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종종 타인의 말과 행동에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도대체 왜 저러지?' 무엇 때문에 저러지?' 등등 말이죠.
그리고 그 의구심을 풀기 위해 상대방에게 직접적으로 물어봅니다. '왜 그러냐?' 혹은 그게 과거라면 '왜 그랬냐?'고 말이죠.
아마 그 질문을 한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대답이 뭔지 생각해볼때 저는 '그냥' 이라는 대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그냥 그렇게 되서 그냥 그렇게 했다'. 이 대답을 들을 사람은 아마 몹시 짜증이 날 겁니다. 질문한 사람 입장에서는 좀 더 구체적이거나
아니면 좀 더 솔직한 답변을 원했는데 '그냥'이라니 참 할 말이 없으면서도 짜증이 슬슬 나죠.
사실 부모님이나 직장상사 혹은 손윗사람들에게 '그냥'이라는 대답을 한다면 어릴때는 꾸중 혹은 체벌이 돌아올것이고 사회생활에서 그런다면
다른 의미로 굉장한 사람인거겠죠.

그런데 말입니다. 제 경험 상으로는 그 '그냥' 이라는 이유가 제 선택의 거의 대부분이라는 겁니다.
물론 제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경우 가령 업무같으면 해야죠. 그건 뭐 '그냥' 해야죠.
하지만 제가 선택할 여지가 있는 상황이 생기면 '그냥'이라는 이유가 전가의 보도가 됩니다.
가령 예를 들어 '나는 오늘 맥주를 마실까? 소주를 마실까?' 고민을 했지만 저는 닭발에 맥주를 먹었습니다.
근데 누군가 '왜?'라는 질문을 한다면 저는 뭐라고 답을 해야 할까요?
저의 대답은 '그냥 맥주에 닭발이 먹고 싶어서'라고 했을 것 입니다. 다른 이유가 있을수도 있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하기가 귀찮아서 그럴수도 있지만 '그냥'이라는 단어가 그 모든걸 대변해 주는거 같습니다.

하지만 좀 더 심오한 예로 '너는 그 사람이 왜 좋냐/싫냐?' 라고 물어본다면 저는 그때도 아마 '그냥'이라고 대답할 거 같습니다.
모르죠. 제가 제 마음과 심정을 제가 구사할 수 있는 언어로 다 표현할 수 없으니 '그냥'이라고 대답하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저도 가끔 정말 미묘하고도 아리송하고도 애매하고 정말 제가 아는 언어로는 이루 표현 할 수 없는게 언어의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그냥 좋은 사람은 그냥 좋고 그냥 싫은 사람은 뭘해도 싫습니다. 똑같은 행동을 해도 좋은 사람은 미소가 지어지고
싫어하는 사람이 그 행동을 하면 그냥 짜증이 납니다. 왜 그럴까요? 제가 그냥 나쁜놈이라서 그런걸까요?
아니면 왜 싫은지에 대한 이유를 캐치 못해서 그런걸까요? 그게 아니라면 스스로 이중잣대에 대한 혐오감 때문일까요?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저한테 변명을 합니다. 저 스스로 저를 설득시킬려고 하지요.
'그냥'싫은게 아니라 무엇무엇 때문에 싫은거라고 말입니다. 왜냐? 그냥 싫다고 하는건 앞뒤 눈치도 없는 사람이니까'
그래서 저는 저 스스로에게는 좀 더 솔직한 변명을 하고 그것을 남에게 표현할때는 더 완곡하게 변명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배 고파서 식당을 찾고 있던 와중에 평소 별로 왕래가 없던 지인을 만납니다. 그 지인은 식사 안했으면 같이 식사를 하자고 합니다.
그 즉시 저는 '싫어'라는 답을 내놓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스스로에 대한 변명을 하죠. '어색해서 서로 불편할꺼야' '저 사람도 인사치레로 하는 말일꺼야' ' 저 사람은 왠지 내가 싫어하는걸 먹자고 할거 같아' 이런식으로 말이죠. 그리고 제가 제 변명에 설득이 되면 이제 그 사람에게 완곡한 변명을 하게 되죠. '아 저 방금 밥먹고 왔는데 어쩌죠?' '저는 선약이 있어서 미안합니다,'  그리고는 언제가 될 지 모르는 식사 약속을 잡고 헤어지죠. 근데 생각해보면 저는 그냥 그 사람이랑 밥을 먹기 싫었다는 거죠.

그렇다면 '그냥'이라는 말에 내포되어 있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말하기 귀찮으니까 물어보지마라' '말해봤자 모를테니까 물어보지마라' '언어로 표현 할 수없는 인간의 복잡한 감정' 등등 이겠죠.
저는 이중에서도 언어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인간의 복잡한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오늘 하루 제가 느낀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는 이 세상에 아직 없는걸로 아니까요.

그래서 오늘은 그냥 그런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