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알러 된 지 얼마 안되서 시사관련 글을 올리거나
잡다한 질문들을 올리거나 가끔 좋은 정보라고 생각해 글 올렸는데 홍보라고 해서
삭제당하거나 뭐 이러고 살고 있었는데 갑자기 시사적 내용 외에 제 얘기를 올리고픈 생각이 들어서
글을 씁니다. 얼마전 누군가 '찌찔한 연애 이야기' 올리셔서 갑자기 쓰고 싶어졌어요
제목의 cool 병은 매사 쿨한 척 하는 제 성격을 이르는 말입니다.
(아래서부터 평어체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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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전화가 왔다. 그였다.
일이 하나 들어왔는데 (그나 나나 하는 일이 비슷한 프리랜서)
작년에 너랑 이 비슷한 일을 했던 게 생각나
전화를 한다고 했다.
'내가 대체 왜 너랑 일을 하냐!!'라고 소리를 치고 싶었으나
나는 침착하게 '1월에 한국에 없어서 힘들겠다'고 얘기했다.
그러면서 혹시 같이 일할 사람이 필요하면 어디어디에 알아봐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전활 끊기 전 어디가냐고 묻더니 "태국? 거기 위험해 잘 다녀와"하면서
웃었다. 나도 웃었다. 그리고 전화를 끊으니 또 심란해졌다.
1.
그하고는 작년에 4개월짜리 프로젝트 일을 하면서 만났다.
첫 인상이 몹시 다크다크했다. 좋지 않았다.
사는 동네가 같아서 같은 조가 되면 어떡하지 하고 걱정할 정도였다.
그런데 3주 후 나는 그에게 왕창 빠져들었다.
이유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이유없이 사랑에 빠진다는 말을 믿지 않는 사람이었다.
세속적인 기준으로 얼굴이 잘생겼다거나
키가 크다거나 돈이 많다거나 학벌이 좋다든가 뭐 이런 이유가 있든지
이야기가 잘 통한다든가, 취향이 잘 맞는다든가, 지적이라든가
웃는 게 멋지다든가, 성실하다든가 등등의 무슨 이유든 이유가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여태까지 내가 좋아했던 사람은 내가 항상 이유를 댈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유가 없었다.
그는 세속적인 기준으로 얼굴이 못생겼고 키가 작았으며 돈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원래 얼굴과 키와 돈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니 이 부분은 패스.
하지만 그는 다른 측면에서도 내가 좋아할 만한 구석이 없었다.
그는 내가 싫어하는 담배를 그냥도 아니고 하루에 두갑 씩 피워대는 사람이었으며
말이 잘 없고 취향도 맞지 않았다.
그런 그를 그냥도 아니고 보면 행복해 날아갈 정도로 좋아하게 된 이유는 못찾았고
미스테리하게 남는 걸로 넘어가자.
하튼 그를 너무 좋아했으나 그는 나에게 아무 관심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십 대 철 모르던 시절에야 먼저 고백도 해봤지만 이제 상대편이 나를 아니다 여기면
스스로 잘 정리할 줄 아는 사람이 됐는데
그에게 향하는 맘은 정리가 안됐다.
일주일에 한번 회의 같이 하는 날만 기다렸고
그날엔 유독 엄청나게 꾸미고 갔다. 그리고 프로젝트가 끝났고
나는 생전 내생애 있을거 같지 않던 울며 고백하기
(사귀자라는 고백이 아닌 네가 날 좋아하지 않는 걸
아는데 마음정리가 안되니 나에게 '아니'라고 말을 해다오
그럼 내가 맘을 정리할 수 있겠다)를 시전했다.
그는 몇 번이나 똑바로 말하라는 나에게 '잘 모르겠다'라는 말만 언급했고
나는 그 희망고문에 2주간 시름대다가 다시 만난 술자리에서 만나보자라는 말로 사귀게 되었다.
그리고 3개월 후 나는 차였다.
3개월 전과 똑같은 말로 시작됐다. ' 너를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다.'
자기를 너무 좋아하는 게 부담스럽다고 했다.
사귀는 초부터 먼저 손도 잡지 않으려 했던 게 괜한 게 아니었구나.
누군가에게 마음이 없어진 게 무슨 죄랴, 나는 미안하다는 그에게 괜찮다며 힘주어 말했다.
그렇게 작년 크리스마스 이브날 새벽에 그에게 생일선물을 주고 차였다.
정식으로 헤어지기 3일 전에 그가 이별을 암시하는 말을 했을 때
나는 그 얘길 듣고 술집에서 눈물을 뚝뚝 흘려고 새벽에 집에 그와 같이 걸어오는 30분 동안
길에서 대성통곡을 했었다.
그때 그는 아무말도 없이 쳐다보기만 했었다.
그 기억때문에 마지막 모습에서 우는 모습을 보이지 말자 생각했다.
집에 돌아와 나는 "너때문에 가슴설레고 너의 목소리만 들어도 힘을 얻었다. 3개월동안 고마웠다"고 문자를 보냈다.
2.
길을 걷다가도 울고, 노래를 듣다가도 울고, 밥을 먹다가도 울었다.
머리를 감다가도 울고, 책을 읽다가도 울고, 쇼윈도에 비친 내 모습을 보다가도 울었다.
밤에 자리에 누우면 눈물이 베개를 적셨다.
헤어진 지 한달 정도지나 1월에 그를 일 때문에 만났을 때 나는 짐짓 명랑한 척 했다.
그러나 까페를 나오자마자 집에까지 가면서 길거리에서 울어댔다.
나는 '보면서 잊자'라는 생각에 그와 같이 있던 카톡방에도 계속 있었다.
친구들이 비아냥댔다.
2월에 또 다른 곳에서 그를 만났을때도 나는 그에게 먼저 농담을 걸었다.
그는 어색해하다가 같이 농담을 주고 받았다.
5월에도 그를 행사장에서 만났다.
나는 매우 유쾌하게 밥을 먹고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었다.
그리고는 지하철역에서 집까지 걸어가면서 역시 울었다.
낮에는 사람들을 만나 방긋방긋 웃으며 장난치다가도
밤만 되면 집에서 매일 우는 생활이 계속됐다.
그를 못잊거나 다시 만나고 싶어서는 아니었다.
그냥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어떤 일에 이리 진심을 다한게 처음이었는데
이리 짧게 끝나버린게 허무하고 패배감이 들었다.
나는 우울증과 패배감에 시달렸다.
7월에도 그를 한 자리에서 만났다.
그가 집까지 바래다주겠다고 했다. 유쾌하게 집까지 걸어왔다.
나는 이제 그에게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10월초에 그를 또 다른 자리에서 다시 만났을때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여러 에피소드가 있었는데..어쨌든 그날 내가 알게 된 건 두 가지였다.
하나는 그가 나처럼 아파하거나 할 수는 없어도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는 궁금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나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다는 걸 그날 알았다.
그리고 또 하나는 내가 그에게 마음이 아직도 남아있다는 것이었다.
오기로 한 사람들이 안 오고 약속이 꼬이면서 그날 굉장히 짜증이 나있는 상태였는데
그가 싱긋 웃으며 들어오는 얼굴을 본 순간 모든 짜증이 한 순간에 풀리는 게 느껴졌다.
실로 충격이었다. 나는 그저 내가 패배감에 젖어있을 뿐 그에게 아무런 마음도 남아있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집에 어떻게든 같이 오는 걸 피하고 싶었는데 같이 오게 됐고
그가 마지막에 한 말이 내면의 화를 건드렸다.
"네가 전화하는 거 안불편하니까 언제든지 전화해도 돼" 언제든지 전화를 해도 된다고???!!!!!!!!!!!
너는 나를 버렸으니 내 목소리를 들어도
아무렇지 않겠지만 나는 아니거든.
그동안 가끔씩 널 만나고 나면 후유증이 다시 도져서 뜸했던 눈물이 다시 흐르고
꿈을 꾸느라 잠을 설치고 네가 하는 근황에도 널 걱정하게 되고
그러면서 다시 비참해지거든!!
넌 내가 편해서 좋겠구나!!
지하철역에서 집까지 또 울면서 걸어왔다.
그리고 그날부터 분노에 휩싸여 잠을 못자기 시작했다.
프리랜서라 아침 일찍 출근은 아니지만 일을 해야 하는데
아침해가 뜨는 7시가 되도록 잠이 안왔다
나는 수면유도제를 먹으며 살았다.
헤어진지 10개월이나 됐는데 이제와서 나는 미친듯이
그에게 소위 '땡깡'내지는 패악질을 해대고 싶었다.
새벽마다 그에게 전화를 해서 소리를 지르거나 화를 내고 싶은 충동에 시달렸다.
- 왜 크리스마스 이브날, 그것도 생일선물을 받고 헤어짐을 나에게 통보해야 했나 너는 배려심이 없다!
- 헤어지기 3일전 내가 그렇게 길거리에서 우는데도 너는 한번도 나를 달래주지 않았다. 너는 나쁜놈이다!
-내가 물도 못넘기고 있는 25일날 카톡방에서 그렇게 생일을 알리며 사람들 모아 놀아야했나!
- 마지막에 했던 말 중에 나의 자존심을 뭉갠 말이 있었는데 여태 그것때문에 상처가 남아있다 사과해라!
- 중간중간 행사장같은 데서 만났을때 너의 행동이 이러이러한 문제가 있었다!
- 니가 뭐가 그렇게 잘나서 너는 나쁜놈이야!!!@#%$^$%!@ 등등등.
그렇게 10개월을 쿨한 척 하면서 하하호호하더니
이제와 내가 왜 이러나.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3개월이나 나랑 사귀냐고 그도 힘들었겠다.
그의 경제적 사정이 그를 여유없게 만들었을테다.
아니다. 내가 왜 그를 걱정해줘야 하나!!!!!!!!!!!!!!
여자사람친구들은 이제라도 그에게 할 말 하라고 북돋았고
남자사람친구들은 그러지 말라고 나를 말렸다.
두달간이나 잠을 못자니 사람은 피폐해졌고
나는 몇번이나 그에게 전화를 하려고 했지만
결국 하지 않았다.
그것은 슬프게도... 내가 그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은 욕망이
아직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3.
10월 이후에 그제서야 나는 그와 같이 있던 카톡방을 탈퇴했다.
연기는 이제 그만.
해외 항공권을 산 것은
두달동안 잠을 못자면서 나에게
휴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내린 결정이었다.
같이 일하는 팀들에게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에게는 현실도피가 필요했다.
그리고 며칠전 전화벨 소리에 뜨는 그의 이름.
짐짓 또 차분하고 쿨하게 (그러나 이번에는 농담을 섞지않고)
받은 전화.
같이 일하고 싶은 동료로 나를 생각해줘서 고맙다. 하지만 이제
어떤 경로로든 너의 소식을 듣고 싶지도 만나고 싶지도 않다.
네가 무슨 죄랴. 그동안 너무나 쿨한척 했던 내가 문제지.
헤어진지 1년이나 누군가에게 헤어나오지 못하는 내가 지긋지긋하다.
사귄 건 겨우 세 달인데 이게 뭔 짓이야.
잘 살길 바란다.
내가 너에게 내렸던 저주도 풀어줄게. 나보다 좋은 사람 절대 만나지 못할 거라는 그 저주.
그리고 언젠가는 너를 떠올릴 때 담담해지는 내가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