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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9/05/29 18:40:50
Name 한니발
Subject [일반] 우리는 그를 떠나보내오


  오늘 이 곳에서 우리 한 사람을 떠나보내오.
  우리 그는 어리석은 사람이라 비웃었고
  우리 그가 천박하다 눈살을 찌푸렸고
  우리 그에게서 눈을 돌렸었소.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내몰고서 눈을 돌렸었소.

  그는 바보였다오. 그는 광인이었다오.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는, 게다가 이 나라의 대통령로서는 정녕 맞지 않는 사람이었소,
  그리하여 그는 떠나갔다오. 멀리, 멀리 떠나갔다오.
  우리는 그를 떠나보내오.
  너무나 늦게, 울고 노래하며 그를 떠나보내오.





  그렇소. 우리는 그를 바보라 불렀소.
  이 땅에 깊이 뿌리박은 병폐들, 썩어 문드러진 증오와 편견에 달려들어 낑낑대는 그를, 우리는 어리석다 놀렸소. (그런 이들을 바보라고 하오.)
  이 땅에 예로부터 살아온, 사람을 밟고 권세를 누리는 이들에게 달려들어 고함치는 그를, 우리는 어리석다 비웃었소. (그런 이들을 우리는 바보라고 부르오.)
  여보시오, 바보.
  그것은 잘못된 것이나, 또한 오래된 것이며, 또한 무슨 일을 해도 사라지지 않소.
  여보시오, 바보.
  헛수고요. 할 수 없는 것이오. 꿈은 꿈이오. 현실을 보시오.
  여보시오, 바보.
  어린 아이들이나 그것을 없앨 수 있다 꿈꾸오. 세상물정모르는 아이들이나….
  여보시오, 바보.
  우리는 이미 너무 오래 전에 그런 삶을 잃었소…….
  여보시오, 여보시오…….





  그는 광인이며, 또한 불행했소. 불행한 인간이었소.
  그는 너무 사람을 스스럼없이 대했소. 대통령의 품위와 격식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소. 그는 대통령이었지만, 군림하지 않는 대통령이라는 미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오.
  그는 타협이란 걸 몰랐소. 세련되게 타협하고, 물러서고, 그리하여 있는 자들에게 고개를 숙일 줄 몰랐소. 그는 신념을 지키는 정치가라는 미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오.
  그가 가진 '미친 생각'은 너무나 많았소.
  나라는 국민의 것이며, 국민의 뜻이 나라의 뜻이라는 미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오.
  누구에게나 공평한 정의라는, 미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오.
  자신이 내뱉은 말은 반드시 지켜야만 한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오.

  그는 온 몸으로 사람을 사랑했소.
  그것이 그의 불행이었다오.





  그는 결국 보지 못하였소.
  언젠가 그를 위한 불꽃이 피었던 이 땅에는 이제 그를 위해 새하얀 꽃들이 피었소. 끝을 모르고 핀 그 꽃들, 꽃들을 그는 보지 못하고 가오.
  그는 결국 듣지 못하였소.
  이 땅의 살아가는 이들이 가슴 속에 묻어놓았던 그를, 그를 향해 부르짖는 울음과 탄식을 결국 듣지 못하고 가오.
  그는 결국 알지 못하였소.
  그토록 서툰 바보, 촌스런 필부를 자처했던 한 대통령이 이 땅에 살아가는 이들에게 무엇을 남겼는지, 결국 그 자신조차 알지 못하고 가오.
  그러나 우리는 아오.
  그리고 우리가 하오.
  그가 가졌던 미친 생각들을, 이 땅에 살아가는 이들은 그 뇌리에 새겼소.
  가졌던 사랑들을, 이 땅에 살아가는 이들은 이미 그 가슴에 품었소.
  마지막까지 지키고자 했던 그 신념, 이 땅에 살아가는 이들이 그 등에 지고 갈 것이오.





  오늘 우리 한 사람을 떠나보내오.
  한 명의 바보, 한 명의 광인, 참으로 이 나라의 대통령으로서는 과분한 인간 노무현을 떠나보내오.

  그는 마지막까지 서툰 사람이오.
  그는 작은 비석 하나면 족하다 말하였소. 소박하게 장을 치르라 당부하였소. 자신이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남겼는지도 모른 채. 그를 알았다면, 이 땅에 사람들이 그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았다면…….
  그리하여 그의 외로운 죽음이 이 땅에 사람들에게 삶의 당부가 될 줄 알았다면…….

  부당한 권력에 항거하며
  신념을 지키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으며
  사람을 사랑하라.
  정녕 의롭게, 참되게 살아라.
  그렇게 살아라.

  이 땅에,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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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5/29 18:56
수정 아이콘
wake up , and live의 밥 말리는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어, 일어나 힘을 합치라' 고 주문했지요.
그리고 그렇게 해야 할 의무는 이제 우리에게 있습니다. 살아 있으니까요.
80년대 가장 아름다운 광인 중 하나였던 기형도가 남긴 당부가 가슴을 때립니다.

살아 있으라. 누구든, 살아 있으라.
주먹이뜨거워
09/05/29 23:38
수정 아이콘
우리 아이가 티비에 나온 자막을 보면서 '아빠 왜 저 대통령 할아버지보고 바보라고 불러?'하더군요.
좋은 의미로 말하는 거라고 설명을 해줘야 하는데, 좋은 설명 방법도 안 떠오르고 눈물까지 자꾸 나서 답을 못 했습니다..
플레이아데스
09/06/02 23:43
수정 아이콘
한니발님의 좋은 글을 이토록 슬픈 내용으로써 읽게 된다는 것이 참 가슴이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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