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눈빛을 연기한 보 브리지스에게도 찬사를 보내야 마땅하다]<카트>의 투쟁은?결론부터 말하자면 <카트>의 투쟁에 비하면 <노마 레이>의 투쟁은 애교 수준이었다. 공고판을 가린다거나 악의적 루머를 퍼뜨리는 것쯤이야 <카트>의 여사님들이 당했던 고초에 비하면 새 발의 피 수준이다. <노마 레이>의 회사는 불법의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건드리지만 <카트>의 '더 마트'는 대놓고 불법을 자행한다. 노조의 협상 제안을 무시하는 불법을 저질렀고, 파업을 막기 위해 불법 알바를 고용하여 마트를 정상 운영하려고 하였다. 하나 이것도 어린애 장난에 불과하다. 나중에는 용역 깡패를 동원하여 폭력으로 노조를 제압하려 했다. <노마 레이>가 투쟁이었다면 <카트>는 진짜 피 튀기는 전쟁인 셈이다.
물론 <노마 레이>에서도 실제 노조 활동의 어려움을 넌지시 전달하는 대사가 있다. 임산부의 배를 때리고, 16세 소년의 등에 총알을 박아 넣는 행위가 존재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영화에서
직접 표현하지 않는다. 대중의 불쾌감을 고려해서였는지, 그러한 일들이 극단적인 사례에 해당하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1979년의 미국 사회에서 그러한 폭력 사태는 쉬이 용납할 일이 아니었던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카트>에서는 노조를 향한 폭력을 직접 표현한다. 그리고 그러한 폭력이 관객에게 용납할 수 없는 일로 다가오지도 않는다. 나 조차도 시위에는 으레 몽둥이찜질과 물대포가 날아온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러한 장면들이 상투적이라고 느껴지는 것이야말로 비극일지 모른다. 2014년에 그려진 노동 투쟁에 불법과 폭력이 당연한 수순이라는 것을 1979년의 노마가 본다면 뭐라고 말할까? [이러한 표현조차도 현실에 비하면 착하게 그려진 거라고...]<노마 레이>의 엔딩에서 느꼈던 우려는 <카트>에서 현실로 나타났다. 노조의 결성보다 그 이후가 진짜 투쟁이었다. <카트>의 노조 설립은 <노마 레이>에 비하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해고라는 발등의 불을 끄기 위해 부랴부랴 결성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트>에서 노조는 아무런 힘도 없어 보인다. 사측은 노조를 무시하고 점거를 통한 파업은 공권력이 무마시켜준다. <노마 레이>의 보안관은 이에 비하면 그야말로 젠틀맨이었던 셈이다.
노마 역을 맡은 샐리 필드의 밝은 미소 때문이었을까? <노마 레이>의 투쟁은 그 과정이 힘들지언정 반드시 승리할 거라는 기대가 숨어있었다. 그 과정이 처절할지라도 끝내 쟁취하는 노조라는 이름의 승리의 트로피는 보는 이의 마음을 고무시킨다. 하지만 <카트>의 투쟁은 오로지 절망뿐이다. 파업 중인 노조원들의 표정에서 보이는 것은 먹먹한 슬픔이었다. 그리고 끝내 온전히 쟁취하지 못하고 절반의 성공만 남은 그들의 결과는 씁쓸함만 남겼다. 파업 중에 보였던 그녀들의 작은 행복마저도 나에겐 결과적으로 가슴 시린 추억처럼 남았을 뿐이었다.
[인상적이었던 자기소개 장면. 그녀들의 얼굴에 드리운 그늘이 슬프다.]<카트>에 '남성'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도 암울함을 배가시킨다는 생각이 든다. 남성의 등장을 바란다고 하지만 그것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김 선생처럼 또 다른 폭력으로 사태를 해결하는 마초적 영웅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노마 레이>도 여성이 주인공이었지만 그곳에는 그녀를 지탱해주는 소니와 루벤이 있었다. (내조하는 남편이랄까) 하지만 <카트>에 마음의 위로가 되는 외부 존재는 없다. 강 대리(김강우)는 그녀들과 다른 존재가 아니라 정규직에 남성일 뿐 다른 노조원들과 똑같은 노조원일 뿐이다. (폭력을 행사하여 감옥에 간 시점에서 강 대리의 남성성은 무가치한 것이 되었다.) 그 외의 남성들은 전부 적이었다. 회사간부, 공권력, 용역 깡패, 그리고 가장 악랄했던 최 과장까지... 결국, 그녀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될 수밖에 없었고 그렇기에 유대가 중요한 가치가 되었다. 젠더의 차이를 통해 갑의 폭력을 극대화 시킨 점은 꽤 효과적인 표현이긴 했지만, 이를 지켜보는 나 같은 남성 관객에게 무력감과 다소의 불편함을 전달시켰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긴 하다. (이는 또한 민주노총의 존재를 지웠다는 아쉬움과도 연결된다.)
기울어진 경기장에 대한 유감두 영화를 비교하며 가장 크게 느꼈던 것은 기울어진 경기장에 대한 유감이었다. <카트>에서는 불법도 폭력도 너무나 쉽게 이루어진다. 이에 비하면 <노마 레이>의 회사는 불쌍할 정도다. 공고판을 가린다거나 헛소문을 퍼뜨리는 정도라니... 그야말로 애들 장난 같지 않은가. 그런 상황에서도 <노마 레이>는 힘겹게 결과를 성취하는 데, 몽둥이에 두들겨 맞고 물대포를 뒤집어쓰며 투쟁해야 하는 <카트>의 노조는 비교할수록 더욱 절망적으로 보일 뿐이다.
맨몸으로 부딪혀야 하는 <카트>의 노조에 비해 회사는 너무나 강력한 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불법행위와 폭력도 무서운 무기지만, 가장 치명적인 무기는 바로 생존을 쥐고 있다는 점이다. 파업이 길어질수록 생활비를 벌지 못하는 노조원들은 괴로울 수밖에 없다. 급식비를 내지 못하고, 전기가 끊기는 가난은 연민의 요소이기도 하지만 파업 전쟁에서 사측의 가장 강력한 무기이기도 하다. 먹고 살려면 자존심 버리고 기어들어 와야 하는 것이다. 이런 불공정한 상황을 알기에 이혜미(문정희)의 근로 복귀는 배신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두 영화를 비교하며 가장 씁쓸한 점은, <노마 레이>가 1979년 작품이라는 점이다. 서양 국가 중 보수적이라고 평가받는 미국(그중에서도 보수적이라는 미국 남부)의 30년 전보다 2014년의 <카트>에서 보이는 진보가 더 나약해 보인다는 것이다. 어떤 정치인은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소리를 한다. 그 이전에 잃어버린 30년은 어쩔 셈인지 설명을 듣고 싶다. 우리의 노동권은 경제 호황의 거품 속에 가려져 발전 없이 80~90년을 지났다. 그리고 경제위기 이후 폭력과 생존위협으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해주지 못하는 나약한 상태로 21세기를 맞이한 것이다. 그런데도 위정자들은 노동 유연화와 기업 살리기만 부르짖고 있으니 막막할 따름이다.
마치며...<노마 레이>는 정말 좋은 영화다. 시각적, 청각적 상징들을 활용한 빼어난 연출도 좋지만, 역시 최고 압권은 샐리 필드의 열연이다. 글을 마무리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녀가 선반 위로 올라갔던 그 장면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카트>도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몇 가지 아쉬움이 존재하지만 좋았던 연출이 더 많다. 소재의 특별함 덕에 단순히 영화가 존재한다는 점만으로도 가치가 있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고 작품성과 상업성을 겸비했다는 점은 충분히 칭찬해야 할 부분이다.
비록 세월의 차이가 존재하지만, 여성의 노조 투쟁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두 영화를 비교 감상해보는 것을 추천한다.(겸사겸사 <카트> 유료 다운로드도 많이 늘었으면 한다. 영화는 산업이다. 이익이 나면 투자가 따라온다.)
마무리로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탄 <노마 레이>의 주제가 'It Goes Like It Goes'를 남기며 글을 마치겠다.
[Jennifer Warnes - It Goes Like It Goes]
태어나는 건 기적이 아니야 매일 일어나는 일이지
자라는 건 기적이 아니야 다들 그렇게 자라지
가네. 그렇게 지나가네 흐르는 강물처럼
시간은 화살과도 같네
그래도 조금씩은 좋아지겠지
나쁜 것들은 사라지겠지
자신의 처지를 너무 빨리 알아버린 노동자의 딸에 축복을
영혼만은 내 것임을 아는 노동자의 손에 축복을
가네. 그렇게 지나가네 흐르는 강물처럼
시간은 화살과도 같네
그래도 조금씩은 좋아지겠찌
나쁜 것들은 사라지겠지
가네. 그렇게 지나가네 흐르는 강물처럼
시간은 화살과도 같네
그래도 조금씩은 좋아지겠지
나쁜 것들은 사라지겠지1) 할리우드 블랙리스트
할리우드 블랙리스트란 20세기 중반 무렵 그들의 정치적인 신념이나 가입한 조직 때문에 연예산업에서 활동이 거부당한 극본/각본가, 배우, 감독, 음악가 등을 일컫는 말이다.
※ <노마 레이>에서 들라크루와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 떠오른 건 가슴...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 이런 내가 싫다 ㅠ,ㅠ) 샐리 필드의 젊은 시절은 뛰어난 미인이라는 생각은 안 드는데 묘한 매력이 있더군요.
※ <카트>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배우는 수경역의 지우였습니다. 발성도 좋고, 표정뿐만 아니라 몸짓도 자연스럽고, 무엇보다 눈빛이 정말 맘에 들더군요. <올드보이> 시절의 강혜정이 연상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