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전에 싸이코패스 관련 다큐에서 본 것 같네요. 싸이코패스의 뇌를 평범한 사람과 비교해보면 자제력이나 억제하는 기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어떤 욕망이 생겼을 때 그것을 억제하지 못하고 그냥 저질러 버린다고. 그래서 그토록 끔찍한 범죄들을 저지르게 되는 거죠. 놈들의 행동패턴은 그것과 비슷해요. 욕망을 억제하는 브레이크가 박살나버린 사람.”
“단순히 욕망을 억제하지 못한다고 그렇게까지 추악한 괴물로… 변하는 건가요?”
“결국 인간도 동물인걸요. 지금은 잘난 척 지구를 지배하며 도덕이니 명예니 떠들어대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집단생활을 하면서 공동체를 위해 만들어진 규율 때문에 개인의 욕망을 억제하면서 생긴 인간만이 지닌 가치관이죠. 법과 도덕이 존재하지 않으면 수백만의 사람들이 한 도시에 모여 생활하는 게 가능할까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법과 도덕은 결국 집단 생활 영위를 위해 사회지도층이 만들어놓은 울타리일 뿐이에요.
가축이 울타리를 넘어가려고 하면 따끔하게 벌을 줘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조용히 풀이나 뜯고 새끼를 낳고 멍 때리게 만드는 거죠. 목장 주인은 가축의 고기와 가죽이 계속 필요하니까.”
“그렇네요. 생각해보니 그들의 행동패턴에 욕망이란 키워드를 넣으면 납득이 가요. 사람을 미워하니 공격하는 거고 성욕과 소유욕 때문에 강간하고 금품을 뺏는다. 그럴싸한데요?”
“다행이 어느 정도 가설이 맞아떨어지는 것 같네요. 반복적으로 내뱉는 짧은 단어들도 그 욕망과 관계된 게 아닐까요? 아직도 어떻게 해서 억제력을 잃게 됐고 전염되는 지는 알 수 없지만요.” 승현씨는 정은씨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데 왜 웃는 걸까요?”
“네? 아니 저 안 웃었는데요.”
어리둥절하며 되묻는 정은씨의 모습은 그녀가 왜 이 사무실 최고의 인기녀인지를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증거였다. 시종일관 무표정했던 승현씨마저 입을 벌리고 허허 웃었다.
“귀여운 정은씨 말고 그 놈들이요. 가장 큰 특징이 항상 웃고 있다는 거잖아요.”
“네? 아니 그.. 으히힝. 전 또 저 얘기하는 줄 알았죠 치. 하고 싶은 그대로 행동하니까 행복한가 보죠 뭐.”
“자신의 욕망을 그대로 행동에 옮기기 때문에 행복해서 웃는다? 너무 1차원적이긴 한데 맞는 말 같네요. 웃는다 라. 계속 그놈들이나 미친놈들이라고 부르기도 뭐하니 명칭을 정할까요? 좀비 어때요?”
“좀비요? 되살아난 시체처럼 보이진 않던데.”
“전투화로 여러 번 머리를 찼는데도 꼼짝도 안 했다면서요. 직접 싸워본 건 아니지만 꽤 튼튼할 것 같은데요?”
“뭐 명칭이 중요한가? 그렇게 합시다. 사람 물어뜯고 좀비랑 비슷하네. 그보다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할건지 좀 정해야 하지 않겠어? 계속 여기서 죽치고 있을 꺼야? 여긴 음식도 없고 잘 곳도, 화장실도 마땅치 않아.”
성훈씨의 말이 맞았다. 당장 거리에 사람들이 몰려 위험하다는 생각에 다시 돌아왔을 뿐 사무실은 장시간 머물기에 좋은 장소는 아니다.가장 중요한 출입문이 유리로 만들어진 자동문이기 때문에 안전성이 떨어지고 정수기로 물은 마실 수 있지만 중요한 식량이 부족하다. 가끔 입이 심심할 때 먹으려고 사놓은 과자 정도가 전부다.
“그래도 밖보단 안전해요. 댁이 어디신지 모르지만 통제 불가능한 군중으로 가득한 거리보다는 이 작은 사무실이 더 나을 거에요. 빠르면 2~3일 내로 상황이 정리되고 정부에서 지침이 나오지 않을까요?
그때까지 버티려면 음식을 좀 구해야겠어요. 같이 지하2층에 갔다 오는게 좋겠네요. 거기에 편의점과 구내식당이 있으니 충분한 식량을 구할 수 있을 겁니다.”
“아까 지하 카페테리아에 좀비가 한 명 나타나긴 했었는데 여자 액세서리부터 챙기는 놈이었으니 수수하게 꾸미고 가면 괜찮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 호신용 무기라도 챙기는 게 좋겠네요.”
“사무실인데 뭐 쓸만한 게 있겠어? 죄다 컴퓨터뿐 이구만.”
“그래도 찾아보죠. 혹시 알아요? 이 사무실에 남다른 취미생활을 즐기는 분이 한 두 분쯤 계셔서 생각도 못한 물건이 나올지.”
사무실을 돌아다니며 자리가 빈 책상과 서랍을 샅샅이 찾았다. 대부분 서류 뭉치나 문구용품뿐이었다. 간혹 사탕이나 초콜릿 같은 주전부리가 나오긴 했지만 간단한 식량일 뿐 무기로 사용할 만한 물건은 보이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거 봐, 뭐 없다니까. 여기가 할리우드 영화에 나오는 미국도 아니고 샷건이나 도끼 같은 무기가 나올 턱이 없지. 그보다 그 좀비놈들이 덤벼오면 우리가 죽여버려도 되는 거야? 법적으로 문제 생기는 거 아냐? 우리나라 정당방위 성립조건 겁나게 까다로운 거 알지?”
“알죠. 하지만 그래 봐야 최악이 무기징역인데 얼굴 물어 뜯겨서 죽는 것 보단 감옥신세 지는 게 낫지 않을까요?”
“옘병. 인생 참 오늘만 생각하는구나. 좋겠다 속 편해서.”
역시나 테러리스트 아니랄까 봐 성훈은 계속해서 짜증만 내며 주변 분위기를 불쾌하게 만들었다. 짜증이 치솟는 와중에 멀리서 책상을 수색하던 승현이 말했다.
“여기 괜찮은 게 하나 있네요.”
그가 팔을 들어올리자 작은 아령이 하나 보였다. 기껏해야 4키로? 6키로? 운동 좋아하는 남자 직원 중 누군가가 사무실에서도 헛된 시간을 보내지 않길 바란 모양이다.
“아령? 그걸로 다가가서 머리라도 후려치게? 그 전에 물어 뜯길 텐데.”
“아뇨. 이것만 가지고는 좋은 무기가 될 수 없지만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의기양양하게 웃는 승현의 다른 손에는 대걸레가 있었다. 도대체 대걸레가 왜 사무실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씩 웃으며 대걸레의 끝자락에 걸레를 떼어내고 아령을 테이프로 감싸 붙이기 시작했다. 몇 차례 반복하자 중세시대 전쟁 영화에서나 볼법한 폴암 같은 무기가 완성됐다.
“내구도는 좀 떨어지겠지만 그래도 쓸 만 할거에요. 아령이 1개 더 있으니 이것도 다른 쓸만한 물건을 찾으면 붙여서 사용해보죠.”
사무실을 더 찾아봤지만 더 이상 쓸만한 물건은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무기 하나만 들고 남자 셋이서 지하 2층에 위치한 편의점에 가서 식량을 구하고 무기나 방어구로 쓰일만한 물건들을 찾아오기로 했다. 정은씨는 사무실에 남아서 거점을 지키고 좀비에 대한 정보를 좀 더 수집하는 일을 맡았다. 문 앞에 쌓여있는 책상들 사이로 기어들어가 사무실 밖 복도로 나오자 계단과 엘리베이터가 보였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2층에 도착하자 멀리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숨이 턱 막히며 근육이 긴장하는 게 느껴졌다.
“아 미치겄네. 우리 그냥 돌아갑시다. 저 소리 들리죠? 여긴 이미 끝났어.”
“여기까지 왔는데 좀더 가보죠. 소리를 들어보니 한 명뿐인 것 같은데.”
무기를 든 승현이 앞장서서 앞으로 걸어갔다. 엘리베이터 존에서 코너를 꺾어 왼쪽으로 향하자 지하 2층 큰 통로가 보였다. 일직선으로 쭉 뻗은 통로의 양 옆에는 헬스장과 편의점을 비롯한 편의시설이 있고 그대로 쭉 걸어나가면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출입구가 나온다. 통로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단지 귀에 거슬리는 웃음소리만 계속해서 들려올 뿐이었다.
“옘병 잘도 처 웃네. 그리 행복한가? 우린 간 쪼들려 죽겠구만.”
편의점으로 다가갈수록 웃음소리는 점점 커졌다. 편의점보다 앞에 위치한 헬스장을 지나가는 순간 자동문이 우리 일행을 인식하고 문을 열었다. 그 순간 웃음소리는 엄청나게 커져 소름 끼치게 고막을 찔러댔다. 고개를 돌려 문 안쪽을 바라보니 엄청난 근육질의 남자가 오일 대신에 피를 바른 채 몸짱 콘테스트에 나온 것처럼 포즈를 취하며 거울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이제는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씨발… 저 새끼 뭐야?”
“몸짱! 근육 근육! 한 세트! 두 세트! 크하하하하하! 흐흐하 흐하하하아아!”
나체의 남자는 우리에게 시선을 박아놓은 상태로 몸을 숙여 바닥에 있는 역기를 들어올렸다. 얼핏 봐도 엄청나게 무거워 보였지만 그는 한 손으로 당구 큐대 집어들 듯 가볍게 들어올렸다. 그리곤 천천히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일단 도망 가는 게 좋겠네요. 다시 엘리베이터 쪽으로 돌아가세요. 저는 편의점 쪽으로 갈 테니 사무실에서 다시 만나요”
“승현씨 미쳤어요? 저런 놈을 어떻게 상대하려고 그래요? 그냥 같이 돌아가요!”
“냅두고 빨리 돌아가자. 시간 낭비할 때가 아냐 죽는다고!”
성훈씨는 내 팔을 강하게 끌어당기며 엘리베이터 쪽으로 달려갔다. 반면 승현씨는 반대 방향인 편의점 쪽으로 달려갔다. 계속해서 우리와 나체의 남자를 번갈아 바라보며. 나체의 남자, 좀비겠지. 그는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나와 성훈씨는 전력질주를 하며 엘리베이터로 돌아와 급하게 버튼을 연타했다. 다행이 엘리베이터는 다른 층으로 이동하지 않아 바로 열렸고 들어가자 마자 다시 닫힘 버튼을 마구 눌렀다. 멀리서 역기를 끌며 다가오는 소리가 빠르게 가까워졌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속도가 너무나 느리게만 느껴졌다.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가 다시 위로 올라가는 순간 엄청난 충격음이 들렸다. 클럽에서나 느낄 수 있는 고출력 스피커의 비트 같은 울림이 몸 전체를 강타해 심장이 파르르 떨렸다. 끔찍한 공포가 공기를 집어 삼킨 듯 숨이 가빠졌다. 성훈씨는 바닥에 주저앉아 거의 울다시피 흐느끼고 있었다. 다시 5층에 도착해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우리는 복도로 나와 한참의 시간을 보낸 후에야 사무실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승현씨가 돌아온 건 저녁이 다 돼서였다. 많이 지친듯한 모습으로 편의점과 구내식당에서 가져온 식량들을 들어올리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사무실에서 기다리던 우리는 환호하며 그를 맞이했다. 어떻게 된 일이냐며 묻는 질문에 그는 한숨을 쉬며 힘겹게 말했다.
“다행이 그 나체 좀비가 준성씨 쪽으로 가더라고요. 전 잽싸게 편의점으로 가서 음식을 챙기는데 엄청나게 큰 충격음이 들렸어요. 금속과 금속이 만나 쾅! 하고 울리는 그런 소리요. 그 무식하게 큰 역기를 휘둘렀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걱정이 많이 됐죠. 누가 보더라도 그런 것에 맞으면 부상으로 끝나지 않을 테니까요. 갑작스레 공포심이 생겨 음식을 충분히 챙기지 못한 채 구내식당으로 도망갔는데 아무도 없었어요.
조리실 안에 들어가 조용히 몸을 숨기고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했는데 멀리서 역기를 바닥에 질질 끄는 그 소리가 들려왔어요. 크르륵 크르르륵. 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본능적으로 놈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는데 정말 심장이 터질 것처럼 두근거렸어요.그 나체 좀비가 원래 있던 장소인 헬스장으로 돌아갔다면 진작에 그 소리가 멈췄어야 했는데 바로 코앞까지 이어졌거든요. 소리니까 귀앞이라는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네요.
분명 소리는 바로 근처에서 들리는데 도저히 무서워서 눈으로 확인할 생각도 못한 채 계속 조리실 안 구석에서 덜덜 떨고 있었어요. 다행이 크르륵 소리는 다시 작아졌고 놈이 멀어지는 게 느껴졌어요. 하지만 한참 동안이나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어요. 저랑 같이 그 놈을 봤던 준성씨랑 성훈씨는 이해할거에요. 도저히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거든요. 문득 제가 들고 있던 이 대걸레 자루랑 아령을 합쳐 만든 조잡한 무기가 굉장히 한심하게 느껴지더군요.
이건 애들 장난이 아니라 진짜 현실로 일어나고 있는 끔찍한 일이란 걸 깨닫게 되었어요. 그렇게 한참을 공포에 떨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이제 돌아오는 길이에요.”
승현씨의 이야기에 누구 하나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잠시 어색한 분위기가 흐르고 난 후에 정은씨는 괜찮다, 이렇게 음식 가져오느라 고생했다, 세분 다 너무 고생하셨다며 격려했고 우린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승현씨가 가져온 음식을 확인했다. 편의점에서 파는 빵, 컵라면, 냉동식품, 햇반 등이 비닐봉지에 담겨있었는데 그리 많은 양은 아니었다. 사무실 밖 복도 끝에 있는 탕비실에서 전자레인지를 가져와 사무실 안에 설치하고 사무실 구석에서 냉동 식품과 햇반으로 저녁식사를 했다. 평소엔 쳐다도 안보던 인스턴트 식품들이 너무나 달콤하게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극한의 상황을 넘긴 후에 긴장이 풀려서일까, 식사를 마치자 졸음이 쏟아졌다. 좀비들이 빛에 대한 인지능력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조심해서 나쁠 것이 없기에 사무실 불빛을 최소한으로 유지하고 한 명씩 불침번을 서며 책상 위에서 잠에 들었다. 너무나 피곤한 하루였기에 불편한 자세에도 곧바로 의식을 잃었다.얼마나 잤을까. 귓가에 울리는 작은 속삭임에 눈을 떴다. 고개를 돌려 오른쪽을 바라보니 정은씨의 얼굴이 바로 앞에 있었다. 잠이 덜 깨 시야가 온통 뿌옇게 보였지만 여자들 특유의 향수냄새로 정은씨임을 알 수 있었다. 벌써 불침번 차례가 온 걸까. 손으로 눈을 비비며 인사를 건넸다.
“좋은 아침. 이미 출근했으니 좀더 자면 안될까요?”
“업무시간인데 뻔뻔하게 자놓고 출근이라뇨. 아직 퇴근도 안 했잖아요. 빨리 일어나요. 무서워 죽겠어요.”
창문을 바라보니 밖은 아직 어두웠지만 주변 빌딩의 불빛들이 아련히 보였다. 다시 정은씨를 바라보자 화장기 없는 수수한 얼굴이 평소보다 훨씬 더 어리고 순수해 보였다. 눈썹이 아래로 축 처져있어 기분이 좋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혼자 불침번 서느라 무서웠겠네요. 별 일 없었어요?”
“별일은 없었는데 가끔 멀리서 쾅 하는 큰 소리도 들려오고 불안해서 자꾸만 무서운 생각이 들어요. 친구랑 가족들한테 연락도 해봤는데 받는 사람이 별로 없네요. 걱정돼서 잠이 안 와요.”
“그래도 좀 자둬요. 오늘 하루 종일 긴장상태로 있어서 굉장히 피곤할 텐데 내일을 위해서라도 자는 게 좋아요.”
“으음 안 잘래요. 같이 얘기나 좀 해요. 어차피 혼자 불침번 서기 무섭잖아요?”
“에이. 이래 봐도 군대에서 전차 조종수 출신이었는데 무서울리가.”
“여긴 전차 없는데.”
“어.. 뭐 그렇긴 한데 그래도 밤에 혼자 불침번 서고 이런 건 군대에서 많이..”
“아 군대얘기 그만해요. 재미없어요. 안그래도” 갑자기 고개를 살짝 돌려 성훈씨를 슬쩍 바라보고 다시 나에게 얼굴을 가까이 붙이곤 속삭이듯 말했다. “성훈씨 군대 얘기 때문에 지루해 죽겠어요. 허구한날 자랑질이야 어휴. 남들 다 같다 오는데 나온 게 뭐 그리 자랑이라고.”
“그거밖에 자랑할게 없나보죠 뭐.”
“풉. 크크큭 그러네요 크크.”
그녀는 어린아이처럼 웃으며 손으로 내 팔을 가볍게 쳤다. 나도 입꼬리가 올라가며 웃음이 나왔다.
“아까 지하 내려갔을 때, 많이 무서웠죠?”
“어마어마했죠. 엄마엄마 하고 안 울어서 다행이에요. 진짜 체구가 이만한 남자가 100키로는 될 꺼 같은 역기를 한 손으로 들고 쫓아오는데 더 무서운 건 옷을 벗고 있었다는 거에요.”
“네? 옷을 벗은 게 왜 무서워요?”
“그 남자 거기가 음.. 아나콘다 수준이었거든요. 여차하면 그걸 무기로 쓸 거 같아서”
“어우.. 그런 얘긴 왜 해요 크크큭 아니 그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에 그런 게 눈에 들어와요?”
“어쩔 수 없어요. 남자의 본능이에요.”
“네? 헐.. 준성씨 그쪽 취향이었어요? 개인의 취향을 남성 전체에게 일반화시켜서 적용시키지 말아줄래요? 세상엔 좀더 일반적인 취향을 가진 남자가 더 많다고요.”
“으음?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본능적으로 다른 남자와 자신의 무기를 비교하게 되거든요. 얘가 내 경쟁자인지, 무시해도 될 놈인지, 도망가야 할 놈인지 판단해야 하니까. 여자들도 다른 여자 얼굴이며 몸매며 다 보잖아요?”
“여자들은 그냥 옷 이쁘게 입었나 이쁜 거 입었으면 어디 건가, 어떻게 입었나를 보는 거지 무슨 경쟁자에요 크큭. 이상한 얘기 좀 그만 해요 변태 같아 진짜.”
그렇게 나와 정은씨는 불침번 교대시간을 한참을 넘기도록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서야 잠들었다. 딱딱한 책상 위에 누웠는데도 이상하게 계속해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