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것이 잠시의 쉼일지,
아니면 정말로 당신을 완전히 내 마음 안에서 놓은 건지는 아마도 같은 만큼의 시간이 지나야 그제사 어렴풋이 알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지난 밤들마다 몇 번이고 당신 생각하기를 쉬어보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당신이 나를 등진 채 떠나가던 날 이후로 느꼈던 슬픔은 그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어 울음으로 나는 그 빈 자리를 가렸습니다.
그러다 때때로 당신을 미워하기도 하였고, 당신을 미워하는 나를 내가 또 미워하기도 하다 이내 나는 모든 것으로부터 떨어져나와 한없이 잠을 자고자 하기도 하였습니다.
실은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당신이 읽을 수 없는 이 편지를 쓰면서도 괜시레 마음의 아주 깊고 깊은 곳에서 작디 작은 설레임 한 송이가 피어나는 걸 조심스럽게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잊혀지지 않는 당신을 지우지 못하는 것은
당신이 아스라한 연기처럼 내 손에 잡히지 않기 때문인가, 혹은 당신이 어둔 밤하늘을 개는 달빛과 같아 눈을 뜨고서도 내 손에 잡지 못 하는 때문인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무엇이 되었건 내가 당신을 생각해도 이제는 설레이지 않더라고 말한 것은 아직도 그저 어린 치기에 불과했나 봅니다.
당신과 애써 시선을 피해 나누었던 그 간질하고도 찌릿하던 필담은 이미 버린지 오래입니다. 그러나 버리고 난 후회는 버릴 수 없어 아직까지도 문득문득 나를 책망합니다.
당신과 내가 한데 있는 사진은 나조차도 쉽게 꺼낼 수 없이 깊숙한 곳에 숨겨 두었습니다. 당신을 담아둔 내 카메라 역시 그러합니다. 말하자면, 나는 당신을 도저히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간 당신에게 직접적으로 말한 적은 없으나 이제야 겨우 이 편지를 빌어 말해봅니다. 나는 당신이 좋습니다. 정말이지 죽을만큼 좋습니다. 그 좋음은 시간이 지날 수록 자꾸 여물어만 갑니다. 이 좋음을 도대체 어찌할 바를 모르겠어서 나는 그저 망연히 기다리기만 할 뿐입니다.
사오월의 싱그럽고 푸르름을 가득 담은 바람 부는 초록색 풀 위에서- 십이월의 주홍빛 가로등 아래 창백하게 내리는 눈 사이에서 하얗게 맑고도 투명한, 그리고 붉은 당신을 사르르 녹아내리다 그만 정신이 아득해질 때까지 무한정 안고 싶습니다.
지독히도 이기적이고 모진 말이나 나는 당신이 언젠가 내게 돌아오기를 소망합니다. 이 소망이 나로서는 너무나도 큰 미안함이지만 나의 당신을 향한 마음 또한 너무나도 커 그러니 부디 닿지 않더라도 차마 내치지만은 말아주십시오.
그러나 나 역시 또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편지는 언제고 당신에게 도달할 일이 없는 것입니다.
당신이 내가 닿을 수 없는 곳으로 간 것이 여전히 현실인지 꿈인지 헷갈립니다. 그러나 내 두 눈으로 찍어둔, 마냥 선명하던 당신과의 사진은 점점 바래져만 갑니다.
사진이 바래질 수록 나는 좋은 것인지 싫은 것인지 자꾸 아리송합니다. 여전히 당신에 관해서 나는 뿌연 안개 속에 덩그라니 놓인, 당신을 처음 만났던 스무살 남짓 즈음의 어린애일 뿐인가 봅니다.
더 늦기 전에 당신을 한 번만 더 만나고 싶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만날 수 없지만, 만나지 말았으면 합니다. 만일 당신과 내가 우연히라도 마주친다면 단번에 나의 지난 9년은 그저 허무하게 시들어버리다 마침내는 부서질 테니까요.
다음 번 편지를 언제 쓸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가급적이면 이 것이 마지막 편지이기를 바랍니다.
14.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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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글 한 자락 남겨봅니다.
지난 글 중 몇 편은 쑥쓰러움이 많아 지웠습니다. 간만에 글을 써보려 하니 어색한 부분이 많지만 부족함이 많더라도 예쁘게 읽어주시기 바라봅니다.
곧 2015년을 맞이하게 되는데 회원님들 모두 올 한 해 마무리 잘 하시고 차가운 날에 꼭 건강 조심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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