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석님의 만화, 100℃ 링크
http://610.or.kr/museum/bbs/sub03e_000.html
작가 인터뷰
http://news.cyworld.com/view/20090629n04489
<습지생태보고서>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쥬> 등 개성 강하고 뚜렷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만화가 최규석 님의 최근 작품인 100℃를 이제야 챙겨 보게 되었습니다. 넘치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담배만 찾게 되는군요. 감동스런 슬픔, 이런 감정은 참 오랜만입니다.
제가 학교를 다니면서, 동아리, 반 등으로 연결된 가장 오래 된 선배를 본 기억은 91학번 선배였습니다.
그분은 쟁가 없는 요즘의 술자리가 쓸쓸하다며 농지거리를 하곤 하셨죠. 자신을 군부독재의 끝자락에 서 있던 얼치기 운동권이라며, 제가 관심있어하던 예전의 술자리 분위기를 이야기해 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전해 들은 그때의 분위기와 너무나도 흡사하게 묘사된 이 만화를 보며, 요즈음의 대학가 분위기가 '옳은'것인지를 새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돈을 벌어라! 너만을 생각하라!" - 노암 촘스키
요즘 대학생들은 노엄 촘스키의 비아냥을 생활 신조로 삼고 있습니다. 도서관은 불야성을 이루고 좀 더 나은 스펙을 위해 인턴을 전전하며, 외모를 가꾸러 피부관리와 성형수술을 받습니다. 예전에 선배와 후배가 수면과 소금쟁이처럼 마찰하고 친해지던 동방이나 과실은 점점 막걸리 냄새나는 술창고 비슷한 곳으로 변해갑니다. 파전집에서 NL계열과 PD계열의 학생들이 혁명노선을 놓고 멱살잡이하던 광경은 사각사각 샤프심 소리에 미간을 찌푸리며 조용히 해달라는 쪽지를 전달하는 살풍경으로 대체되었습니다.
김대중 정부 이후, '민주화된 세상'에서 투쟁이 존재할 이유가 무엇이냐는 학생들의 질문은 결국 운동권에 대한 학생들의 뿌리깊은 반감으로 귀결되었습니다. 이제 학생회 투표는 많아 봐야 10%안팎의 투표율로 당선이 결정됩니다. 어차피 '운동권'말고는 입후보하는 선본도 없으니 누가 당선되나 그게 그거라고 무관심한 사람들이 대다수입니다.
그렇다면 그 무관심한 사람들은 현 정권에 찬성하거나, 최소한 참을 만 하다고 느끼는 것일까요? 그건 아닐 겁니다. 하다못해 저 같이 도서관을 지키지도 않고 과실을 지키지도 않고 컴퓨터 앞만 지키는, 회색분자도 되지 못하는 얼치기에게도 현 정권의 폭거를 묵인할 정도까지의 둔감함은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저를 포함하여-은 그저, 방관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건 아닌데 싶으면서도, 방관하고 있습니다.
"방관자는 비겁자다!" - 4.19혁명 당시의 구호.
독재자 이승만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4.19 세대는, 비교적 적은 유혈과 상처만으로 승리를 쟁취하였습니다. 봉건왕조의 사고방식을 가지기는 했지만 어울리지 않게(?) 민주주의적인 면모도 찾아볼 수 있는 이승만은 국민의 거센 반발에 부딪히자마자 하야를 선택하였습니다. 4.19세대가 나이를 먹고 가장이 될 무렵, 무시무시한 10월 유신이 찾아옵니다. 독재자 박정희는 이승만처럼 무르지를 않았습니다. 독재타도를 부르짖는 대학생들은 곤봉과 최루탄, 물고문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독재와 싸우던 학생들은, 과거 자신들처럼 앞장서 독재를 타도한 경험이 있으면서도, '처자식'운운하며 뒤로 빠져서 생업에만 몰두하는 4.19세대에게 '자본주의에 굴종한 소시민'이라는 굴욕적인 낙인을 찍었습니다. 네. 역사는 공평하지요. 유신세대는 광주의 피로 세례받은 박종철-이한열 세대에게 똑같은 낙인을 선사받으니 말입니다.
순서대로 하자면 지금의 이명박 정부에 싸우는 세대들은 '소시민'이 된 87년의 운동권 선배들을 비난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비난은 들려오지 않습니다. 지금 가장이 된 87년의 선배들이 투쟁에 열심인 것은 물론 아닙니다. 현재 '운동권'이라 불릴 만한 조직의 힘이 너무도 미약하며, 대중적인 지지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는 것입니다.
대규모의 촛불시위는 자주 일어나지만 '주도세력'은 없습니다. 운동권에 반감을 가진 사람들이 하는 시위가 뭐 얼마나 크게 일어나겠느냐고 안이하게 생각했다가 광우병 쇠고기로 뜨거운 맛을 본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전 대통령님의 서거에 대응하는 현명한 방책을 강구하였습니다. 아예 광장을 봉쇄하고 모이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모인 사람들을 통제하고 다른 방향으로 이끌 '주도세력'들의 목소리는 작기만 합니다. 어쩌면 시민들은 자신들의 순수한 의도가 '빨간색'으로 채색되는 것을 거부하여, '주도세력'의 목소리를 무시하는지도 모릅니다.
오늘도 도서관 대신 술자리를 선택하고 삼겹살에 소주를 한잔 하고 들어왔습니다.
현수막만 외로이 나부끼는 학생회관은 어둠 속에 싸였고
미래를 준비하는 도서관의 불빛은 오늘도 꺼질 줄을 모르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