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현 세계의 무수한 분쟁들을 생각해보죠.
중동에 전쟁을 일으킨 무력국가 IS, 나이지리아에 창궐하는 보코하람, 시 경찰과 결탁하여 많은 대학생들을
살해한 멕시코 카르텔, 팔레스타인을 공격하고 사상자 수가 차면 빠지기를 반복해온 이스라엘군, 그리고
북쪽의 독재집단. 그에 비한다면 우크라이나에 벌어진 내전은 명예로운 전투라고 할 수 있을 정도겠죠.
우크라이나의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정부는 차관이 필요했고, 그 대상은 둘로 갈렸습니다.
우크라이나 서부와 가까운 유럽연합, 동부와 마주한 러시아.
그 둘에서 정부는 러시아를 택했습니다. 유럽연합보다 액수는 적었지만, 조건이 좋았기에 나름
타당한 선택이었죠.
하지만 그 결정을 내린 친러대통령 야누코비치의 부패함, 시위대를 진압하며 수많은 사상자조차
마다하지 않는 무자비한 모습은 대대적인 봉기를 불러일으켰고, 부패한 야누코비치는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부패한 대통령을 끌어내리는 혁명은 성공하였지만, 이제부터는 해피엔딩이 아니었습니다.
야누코비치부터 극단적 동서지역감정을 업고, 간신히 당선된 인물이었고, 우크라이나에는 러시아계열의
주민도 상당합니다. 그들은 부패한 대통령이 물러나는 모습은 인정할 수 있었지만, 수도 키예프의 열기가
러시아계인 그들을 대적하는 모습을 보이자, 슬슬 갈라질 것을 생각하고 있었겠지요.
특히 크림반도에선 내부의 친러계 동조자들이 러시아의 개입을 등에 업고, 굉장한 활동력으로 순식간에
크림반도와 러시아를 통합시켜버렸습니다. 나름 평화로운 무혈점령이었죠. 미국과 각종 서구세력은
급하게 반발하였지만, 이미 크림반도에 들이댄 러시아군의 위압감에 정부군은 백기를 든 상황이었죠.
무엇보다 크림반도는 후르시쵸프가 뜬금없이 우크라이나에 할양한 것이기에, 적극적인 개입을 하기엔
명분도 부족했습니다.
또한 크림반도의 미녀 검찰, 나탈리아가 인기를 얻기도 했습니다.
대통령을 끌어내린 시위대가 확고한 수도 키예프를 떠나 부모가 거주하는 크림반도로 향한 그녀의
정치적 성향은 러시아에 밀접할 것입니다. 그녀는 크림반도에서 크림 공화국 검사장의 자리에 오릅니다.
언론에 알려질 때 중령급이었던 그녀는 곧 진급해 대령급으로, 법무 상임 고문을 맡게 됩니다.
30대 중반이란 나이와 우월한 외모, 탁월한 경력과 높은 직급. 그야말로 재색겸비의 재원인 엘리트 여성.
푸틴의 미인계라는 설이 있긴 하지만, 키예프 수석검사에 오른 유능한 젊은 여검사가 사직서 내고 크림반도의 부모집에
가 있던차에 약간 긴장을 완화시킬 소재를 찾던 푸틴의 눈에 띄였을 뿐입니다.
그녀의 경력과 커리어는 물론 사실이고, 푸틴과 나탈리아만이 아니라 크림반도의 대다수가 만족할만한 인사라고 봅니다.
그 상황을 보고 있던 동부의 러시아계열 세력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내전의 시작입니다.
도네치크, 루한시크 두 지역에 선언했던 각각의 공화국이 노보러시아 공화국으로 통합되면서 세력을 구축하였고,
그에 맞서 분리독립을 저지하는 정부군도 투입됩니다.
정부군은 장비와 병력면에서 우월하였지만, 정치적 혼란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이었기에, 전황은 일진일퇴의
공방전이 벌어집니다. 그리고 민항기 격추.
그 원인은 우크라이나 정부군 공격기로 오인한 반군의 오인사격이 유력합니다. 그 시기에 반군은 아마도 러시아에서
지원받았을 대공미사일로 정부군 공격기를 격추하며 기세를 올리고 있었습니다.
민항기 격추 이후에 정부군은 공세를 거듭하고, 반군은 위기에 몰립니다.
팽팽한 야전에서 한 쪽이 내부의 혼란으로 성으로 후퇴한 모양새였죠. 공세를 취하는 정부군은 슬슬 포위하고,
슬슬 손쉬운 공성전을 준비하면 될 일이라고 생각될 시기였죠. 하지만 크나큰 반전이 일어납니다.
포위되기 이전에 몸을 빼낸 반군의 일부가 강력한 동맹군과 함께 등 뒤에서 나타난 것입니다.
전선에서 멀리 떨어졌던 남부에 치명적인 기습공격이 시도되었고, 정부군은 속수무책으로 돌파당하고 맙니다.
여유롭게 공성전을 준비하던 정부군이 성에서 튀어나오는 정면의 적과, 등 뒤를 기습한 반군에게 도리어
포위당해버린 셈이죠. 그리고 푸틴은 인도주의적인 제안을 합니다. 정부군이 후퇴할 퇴로를 열어주라고.
그리고 내전은 일단 멈췄습니다.
반군의 군사지도자인 이고르 대령,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 정보국 소속의 대령이라고,
러시아에선 퇴직한 밀리터리 매니아라고만 밝힌 그의 실제 경력과 직급이었든간에 그는 놀라운
수완을 보여주었습니다. 상위 1%를 A급이라고 가정하면, 장교가 만명이면 그중 백명은 A급일 테지만
몇만명의 장교가 있어도 이고르 대령 정도의 위치에 오를 수 있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만약 러시아의 개입 없이 포위를 뒤집었다면, 전쟁사에 기록되는 군략가로 남았겠지요.
분투하였으나 내부의 악재로 성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는 상황, 포위를 목전에 둔 위험한 상황에서 별동대를
우회시키는 과감한 책략, 포위하고 안심하는 적군의 후방을 별동대가 기습함과 동시에 성에 후퇴해있던 주력군의
돌격으로 일거에 전황을 반전시킨다면 역사에 남을 명장의 기록이겠죠.
어떤 호사가들은 러시아가 개입하지 않은 이유가, 대령과 그를 비롯한 반군 수뇌부들의 존재라는 가설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러시아의 개입으로 전쟁이 마무리된다면, 반군의 지도자들에 일정한 권한을 줘야하는만큼
지도자들이 장렬하게 전사한 이후에 전격적으로 개입하여, 우크라이나를 완전히 집어삼키고 싶어한다는 설이었지만
그는 포위에서 빠져나왔고, 전세를 역전시켰습니다. 러시아는 공식개입을 부정하고 있는만큼,
명분상으로 그가 주도하는 반군과 합류한 의용군들의 놀라운 성공인 셈입니다.
우크라이나에 정전협정이 체결된 이후 한편으로, 세계는 중동에 성립된 유래없을 정도로 무자비한 폭력국가의 성립을 경계하고 되었고,
이제 우크라이나의 정세는 외부인들에겐 기억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크림 반도의 미녀 검사장은 자기는 포켓몬이 아니니
실력으로 평가받고 싶다고 말한 대로 업무에 전념하고 있을 것이 당연하겠지만,
이고르 대령은 군사지도자로 부하들과 함께 우크라이나의 정세를 관망하고 있을까요?
우크라이나의 내전에서 많은 민간인이 죽거나 다쳤으며, 참전한 군인의 상당수가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여객기 격추가 증거하듯이, 우크라이나 내전은 희생으로 결과를 만들어내는 불의는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말했지요, 우린 전쟁을 하고 있으니 불가피한 일이라고.
또한 스파이로 오인받는 민간인이 가혹행위를 당하고, 전쟁포로가 결박되어 군사 퍼레이드에 동원되었습니다. 거기까지.
시리아, 이라크, 이스라엘, 멕시코, 나이지리아, 그 외 다양한 분쟁에서 저질러진 인간의 사악함에 비하면
우크라이나의 상황은 그래도 신사적이라고, 군인들의 죽음은 명예로운 전사였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그리고 푸틴. 여객기 격추 이후에 전격개입하여 서방과 본격적으로 대립할 것인가, 혹은 소극적 지원을 유지하여
반군이 무너지는 것을 방관할 것인가, 많은 이들이 예상하였던 이러한 두 가지가 아니라 반군의 대회전을 통한
역습, 그 후에 이어진 인도적인 권고와 정전협정. 독재자 푸틴의 현명한 선택에는 감탄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작년과 크게 달라졌습니다. 폐지됬던 징병제는 다시금 부활됬고, 지역감정이 심하다고 해도
같은 국적의 동질감이 있었던 과거와 다릅니다.
그렇지만 악의적이고 무자비한 폭력단체의 기세가 멈추지 않는 세계의 곳곳에 비한다면, 그나마 정전을 맞이한
우크라이나의 불안한 미래에서 희망을 찾아야하는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