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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5/02/03 18:17:01
Name Eternity
Subject [일반] [리뷰] 강남 1970 – 유하의 거리는 사라지고, 흔한 누아르만이 남다 (스포있음)
*반말체인 점 양해바랍니다.*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 있습니다.*





[리뷰] 강남 1970 – 유하의 거리는 사라지고, 흔한 누아르만이 남다



나는 유하 감독이 좋았다. "대한민국 학교 좆까라 그래!"라는 [말죽거리 잔혹사] 속 현수의 외침에 담긴, 남자들의 가슴 깊숙한 곳에 숨겨진 채로 분출되지 못한 학창시절의 로망도 좋았고 [비열한 거리]에서 욕망에 찌든 차가운 거리에 내몰려 방황하듯 불안하게 흔들리던 병두의 서글픈 눈빛도 좋았다. 유하는 자신이 하고자하는 이야기를 담담하면서도 투박하지 않게 관객들에게 꺼내놓을 줄 아는 능력을 지닌 감독이었다. 이 두 편의 작품을 통해 나는 그를 신뢰했고 그의 차기작을 항상 기대했다.

하지만 그의 신작 [강남 1970]은 기본적으로 촌스럽다. 유하 감독의 거리 3부작의 대미를 장식할 마지막 작품으로 기대를 모았던 [강남 1970]. 기본적으로 이 영화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는 알겠으나 문제는, 굳이 '왜 이런 이야기를 다시금 했었어야 했나' 하는 데에 있다. [강남 1970]은 1970년대 서울시의 남서울개발계획과 맞물려 부동산 붐과 불법 투기가 일어나던 서울을 배경으로 강남땅을 둘러싼 정치권 및 정치깡패들 간의 치열한 암투과 세력다툼, 그리고 그 속에 휘말린 가진 것 없는 두 청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새로울 것은 없다


고아로 서로 친형제처럼 의지하며 자라난 종대(이민호)와 용기(김래원). 이 둘이 우연한 계기로 야당 전당대회 훼방 작업에 휘말리게 되면서 서로의 소식이 끊긴 채 각자 조폭의 길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나름의 입지를 다지며 승승장구하던 용기와는 달리, 몰락한 중간보스 강길수(정진영)를 모시는 종대의 삶은 순탄치만은 않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복부인 민마담(김지수), 부동산계의 큰손 서의원과 만난 종대는 건달로서의 위치 또한 서서히 상승하며 자리를 잡아나가게 된다. 하지만 보스의 애인 현경(이연두)과의 내연 관계로 위기에 빠진 용기와 친아버지처럼 여기던 길수의 죽음에 충격에 빠진 종대. 한번 사는 인생 폼 나게 제대로 살아보겠다는 욕망, 그리고 복수를 위해 칼부림을 되풀이하던 이 둘은 결국 각자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고 그들의 죽음을 뒤로하고 강남땅은, 더불어 그 땅을 지배한 이들은 강남공화국에서 여전히 그들만의 카니발을 벌인다.

우선 말 그대로 새로울 것은 없다. 모든 인물들의 행동양식과 위기 극복과정이 마치 정해진 시나리오대로 행해지듯 예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느낌이다. 주인공을 아버지처럼 따뜻하게 감싸주는 전직 조폭보스 강길수는 등장하는 순간부터 죽음이 예견되는 비극적 캐릭터이며 길수의 딸이자 종대의 의붓동생인 설현의 결혼생활 또한 순탄할 리가 없다. 아니, 순탄해선 곤란하다는 표현이 맞겠다. 더불어 작품 속에서 민마담과 팜므파탈 역할을 반씩 나눠가진, 보스의 애인 현경과의 만남이 노출되며 위기에 빠진 용기가 자신을 협박하는 형님을 살해하는 것 또한 어찌 보면 정해진 수순. 그 과정에서 애초부터 죽기위해 탄생한 비극적 캐릭터인 강길수는 예정대로(?) 용기에게 죽임을 당하고 결국 이로 인해 종대와 용기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다.

유하의 거리는 사라지고, 흔한 누아르만이 남다


이렇듯 그동안 누적되어온 한국형 누아르의 전형적 패턴과 공식을 거의 그대로 따르는 작품의 흐름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이 영화는 기초부터 세밀하고 탄탄하게 구성된 작품이라기보다는 유하감독이 스스로 만들어내고 싶은 장면을 머릿속에 그려놓고 그 그림에 맞추어 밑그림을 채운 것 같은 느낌. 집으로 치자면 철근과 콘크리트 기초공사부터 탄탄하게 시작된 집이 아니라 일단 멋스럽고 그럴듯한 외관 인테리어부터 지어놓고 그에 걸맞게 집 안의 내부를 채운 느낌이랄까. 예를 들면 이런 씬들이 그렇다. 프레디아길라의 'ANAK'이라는 배경음악을 뒤로한 채로 어두운 뒷골목 거리를 비 맞으며 멋지게 뛰어가는 종대의 쓸쓸한 모습, 영화의 클라이맥스인 진흙탕 패싸움씬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버드아이 뷰, 총에 맞은 채로 어두운 터널에서 밖을 향해 기어가던 종대의 얼굴을 향한 클로즈업씬, 그리고 그의 죽음을 뒤로한 채 벌어지는 화사한 무도회장씬 등.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아마 유하 감독은 영화를 시작하기 전부터 이런 장면들을 머릿속에 전부 그려놓지 않았을까?

물론 이러한 장면들을 영화의 요소요소에 적절히 박아놓긴 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장면들에서 풍겨지는, 어디에선가 본 듯한 진부함과 촌스러움에 있다. 영화의 스토리도 새로울 것이 없지만, 감독이 힘주어 찍은 씬들 조차도 과거의 누아르 영화들 혹은 감독 자신의 전작들의 오마주에 그치는 느낌이다. 중앙정보부장실의 상단 중앙에 걸려 몇 번이고 강조되듯 노출되는 '총력안보'라는 글씨가 적힌 액자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학교를 나와 운동장을 가로지르던 현수의 등 뒤로 보이던 건물 외벽의 '유신 교육의 심장'이란 문구와 오버랩되며, 영화의 클라이맥스인 진흙탕 패싸움씬은 [비열한 거리]의 진흙탕 개싸움씬과 닮아있다. 또한 극장에서 결국 종대가 용기를 죽이지 않고 총구를 거두던 씬에서는 자신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 극장에 건 친구를 죽이지 못하고 결국 용서하던 [비열한 거리]의 병두가 떠올랐고, 종대의 죽음을 뒤로한 채 펼쳐지는 엔딩의 무도회장씬은, 병두의 죽음을 뒤로 한 채 자축연을 벌이던 [비열한 거리]의 룸살롱씬과 묘하게 겹쳐진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으면 좋았을 것을


상황이 이렇다보니 결국 기댈 것이라곤 주연배우들의 연기력과 간지 뿐인데, 나름 일취월장한 이민호의 연기력과 김래원의 간지만으로 해결될 문제는 사실 아니다. 결론적으로 [강남 1970]이 그리 형편없다거나 엉망이란 얘긴 아니지만, 유하 감독의 누아르 감성이라는 게 [비열한 거리]를 찍던 2006년 즈음에 머물러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자신의 전작을 그대로 답습하는 듯한 동어반복에서 과연 관객들은 무엇을 느껴야 할까? 결국 이 작품 자체가 애초에 [초록 물고기]의 정도의 감성적 깊이에 닿지 못할 것이었다면 차라리 [달콤한 인생]처럼 간지나는 영상을 맘먹고 뽑아내거나, 아니면 아예 [신세계]처럼 앗쌀한(?) 재미라도 건져내거나 했어야 했다. 결국 장르적 정서도, 영상도, 재미도 어느 하나 완전하게 건져내지 못하고 이도저도 아닌 모양새를 지닌 [강남 1970]의 스토리는 쓸데없이 복잡하며 러닝타임은 길고, 영상의 때깔은 투박하며 그 속에 담겨진 사회비판적 메시지마저 새로울 것은 없다.

결국 감독 특유의 감성을 내뿜던 [말죽거리 잔혹사][비열한 거리]를 잇는 '거리 3부작'의 완결편으로 기대를 모았던 [강남 1970]에서 '유하의 거리'는 사라지고, 뻔하디 뻔하고 흔한 한국형 누아르 한 편만이 남았다. 영화를 관람하고 극장 문을 나서면서 문득 피천득 시인의 수필집 <인연>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유하의 '거리 3부작'의 마지막, [강남 1970]과의 만남이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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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ndris
15/02/03 18:23
수정 아이콘
역시 세 번은...
...은 그냥 해본 소리고, KBS 인터넷에 영화 프로그램이 있는데 거기서 나온 평과 유사하네요.
강용석
15/02/03 18:24
수정 아이콘
대한민국 학교 족구하라그래 아닌가요?

저는 김래원을 워낙좋아해서 보러가긴 할건데 그렇게 별로인가보네요ㅠ
15/02/03 18:26
수정 아이콘
저도 유하감독을 꽤 좋아하는데 실망스러웠습니다. 유하감독 자체가 60-70년대생의 정서를 굉장히 많이 갖고 있고.. 특히 비강남권에서 강남권에 편입하면서 겪는 정서 (특히 욕망을 바라보는 방식) 에 공감이 가는 면이 있어서 특히 더 그렇습니다.

영화 자체는... 좋은 재료를 msg 듬뿍쳐서 공장제 음식을 만든 그런 느낌였습니다. 액션과 뜬금없는 정사신..(뭐 아주 뜬금 없지는 않겠지만.. 꽤나 raw 하게 보여주는게 주제와 닿아있긴 하겠죠)을 좀만 줄이고 개발이라는 호재 앞에서 욕망에 불타오르는 여러 군상들을 좀 더 입체적으로 보여줄 수 도 있었을꺼 같은데, 스토리는 뭔가 끊기면서 대략 누가 누굴 뒤통수 치는거는 알겠는데 so what? 이런 생각만 들더군요... 유신을 다루고 있어서 부담이었을까요. 꼭 정치적인 포지션 안잡고도 우리 사회에 있었던, 그리고 반복되는 욕망의 소비와 실현.. 강남이 예전 부터 강남인줄 아는 서알못들에 대한 일침 같은걸 기대했는데 한 25%쯤 모자랐습니다. 그래도 제가 이 영화에서 본 한가지 장점은.. 액션에서 '사운드'및 소위 타격감이 좋더군요. 둔기, 도끼, 칼을 직접 맞는 느낌의 연출은 꽤 살아있었습니다.
Eternity
15/02/04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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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하신 '스토리는 뭔가 끊기면서 대략 누가 누굴 뒤통수 치는거는 알겠는데 so what?' 이 부분에 적극 공감합니다.
저도 보면서 속으로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무슨 얘기를 하는 줄은 알겠는데 그 얘기하는 방식이 무척 올드하다고 느껴졌어요.
핀트를 잘못 잡은 것 같기도 했고. 어쨌든 유하 감독의 신작이라서 그랬는지 더욱 아쉬움이 컸습니다.
15/02/03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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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래도 나름 볼만은 한가 보네요. 흐흐
뿌요뿌요
15/02/03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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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또한 영원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주변에서 영화평 말해달라고 하길래 그냥 간단하게
신세계 같은 누아르 작품은 아니라고 비추를 했습니다.
양지원
15/02/03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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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안봤는데 황제를 위하여랑 친구2 보다는 낫겠죠?
롤하는철이
15/02/03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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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기준으로는 황제를 위하여랑 비교했을때 딱히 나을게 없었습니다. 유하감독의 명성과 출연진의 무게감을 고려했을때는 더욱 그러하구요. 개인적으로 친구2는 나쁘지 않게봐서 굳이 따지자면, (황제를위하여 = 강남 < 친구2) 였습니다.
Eternity
15/02/04 09:44
수정 아이콘
제가 [친구2]는 안 봤고 [황제를 위하여]는 봤는데
사실 [황제를 위하여][회사원], [숙명] 등의 졸작들과 함께 묶일 레벨이기 때문에 [강남 1970]을 이들과 같은 급으로 놓기는 좀 그렇구요.
유하 감독에 대한 기대 때문에 신랄하게 까긴 했지만 그래도 범작 정도는 된다고 봅니다.
지니쏠
15/02/03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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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충격적으로 재미없었습니다 영화관에서 여태 본 영화중 5손가락안엔 거뜬히 꼽겠더군요. 에로영화보다 맥락없는 정사씬에, 내가 달리는 만큼 다 내땅이야 하고 개 천천히 가는 오토바이씬과 혀짧은 여주는 진짜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Eternity
15/02/04 09:46
수정 아이콘
다른 것보다 '내가 달리는 만큼 다 내땅이야 하고 개 천천히 가는 오토바이씬'에서 빵터졌습니다.
저도 딱 이부분을 보면서 '왜 이렇게 오토바이를 느리게 몰지-_-?' 이 생각을 했는데 말이죠.
다시 생각할수록 진짜 웃기네요 크크
15/02/03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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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너무 길었어요..
야율아보기
15/02/03 18:44
수정 아이콘
유하 거리 3부작은 하울링이 마지막 아니었던가요?
Eternity
15/02/04 09:48
수정 아이콘
'거리 3부작'이라는 게 제목에 '거리' 혹은 '지역명'이 나오는 유하감독의 '남자 이야기'를 통칭하는 의미입니다.
청춘의 감성과 누아르적 감성이 녹아있는 작품들로 [말죽거리 잔혹사], [비열한 거리], [강남 1970]을 거리 3부작이라고 얘기하죠.
야율아보기
15/02/04 10:38
수정 아이콘
하울링 홍보할 때 유하 감독의 거리3부작의 마지막이라고 홍보를 했었습니다.... 그 영화가 망해서 급히 노선을 바꾼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성동구
15/02/03 18:45
수정 아이콘
저 이거 어머니모시고 같이 보는데, 베드씬 세번이나 나와서 당황했습니다.......
15/02/03 18:47
수정 아이콘
말죽거리 잔혹사를 너무 재밌게 봤는데.. 유하 감독에게서 그만한 작품은 또 나오기가 힘든가 보네요. 이번에도 평이 이렇다니..
마스터충달
15/02/03 18:57
수정 아이콘
<오늘의 연애>가 1,818,300명
<강남 1970>이 1,820,021명
<허삼관>이 943,488명
올 겨울 충무로 성적이 많이 아쉽습니다;;
비평도 성적도 모두 안 좋네요.
Otherwise
15/02/03 19:25
수정 아이콘
마지막 장면은 괜찮더군요.
사티레브
15/02/03 20:18
수정 아이콘
뻔해서 그래서 딱 1970년 느낌나게 촌스러워서 그렇지 충분히 재밌었습니다
기승전정
15/02/03 21:38
수정 아이콘
유하 감독의 작품은 비열한거리, 말죽거리 잔혹사, 쌍화점을 봤는데 '강남1970'이

최악이었습니다. 진지한 장면에서 실소가 나오더군요.

극장 나오면서 딱 한 생각했습니다. '다시는 이 감독 작품은 보지 않겠다'
15/02/03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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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수많은 조폭영화의 재탕삼탕이었죠. 조폭마누라가 더 재밌었습니다.
뻔한 인물, 뻔한 캐릭터, 뻔한 장면, 뻔한 스토리. "이게 정말 그 감독 작품이야?" 라는 대사가 절로 나올 정도로요..
15/02/04 02:57
수정 아이콘
'나름 일취월장한 이민호의 연기력'이란 표현은..비꼬우신 것 맞죠??
전 보는내내 이민호가 연기자로 인정 받을려면,
쉬는 기간 동안 대사톤에 대한 훈련을 더 받는게 좋겠다고 생각 했어요.
연기자로서의 시간이 꽤 지났는데 신인때 그 특유의 대사톤이 일관되게 남아 있더군요.
연기를 잘하는 정도는 아니라도 몰입에 방해될 수준은 면해야 한다고 봅니다.

영화 보면서 속으로 '울 아부지는 왜 그때 거기다 땅 몇평 안 사놓으셨을까' 라고...
Eternity
15/02/04 09:53
수정 아이콘
제가 배우 이민호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서 인진 몰라도, 연기력 자체는 그닥 나쁘지 않게 느껴졌습니다.
개인적으론 몰입을 방해할 수준은 아니라고 느껴지더군요. 뭐 이런 논의 자체가 중요한 영화는 아니지만 말이죠.
王天君
15/02/04 17:54
수정 아이콘
누와르보다는 갱스터물로 봐야하지 않을까요
Eternity
15/02/05 09:27
수정 아이콘
서양의 필름 누아르 기준으로 보자면 그럴지도 모르지만,
홍콩누아르를 거쳐 변주된 ([게임의 법칙]을 시초로 보는) '한국형 누아르'를 기준으로 보자면 말씀하신 구분이 그리 유의미한지 잘 모르겠습니다.
王天君님께서는 어떤 기준으로 구분하시나요? 순수하게 궁금해서 여쭤봅니다.
王天君
15/02/05 09:39
수정 아이콘
전체적인 스타일이나 미쟝센의 활용에서 이 영화가 딱히 누와르 같진 않거든요. 예를 들어 씬시티는 영락없이 필름 누와르의 공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저는 영원님이 지칭하는 누와르가 무엇이며 거기에 추가된 "한국형"이라는 단서의 기준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특히 제가 궁금한 부분은 "한국형"이라는 형용사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나온 느와르물 중에서 독특하지만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특정 성격이 있나요?
Eternity
15/02/05 11:13
수정 아이콘
제 생각과 가장 부합하는, 영화 평론가 하재봉의 '한국형 누아르'에 대한 의견입니다. 물론 '한국형 누아르'라는 장르가 실재하느냐 라는 부분에서부터 의견은 분분하지만, 어쨌든 저는 하재봉과 의견을 같이 하는 쪽입니다.

http://cafe.daum.net/moviehunters/2jr/556

사실 저는 여기에서 언급된 1940~50년대의 할리우드의 필름 누아르를 본 적은 없습니다. 제가 본 서양의 작품들 중에 '누아르'라고 할만한 영화는 장 피에르 멜빌 감독, 알랭 드롱 주연의 프렌치 누아르 [사무라이](1967) 정도입니다. 어쨌든 '누아르'라는 장르가 태생적으로 내용면 보다는 형식면, 즉 말씀하신 스타일이나 미쟝센의 활용 등에서 그 특징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다만 주제면 혹은 내용적인 면도 무시할 수 없다고 보는데, 이를테면 팜므파탈의 존재, 그로인한 주인공의 파멸, 작품과 캐릭터의 기저에 깔린 고독하고 불안한 정서 등이랄까요. 이러한 내용적 혹은 정서적인 면이 1990년대 이른바 '한국형 누아르'로 변주되어 생겨났다고 보구요. (즉, 적자라기 보다는 서자에 가까운 느낌이랄까요.) 이러한 스타일이 반복적으로 나타는 작품들이 [게임의 법칙], [초록 물고기], [달콤한 인생], [비열한 거리], [사랑], [강남 1970]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작품들이라고 봅니다. 물론 큰 틀에서 보자면 전부다 갱스터 무비 혹은 깡패영화이기는 하죠.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일련의 갱스터 무비들 가운데서도 나름의 고유한 색채와 공통적인 분모를 지닌 작품들이 존재한다고 보는 입장이구요.

결론적으로 '한국형 누아르' 라는 장르 자체가 있긴 하냐를 두고 의견이 분분한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딱 부러지는 정답은 없다고 보여지긴 하지만, 어쨌든 저는 그러한 의견들 중에 '한국형 누아르'라는 장르가 실재한다 라고 보는 입장입니다.
王天君
15/02/05 11:38
수정 아이콘
[게임의 법칙], [초록 물고기], [달콤한 인생], [비열한 거리], [사랑], [강남 1970] 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정작 링크에서도 "한국형" 이라는 특징이 무엇이며 이것이 기존의 느와르물과 어떤 차별점을 가지고 있어서 한국형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게 하는지는 설명이 없군요. 홍콩 느와르물은 비장한 가운데에서도 브라더후드를 유난히 강조하거나, 후까시를 잡는 카메라워크 등으로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이 있는데, 내용적으로나 스타일로나 딱 구분할 수 있는 한국형 느와르의 공통분모가 뭔지 잘 모르겠거든요.
Eternity
15/02/05 11:50
수정 아이콘
위에서 언급한 ' 팜므파탈의 존재, 그로인한 주인공의 파멸, 작품과 캐릭터의 기저에 깔린 고독하고 불안한 정서' + 성공을 눈 앞에 둔 2인자 자리에 올라선 주인공의 몰락 등, 한국의 갱스터 무비들 가운데서도 일부 영화들에서 공통적으로 반복되는 내용적 그리고 정서적인 면이 제가 보는 한국형 누아르의 공통분모입니다.
王天君
15/02/05 11:52
수정 아이콘
이건 원래 누와르물에서 나오는 전통적인 요소들 아닐까요.
Eternity
15/02/05 11:54
수정 아이콘
네, 그걸 얘기하는 겁니다. 그렇다고 이 영화들을 전형적인 '필름 누아르'라고 볼 순 없죠.
王天君
15/02/05 12:01
수정 아이콘
그렇다고 한국형 이라는 특징을 붙이기에도 과분하죠. 한국에서 촬영된 누와르물로 보는 게 더 맞지 않나 싶은데. 홍콩 누와르는 홍콩 특유의 스타일이나 내용으로 기존 누와르에서 홍콩식으로 변주된 부분이 있는데 언급하신 한국 영화들은 그런게 딱히 있다고 할 수 없고, 오히려 기존 누와르의 공식을 따라가고 있으니 여기에 "한국형"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긴 어렵지 않을까요.
Eternity
15/02/05 12:47
수정 아이콘
사실 저는 말씀하신 것처럼 한국형 누아르만의 두드러지는 특징이 없다고해도, '충무로에서 만든 누아르물 = 한국형 누아르'라고 부르는 것에 별 문제가 없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예를 들어 '한국형 블록버스터'라는 말도 따지고보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비해 규모만 작을 뿐 한국 특유의 어떤 독특한 점이 스며들었다고 보진 않거든요. 하지만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 공식을 충무로에서 이식해서 만들어냈다는 측면에서 한마디로 설명하기 쉽게 '한국형 블록버스터'라고 부르는 것이라고 생각하구요. 같은 차원에서 '한국의 조폭문화를 바탕으로 촬영된 누아르물'을 '한국형 누아르'라고 충분히 부를 수 있다고 봅니다.

더불어 '한국형 누아르'만의 특징이 없다고만 볼 순 없는 게, 한국형 누아르라는 게 홍콩누아르의 브라더후드가 한국의 정 문화 혹은 조폭문화의 의리로 변주되면서 이식이 되었고, 필름누아르나 홍콩누아르의 총질이 한국 문화에 맞게 칼질로 변모하는 등, 분명 문화적인 면이든 내용적인 면이든 한국 특유의 문화나 정서가 기저에 깔리게 된 점은 분명하거든요. 결론적으로 엄밀히 말해 제가 생각하는 '한국형 누아르'란 좀 냉정하게 말해서, 필름 누아르적 요소와 홍콩 누아르적 요소가 뒤섞인 잡탕(?)에 한국적 정서를 살짝 가미한 장르에 가깝다고 봅니다. 어쨌든 저는 이러한 스타일의 영화들에 '한국형 누아르'라는 용어를 붙여도 별 무리가 없다, 무방하다 정도의 입장이구요.

p.s 위 논의와는 별개로 어쨌든, '누와르보다는 갱스터물로 봐야하지 않을까요' 라는 王天君님의 첫 댓글에 대한 제 생각(왜 리뷰 제목에 '누아르'라고 적었는지에 대한 제 입장)이 대화를 통해 충분히 드러났다고 봅니다. 애초에 '한국형 누아르'라는 용어를 사용한 제 의도가 "원조 누아르와는 다른 한국만의 독특한 누아르 영화들이 있다"라기 보단, "충무로에서도 나름의 한국적 정서가 가미된 누아르 영화들이 꾸준히 반복되어 만들어지고 있다."에 가까우니까요.

+) 첨언하자면, 저는 반대로 제가 언급한 일련의 영화들에 단순히 '누아르'라는 호칭을 붙이는 것이 오히려 과분하다고 생각합니다.
王天君
15/02/05 13:23
수정 아이콘
그게 좀 제가 이상하게 생각하는 부분이죠. 한국 귀신이 나온다고 해서 한국형 호러물이라고 하거나 한국인 살인마가 나온다고 해서 한국식 슬래셔물, 한국인이 총질한다고 해서 한국식 액션 이라고 장르를 정의하진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느와르가 한국을 배경으로 하거나 한국에서 제작한다고 해서 한국식 느와르라고 하는 건 무리한 정의가 아닌가 하는거죠.(저는 한국형 블록버스터라는 말에도 전혀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냥 블록버스터라고 하기에는 헐리우드산 블록버스터물과 규모에서 비교가 되니 앞에 붙여놓은 의미없는 수식어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어요)

[홍콩누아르의 브라더후드가 한국의 정 문화 혹은 조폭문화의 의리로 변주되면서 이식이 되었고, 필름누아르나 홍콩누아르의 총질이 한국 문화에 맞게 칼질로 변모하는 등, 분명 문화적인 면이든 내용적인 면이든 한국 특유의 문화나 정서가 기저에 깔리게 된 점은 분명하거든요.]

제가 더 의아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영원님의 이런 설명입니다. 언급하신 영화들 중에서 저는 한국의 정 문화(저는 한국의 정이라는 개념 자체에 동의하지 않기도 합니다) 가 어떤 부분에서 도드라지게 나타나고 다른 누아르 영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지, 또 총질이 칼질로 바뀌었다고 해서 그걸 한국 문화의 특성이라고 봐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거죠. 일본 야쿠자 영화도 숱하게 사시미를 써댑니다만 그걸 가지고 일본식 문화를 도입한 일본형 누아르 라고 지칭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야쿠자 영화로 분류하는 편이죠. 한국의 현실에 맞춰 설정을 도입한다고 해서 그것을 한국식 문화나 정서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냐 하는 의문이 듭니다.
Eternity
15/02/05 13:52
수정 아이콘
한국형 누아르에서 두드러지는 가족애, 의리, 동정 등 이러한 감정들을 포괄해서 정이라고 표현을 했구요. (다만, 정이라는 단어가 이러한 것들을 포괄하는데 적절하지 않을 수 있음을 인정합니다.) 어쨌든 이러한 감정들이, (팜므파탈의 역할과는 또 다르게) 주인공을 파멸로 이끄는 주요한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구요. 주관적인 견해이긴 하지만, 이러한 정서들은 서양의 필름 누아르보다는 한국의 누아르 영화들에 더욱 두드러지는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홍콩누아르의 브라더후드보다도 조금 더 확장된 느낌이 있고요.
王天君
15/02/05 14:39
수정 아이콘
네 답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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