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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5/06/20 07:11:22
Name 피로링
Subject [일반] 사과문 쓰던 운영자
벌써 3주 전이다. 히오스가 나온지 얼마 안되어 막 영웅리그에 죽치고 살던 때다.
원숭이가 되지 않으려면 공략을 보러 게임 게시판에 들려야 했다. 그 곳에 벌점을 주던 운영자가 있기에 중재좀 해 주십사 부탁을 했다.

"중재 좀 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피지알 규정이 그런걸 어떡하겠소? 싫으면 다른 데 가 노시우"

대단히 무뚝뚝한 운영자였다. 더 이상 재촉하지 못하고 피드백이나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줄 것 같더니, 일주가 지나도록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키워인 내가 보기에는 그깟거 한시간이면 쓰겠구만,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이주가 지났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초조할 지경이었다.

"진행 상황이라도 좋으니 그냥 쓰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내며,

"다른 운영자가 진행상황을 썼으니 된거 아니냐"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벌점 준 운영자가 당신인데 다른 운영자 말이 뭔 소용이란 말이오? 외고집이시구먼, 회원들 다 탈퇴한다니까요."

운영자는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시오. 난 안 쓰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탈퇴할 수도 없고, 바로 나오긴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하세요."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늦어진다니까. 지금 돌아가는 눈치좀 보고 있으니까, 좀 기다리시오."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자게에 올라온 원숭이글을 태연하게 구경하고 있지 않은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3주를 채우고서 운영게시판에 올려놨다가 내려놨다가 하더니 다 됐다고 하더니 내준다. 사실 되기는 다 돼있던 사과문이다.

3주가 넘어서야 피드백을 받아본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운영을 해 가지고 커뮤니티가 잘 돌아갈 턱이 없다. 회원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자존심만 세운다. 운영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운영자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운영자는 태연히 모니터링하면서 유게에서 벌점을 주고 있었다. 그 때, 바라보고 있는 옆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운영자다워 보였다. 표현을 주의해달라는 멘트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운영자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된 셈이다.

컴퓨터를 켜고 자게를 들어갔더니 회원들이 야단이다. 이딴게 사과문이냐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퍼플레인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회원의 설명을 들어 보니, 퍼플레인것은 형태상으로라도 사과문의 형식을 거쳤지만 운영자의 글은 사과문이라고 볼 수도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비로소 삼주를 허탕을 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참으로 짜증났다.

엣날부터 내려오는 나니와(羅尼瓦)의 사과문은 사과문의 정석이라고 알려져 있다. 자신의 행동을 함부로 포장하지 않고, 자신이 잘못한점을 정확히 파악하며, 쓸데없는 첨언이나 타인에 대한 책임으로 떠넘기지 않고 후속조치에 대한 약속을 하는것이 사과문의 기본이라고 하겠다.

생각해보면 사과로 더욱 일을 키운 예가 한 둘이 아니다. 견과항공의 조현아가 그러하였고 고승덕은 애비메탈을 열창하지 않았던가. 나만해도 잘못한 일이 있으면 별 개드립으로 빠져나가려고만 하지 않았나 반성하게 되는 사건이었다.

오늘 집에 들어왔더니 미사토 동생이 반기고 있었다. 그렇다. 이젠 누님이 아니라 동생이 되었다.(ㅜ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보낸 세월이 허망해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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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란파괴왕
15/06/20 07:30
수정 아이콘
막줄에 함께 눈물흘리고 갑니다.
15/06/20 07:32
수정 아이콘
풍자에 껄껄 웃으면서도 씁쓸합니다..
그러지말자
15/06/20 07:35
수정 아이콘
미사토 누님 앞에서면..
생각도 표현도 지극히 촌스럽고, 넘치는 에너지를 풀곳없는 망아지 같았던
그래서 더욱 아름다웠던 열일곱 소년시절로 돌아갈 수 있어야 진정한 오덕군자가 아닐는지요..
미사토만한 딸이 생기더라도 영원히 누님으로 남아야 합니다.
그게 싱그러웠던 이 내 청춘에 대한 의리죠. 응당 그래야죠.
피로링
15/06/20 07:59
수정 아이콘
사실 신극장판에서 43세가 되었으므로 앞으로 지온..아니 저는 10년은 더 싸울 수 있습니다.(방끗)
세츠나
15/06/20 07:45
수정 아이콘
이거다!
마스터충달
15/06/20 07:45
수정 아이콘
이거 웃프네요 ㅜ.ㅜ
15/06/20 07:57
수정 아이콘
스투열사 IN!
라이즈
15/06/20 08:06
수정 아이콘
애초에 사과문이 아니었고 피드백일뿐이죠..킁킁
아 의사표명이랬던가
15/06/20 08:07
수정 아이콘
이분 최소 작가지망생
15/06/20 08:15
수정 아이콘
재밌게 읽고 갑니다.
15/06/20 08:24
수정 아이콘
분노마저 해학문학작품으로 승화시키는 분들덕에
여기가 살아있는겁니다 크크
회전목마
15/06/20 08:25
수정 아이콘
원작과 다르게 결말이 베드엔딩 ㅠㅠ
15/06/20 08:31
수정 아이콘
이젠 누님이 아니라 동생이 되었다.(ㅜㅜ)
빛의숨결
15/06/20 08:59
수정 아이콘
글잘봤습니다.

원래 남 발목잘린 것보다 자신의손톱에 낀 가시를 아파하듯이 글을 읽어보니 판세가 보이기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원래사람이란건 실수앞에 배움의 길이 보이기 시작하는것입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해선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모두가 함께 으쌰으쌰해서 pgr을 만들어 갔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질보승천수
15/06/20 08:59
수정 아이콘
흠 재밌게 읽었습니다.
나니와가 그런 뜻이었군요. 그친구 스웨덴 사람이면서 그렇게 한문을 잘 알줄은.....
겉으론 거칠지만 문제의 본질과 사과를 요구하는 자들이 원하는게 뭔지 정확히 꽤뚫고 있는걸 보면 확실히 그정도의 양식은 있는 것일지도.

그건 그렇고 미사토 같은 동생이 정말로 있으면 나이 먹어도 재미있게 살 수 있을지도...........
정말 문제는 미사토가 동생이 된게 아니라 그런 동생이 없다는거.............
천무덕
15/06/20 09:33
수정 아이콘
방망이 깎던 노인은 최고급품이 나오느라 그에 걸맞는 시간동안 공을 들이기라도 했지요...
질보승천수
15/06/20 09:45
수정 아이콘
예상보다 긴 기다림의 결과 블리자드는 우리에게 스타크래프트와 디아블로2를 줬고 밸브는 우리에게 하프라이프2와 팀 포트리스2를 줬지만 운영진은 우리에게 듀크뉴켐 포에버를 줬네요.
아니....생각해보니까 듀크뉴켐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탓에 기대치가 너무 높아져서 그렇지 적어도 범작은 될만한 물건이 나왔었는데.....
듀크뉴켐포에버 제작진들은 적어도 그 일이 생업이었기 때문에 그럴지도? ;;;;;
크라쓰
15/06/20 09:38
수정 아이콘
최연성 전성기 시절에나 보고 간만이네요
15/06/20 11:19
수정 아이콘
크크 어디서 마지막에 봤나했더니
박신영선수도 있지않았나요? 추억의 이름들이네요..
엘데아저씨
15/06/20 09:47
수정 아이콘
네르프본부를 폭파시키려던 사도 이로울은 미사토동생(....)과 리츠코가 물리쳤는데 피지알을 폭파시킬지도 모르는 사도는 누가 물리칠런지....
자유지대
15/06/20 09:52
수정 아이콘
나니와 사과문이 뭐죠?
도와줘요. 스피드웨곤!
자유지대
15/06/20 10:05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지와타네호
15/06/20 10:08
수정 아이콘
다시봐도 정말 잘썼네요
자르반29세,무직
15/06/20 10:25
수정 아이콘
나니와 사과문은 사과문의 정석이죠.
잊고 있었는데 글 덕에 다시 생각났네요
15/06/20 10:31
수정 아이콘
장고 끝에 악수...
파란아게하
15/06/20 10:44
수정 아이콘
우워 퀄리티가 엄청나네요.
유게 가면 삭제됐겠으나
패러디가 아니고 이 내용을 그냥 줄글로 썼어도
문제 없다고 보는 만큼 잘 살아남아주기를!
강동원
15/06/20 11:05
수정 아이콘
이런 글 보는 맛에 피지알을 못끊는거죠.
오늘 오는 비처럼 팍팍한 이 곳에 단비가 되길 바랍니다.
쿼터파운더치즈
15/06/20 15:59
수정 아이콘
위트있네요 이런글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뒷짐진강아지
15/06/20 16:26
수정 아이콘
일부 운영진들이 하드트롤을 해대지만(전체를 싸잡아 매도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일부라고 붙였습니다.),
이런분들이 멱살잡고 하드캐리를 하시니 PGR을 떠나지 못하는 분들이 많으신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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