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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5/31 14:52
결국 저런 양아치 정신으로 식민지 관리를 했기에 미국이 영국에서 떨어져 나갔으니
국가적인 레벨에서 보면 그게 신의 심판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미국이 영국의 제어 하에 계속 남아있었다면 지금 미국의 지위에 영국이 있었겠죠...
15/05/31 16:02
뭐 1차 세계대전이나 2차세계 대전 정도가 되지 않을까도 싶네요.
그런데 이 댓글 보니 묘하게 고대인의 국가 업보론이 떠오르는 군요. 로마의 장군 스피키오(소)도 카르타고를 멸망시킬 때 로마는 나중에 이 업으로 좋게 망하지 않을까 이야기 했던 걸로 유명하죠. 그런 생각으로 하면 청나라 역시 병자호란 당시 조선에 한 짓이나 준가르족을 멸족시킨 업을 이 때 갚은 거 겠죠.
15/05/31 14:11
9표 차이란 건 놀랍네요. 어떤 정치적인 배경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 시대에는 아직 명예라는 로망이 살아있었던 것이었는지 궁금하네요.
15/05/31 14:14
최근 서양사를 조금 관심 갖고 공부하고 있는데... 정말 크게 느낀 것 하나가 서양 사람들은 정말 동양 사람들에 비해 '의사 결정(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에 대한 고민을 역사 단위로 오래 해왔다는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이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판단하기 정말 힘들었을 상황인 [신/구교 대립], [시민 혁명(과격/온건)], [제국주의(정의/자국의 이득)] 이 세가지 상황이 서양사의 반을 넘더군요.
본문의 제국주의 같은 경우도 노예 제도 폐지 찬반 투표 때 폐지 반대파의 주요 주장 중 하나가 "노예제를 폐지할 경우 노예제를 유지하고 있는 경쟁 국가들 보다 국력이 저하 될 것이고, 이는 곳 국가의 안전과 연결된다." 였습니다. 국가 안보...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지요. 실제로 전쟁이 벌어지던 시대였으니 무게감의 차이는 말할 것도 없고요. 이런 것들을 알아가면서 동양의 민주주의는 확실히 서양의 그것 보다 역사도 짧고 미성숙 할 수 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괴롭고 안타까운 부분이지만, 반대로 그 만큼 앞으로 성숙해질 기회도 있다는 이야기겠지요.
15/05/31 14:40
맞아요. 합리적 의사결정 절차와 토론문화가 정말 인상적이더라고요. 그리고 300년 전에도 토론이'합리적' 관점에서 진행되었다는 거. 소위 '이성'과 '합리성'이 모두 서구의 발명이라고 하지만... 노예제 폐지도 정말 인상적인 부분이죠. 물론 경제구조의 변화와 여러 세력의 사익으로 인해 가능했다고는 하지만, 노예제 폐지 운동에 참여했던 선교사, 지식인 그리고 흑인(대영제국의 시민권을 딴 자유인)들이 연합해서 '도덕'과 '자연법'등을 들먹이면서 노예제 폐지운동에 참여하고 그러한 열기가 사회에 광범위하게 확산되었죠. 당시 대영제국도 어쨌든 민주주의라는 제도를 채택하고 있었기 때문에 여론이 반노예제로 확 기울어버리면 노예제로 이득보는 사람들도 더 이상 노예제 폐지에 반대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런 부분이 정말 부러운 거 같아요.
15/05/31 14:43
오유에서도 굉장히 이상한 이야기 많이 하시던데.. 님 글 보면 일본을 제외한 동양은 무지하고 비합리성만 난무하는 야만인이런 전제를 깔고 말하는 거 같습니다.
조선실록만 조금 깊이 살펴봐도 이성과 합리성에 관련된 논의와 토론은 넘치고 넘쳤습니다.
15/05/31 15:12
음.. 글쎄요.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전 말씀하신 것처럼 동양의 관념적 전통을 부정적으로 봅니다. 야만인은 부적절한 용어이지만 17세기 이후 동양은 서구 대비 거의 뒤쳐졌었던 게 맞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따라가야 한다고 봅니다. 간혹 '산업혁명' 한방에 서구가 동양을 앞질렀다.. 사실 서양 별거 없다는 논의가 요새 유행했는데 그러한 생각이야 말로 동양판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봅니다.
일본이 유일하게 근대화를 자체적으로 성공시킬 수 있었던 것은 물론 그럴만한 국제적/대내적 역량 및 자본이 축적되었기 때문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동도서기, 중체서용이 아니라 전면적인 서양화를 추진했기 때문이라고 보고요. 이와쿠라 사절단의 서기 쿠니타케의 '미구회람실기' 전편을 읽어보면 이들의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을 보다 잘 파악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국이 주장하는 Democracy with Chinese Characteristics? 박정희가 주장했던 Korean Democracy? 또는 리콴유가 말하는 Asian Values....다 웃기는 소리이죠. 실상은 기득권 보호를 위한 위장술에 지나지 않습니다. 비단 산업기술과 군사뿐만 아니라 지금도 정치학, 역사학, 경제학, 인류학, 문학, 미술, 음악, 영화, 디자인, 환경과학, 생물학, 의학 등 모든 분야를 서양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교수를 하려면 국문학이나 국악 그리고 국사를 제외하면 모든 분야에서 미국이나 유럽에 유학을 다녀와야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물론 현세 '서양의 패권'때문인 것도 있지만, 아직 학문의 깊이 등이 서양이 더 앞서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학문적 역량이 20세기에 뚝 떨어진 게 아니죠.
15/05/31 15:19
도대체 일동기유 하나보고 외교관이 무슨 목적으로 어떻게 갔는지도 모르고,
수신사가 일본에서 가르쳐주려는 기술 몇 개 배웠으면 식민지화를 피할 수 있었을거라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시는 분이 책 몇 권 읽어보시고는 서양일본 만세, 동양 무식한 놈들.. 이런 주장을 하는 게 어이가 없을 뿐입니다.
15/05/31 15:26
일본에 파견된 김기수는 고종으로부터 배워올 것이 있는지 알아보라라는 지시를 받고 갔습니다. 강화도조약 때의 굴욕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일본에 대해 악감정을 갖는 것과 실제로 그곳의 사정을 정탐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지만, 김기수는 자신이 맡은 역할을 전혀 수행하지 못했습니다. 1877년이면 조선 입장에서 아직 무언가를 해볼 수 있었던 단계입니다. 말도 안되는 주장이 아니에요. 실제로 한국외교사의 거두인 김용구 교수도 일동기유 당시 김기수의 태도를 못내 아쉬워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더 파고들면 김기수도 김기수지만 당시 조선에서 위기의식을 느끼고 지식을 배우려고 했던 사람이 지극히 소수였던 것이 아쉬운 일이죠. 일본이 본격적인 조선 식민지화에 착수했던 것은 청일전쟁에서 승리하고 나서부터 입니다. 그 이전까지는 그럴만한 역량이 안되었어요.
15/05/31 16:09
뭐 김기수 뿐만 아니라 사실 조선의 상황이 그래서 뭘 해도 안될 거 같이 보이긴 합니다.
지도자들도 겨우 몇년 전에 전근대에 살았던 사람들인데 근대적인 사고를 하라는 것도 무리죠. 만약 그렇다고 해도 대중의 지지 역시 못받을게 뻔하구요. 당장 좀 시일이 지난 아관파천 당시 그나마 온건파였던 김홍집이나 어윤중이 백성들에게 갈기갈기 찢겨 죽었는데 이시기면 오죽 하겠습니까? 사실 개화기 조선은 너무 준비가 안되었다고 생각합니다.
15/05/31 17:26
사회변화는 단순한 몇가지 '변화수용'같은걸로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근대화라는 다양한 측면을 '가진' 사회현상도 그러하죠. '근대화'의 측면에서 일본 역시 '자체적'인 근대화만 경험한 것은 아닙니다. 애초에 근대화는 특정사회 내부동력으로만 발생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런 경우는 어디에도 없어요 서양에서 관찰된 '근대화'라고 부르는 일 또한 다양한 조건이 갖추어져가면서 이루어진 '공동체' 혹은 '사회'간의 상호작용속에서 발생한 현상입니다.
15/05/31 16:16
합리적이고 이성적이었는데 문제는... 그 밑바닥에 깔린 인식이 너무 구식이라서 문제였죠.
아무리 노직이 훌륭해도 인풋이 안 좋으면 아웃풋도 .... 뭐 그들 잘못은 아니죠. 세상이 이렇게 빨리 변할 줄 그들도 상상하지 못했을 테니까요. 옛날에는 이 때 지도자들을 욕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악질적으로 나라 팔아 먹은 인간들 빼면 좀 애잔합니다. 뭐 그렇다고 그들이 훌륭했다는 아니구요.
15/05/31 16:11
경제적 이유도 있지만 사상적 변화도 큽니다.
인간이란 참 보수적이라 경제적으로 한세기전 구식인 노예제도를 유지하기 위해서 19세기 중반 미국은 무려 수십만명의 목숨을 버려 가면서 내전을 했죠. 남부 지주들에게 노예는 이미 한세대 전 유물이었지만 경제적 자본이 아니라 사회적 자본으로써 노예는 유용했거든요. 여기에 철퇴를 내린게 바로 민권운동이라는 것이죠. 또한 중동에서는 여전히 노예가 경제적으로 유용했는데 영국의 노예 무역 금지 때문에 이슬람 원리주의 운동의 토대가 되는 마흐디 반란이 일어 난거 보면 순수 경제적 이유로 모든 걸 설명하기는 힘듭니다.
15/05/31 17:21
정치경제적인 이유죠.
사회적 자본으로서의 유용성 역시 이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민권운동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 역시 해당하는 운동을 수행할 최소한의 자원이 축적되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니까요)
15/05/31 16:02
'합리적' 이라는 건 현재 시점에서 바라본 입장인 것이고 상당히 상대적인 기준입니다. 100년 전 합리성의 기준이 다르고, 200년 전 합리성의 기준이 다르고... 300년 전 유럽 토론이 합리적에 가깝다고 느끼셨다면 그건 그냥 그 쪽 문명이 좀더 발달된 것을 나타내는 지표일 뿐, 어떤 문명의 특성을 가리키는 요소가 아닙니다.
그리고 노예제 폐지는 경제적인 이유에서 폐기된 것이고, 거기에 덧씌운 명분이 민주주의 그런 것일 뿐입니다. 문명이 발전하면 가게되는 필연적인 코스일 뿐 이 것도 어떤 문명의 독특한 성격을 보여주는 지표가 아닙니다. 과거에 주름 잡았던 유럽 중심주의의 역사관에 다분히 물들어 계신 것 같은데... 요즘 학계의 추세와도 정반대 방향의 주장입니다.
15/05/31 16:03
(2)
중국 통일이 좀더 늦어지거나 없었다면 제자백가시대의 세객으로 대표되는 거칠 것 없는 활발한 토론문화가 더 활짝 꽃피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통일 이후엔 분서갱유에다 좀 튄다 싶으면 모조리 반역으로 죽이기 바빴으니... 인쇄술이 발달하고 언론기관이 존재했던 일제강점기조차 전후의 전통 단절이 엄청났었는데 분서갱유 전후가 얼마나 달랐을지는 상상조차 잘 안 될 지경입니다.
15/05/31 15:59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감안해야 할 부분이 있겠습니다만, 글래드스턴도 결국 다른 나라를 '야만인'이라고 부르며 침탈하는데 앞장섰던 제국주의 시대의 정치가에 지나지 않습니다. '양심있는' 같은 수식어를 붙여주기엔 꺼림직하죠.
15/05/31 16:19
그래도 글래드스턴은 훌륭한 정치인입니다. 사실 제국주의 정책에 딱히 찬성한 사람도 아니고요.
민주주의사에서 그가 도입한 수많은 정책과 민권 운동에 기반이 되는 정책을 생각하면 말이죠.(의무교육, 비밀투표, 자유투표, 노동운동 인정, 매관매직 폐지) 그리고 영국에 핍박 받았던 아일랜드에 자유를 준 인물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비난 받아 마땅한 제국주의 정치인으로 통으로 묶이는 건 너무한 해석입니다. 또한 남미 독립에 상당히 많은 공을 세운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선거에 진 이유도 디즈레일리의 보수당의 제국주의 정책 반대나 아일랜드 자치권 찬성 같은 것 때문입니다.
15/05/31 16:14
사실 글래드스턴 경을 존경은 하지만 그가 전쟁을 반대한 건 사실 그렇게 유쾌한 이유가 아닙니다.
그의 논리는 당시 유행했던 백인의 의무(우수한 백인이 보다 도덕적이고 진보적인 방식으로 야만족들이 일깨워야 한다)에서 유래했더군요. 그런 면에서 도덕적인 백인이 왜 이런 비도덕적인 짓을 하는가에 대한 개탄에 가까웠습니다.
15/05/31 21:50
어디까지가 서양이고 어디까지가 동양인가요? 중동은요? 러시아는요? 혼혈인은 어떻게 사고하나요? 부모님은 서양인인데 태어나고 자라기를 동양에사 한 사람은요?
일반화를 하셔도 정도껏 하셔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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