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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3/18 16:34
교수법에 동의함과 별개로, 치열하냐 치열하지 않냐와 별개로
저런 무아지경 한번 경험하고 나면 저 일 못 끊을거에요. 그래서 저도 별볼일 없이 대단한 것도 못했는데 아직도 이일을 하고 있는걸테구요. 정말.. 겪어보면 안다, 포도 먹어보면 안다말고는 전 표현을 못하겠네요. 사실 전 앤드류가 한 행동 다 해봤습니다. 전공이 드럼은 아니지만요.
15/03/18 16:39
저도 요새 이게 많이 궁금하더라구요.
가끔 치열하게 살고 싶기도 하고.. 이 정도면 이제 쉴때되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31살).. 앞으로 치열하게 안살면 뭐먹고 사나 싶기도 하고..ㅠㅠ 돌멩이가 되고 싶은 하루네요.
15/03/18 16:39
개인적으로 항상 드는 사례인데, 요한 크루이프는 담배 피우고 훈련 열심히 안하고도 축구 잘만 했습니다. 그렇다고 축구선수에게 담배 피우고 훈련 열심히 안해도 된다고 하지는 않으니까요. 마찬가지로 저 방법이 옳든 그르든 저렇게 해서 원하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하면 그렇게 하는거고, 그건 어디까지나 그들의 삶이지 모든 이의 삶이 될 수는 없겠죠. 우린 그냥 그런 삶이 있다는것만 알면 되고, 영화는 그러다가 실패했을 경우 어떻게 망가지는지는 보여주지 않으니까요.
15/03/18 16:45
치열하지 않은 삶이 결코 죄악은 아니죠.
치열하지 않음에도 치열함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치를 탐하더라도 역시 죄악은 아닐 겁니다. 다만 이 경우는 한심하다 정도로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15/03/18 18:01
가슴에 비수가 꽂히네요.ㅠㅠ 나란 녀석, 한심한 놈...치열하게 살지도 못하면서 그 삶 속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을 항상 갈구하는 머저리.
15/03/18 16:53
영화가 플레처교수를 긍정적으로 묘사하진 않았죠.
숀 케이시와 버디 리치의 마지막이 아름답지도 않았구요. 영화가 자기계발서의 길을 걷지 않아서 만족스럽습니다.
15/03/18 17:03
영화가
저 화려하고 위대한 것을 보라!!! 근데 그것을 하는 인간도 보라!!! 에서 딱 그쳐가지고 보통은 교훈 비스무리하게 그러니까 이렇게 해...정도도 안해버리고 끝나버려서 더 혼자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15/03/18 16:56
뭐, 청춘기의 남성에게 있어 본능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최고의 두려움은 [위대해지지 못해서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않는, 이름없이 잊혀지는 삶을 사는 것]이죠. 그래서 무수히 많은 문학과 영화 같은 서사에서 '나는 아버지처럼 평범하고 한심하게 살지 않을 거야!'라고 외치는 아들들의 스토리가 반복되고 변주되는 것일 테고요. 실제로 위플래시에서는 안락하고 목가적이며 언제라도 돌아가 일상의 행복을 영위할 수 있는 아버지의 세계와 냉혹하고 파괴적이며 수라도를 걸어가야만 하는 플래쳐의 세계를 대비시키면서 노골적으로 주제의식을 전달하죠.
여하간, 위플래시도 그렇고,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버드맨 역시도 이러한 [수컷의 근본 문제]에 대해 특별히 가치 판단을 하지 않은 채 객관적인 형태로 탁월하게 형상화해서 관객에게 제시했다고 봅니다. 위대함, 숭고함, 예술, 성공, 승천을 추구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은 어떻게 조야함, 천박함, 속물근성, 실패, 추락과 동전의 양면처럼 연결되어 있는가. 그리하여 성聖과 속俗이 어떻게 겹쳐져 있는가.
15/03/18 16:59
(관객마다 받아들이는게 다르겠지만)영화는 배드엔딩에 가깝습니다. 위플래쉬는 스릴러 영화에 가깝고 그런 영화의 기법으로 본다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마치 여주인공이 연쇄살인마를 죽이고 살아남았는데 알고보니 살인마가 살아있더라~식의 결말입니다. 감독도 체벌을 옹호하지 않고 앤드류도 비극적인 죽음을 맞을 확률이 높다고 하구요. 아니면, 살아남아 플레쳐 교수같은 사람이 되겠죠.
15/03/18 17:07
이동진도 그런 이야기를 남긴 것 같은데 이 영화는 열정적인, 치열한 삶의 긍정을 다룬다기 보다는
그런 삶이 얼마나 환경과 자신을 피폐하게 만드는가에 관한 영화라고 봅니다. 피즈님이 말씀하신 대로 세계 1등되고 고자되기 vs 그냥 그렇게 살면서 밤이 즐겁기인데 전자를 포기하고 후자를 산다고 해서 실패한 인생인 것도 반대로 후자를 포기하고 전자의 삶을 산다고 완벽한 삶인 것도 아닌거죠. 제가 보기엔 감독은 완벽을 추구하나 그저 그러한 두사람을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위에 피로링님이 말씀하신대로 앤드류는 아마 플레처가 되었을거라고 봅니다. 아들들이 아버지처럼 되고 싶지 않아고 발버둥치지만 결국 그들의 삶을 답습하는 것처럼요.
15/03/18 17:22
근거는 없지만 정말 앤드류는 플레처 ver.2 가 되었을 것 같습니다. 막판 앤드류의 독선이 그런 기미를 느끼게 해줬지 싶네요.
저도 일도양단해서 뭐가 낫다고는 단정짓기는 좀 어려운데 [선한 마음을 잃지않고 수양하고 수양하여 더 나은 쓸모있는 인간이 되기] 라는 명제를 알고도 실천하지 않는 제가 좀 마음에 걸려서 그렇죠 흐흐.
15/03/18 19:35
이동진 의견에 동감하는 게 이 영화는 광기를 옹호하지 않죠. 마지막에 이심전심을 보여주긴 하지만 이놈이나 저놈이나 미친놈인 것이 매한가지라....
15/03/18 17:19
애니도 해보고 만화도 그려보고 게임회사도 다녀본 사람입니다.
그림을 그리다보면 저렇게 미쳐야 할 때가 오는데... 한 10년을 저렇게 지내고 나니까 좀 허무해지더라구요 요새는 좀 널널하게 지내려고 합니다만... 방만한 사람 보면 화가나기도 하고... 잘 모르겠습니다. 아직은 그림을 더 잘그리고 싶어요... 그러니 제 자신에 영원히 만족 못하면서 고통받겠지요...
15/03/18 17:27
저도 미대를 졸업하고 반 정도는 예술적인 감각이 필요한 일을 하는데요.
어설피 배우다 어떤 본질이나 개념 같은 거에 집착하게 되면서 그렇게 미치도록 손놀리는 걸 경험하기 전에 숙련과정을 놓아버렸습니다. 서린언니님 처럼 경험해봤더니...라고 할만한 경험을 못해봐서 인생이 맴도는 기분입니다.
15/03/18 17:34
(관객마다 받아들이는게 다르겠지만)영화는 배드엔딩에 가깝습니다. 위플래쉬는 스릴러 영화에 가깝고 그런 영화의 기법으로 본다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마치 여주인공이 연쇄살인마를 죽이고 살아남았는데 알고보니 살인마가 살아있더라~식의 결말입니다. 감독도 체벌을 옹호하지 않고 앤드류도 비극적인 죽음을 맞을 확률이 높다고 하구요. 아니면, 살아남아 플레쳐 교수같은 사람이 되겠죠.
15/03/18 18:11
배드 엔딩이라 하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앤드류가 언급했듯이 찰리 파커가 그런 식으로 이리저리 망가진 끝에 34살에 죽었지만 대신 그는 이름을 얻었고 그런 이름을 쫓겠다는걸 나쁘다고 보기는 어려우니까요. 그런건 각자의 가치관 문제고 영화는 거기까지만 보여준거라 생각합니다.
15/03/18 18:18
그걸 배드엔딩이라고 할수도 있고 아니라고 할수도 있지만 '배드엔딩이라보기 어렵다'는 아니죠. 영화 구성적으로 봤을때, 그리고 그를 보는것이 제3자인 관객임을 생각했을때 어쨌든 주인공이 불행해짐을 암시하는 엔딩은 배드엔딩에 가깝지 않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나저나 이 댓글은 왜 시간을 넘어서 또 달렸을까요.
15/03/18 18:14
1) 치열함은 본인이 감당할 수 있을 때까지 겪으면 인생에서 분명 도움은 된다고 생각합니다.
2) 치열함의 대상인 부분의 성공은 본인이 가진 크기가 결정할 확률이 더 높죠. 불행이도 대부분 그렇고.. 3) 보통 치열하게 살았던 사람도 잉여화 되는 경우도 많죠. 영원히 치열한 경우는 별도 없긴하겠죠... 4) 치열하지 않음에 패배의식을 가지기 보다, 자신이 치열할 필요가 있는지 먼저 자문해보는게 더 중요한 거 같습니다.
15/03/18 20:10
윗 댓글에서도 언급하셨지만, 이동진의 표현을 빌리자면 [성공에 있어서 열정과 의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습관적으로 역설하려드는 자기계발서의 첫 챕터 예화로 딱] 인 영화이고, [빗나간 열정이 얼마나 인간과 주변을 황폐하게 만드는지에 대한 이야기]일수 있죠. [순수한 목표가 중요하다고 그 목표를 위해 주변의 피해는 아랑곳않는 이기적인 태도] 와 [1등이 아니면 그저 패배자에 불과하다는 성공지상주의적 가치관]이 깔려 있는거죠.
근데 시발? 그 좋지 않은 인간들이 빚어내는 예술이 위대하니 이걸 어쩔? [선하지 않은 토양에서 피어난 위대한 예술을 어떻게 볼 것인가?] 라는 문제제기가 가능합니다. 평소에 피지알 주류 여론은 열정을 강조하는 자기계발서와 기성세대들의 요구에 비판적이었는데 이 영화에서는 그런 점을 지적하시는 분들이 적은게(갸웃...?) .... 당.연.합.니.다.... 킄 그러니까 이 영화가 훌륭한 거겠지요. 남들이 강요하는 열정은 짜증나도 실제로 주위에서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사람 보면 누구나 '아...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 라는 욕구가 생기는게 자연스럽겠지요.
15/03/18 21:10
그. 교통사고 난 다음에 경연 망치고 플레쳐한테 달려든 다음 제적되었을 때
변호사와 이야기 나누는 장면에서 처음엔 네이먼이 증언을 안 하려고 하는데 제 느낌에는 그때 네이먼이 뭔가 플레쳐에게 동화되었다? 동화되었다 까지는 아니더라도 플레쳐의 방식에 조금은 공감하고 플레쳐의 방식을 통해서 자신의 드럼 수준이 높아졌다는 것에 대해 만족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다가 증언을 한 건 플레쳐에 대한 증오 + 변호사의 회유 때문이 아닌가 생각되고요. 이렇게 생각을 하고 보니, 네이먼은 확실히 케이시보다는 플레쳐 ver.2가 되었을 것 같긴 하네요. 그리고 덧붙이자면, 중간에 친척들?과 식사하는 장면에서... 어쩌면 네이먼을 그렇게 부추기는 게 주변, 사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집어넣은 장면 같기도 하고요.
15/03/18 21:19
영화 위플래쉬의 최대의 미덕이라면 여태껏 진리처럼 여겨졌던 장인의 길 이면에 숨어있는 추악함과 해악을 아주 또렷하게 드러냈다는 점이라고 저는 생각하는데
넷상에서는 또 피즈 님과 유사한 감상을 하는 분들도 많더군요 사람마다 다 받아들이는 게 다르겠죠
15/03/18 23:11
그런데 치열하게 사는 경험을 인생에서 한번쯤 해 보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을 수 있을지라도, 그렇게 산다고 해서 다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오는 건 아닙니다.
역설적이게도 한 분야에 대해 치열해질 수록, 그 분야에 대해 내가 치열하지 말아야 될 이유만 늘어나는 경우가 상당히 많거든요. 사람마다 타고나는 재능이라는 파라메터는 분명히 존재하고, 노력으로 메꿀 수 없을 것 같은 재능의 차이라는 것도 분명히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물론 노력하지 않는 천재를 노력하는 범재가 이길 수는 있겠지만, 범재가 노력한다고 해서 노력하는 천재를 이길 수는 없거든요. 한 번 이런 경험을 하고 나니까, 안분지족의 자세가 저절로 생기더군요. 또 한번 모든 걸 태울 만한 걸 찾을 수 있을런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솔직히 다른 분야에서라도 그짓을 다시 하라면 별로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성공 여부를 떠나서요.
15/03/19 10:31
죄악이라는 것은 없다는 제 생각은 차치하고라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며, 현실이라고 자위하며 시도도 안 해 보는 것을 보면 같잖아 보이더군요.
거창하게 꿈에 대한 도전도 아니고 여행, 공부, 취미 활동 같은 것에 대해서도 그러하니... 그런데 치열함도 좋지만 잔잔하고 꾸준하고 가벼운 것도 좋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 치열함을 동경했고 나름 치열하게 살아왔다고는 생각하지만 '생기있는 삶'이라는 제 기준을 적용해 보면 치열함도 부분집합일 뿐이니 잔잔함, 꾸준함, 가벼움, 자연스러움 등 어느 것이 우월하다고 말할 수 없다고 봅니다.
15/03/19 10:42
자주 하는 생각입니다.
요즘 사회는 필요 이상의 몰입과 열정을 당연시 하는 거 같습니다. 그래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적당히 노력하고,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살 수 있는 사회가 좋은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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