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선수를 선정하는 기준은 여러 가지 있을 수 있겠지만, 업적, 세계 수준에서의 경쟁을 통해 보여준 능력, 이 두 가지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한국 농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는 바로 한 명 꼽을 수 있습니다.

박신자.

뭐 저도 농구대잔치 시절부터 본 사람이고 박신자라는 분에 대해선 책이나 글로만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분의 업적은 독보적이라 최고라고 할 수 밖에 없군요. 세계 농구대회 준우승. 준우승임에도 대회 MVP. 겨우 176센티의 키를 가진 센터가 최소 190대의 선수들과 인사이드에서 싸우면서 만들어낸 업적입니다.

이 분에 대해선 리그베다위키가 엔하위키이던 시절 거기에 제가 정리했던 게 있어 생각난 김에 그대로 퍼와 보죠.



한국 여자 농구의 전설. 레전드. 뭐라 수식어를 붙여도 부족한 인물. 윤덕주에서 시작해 박찬숙을 거쳐 정은순으로 이어지는 한국 여자 농구계의 최고 센터 계보에 있는 선수. 키는 당시로도 결코 센터로서 크다고 할 수 없는 겨우 176cm. 그럼에도 센터로서의 기본기에 충실했고 리바운드 이후 패스로 팀 전체를 속공으로 이끄는 능력이 뛰어났다고 한다.

숙명여고 시절부터 한국 여자 농구 최고의 인재 소리를 듣다가 춘천 우리은행 한새의 전신이 되는 상업은행 농구팀에 입단, 당시 여자 농구 최강이던 한국은행을 제치고 상업은행 최강 시대를 열었다. 그 중심에 있던 박신자는 여자농구를 대표하는 스타로 엄청난 각광을 받았다. 1964년 세계 선수권에는 국가대표팀이 아니라 상업은행 팀이 출전했는데,대회에 전체 성적은 8위에 그쳤음에도 박신자는 대회 베스트5에 뽑힐 정도로 세계적인 인정을 받았다.

박신자는 1965년 무렵 은퇴를 고려하기도 했지만 은퇴를 번복하고 선수 생활을 계속했고, 1967년 체코에서 열린 세계 선수권에도 한국 대표팀의 일원으로 참가, 최소 190대인 외국 팀의 센터들과 대결하며 한국팀을 준우승으로 이끄는 전설을 만든다. 준우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회 MVP는 박신자였다. 이 세계대회 준우승은 당시까지 한국 구기 스포츠가 세계 대회에서 거둔 성적 중 가장 높은 성적. 우승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회가 끝나고 귀국하자 20킬로미터에 걸쳐 카퍼레이드가 펼쳐지고 환영대회에 3만 인파가 몰려들었다.

1967년 세계 대회를 끝으로 박신자는 현역에서 은퇴했다. 은퇴 경기에는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7000명의 관중이 몰렸다. 박신자가 있는 동안 인기 스포츠로 자리잡은 여자 농구였으나 박신자가 은퇴한 이후 여자 농구의 인기는 급락했다 한다. 그야말로 여자 농구 = 박신자였던 셈.

1980년대 초에 신용보증기금 여자 농구팀의 감독으로 농구계에 돌아오나, 이 때는 고생을 꽤나 했다. 감독이 같은 여자라고 선수들이 감독을 따르지 않는 것도 문제였고 심판들도 여자 감독이라고 꽤나 무시를 했다고 하니. 3년간 감독으로 활동한 후, 1988 서울 올림픽 조직위원회에서 일했다.

동양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미국 여자 농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선수다.  

덧붙여 1967년 세계 대회에서 한국 여자농구 대표팀의 성적은 우승한 소비에트에게만 진 5승 1패. 박신자의 득점은 평균 19.2점으로 대회 4위. 대회 득점 1위는 21.7점.


한국 농구 전체가 아니라 한국 남자 농구만 쳤을 때 업적과 선수 시절 세계구급 경쟁력으로 역사상 최고를 꼽는다면, 역시 책과 글로만 알지만  한 선수가 바로 나옵니다.

신동파.

1970년 세계대회에서 평균 32.6점을 넣어 대회 득점 1위를 기록하며 한국 남자농구 대표팀을 4승 4패로 이끌고 당시 아시아 최강이던 필리핀을 상대로 홀로 51점을 기록하며 격파해 한국을 처음으로 아시아 정상으로 이끈 선수.

당시 한국 남자농구 선수들은 아직도 지금 여자 선수들처럼 투핸드 슛을 썼는데, 신동파는 독학으로 원핸드 점프슛을 익혀 중장거리에서 자유자재로 슛을 던졌다고 합니다. 한국농구 역사상 최초의 슈터인 셈인데 키 188에 포지션은 센터-파워포워드였죠. 키는 작지만 스타일상 요즘 NBA의 노비츠키 과라고 해야 할까요. 자기보다 작은 상대가 막아도 큰 상대가 막아도 그냥 제껴가면서 슛을 던져 넣었다는데 아시아권은 그렇다 쳐도 세계선수권에서 대체 어떻게 저렇게 득점을 했는지 신기할 따름입니다.

당시 세계대회에서 한국팀의 기본 공격 방식은 신동파가 중거리로 빠져나와 공간을 만들면서 오펜스 리바운드 따윈 포기하고 그냥 전부 외곽으로 나오고, 신동파 개인기로 득점을 하는 한편 키는 작아도 상대적으로 빠른 다른 선수들이 빈 공간으로 컷인해 들어가 득점하는 식이었다고 합니다.

저 자신의 호불호로는 허재를 훨씬 좋아하지만, 업적이란 면에선 신동파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