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우영은 일제강점기인 1938년 만주에서 태어나 유복한 가정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하지만, 해방 후 귀국한 이후로는 매우 빈곤해져 어려운 학창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1972년 1월 1일 일간스포츠에 [임꺽정]으로 데뷔해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일간스포츠의 판매부수가 폭증할 정도의 인기를 얻게 된다.
이후로도 그는 스포츠 신문지상을 기반으로 활동하였고, 수호지(월간 보물섬), 만화십팔사략(단행본) 이외 대부분의 작품들이 신문연재작품들이었다.
고우영의 작품들은 대부분이 역사물이었는데, 그는 역사를 단순히 만화로 옮겨 그리는 데만 그치지 않고, 역사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해석을 바탕으로 능숙하게 자기류로 그려내는 데에 천부적인 재주를 보여주고 있다.
(고우영은 중국어와 한자에 능통하여 방대한 역사서를 원전으로 섭렵하였고, 역사 이해에 있어서도 학자 수준의 지식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삼국지]에 등장하는 조조는 <간웅>이 아니라, <싸나이 조조>였고, 장비는 범처럼 무섭게 보이지만 정과 애교(?)가 넘치는 인간적인 모습이었으며, 유비는 <쪼다>이면서도 가끔씩 묘한 웃음을 짓는 이중인격자이기도 했다. [삼국지] 뿐만 아니라, [수호지], [초한지] 등등 다른 역사물에 있어서도 그는 각 역사 인물들에 독자적인 개성과 인간미를 부여하여 마치 살아있는 듯한 생동감과 친근함을 부여해 주었다.
고우영의 만화는 대부분 성인지향으로 그려졌기 때문에, 잔인하고 외설적인 장면도 많았는데 이로 인해서 독재정권 하에서 간행된 단행본들의 경우 곳곳에 하얀 먹칠이 가해져 있기도 한다.
(다만, 신문연재와 병행 발간된 초판본들의 경우 대부분 원형대로 발간되었다)
이후 작품들의 원고가 출판사의 관리부실로 인해 망실되어, 재출간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나 딴지일보의 주도로 남은 원고를 모으고 망실된 부분은 다시 그려냄으로써 현재는 완전한 형태의 복간본들이 출간되고 있다.
술을 좋아하고, 친구를 좋아하고, 또한 스포츠를 좋아했던 고우영은 폐암이 전이되어 시한부 선고를 받아 놓고도 절망에 빠지기는 커녕, 친구들과 함께 희희낙락 술을 마시며 여생을 즐기려 했던 멋드러진 사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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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자와 해학 하면 떠오르는 딱 한 사람입니다.
십팔사략을 먼저 접해서 처음엔 그림 더럽게 못 그리는 만화가인 줄로만 알았는데, 뒤늦게 삼국지를 접하고는 깜
짝 놀랐습니다.
중국 민화를 연상시키는 독특한 그림체와 장문의 대사들이 보면서 빨려들게 하더군요.
무엇보다 당시 시대상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