분류해 봤습니다.
1)덕만파 2)미실파 3)중립(보류) 4)미등장인물

오늘은 먼저 덕만파를 적어볼게요.



1) 덕만(천명,유신)파

천명공주 : 드라마와 화랑세기 내용에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진평왕의 첫째 딸이고, 진지왕의 맏아들 용수와 혼인하여 춘추를 낳은 것 까지는 같습니다. 하지만, 드라마에서의 천명은 용수공이 공을 세우기 위해 전쟁터에 나가서 전사한 후부터 재혼하지 않고 혼자 지내는데 반해, 화랑세기의 천명은 일단 쌍둥이가 아니며, 용수와 결혼한 시점부터 용춘을 좋아했고, 그래서 진평에게 부탁하여 용춘의 관직을 계속 승진시켜 용수와 동등하게 만들어 줍니다. 안타깝지만 남편인 용수공은 천명과 용춘의 관계를 알고, 용춘에게 천명을 양보하려 했지만, 용춘이 사양하죠.
마야황후는 한 술 더 떠서 궁중에서 잔치가 있으면 밤에 천명과 용춘을 불러 함께 지내도록 해 주었으며 용수공은 병을 핑계 삼아 모른 척 눈감아 주었다고 합니다.
이후 용수공은 죽기 전에 천명과 춘추를 용춘 에게 맡깁니다.  
천명은 진평왕의 권유를 받아들여 조금 더 뛰어난 선덕에게 지위를 양보하고, 출궁합니다.
그리고 한참의 세월이 지난 후 정사에서 물러난 용춘과 정식으로 혼인합니다.  


덕만 : 드라마상의 고난은 화랑세기에 전혀 나타나지 않습니다. 자라면서 점점 임금의 자질이 나타났으며, 마야황후가 죽고 왕위를 이을 아들이 달리 없자, 천명을 밀어내고 계승권을 얻어냅니다. (당시 아들이 없으면 한 대(代 )에 한하여 여성의 계승권이 인정되었다고 합니다) 천명이 출궁하자, 선덕은 먼저 용춘을 자기 남자로 만듭니다.(남편으로 삼았다는 말입니다) 용춘은 선덕이 총명하고 지혜로우며 감정이 풍부하여 감당하지 못할 것을 알고 사양했지만 어쩔 수 없이 결혼합니다. 그러나 자식이 없자 물러나기를 청하는데, 진평왕은 용수 공에게 모시도록 명하는데 용수공 또한 자식을 생산(?)하지 못합니다. 이에 흠반과 을제공에게까지 선덕여왕을 받들도록 하나 다른 기록이 없는 것으로 봐서 선덕여왕은 적어도 아들은 낳지 못한 것 같습니다. 화랑세기 기록으로 따져보면, 미생이 550년생이고 사다함이 546년에 태어나 561년에 16세로 죽었으니 미실은 대략 545-549년생쯤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유신은 595년생이며, 선덕여왕은 유신보다 나이가 훨씬 많습니다. 그리고 632년에 즉위하여 647년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니까 덕만은 미실과 대적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진평왕이 무지 오래 집권했고, 착실하게 후계수업을 다진 중년의 선덕여왕이 왕이 될 무렵, 미실과 그 주변 인물들은 대부분 사망했습니다. 동시대 인물이 아니니까요.      

김유신 : 드라마에서 유신은 (설정 상)덕만보다 어리게 나옵니다. 우여곡절 끝에 서라벌 화랑으로 인정받기는 했지만, 드라마에서 다른 화랑들에게 무시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실과 천명이 유신을 키워주고 있죠. 화랑세기를 보면, 미실이 유신을 키워준 것이 맞습니다. 드라마에서 호재(호림)가 현 풍월주고 보종이 부제(2인자, 차기 풍월주 유력인사)입니다. 대부분 차기 풍월주는 부제에게 물려줘야 하는데, 화랑세기를 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드물지만 나타납니다. 유신의 경우가 그 드문 경우에 속하는데, 이는 미실의 입김이 작용한 것이죠. 미실은 만호태후에게 잘 보이기 위하여 아들인 보종이 아닌, 가야파 유신에게 풍월주를 물려주게 합니다. 이때 유신나이 15세였죠. 만호태후가 다시 미실을 위로하기 위해 하종의 딸 영모를 유신의 부인으로 삼게 합니다. 유신은 미실의 아들 하종의 사위가 됩니다.
드라마처럼 유신이 화랑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왕따처럼 지냈을까요? 이는 화랑세기의 내용과 다릅니다. 화랑세기의 몇몇 부분을 인용하면, <무리가 공에게 몸을 바치기를 원하였다. 공은 이에 지혜와 용기가 있는 낭도를 뽑아서 천하를 두루 돌아다니고, 고사들과 힘써 결속을 맺었으며, 중악에 들어가 노인에게서 비결을 받았다. 신변에는 늘 신병들이 있어 좌우에서 호위하였다. 돌아오자 호림공이 풍월주의 지위를 물려주겠다고 청하였다. 공은 사양하였으나 어쩔 수 없었다. 이에 15세 풍월주가 되었다. ……공이 풍월주의 위에 오르는 날 낭도들과 더불어 병장기를 만들고 궁마를 단련 하였다>라고 적혀있습니다. 유신은 가야파의 우두머리로 많은 낭도들을 거느리고, 미실과 만호태후라는 배경아래 존경받는 화랑이었습니다. 열다섯 살 때니......중딩이죠.  

진평왕 : 드라마에선 늘 미실에게 기를 못펴고, 불쌍하게 살죠. 뭐 특별히 적을 것은 없고, 화랑세기에 보면, 미실이 진흥, 진지, 진평까지 섬겼다고 나옵니다.

마야황후 : 이야기 할 내용이 없음.

문노 : 문노 (8세 풍월주)
어머니가 가야의 문화공주
5세 풍월주 사다함의 스승
6세 풍월주 세종의 의형이자 신하
7세 풍월주 설원랑의 스승
9세 풍월주 비보랑의 스승
10세 풍월주 미생랑의 스승
13세 풍월주 용춘공의 스승

드라마상에서는 거의 끝판대장이며 100% 왕에게 충성하는 인물로 나옵니다. 미실과 대적하는 인물로 나오며, 덕만을 빼돌린 후 잠적하죠. 끝판대장인건 맞습니다.  

사다함이 가야를 칠 때 문노에게 동행을 청했는데, 문노는 어머니 나라를 칠 수 없다며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나라 사람들 중에 문노를 비난하는 사람이 생기자 사다함이 스승은 의인이라며 변호까지 했죠. 사다함은 가야를 정복 할 때 부하들에게 사람을 함부로 죽이지 말라고 주의를 줬습니다. 세종이 6세 풍월주가 된 후, 문노에게 찾아와서 <나는 감히 그대를 신하로 삼을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때 문노는 세종을 아우로 삼고 또 세종의 사람이 되죠. 세종이 진흥대제에게 건의하여 문노에게 큰 벼슬(급찬)을 주었으나 문노는 벼슬을 거부합니다. 세종이 진지왕을 폐위시킬 때, 문노에게 뚯을 묻고, 문노는 동의합니다. 이후 진평왕이 즉위하자 그 공으로 문노는 <아찬>이 되죠. 그리고 미실의 총애를 받고 8세 풍월주에 오릅니다. 원래 설화랑 다름 차례가 미생랑 인데, 미생랑을 밀어내고 풍월주에 오릅니다.
아내 윤궁에 대한 이야기는 길어서 생략(검색하면 잘 나옴)
원래 문노가 미실을 그리 좋아한 것은 아닌데, 아내 윤궁이 미실이랑 가까운 친척이라서, 윤궁의 충고를 듣고 미실이랑 잘 지냅니다. 어찌보면 미실파이기도 하지만, 드라마상 절대 미실파가 될 수 없는 인물이기에 덕만파에 넣습니다.
설원랑이 7세 풍월주가 된 후 전공 문제로 설원랑과 대립하여 다른 문파를 만들었습니다.
왕이 문노를 국선으로 임명합니다.
문노의 낭도는 무예를 숭상하고 호탕한 기질이 있었습니다.
설원랑의 낭도는 향가를 잘하고 유람을 즐겼죠.
그래서 문노일파를 <호국선>이라 칭했고, 설원랑 일파를 <운상인>이라 칭합니다.
사도태후가 미실, 세종등과 함께 진지왕을 폐위시킨 후, 문노를 달래기 위해 화랑도 편제를 개편하는데, 이때
미실을 원화로 삼고, 세종을 상선, 문노를 아선, 설원랑을 좌봉사화랑, 비보랑(문노의수제자)을 우봉사화랑, 미생을 전방봉사화랑으로 삼았습니다.
미실이 보기에 설원랑이 문노에 미치지 못하니까 풍월주를 물려주라합니다.
설원랑이 미실을 말을 듣고, 문노에게 풍월주를 물려주려고 했는데, 문노는
<국선이 풍월주보다 딸리는 직함도 아니고, 너는 내 동생인데 내가 어찌 스승인 내가 동생의 지위를 빼앗겠냐?>며 거부합니다. 그런데, 설원이 <국선은 왕이 임명한 자리지만, 풍월주의 전통이 아니다. 그리고 세종은 왕자인데도 사다함의 풍월주 지위를 이어받았지 않습니까?>라고 대답하죠. 그리고 미실의 명이라니까 문노가 <신하된 도리로 거역할 수 없다>며 풍월주를 이어 받습니다.
화랑세기 7세 설화랑조를 읽어보면,
문노는 세종의 부하고, 설원랑은 미실의 사람이라고 언급되어 있습니다.




김용춘 : 진지왕의 차남이며 용수의 동생입니다. 화랑세기를 보면, 12세 보리공에 이은 13세 풍월주로 등장합니다. 14세가 호림(호재)공입니다.
이분은 드라마에서 몇안되는 진평왕파이며, 천명의 심부름하는 역할로 나오는데, 사실 대단한 분입니다. 용춘공은 왕이 못되었을 뿐(이마저도 사후에 이룹니다) 생애를 들여다보면, 상당히 부러울거에요. 화랑세기를 보면, 임금(진지)의 아들이자, 임금(진평)의 사촌, 임금(태종무열)의 아버지죠. 그뿐 아닙니다. 임금(선덕)의 남편이자 공주(천명, 천화)의 남편이기도 합니다. (이분은 미생의 사위이기도 했습니다)
아버지 진지왕이 폐위되어 3년 후 죽습니다. 이 시기 아들을 한명 낳는데 이분이 비형랑이죠. 어머니 지도태후가 다시 진평왕을 섬기게 되자, 용춘은 진평을 아버지로 여기며 따랐다고 합니다. 진평왕도 용춘을 매우 좋아했고요.  
용춘공은 문노수하에 들어, 9세 풍월주 비보랑을 형으로 섬기고, 어머니가 다른 형제 비형랑과 함께 힘써 낭도를 모았다고 합니다. 이에 서현랑이 부제자리를 물려주죠.
용춘공은 풍월주가 된 후, 예전의 나쁜 관습을 없앱니다. 골품에 상관없이 낭도들을 등용시킨 것이죠. 그리고 공이 있으면 균등하게 진급시켰다고 합니다. 이 덕을 본 사람중에 대남보라는 인물도 있습니다. 드라마에서 미실의 호위무사로 나오는 잘생긴 서라벌 화랑 대남보가, 화랑세기를 보면, 천민출신으로 용춘에 의해 세 번이나 승진되어 낭도들의 우두머리에 까지 오릅니다. (그뿐 아니라 대남보는 원래 부자였는데, 재물을 모두 사용하여 용춘을 위해 썼고, 결사대 100명을 모아 용춘 몰래 용춘을 호위합니다) 이같은 상황을 불편하게 여긴 사람들이 이전 풍월주들에게 항의했지만, 문노는 법이 점점 바뀌고 우리는 늙었는데 용춘을 괴롭힐 수 없다고 말합니다. 문노가 그리 말하자 미생도 말하지 않았죠.
만년에 거문고와 바둑을 즐기며 태종의 극진한 보살핌 속에서 부인, 시첩과 잘 지내다가 진덕여왕 원년에 돌아가십니다. 태종이 임금이 되자 왕으로 추존합니다.

김서현 : 서현의 아버지는 무력, 할아버지는 구충대왕입니다. 드라마상에서는 사랑의 도피를 한 만노군 태수였고, 덕만이 덕에 가족들과 함께 서라벌로 들어오고, 왕실일가로 인정받습니다. 화랑세기 내용도 비슷합니다. 12세 보리공의 부제였고, 보리공의 부인인 만룡의 언니 만명과 눈이 맞습니다. 이때 부제자리를 용춘공에게 넘겨줘 버리고 계속 사랑을 나누죠. 이에, 만호태후가 정말 화가 나서 만명을 가두고 서현을 만호로 내치려고 합니다. 이때 만명이 탈출하여 만호로 가버리죠. 태후가 더욱 노해서 벌을 주려 했지만, 보리공(12세 풍월주)과 그 부인 만룡(만명의 동생, 태후의 딸)이 태후를 잘 달래서 무사하게 됩니다. 진평왕은 남매인 만명부인을 불쌍히 여겨서 서현공을 만노군 태수로 임명합니다. 태후가 훗날 만명의 아들인 유신공을 보고 싶어해서 이들을 돌아오게 합니다. 이때 유신공의 모습을 보고 매우 기뻐했다고 합니다. 그리해서 가야파가 서현공을 받들고, 한 세력으로 인정받죠.  

12세 풍월주 보리공의 부제로, 13세 풍월주가 유력했지만 결과적으로 오르지 못합니다.

만명 : 서현공 소개에 적었습니다.

을제 : 드라마에서 처럼, 화랑세기에서도 그다지 중요인물은 아닙니다.(사서에서는 꽤 중요 인물입니다) 선덕여왕의 남편 중 한명이었습니다. 사서를 살펴보면 선덕왕이 대신 을제로 하여금 정치를 총괄하게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구당서에선 진평이 죽었는데 아들이 없어 그의 딸 선덕을 세워 왕으로 삼았다. 종실의 대신인 을제가 국정을 총괄하여 맡아보았다... 라고 기록되어 있죠. 을제는 왕족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알천 : 서라벌 10화랑 비천지도의 수장이자, 지금은 유신랑의 친구가 된 알천랑. 화랑세기엔 어찌 나올까요? 14세 풍월주 호림공(드라마에서 호재)조에 보면 칠성우라고 나오는데, 여기에 알천공, 임종공, 술종종, 염장공, 유신공, 보종공등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알천공은 화랑세기보다 다른 사서에 더 자세히 나오는데, 알천은 진덕여왕대에 비담의 난을 제압한 후 바로 상대등에 임명됩니다. 선덕여왕 시기에 이미 알천의 정치적 입지가 김유신 이상(혹은 동급)이었다는 말이죠. (선덕여왕 5년의 기록을 보면, 알천과 필탄이 선덕왕의 명을 받고 옥문곡에 숨어있던 백제장군 우소와 그 부하 500명을 죽였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어쨌든 알천의 입지는 진덕여왕대에 이르러 더욱 높아갔고, 진덕여왕이 후사가 없이 세상을 뜨자, 알천을 상대등으로 하는 화백회의에서 김춘추가 아닌 알천을 왕으로 추대하기에 이릅니다. 삼국유사에 보면, 왕으로 추대된 알천은 늙고 덕행이 없다며 김춘추에게 양보하는걸로 나오는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귀족들이 춘추가 아닌 알천을 왕으로 삼으려 했다는 점입니다. 이는, 알천의 입지가 매우 컸음을 의미하며, 비담보다는 알천이 오히려 유신과 춘추의 숙적이 될 수 있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삼국유사에도 알천이 나오는데, 여기서는 범이 나타나자 다른 화랑들이 깜짝 놀라 일어나는데, 알천은 까딱하지 않고 웃으면서 범의 꼬리를 붙잡아 땅에 내동댕이쳐 죽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삼국유사와 삼국사기 어디에도 알천의 계보는 나오지 않습니다. 상대등까지 한 알천은 과연 어떤 계보를 가지고 있었을까 정말 궁금했습니다. 화랑세기에 알천의 계보가 상세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알천은 진주소씨 시조이기도 합니다. 진주소씨 분들이 있으시다면 먼저 양해 말씀 구합니다.(족보와 다를 수 있으니)
저는 화랑세기 내용을 보고 글을 적습니다.
알천은 입종 갈문왕과 금진낭주의 아들인 숙흘종의 아들입니다.
입종갈문왕은 지증왕의 아들이며 진흥왕의 아버지입니다.
진흥왕의 동생인 숙흘종의 아들이 알천이죠.
쉽게 설명하면

알천은 지증왕의 증손, 법흥왕의 동생 입종갈문왕의 손자, 진흥왕의 조카이자, 진지왕의 사촌입니다. 만명의 남매이며, 김유신의 외삼촌입니다.
윤강과 혼인했는데 윤강은 문노의 딸이므로 알천은 문노의 사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알천의 어머니는 보리(풍월주 보리공이 아니라 보리공주)인데, 이분은 진흥왕의 딸입니다.

지증왕
법흥왕-----입종갈문왕(지소태후에게서 진흥왕, 금진과 사이에서 숙흥종을 낳음)
(자식X)       진흥왕---숙흘종(진흥왕 동생, 만호사이에서 만명, 보리에게서 알천을 낳음)
                  진지왕     알천----만명(남편 서현공)----만룡(남편 12세풍월주 보리공)
                                  유신(15세 풍월주)                예원(20세 풍월주)



다음엔, 미실파에 대해 정리해 보겠습니다.


<꼐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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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도여우
09/07/17 13:16
수정 아이콘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신라때 귀족(?)의 가족사를 보면 볼때마다 참 복합한거 같아요;;
누구의 조카이며 사위이며 어쩌고저쩌고..;;
미소천사선미
09/07/17 13:18
수정 아이콘
재미있네요.
어디서 선덕여왕도 미실 만큼 색에 능한 사람이라고 했는데 그런 이야기가 나올 만한 이유가 있군요.
저렇게 남편이 많았으니...
뭐. 다 정치적으로 이용할려고 하는 거 겠지만,
09/07/17 13:33
수정 아이콘
화랑세기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 하자면
오늘날에 전해져온 화랑세기는 故박창화씨가 필사한 것입니다.
일본식민지때 박창화씨는 일본왕실도서관에서 일하면서 거기에 있는 화랑세기를 필사해서 한국으로 가져옵니다.
그리고 이 화랑세기 필사본이 89년에 발견되면서 우리나라역사학계의 최고의 떡밥이 되는데
이것이 진본인지 위서인지를 두고 아직까지도 논쟁중이며
이것이 진본이면 우리나라 현존하는 최고(古) 역사서는 삼국사기에서 화랑세기로 바뀌는 것이 되며
신라사회의 역사도 다시 써야 할정도로 아주 중요한 사건이 되었죠
(선덕여왕에 나온 미실도 삼국사기에 나오는 인물이 아니라 화랑세기에 나오는 인물입니다.)
이 논쟁을 확실이 종식 시킬려면 일본의 왕실도서관에가서 직접 확인 해야해지만 그렇게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故박창화씨 말로는 일본왕실도서관에는 우리나라 고대사에 관련된 사료가 아주 많다고 합니다.
자기는 그 일부인 화랑세기만 필사해 온것이라 하고요
테페리안
09/07/17 13:41
수정 아이콘
확실히 고대사회로 갈수록 근친 이런 개념이 없는 것 같습니다. 권력을 강화해야하니....
체리치즈케익
09/07/17 13:42
수정 아이콘
악 너무재미있습니다 +_+ 빨리 미실편두 부탁드려요
Cazellnu
09/07/17 14:37
수정 아이콘
로사님 리플을 보고나니 울컥하네요
그놈의 일본이 뭔지 수탈 문화재를 열람도 못하게 하는지.
아마 광개토대왕비의 글자 사건이라던가 예전에 주장하던 임나일본부설이라든가 이런 연장선상의 뭔가 캥기는게 있겠죠...
하지만 우리 위대하신 친일정치인들은 그런것에 관심조차 없으니...
세상속하나밖
09/07/17 15:44
수정 아이콘
재밌게 봤습니다 .

이문식씨와 류담씨가 연기하는 역활은 역사에 나오시는분들은 맞는건가요?
테페리안
09/07/17 16:14
수정 아이콘
세상속하나밖에님// 이문식씨가 하는 죽방은 모르겠는데 류담씨가 하는 고도는 화랑세기인가 어딘가에 나온다고 하더군요. 김서현의
부하였던 걸로;;;
lafayette
09/07/17 16:57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선덕여왕 '드라마'는 재미를 위해 각색된 부분이 많이 있군요.
실제 인물의 이름만 가져다쓴 경우도 보이고요
'화랑세기' 찾아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09/07/17 17:22
수정 아이콘
미실과 선덕여왕의 대결도 픽션이지만 미실이 12.12후의 전두환이나 삼국지의 조조같은 강한 권력자였다는 설정자체가 픽션이라고 봐야겠죠.뭐..색공술로 남자들을 휘어잡은 후궁정도라고만 생각되는데..
여자가 강한 모습을 보여줘서 극의 재미를 높이기 위해서 말이죠.
09/07/17 17:36
수정 아이콘
Cazellnu님//
고대사 관련된 사료들은 수탈해갔다기 보다는 일본이 보존 잘되어있는 거죠 물론 수탈한것도 있겠지만요
그러면 일본이 왜 우리나라보다 고대사 사료들이 잘 보존된 이유는 두가지 이유가 있느데요
첫 번째는 유사이래 정권은 여러번 바뀌었지만 왕조가 바뀐적이 없습니다. 두 번째는 외적의 침입이 거의 없었습니다.
보통 왕조가 바뀌면 왕조 설립의 정당성을 위해 전왕조 사료들을 외곡 또는 파기하거나
역사적 가치를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방치 해버리죠
실례로 고려시대에도 실록을 편찬하였지만 조선시대 들어와 정도전에 의해서 1차 고려사가 편찬 되고 세종때 2차 고려사가 편찬 하고
조선왕조에서 고려왕조실록을 파기하였는지 방치하였는지는 몰라도 지금 400년에 걸친 고려왕실록은 남아있지않고
조선때 만들어 몇권에 고려사만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은 왕실에서 역사적 사료를 관리 하였기 때문에 정권이 바뀌어도 사료가 온전히 보존될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 일본은 유사이래 본토가 외적에 침공을 받은적이 딱 두번 있는데
첫번째는 몽골의 침입하고 두번째는 태평양전쟁에서 미국에 의해서 입니다.
몽골의 침입은 해안가에서 이루어졌고 시기도 짧았기 때문에 거의 피해가 없었습니다.
태평양전쟁때 미국의 폭격도 이미 당시 유물에 관한 가치가 자리 잡았기 때문에 유적지에대한 폭격은 거의 없었고
인쇄매체가 발달된 상태라 사료들은 여러곳에 복사되어 있었죠
그러나 우리나라는 북으로 중국 및 북방민족의 침략이 끊임없이 지속되었고 남으로는 일본의 노략질 임진왜란같은 대규모 침략을 당합니다.
임진왜란을 예를 들면 조선왕조실록 4군데사고에 분산시켜 보관 했지만 전주사고를 제외한 3군데 사고가 소실 되었습니다.
만약 이순신장군이 일본에게 졌으면 오늘날 조선전기왕조실록은 남아 있지 않았을 겁니다.

일본에 한국고대사 관련된 사료가 많이 남아있는 이유는 고대에 일본과 교류가 활발 했기 때문입니다.
물적 교류뿐 아니라 지적 교류도 활발했기 때문에 한반도에서 만들어진 책도 일본으로 많이 건너갑니다.
특히 백제, 고구려 멸망후 귀족들이 일본에 대거 넘어가면서 많은 사료들을 가지고 갔을것입니다.
그런 사료들이 우리나라는 소실되었지만 일본에는 아직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실례로 고등학교 국사 시간에 배웠던 신라시대 가구수부터 개개인 뽕나무수까지 적혀있던 '신라장적'은 일본에서 발견 된것이고요
쫄면매니아걸
09/07/17 19:11
수정 아이콘
로사님의 댓글에 몇자 덧붙이자면... 일본 정창원에서 발견된 '신라장적(촌락문서)'은...
불경의 포장지(겉표지?)로 썼던 것이죠... 지금은.. 다시 고이 포장해서.. 정창원에 보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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