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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5/03/28 01:32:55
Name 구밀복검
Subject [일반] (스포) 버드맨 - 영화의 바늘로 세계의 모순을 깁다 : 프롤로그

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view/b5aa6

존 윌리엄스, 슈퍼맨 테마곡.

* 본문 중에는 <버드맨>을 비롯한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전 영화들, <소피의 선택>, 만화 <몬스터>,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셜록 2세>, <블랙스완>, <패왕별희>, <코미디의 왕> 등에 대한 부분적인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읽는 데에 주의를 요합니다. 특히 0번 항목은 결말까지의 플롯을 써놓은 것이니 스포일러를 피하시려는 분들은 필히 피해가시기 바랍니다.

* 원래는 단일한 글로 쓰려고 했으나, 길이가 길어 전체가 게시되지 않아서 부득이하게 분절했습니다.


0.
<버드맨>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1) 과거 히어로물의 주연 배우였던 버드맨 리건 톰슨은 현재 대중적인 인기를 잃고 나락으로 떨어진 상태로, <사랑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 우린 무슨 이야기를 하지?>라는 연극을 통해서 연극계에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2) 대역으로 들어온 마이클 샤이너의 폭주 및 등장인물들 간의 복합적인 갈등, 적대적인 언론 등으로 인해 공연 준비는 어려움을 겪습니다. 3) 그 와중에 리건이 나체로 거리를 활보하여 프리뷰를 진행한 것이 화젯거리가 되고, 연극에 대한 여론은 반전됩니다. 4) 공연 당일 날, 리건은 권총 자살 연기를 하는 장에서 실탄이 장전된 권총을 사용하여 진짜로 자살을 합니다. 5) 자살은 미수에 그치고, 병원에서 깨어난 리건은 창문 밖으로 나가며, 이것을 딸인 샘이 바라보면서 영화는 마무리가 됩니다.



1.
버드맨의 감독인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가 지금까지 연출한 장편 영화는 총 5편인데, 2000년에 아모레스 페로스로 데뷔했고, 이후 21그램, 바벨, 비우티풀 등의 작품을 냈습니다. 버드맨까지 포함하여 15년 동안 5편을 낸 셈으로, 과작형 감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각각의 소재와 구성은 당연히 상이합니다만, 이 모두를 관통하는 테마나 주제의식 등은 비교적 일정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눈에 띄는 특징은, 비우티풀을 제외한 모든 작품들이 다중 플롯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며, 이를 통해 복합적이고 중층적으로 이루어진 세상의 모순성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 영화 패턴이 뻔하죠...

데뷔작인 <아모레스 페로스>부터가 삼중 플롯이었는데, 옴니버스처럼 세 개의 챕터로 나뉘어 있고, 각 챕터에는 전혀 상이한 인물들이 서사를 이끌어나갑니다. 첫 번째 챕터의 주인공은 밑바닥 인생 속에서 형수를 좋아하고 야반도주를 꾀하려 하는 인물입니다만 돈이 궁한 것이 고민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자신의 개가 명견 실버처럼 투견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투견판에 뛰어 들어 돈을 모으게 되죠. 두 번째 챕터의 주인공은 전국적인 슈퍼 모델이고 귀여운 애완견이 있는데, 유망한 사업가와의 오랜 내연관계를 청산하고 아예 새로이 살림을 꾸리죠. 그녀에게는 밝은 앞날만이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세 번째 챕터의 주인공은 게릴라 활동을 하던 반정부 운동가였으나 감옥에 갔다 오고 나서 킬러로 생활을 영위하는 인물로, 길거리에서 개들을 주워다가 집에서 여러 마리 키우는 것이 낙입니다. 이렇게 전혀 상이한 배경과 환경과 조건에 놓인 인물들이 의도치 않게 단 하나의 사건에서 맞닥뜨리면서, 마치 모든 창을 막아낼 수 있는 방패와 모든 방패를 꿰뚫을 수 있는 창이 한 자리에 만나듯이 모순이 일어나죠.

<21그램>의 경우, 심장이식을 기다리면서 아내의 간호를 받고 있는 대학 교수 폴 리버스, 마약 중독자였으나 좋은 남편을 만나고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리면서 행복을 누리고 있던 가정 주부 크리스티나 펙, 전과자였으나 신앙을 가지게 되면서 개과천선하고 가장이 된 잭 조단이 세 축이 되어 각각의 서사가 교차적으로 진행되면서 극이 전개됩니다. 이후 잭 조단은 크리스티나 펙의 남편과 아이들을 죽게 만들고, 크리스티나 펙의 남편의 심장이 폴 리버스에게 이식되고, 폴 리버스는 크리스티나 펙과 사랑에 빠져서 잭 조단을 죽이려 하는 식으로, 전혀 관계가 없던 세 사람의 인생이 하나로 연결되죠.

<바벨>은 한층 스케일이 커져서 일본인 사업가 야스지로는 모로코 가이드에게 총을 넘기고, 그 총이 모로코의 동네 꼬마들 손에 들어가고, 꼬마들은 누가 더 사격술이 좋은지 우열을 가리기 위해 내기를 하다가 모로코로 관광을 온 리차드-수잔 부부에게 우연히 총격을 가하게 되고, 이들이 사경을 헤매는 동안 아이들은 아들의 결혼식에 참여하려는 멕시코인 보모를 따라 멕시코로 갔다가 우연히 곤경에 빠지죠. 그럼으로써 멕시코, 미국, 모로코, 일본이라는 네 개의 상이한 배경이 서사적으로 통합이 되고요. 그리하여 언어의 분열을 일으켜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바벨탑을 쌓아나가는가를 논했죠.

<비우티풀>은 물론 다중구성은 아니지만 세계의 분열과 통합이라는 화두는 여전했습니다. 주인공인 욱스발은 스페인에서 중국인들 일자리를 알선해주고 수수료 받는 브로커이자 영매사입니다. 욱스발이 살고 있는 바르셀로나에서 스페인, 멕시코, 중국, 세네갈이라는 네 개의 세계가  교차되고, 여기에 욱스발의 눈으로 바라보는 사후세계라는 차원까지 추가되죠. 그럼으로서 현세와 내세가 중첩되고, 죽‘은’ 자와 죽‘을’ 자가 마주보게 됩니다.

이처럼, 이냐리투는 모든 영화에서 소재는 달리해왔을지언정, 분열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대상들이 사실은 이어져 있기도 하다는,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분열되고 조각난 각각의 대상들이 그 자체로 각기 대응하고 그로써 연결될 수 있다는 양면성과 모순성을 강조해왔습니다. 계급과 계층과 국적과 인종이 다른, 전혀 얽힐 일 없는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중첩되는지 보여줌으로써 말이죠. 분열된 대상들 간의 간극은 언뜻 냉엄해보이며 각각의 경계에는 드높은 장벽이 세워져 있는 것 같지만, 기실 그것은 모호하기 짝이 없으며 외려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부각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배트맨과 조커처럼 말입니다. 배트맨의 존재 자체가 조커가 존재하는 기반이고 조커의 존재 역시 배트맨에게 그러하죠. 양극단에 위치하며 서로 섞일 수 없는 둘이지만, 자신이 존재함으로써 상대를 존재케하고 상대의 존재를 통해 자신이 존재합니다. 그러면서 모순 상태가 정립되죠.


* 넌 날 완성시켜!



2.
다들 아시다시피, 모순이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며, 양립 불가능한 것들을 양립시키는 것입니다. A이면서도 A가 아닌 것이죠. 형식 논리학에서야 모순율이라고 이름할 정도로 모순의 논리적 오류는 명백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현실은 복잡다난하고 다층적인지라 A와 A가 아닌 것이 양립하는 경우가 흔하죠. 예컨대, <버드맨>은 비극이면서도 희극이고, 리건은 영웅이면서도 영웅이 아니며, 리건의 권총 자살은 자살을 꾀한 것이기도 하지만 영생을 꾀한 것이기도 합니다.

오늘날의 세상은 파편화되어 있습니다. 국적, 지역, 인종, 성별, 계급 등으로 사분오열 되어 있죠. 각각은 공동체 단위가 아닌 개인 단위로 존재하며 이해관계는 상이합니다. 모두가 이웃으로부터 문을 닫아걸고 살며 서로의 얼굴조차 모르죠. 결코 얽힐 일이 없어 보입니다. 자연히 이익과 약육강식과 도구적 이성과 합리성이 유일한 가치가 되며, 도덕과 윤리와 공동체 등의 전통적인 가치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일어나는 악다구니 속에서 흔적 없이 소멸됩니다. 누군가가 자신의 자유와 권리와 이익을 침해하는 데에 민감하게 굴며, 약간의 [폐]조차 용납하지 못합니다. 모두가 모두에 대해 냉정하고 무관심하며 간섭을 거부하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더 이상 스스로 우리가 먹고 입을 것을 마련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먹고 있는 음식, 우리가 입고 있는 옷, 우리가 살고 있는 집, 우리가 읽는 책, 우리가 쓰고 있는 스마트폰 등등, 그 중에서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낸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모두 누군가, 그것도 단일한 개인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복수의 타인들의 연쇄적인 손을 거친 것들이죠. 이처럼, 겉으로 보기에는 모두가 다들 오롯한 당당하게 자유로운 개인임을 역설하면서 고립되어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털 뽑힌 칠면조와 다를 것 없는, 고자이며 시시하고 반편인 존재들입니다. 가령 영화 <나는 전설이다>처럼 세상의 모든 사람이 멸절하고 홀로 남은 상황이 닥친다고 가정 할 때, 고대인들은 어떤 식으로든 생존할 수 있겠지만, 현대인들이 과연 그와 같이 생존할 수 있을지 의문이죠. 당장 불을 피우고 상처를 소독하는 것부터가 난관일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헌신과 배려가 없이는 눈의 들보조차 빼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물론 이에 대해 분업화와 전문화와 기술적 혁신이 이룩한 성취와 확장된 인간의 경험과 감각 등의 클리셰를 거론함으로써 현대인이 전통사회의 인간들보다 얼마나 지대한 복락을 누리고 있는지, 얼마나 유능하고 역량 있는 존재인지를 역설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주장들의 논리적인 정합성과는 별개로, 우리 자신 스스로의 본능이 불만족을 느낍니다. 우리의 인체는 우리의 사회만큼 빨리 진화할 수 없기에, 우리의 감정과 감수성은 우리 스스로 자연선택을 이겨내야 했던 시기와 다르지 않고, 이것이 소외와 무력감으로 이어집니다. 여기에 인구는 막대하게 늘어났으니 더더욱 그렇죠. 분모로서의 세계와 분자로서의 개인의 격차는 커지면서 분수값은 0에 근접하게 됩니다. 단신으로 거대 권력과 시스템을 붕괴시킬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제이슨 본느님 같은 것은 현재로서는 실현 불가능한 판타지이고, 그렇기에 많은 이들이 그의 용맹무쌍함에 매혹되는 것이고요.

즉, 각각의 개인들이 더더욱 자유롭고 고립적이며 분업적인 삶을 누리면서 타인을 자신의 인생의 영역으로부터 배제시킬수록, 역설적으로 그네들의 인생은 더욱 밀접하고 단단한 연관성을 가지게 됩니다. 특히 세계화 시대가 되면서 모든 이들은 분열되면서 동시에 연결되었죠. 독립성과 의존성이라는 양 극단의 특성이, 서로 섞이지 않고 각자의 고유성을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발생하여 복잡하게 뒤얽혀 복합체를 이루죠. 그럼으로써 A와 not A가 공존하는 모순이 발생하고요.

이러한 독립적이지만 의존적이고 왜소한 개인과 분열되었지만 연결되어 거대해진 세계가 이루는 화성 속에서 아이러니가 태동합니다. 우리는 독존하면서도 의존하며, 확신하면서도 불안하고, 반란을 꿈꾸면서도 질서를 그리워하죠. 우리는 전통과 인습과 공동체와 가족으로부터 독립하면서 개인으로서의 자유를 얻었지만, 우리가 얻은 자유는 우리에게 선택을 강요합니다. 선택은 내가 원하는 바를 달성하기 위한 능동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내가 원하는 바를 포기하는 수동적인 것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모순적이죠. 이 과정에서 나의 선택이 항상 목적의 달성으로 이어지리라는 보장은 없으며, 오히려 의도와는 정반대의 결과가 우연으로부터 나오곤 합니다. 인간은 전통이나 관습 등으로부터 자유로워졌지만, 그 말인즉슨 제 앞가림은 제가 알아서 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고 인생은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 되었으며 선택 한 번 잘못했다가는 박살이 나는 혼돈이 도래했죠. 인생은 예측 불가능한 것이 되며, 우연과 로또가 세상을 지배합니다. 자유는 예속으로, 욕망은 결핍으로, 자신감은 절망감으로 돌아오며, 세계를 쥐려하지만 세계로부터 배반당하죠. A가 not A로, not A가 A로 이어진다는 것은 이치에 닿지 않지만 현실에서는 실제로 그러하며, 이것이 아이러니입니다.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대표적이죠. 모스는 안톤 쉬거의 추적을 따돌렸다 싶은 상황에서 장모의 삽질로 인해 엉뚱하게도 안톤 쉬거가 아닌 멕시코 갱단에게 살해당하죠. 장모 역시도 자신의 사위를 구하기 위해서 취한 행동이었지만, 결과는 사위의 죽음으로 이어집니다. 각각의 인물들은 모두 좋은 결과를 꿈꾸며 선택을 하지만, 그 중에 의도대로 진행되는 것은 거의 없고,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사소한 트러블로 인해 미션 컴플리트를 앞두고 있다가 파국을 맞게 되죠. 이 영화의 악역인 안톤 쉬거가 강조하는 것 자체가 그런 것이죠. 한 마디로, "인생은 복불복이다."라는 것입니다.



* 인생은 동전 던지기여!

이러한 모순적인 아이러니의 혼란 속에서, 이전의 선택 과정에서 포기했던 열정과 정념과 취향 등에 기반한 가치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이것은 가지 않은 길로 비유할 수 있는 내적 갈등을 일으키며 일종의 정신분열적인 태도를 낳는데, 그로부터 박탈감과 후회와 회한과 같은 자학적인 정서가 발생합니다. 이런 것이 자승자박이죠. 자신의 선택이 자신을 옳아매는. 좋은 예로, 영화 <소피의 선택>이 있습니다. 폴란드인인 소피(메릴 스트립 분)은 수용소로 끌려가던 중, 나치 독일의 장교를 매혹시키게 됩니다. 그녀는 장교에게 자신의 자식들을 살려달라고 애원합니다만, 장교는 아들과 딸 중 어느 쪽을 넘길 것인지 양자택일을 강요하죠. 어느 것도 선택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소피는 I can't choose를 외치며 울부짖다 결국은 딸을 선택하죠. 이후 평생을 후회 속에서 살며 자신을 오롯이 긍정하지 못하고 운명의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요. 마치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 <몬스터>의 엔딩을 연상케 합니다.



* I can't choose!



* 필요 없던 것은 A와 not A 중 어느 쪽이죠? A와 not A는 쌍둥이이고 같은 것인 걸요.

이렇게 하나로 딱 떨어지지 않는, A와 A가 아닌 것이 뒤범벅이 된 정신 없는 세계에서, 각 개인의 분열과 연결이 공존하는 모순적인 양상을 그려낸다는 것은 곧 세상 전체를 감싸려는 것이죠. 그 점에서 이냐리투는 참으로 야심찬 감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야심찬 감독이 <버드맨>에서 주목하는, 분열되면서도 연결되어 있는 모순적인 것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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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토스
15/03/28 05:08
수정 아이콘
정성스런글 감사합니다.
검은책
15/03/28 08:40
수정 아이콘
드디어 올라왔군요. 이제나 저제나 기다렸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영화에 대한 대단한 안목을 가진 사람은 아니지만 [버드맨]을 보면서
'이 영화라면 서사예술로서 영화가 소설보다 못하다고 말할 근거는 사라지는 구나'라는 생각을 했지요.
기대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잘된 작품이라고는 상상 못해서 보고 나서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였어요.
그 이유가 바로 위에 언급된 '아이러니'때문인데, 비극과 희극이라는 동전의 앞뒷면은
작가(또는 감독)가 등장인물과의 거리두기를 얼마만큼 성공적으로 이끌어내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지요.
제가 이 영화를 얼토당토 않게 보르헤스의 작품과 비교했던 것도 어쩌면 제 놀라움이, 보르헤스를 읽었을 때의 놀라움과 연결되었기 때문입니다.
감독이 보르헤스의 책을 소품으로 사용하기도 했구요.
얼마나 영리합니까!
쓸데없는 소리 그만쓰고 2부 읽으러 가야겠어요.
검은책
15/03/28 09:48
수정 아이콘
2부까지 다 읽고 다시 왔습니다.
이 영화를 도합 네 번 정도 본 것 같은데(제가 원래 본거 또 보는 여자라...크크크 '블랙스완'은 한 오십번은 본 거 같네요)
페이드인과 페이드 아웃과 같은 연극적인 연출도 의도한 것일까 궁금합니다.
관객의 입장에서 보자면 영화를 보는 동안 계속해서 카메라 한 대로 여러 인물을 엿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데(글에서 여러번 설명해주셨죠),
연극처럼 갈등의 양상이 일단락되는 시점에서 카메라가 하늘을 비추며 페이드 아웃이되고,
다시 하늘을 비추며 페이드 인이 되었다가 극장 안으로 시선을 돌리도록 만들죠.

처음 카메라가 떨어지는 별을 비추고(하늘) 그리고 잠깐 해변가에 널부러진 해파리가 나오고, 갑자기 리건이 공중부양하는 뒷모습을 비추죠.
그후 이런 저런 갈등들이 그려지다가 샤이너와 샘이 극장 테라스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서 샤이너가 담배 연기를 뱉어내며 하늘을 바라보고는
연극처럼 페이드 아웃...다시 페이드 인이 되는 순간은 리건의 방이죠.
다시 페이드 아웃되는 순간은 리건이 자기를 쏘고 하늘에서 내려온 빛이 무대를 비추는 조명으로 바뀌고, 텅빈 방을 비추는 햇빛으로 바뀌는 장면이죠.
암전과 빛을 이용해서 페이드인, 페이드아웃, 그리고 이것은 다분히 리건의 의식과 연결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말하자면 리건이 깨어있는 동안은 페이드 인이고 정신이 나간동안은 페이드 아웃인거죠.
해파리들 때문에 자살하지 못한 찌질한 예술가로서의 리건, 이것이 처음 리건이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암시이며
자살시도 이후 내적 갈등이 봉합되는 시점에서 해파리를 쪼아먹는 새들이 등장하는 것 또한 의미심장합니다.
말하자면, 이런 페이드인과 페이드아웃까지도 영화 [버드맨]을 둘러싼 모든 사건들은
리건의 의식이라는 미로를 탐험한 것으로 여겨지도록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는 이야기입니다.

써놓고 나니 미친 영화 맞네요. 앞으로 몇번을 더 봐야 직성이 풀릴지 모르겠어요.
구밀복검
15/03/28 16:55
수정 아이콘
네. 공감합니다. 말씀대로 카메라의 워크는 라비린스로서의 리건의 자기검열과 의식의 흐름, 강박 등을 반영하죠. 다만 동시에 카메라의 시점은 평범하게도 창작자의 전지적 시점으로 해석해도 무리가 없기도 하며 - 예컨대 샘과 마이크를 잡아주는 장면 같은 것이 그렇죠. 해당 시점에 리건이 부재하고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 카메라의 시선에는 이 모순성이 병존하죠. 이 점에서 의미치를 분명하게 고정시킬 필연성까지는 없지 않나 싶고, 작품을 영화 내적으로 정당화해야한다는 요구에 대해 오리발을 내밀기 위한 일종의 알리바이라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버드맨> 자체가 그런 식의 <제스쳐>와 페이크 모션을 많이 넣어 완결성을 추구하기보다는 관객에게 낚시질과 장난질을 많이 친 작품이기도 하고요. 예컨대 리건이 거리에서 잠에서 깨어났을 때나, 건물에서 뛰어내렸을 때나, 병원에서 잠에서 깼을 때, 이 모두 실제로 서사가 진행된 것이 아니라 그저 리건의 꿈이라고 생각할 여지가 있고 또 그 여지에 입각하여 작품을 해석해도 재미나긴 하지만, 굳이 어느 하나로 의미치를 고정시킬 필연성이 보이지 않으며 감독 역시도 그저 페이크 모션만 보여주면서 의미와 해석의 여지를 풍성하게 하여 우리들로 하여금 물고 뜯고 빨게 만들죠. 범박한 비유겠습니다마는 무협 소설의 클리셰로 '허허실실:극에 달한 고수에게 있어 허초(페이크)는 실초(진의가 담긴 공격)와 구분되지 않은채 언제든지 교환될 수 있는 것'이라는 식의 묘사가 등장하곤 하는데, <버드맨>이야말로 이러한 허허실실의 극을 보여주면서 그 어떤 영화보다도 변화무쌍함을 보여준 영화가 아닌가 합니다. 그것이 말씀하신 은유와 현실에 대한 루슈디의 언명과 통하는 것이 또 있을 테고요.
리니시아
15/03/28 17:45
수정 아이콘
페이드인 페이드 아웃은 의도적인 연극적 연출인것 같았습니다.
리건의 의식의 미로라..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이 있을까 싶네요.
미친영화 크크크크 동의합니다.
더불어 1부, 2부의 글 또한 미친거같네요 크크크ㅡ
사티레브
15/03/28 10:35
수정 아이콘
영화를 못봐서 읽지를 못하네 ㅠ
추천만 잽싸게 누르고 가욥
검은책
15/03/28 13:17
수정 아이콘
두 번 정도 정독하고 나서, 구밀복님님도 상찬하신 살만 류슈디의 명언을 한 번 되새겨 보도록 하죠.
게시판 분위기도 어수선한데 정작 본인은 낙수효과 운운하며 노잼글이라고 너무 겸손하시지만 말입니다.
[현실은 분명 은유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있을 것이며 은유는 현실을 비현실적인 것으로 만들지 않는다.]
글의 제목으로 써주신 [영화의 바늘로 세계의 모순을 깁다]와 일맥상통하지요? 흐흐흐
벼는 익을 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정작 좋은 컨텐츠를 생산하시는 분들은 어떤 소모적인 논쟁에도 침묵으로 대신하는 느낌입니다.
항상 많이 배웁니다. 글 좀 자주 좀 써주세요. 흐흐흐
15/03/30 13:32
수정 아이콘
제목도 너무 멋지네요... 글내용은 말할것도 없구요
2부까지 다 읽고 댓글을 더 달겠습니다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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