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노무현 전 대통령님.
전 이제 갓 20살이 넘은, 동물을 좋아하는 한 평범한 대학생입니다. 저는 2003년 8월에 미국으로 이민차 건너오게 되었고 지금 6년째 이곳에서 부모님을 비롯하여 외조부모님, 외삼촌댁, 큰이모댁, 그리고 사촌들과 함께 미국에서 살고있습니다. 사실 전 노무현 대통령님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 못합니다. 제가 미국오기 직전에 당신이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어리디 어린 나이에 '정치' 라는 것에 대한 개념조차 있지 않았으며 더욱이 이만리 떨어진 땅에서 우리나라의 정치가 눈에 들어올만큼 성숙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제가 간직하고 있는 아주 작은 기억은 모두 당신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들이었습니다. '탄핵' 과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라는 유행어 아닌 유행어, 그리고 '효순이와 미선이' 가 그것이었습니다.
고등학생 시절, 인터넷으로 연예와 스포츠 관련 기사들만 즐겨보던 제가 문득 '탄핵' 이라는 단어가 떠오른 기사의 사진에는 당신의 사진이 있었습니다. 철없던 저는 그 기사를 대충 훑으면서, "대통령이 못났으니 나라가 저 모양이지." 하며 고개를 가로젓고 다시 게임에 빠지는 어리석은 행동을 저질렀습니다. 누가, 왜 당신을 핍박했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은채 그저 당신을 나라를 대표할 자격도 없는 인간으로 치부해버리는 어리석고 또 어리석은 짓을 한 것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그외에도 미군에 의해 죽은 효순이와 미선이 사건을 보면서도 미군보다, 괜스레 당신의 무능함에 대해 원망함이 더 컸습니다. 왜인지는 지금 생각해보아도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사실 제가 미국에 오기 직전 대통령에 당선된 당신의 모습을 보면서, 과거에 어떠한 대통령보다 더욱 열정적이고 패기가 차보이는 당신을 보면서 예전의 대통령과는 다른, 어떤 커다란 업적을 세우리라는 기대감이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 당신이 한 일들을 보려고도 하지 않은채 눈과 귀를 막으며 당신에게 비수를 날리기만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당신이 국민들에게 누구보다 자상하고 따뜻한 분이셨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은 것을 용서해 주십시요. 당신이 국민들을 위해 행했던 일들을 당신이 떠난 뒤에야 찾아보고 깨달은 이 못난 청년을 용서해 주십시요. 다른 대통령들과 다르게 퇴임 후에 호화스러운 저택과 넓은 정원이 있는 곳이 아닌, 농사를 짓고 손녀들과 자전거도 타며, 대통령이 아닌 '사람' 이 사는 작은 시골에 가신 당신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과거에 이런 대통령이 있었을까? 한때 나라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계셨던 분이, 스스로 시골로 내려가 막걸리도 마시고 담배도 피며 썰매도 타고 평범한 여고생들과 마치 친구처럼 사진을 찍는 인격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도대체 얼마나 될까?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비로소 당신이야말로 국민들과 가장 가까이 지내고자 했던 나라님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5월 23일. 당신은 가셨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어른이 되어 한국을 방문하게 되면, 꼭 당신을 만나 지난 일에 대해 사과하고 싶었습니다. 무릎을 꿇고 사죄하며 당신에게 용서를 빌고자 했습니다. 철없이 당신을 비난하던 제 어린시절을 용서해달라고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언론, 정치, 왜곡된 역사, 경제와 맞붙어 싸우느라 얼마나 외로우셨습니까? 얼마나 힘드셨습니까? 얼마나 고단하셨습니까? 당신의 고생을 증명하던 이마의 주름과 하얀 백발도 볼 수 없고, 당신이 즐겨쓰던 짚모자도 이젠 볼 수가 없게 된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당신은 가셨지만 김제동씨가 말씀하신 것처럼 제 마음 속에 '노무현' 이라는 작은 비석을 평생동안 간직하겠습니다. 언젠가 한국을 방문하게 되면, 늦게나마 봉하마을에 생길 당신의 진짜 비석에 작은 국화꽃을 남기고 오겠습니다. 당신은 저에게 있어 최초로 존경하게 된 대통령이자 최고의 대통령이셨습니다. 최근에 있던 불미스러운 사건에 대해 저 또한 한탄하면서도 당신의 결백을 기대했고 무엇보다 당신을 믿었습니다. 그런 제 모습을 보면서 불과 4년 전에 컴퓨터 앞에 앉아 당신을 비웃던 제 모습이 스쳐지나가며 제 자신의 한심함에 쓴웃음을 짓곤 했습니다. 언젠가 당신을 만나게 되는 날이 오면, 가까운 친구처럼 술도 마시고 맞담배도 피며 노래도 부르는 날이 오리라 굳게 믿겠습니다.
그때까지 편안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