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초, 당일치기 출장길에 사수와 만나기로 한 장소에 차를 세운 뒤 나는 아랫배에 느껴지는 위화감을 단지 늦더위를 못 이겨 틀었던 에어컨 탓으로 치부했다. 체온을 조금 올리면 나아질 것으로 생각한 나는 차에서 내려 어느덧 가을이 가까워진 쪽빛 하늘을 바라보며 의식적으로 아랫배의 위화감을 외면해보려 했다. 하지만 부질없는 일, 30여 년의 경험에 비추어봤을때 이미 내 아랫배는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으며 내용물의 수분함량이 높아 점도는 무척 낮을 것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사수의 집이 가까운 곳, 몇 번 왔던 곳이지만 보통 바깥에서 눈에 띄지 않게 설계된 화장실은 내 눈에 띄질 않았다. 몇 군데 상가의 계단을 드나들었지만, 일반적으로 그렇듯 공용화장실은 굳게 잠겨져 있었다. 왜 이 나라는 공용화장실을 개방하도록 법으로 의무화하지 않는 것일까. 높으신 양반들은 급 똥 따위 겪어본 일이 없단 말인가. 성실한 납세자이자 투표권자로서 다음 선거에서 공용화장실 개방을 공약하는 후보에게 내 표를 던지기로 다짐했다.
약속장소 부근에서 두리번거리며 나를 발견한 사수는 그때를 이렇게 회고한다.
“종이사진(가명)의 동작은 아침에 어울리지 않게 매우 신속했으나 군더더기가 많았습니다.
그것은 특정 장소를 목표로 하는 움직임이 아니라는 것이 명백했습니다.
게다가 평소 까무잡잡한 종이사진의 얼굴이 유난히 창백했고, 늦더위치고는 매우 많은 땀을 흘리고 있어 저는 직감했습니다.
…급 똥이구나.”
사수는 인사도 생략한 채 나에게 외쳤다.
“네 뒤쪽 골목길 입구 2층짜리 건물의 중간층 화장실은 상시개방이야!”
고맙다는 인사는 이미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였기에 나는 멀리서 눈빛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사수에게 전했다. 사수는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담배를 꺼내물었다.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무언의 위로였다.
목적지는 멀지 않았다. 1층은 창고, 2층은 사무실로 쓰는 심지어 계단 중간 참의 화장실의 반쯤 열린 문은 건물 바깥에서도 확인할 수 있을 정도였다. 나는 길잃은 아이가 엄마를 만난 듯한 표정으로 건물의 문의 손잡이를 잡아당는데…아뿔싸 건물의 입구는 잠겨있었다.
나는 자리에 주저앉고 싶었다. 더 이상의 방황을 하기엔 내 괄약근의 힘이 이미 소진된 터였다. 어떻게 할까, 그냥 모든 것을 포기하고 육신의 안식을 얻을까, 하지만 그러기엔 오늘 하루는 많이 남았고, 속옷 하의를 포기하기엔 내 청바지는 너무 거칠어 내 연약한 피부가 온종일 견딜 수 있을 것인지 걱정했다.
“무슨…일이시죠?”
뒤에서 들여오는 음성에 고개를 돌리니 나와 비슷한 또래의 남성이 도대체 당신은 누구냐 하는 표정으로 서 있었다. 내 얼굴이 초면에 좋은 인상을 남기긴 역부족이라는 것을 나도 안다. 게다가 지금 까무잡잡한 피부가 표백될 정도로 창백한 데다가 땀까지 흘리고 있으니 상대방은 무의식적으로 방어적인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을 터였다.
“화장실 좀 쓸 수 없을까요?”
그간의 사정을 설명하기에는 사안이 워낙 급한지라 단도직입적으로 요청했고, 상대는 그 한마디로 상황을 파악한 듯 사원 카드로 현관을 열어주며 말했다. 상황파악과 대처가 매우 뛰어난 사람임을 직감한 나는 그가 직장 내에서 꽤 신뢰받은 구성원임을 확신했다.
“휴지는 안에 비치되어 있을 겁니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는 힘조차 아껴야 할 상황이기에 나는 고개를 살짝 숙여 감사를 표한 뒤 문을 열고 계단 중간 참으로 달려 올라갔다. 그는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내 뒤에 대고 말했다.
“너무 서두르지 마세요!”
한번에 계단 서너 개를 뛰어오를 수 있는 내 신체적 장점과 운동능력이 너무 고마웠다. 목적지에 도착한 나는 아내를 처음 만났던 그날처럼 빠르게 하의를 내렸다. 하지만 방심해서는 안 된다. 마지막 순간에 내 미세한 괄약근의 통제에 실패하면 여태까지의 노력이 허사가 된다. 예상보다 수분함량이 조금 모자란, 액체와 고체의 중간자적 물질을 배출하며 영혼과 육신의 안식을 얻는 순간…나는 억만장자가 부럽지 않았다.
상황이 종료되고 운전석에 앉아 출장길에 올랐다.
그날은 무척 행복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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