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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1/15 01:17
잘 읽었습니다.
여담이지만 읽으면서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싫다" 의 사채에 대한 에피소드 중 마사오님이 한 얘기가 떠올랐습니다. 어느 대학교에서 교수가 학생들에게 자기 주변에 있는 노동자들을 찾아보라는 과제를 내주었다고 합니다. 근데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 과제를 어려워했다고 하더군요. 자신들이 생각하는 노동자들이란 뭐 어디 공사장이나 그런 곳에 있는 분들이 노동자인데, 자기 주변에는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는 것입니다. 한국사회에서 "노동자"라는 단어가 부정적으로 와전? 된 것도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블루 컬러, 화이트 컬러의 직종에 있는 사람들 모두 노동자인데 상당수의 사람들이 자신은 "회사원"이길 원하고 그렇게 자각하지, "노동자" 라고 자각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노동운동을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구요.
14/11/15 01:26
세상에 명백한 악이 없어지고 있는것은 우리도 그 악에 한발 담그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기는 하지만 안타까운건 어쩔 수가 없네요.
14/11/15 01:32
시간이 지날수록 견지하기 어려워지는 태도임을 볼 때 저도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과 타협한다고하기는 뭣하지만, 애써 무시하며살아왔는데 막상 된건 없고 여전히 불안한 미래가 지속되고 있다는걸 느낄때 무엇을 위해였나라는 또다른 허무함도 듭니다만...ㅠㅠ
좋은 글 잘봤습니다. 추천 누르고 갑니다.
14/11/15 01:45
["시장은 인간의 이성과 지각 그리고 인간의 의도와 간구(干求)를 훨씬 넘어서서 형성된 질서이다. 시장이 의도한 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실패를 추궁하고 시장에서 정당함을 찾거나 정의와 같은 특정 도덕적 속성을 강요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시장은 스스로 계속 진화해 간다. 어떤 때는 아동노동이 자연스럽지만, 다른 때와 다른 장소에서는 그것이 부자연스러운 것처럼 말이다. 그런 시장에 권리나 정의와 같은 어떤 특정 도덕을 강요한다면, 그것은 시장의 진화를 멈추어라 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배진영 인제대 국제경상학부-,한국 하이에크소사이어티
'나는 지금의 내가 되기 까지 겪은 모든 수고와 어려움에 대하여 후회하지 않느다. 나는 이 인생의 역정에서 나를 계승할 사람에게 나의 칼을 줄 것이고 나의 용기와 기술은 그것들을 얻을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주어질 것이다.' -존 메이너드 케인즈, 그의 장례식 추도사에서- 금융자본주의의 모범생이었던 아일랜드가 무너졌을 때, 당대 주류경제학자들의 신앙고백을 들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지구촌 경제에 페스트가 돌면 그들은 단지 시장을 교란한 죄에 대해 고행을 통한 참회와 참회를 그리고 참회를 처방할 뿐이다. 라고요. 그러나 수도승들의 인간의 예지가 닿지 않는 신을 향한 기도는 응답받지 못하고 결국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전세계를 휩쓸었죠. 시장에서 누가 악이냐고 물으면 전 시장의 선택을 만드는 모든 인간이라고 답할 겁니다 그리고 이 말은 누구의 책임도 아니라는 말과도 같겠죠. 그게 자유시장 체제를 누구도 타도할 수 없는 이유고요. 그러나 누가 투사가 되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경제학자들이겠지요. 경제학자들이 개개 인간의 자원선택의 모든 집합인 시장과 싸우지 않으니까 다른 사람들이 모두와-세상과 싸우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중에서 가장 고역을 치르는 건 선택권이 별로 없는 노동자들이죠. 피케티를 오랫동안 기다려 왔습니다.
14/11/15 01:56
배진영 교수의 저 발언을 포함한 유사한 주장을 볼 때마다 당황스러운데,
그 이유는 '의도'와 관련 없이 부정적인 현상이라고 해도, 그것이 '문제'를 야기한다면 이를 수정하기 위한 '행위'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 시장 뿐만 아니라 권리나 정의, 도덕 역시 (해당하는 주장과 같은 의미에서) 최소한 시장과 동등한 위치에 형성된 '질서'라는 점, 그리고 '조건'을 설정하는 것과 '진화를 멈추는 것'은 사실 무관한 이야기인데 마치 논리적 연관이 있는 것처럼 다룬다는 점입니다. '신앙고백'이야 종교적 자유로 인해 허용될 수 있지만, '신앙'임을 '알 수 있게 표시' 해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이 안타깝네요....
14/11/15 02:00
음 전 처음 보는데 읽으면서 문장 읽으면서 숨이 턱 막혔네요-_-;
'아니 그러면 그 아동노동은 시장이 알아서 처리한 거고 정의에 대한 갈구가 작용한 결과가 절대 아니라는거야?'
14/11/15 02:07
그야말로 '신앙고백'이니까요.
그것이 '사실'인가보다는, 그것이 어떠하다고 '믿는'것이 저 맥락에선 더 중요하게 되니 ㅠㅠ IS양반들보다 사실 이 형태의 신앙고백들이 '미치는 영향'쪽이 더 클 가능성이 있습니다만...
14/11/15 02:16
현대 경제학의 초급경전인 M씨 경제학원론은 입문자들에게 10계명부터 가르쳐주죠.
효과적이긴 한데.. 이게 교조주의적 태도를 키운 원인의 하나인 것 같습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벌어졌던 얼마전까지 신고전주의를 위시해 주류경제학이라 불렸던 곳의 사람들은 경제학을 과학으로 만들고 싶어했지만, 실제로 본인들은 탐구라기 보단 시장모형의 정교한 계산기 역할을 주로 수행했고(시장에 대한 궁극의 신탁 해석기인 블랙앤숄즈 모형은 결국 망했지만), 타인들에겐 인간 예지를 넘어선다고 주장하는 자유시장에 대한 교조주의적인 복종을 강요했죠. 저는 경제학은 시조 아담 스미스의 태생부터 공리주의에 바탕한 정치경제철학에 가까웠고, 프로메테우스적인 의지로 노예무역이나 중상주의 같은 중세적 상업과 시장의 주어진 한계를 부수고 근대세계를 견인했던 본래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선 정치경제학의 자세와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제야 다 망해서 더 이상 그런 망발을 못할 뿐, 그 수도승들의 신탁 해석과 죄를 참회하라는 고행 요구의 염불을 생각하면 아직도 울적합니다. 그래도 그 사람들은 신앙이라도 순수했는데, 한국에서 칼럼 투척이나 대학교 교양강좌를 활발히 펼치는 한국의 자유기업원-자유시장원이란 곳은 자유시장을 추종한다면서 현실 한국의 재벌, 독점, 담합에 대해선 쓴소리 한번 안 하고 오히려 살살 옹호하는 것을 보면 논할 가치도 없지요.
14/11/15 02:41
교조주의나 근본주의적인 영역에선 무언가를 '추종'한다는 주장은 '무엇이라고 믿는 것'을 추종한다는 의미에 가까워 지니까요.
자유지상주의의 한국적 변용이야말로 그 '교조주의'와 '근본주의'적인 속성을 아주 잘 드러내는 '사례'인 듯 합니다. 긍정적으로 봐준다면 자본주의의 자유지상주의적 신조에 따르는 광신도 답게 자신의 '신앙'도 상품화 하는 진짜배기 근본주의자로 볼 수도 있습니다. 사실 '펜'과 '언설'로 사람을 '말려죽인다'는 점에선 기존의 어떤 근본주의 종교단체 양반들보다 질이 나쁜걸수도 있지만요 ㅡㅡ;
14/11/15 03:23
오.... 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는 좋은 댓글입니다. 제 형이 악의 축인 월가에서 일하는 경제학도인데, '경제 예측? 그런 거 안돼. 어려운 게 아니라 그냥 불가능한 거야. 된다고 하는 놈들은 당연히 거짓말쟁이들이고' 라고 말하곤 합니다. 언제고 기회 되면 말씀하신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봐야겠네요.
14/11/15 07:57
먼저 항상 글/댓글에 감사부터 하고요, 본문혹은 Pain님이 단 댓글의 주제와는 전혀 무관한 곁가지에 대한 질문이라 약간 주저하지만 한가지 궁금한게 생겨서 물어봅니다.
저는 경제학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경제학에 쓰이는 수학에 대해서는 좀 아는 편인데, "궁극의 신탁해석기인 블랙앤숄즈 모형은 결국 망했지만" 이라고 언급한 사실에 대해서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제가 아는것은 블랙앤숄즈 모형은 보험이나 옵션같이 불확실성을 기반으로 거래를 하는 상황에서는 전통적인 수요공급모델으로 가격이 결정되는 양상을 설명하기 어려웠는데, 이러한 프리미엄의 가격을 측정하기위한 수학적인 모델로써 제안된 것으로써 사실상 열역학에서을 기술하는 편미분방정식의 한가지인 Heat Equation 하고 수학적으로는 완전히 동일합니다. 1. 블랙엔숄즈 모형이 궁극의 신탁해석기 라고 불리우는 이유가 있나요? 그냥 이자율이 1%이고 10년지나면 이자가 1.01^10 이 되야한다. 라는 이자율모형이나 블랙엔숄즈나 사실 어떤 현상을 기술하기 위하여 크게 단순화된 수학모형인데, 물론 꽤나 성곡적인 이론이고 유명세를 떨치기는 하지만, 그런 거창한 이름을 붙일수 있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2. 블랙엔 숄즈 모형이 망했다고 말할만한 이유가 있나요? 뉴튼역학 방정식도 실제로 측정하면 온간 상대론,양자론등으로 인해 알게된 이론적인 결함, 거시세계에서도 측정오차나 마찰같은 외부효과로 인해 공식대로는 움직이는 경우는 도리어 현실에서 보기 힘듭니다만, 그렇다고 뉴튼 역학이 망했다라고 하는 물리학자는 없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맥스웰 전자기파 방정식이 망했다, 복리이자율모형이 붕괴했다 혹은 수요-공급 가격결정모델이 붕괴했다라는 말처럼 꽤나 이상하게 들립니다. 사실 모든 수학이 관계된 모형이 그렇습니다만, 일정정도 완결된 수학적 타당성을 가지고 있는 경우, 그 공식이 어떻게 동작하는지, 언제 잘 들어맞는지를 이해하는것보다, 언제 적용하면 실패하는지를 잘 파악하는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실패할때가 언제인지, 적용하면 안되는 상황이 무엇인지 알아갈수록 그 공식의 가치가 떨어진다기 보다 도리어 유용성은 점점 커지게 되죠. 상대성이 이론이 등장했다고 해서 뉴튼방정식의 가치는 떨어지지 않았고 언제 적용하면 잘 안되는지를 아니까 오히려 쓰일수 있는 상황을 잘 찾아 더 안심하고 유용하게 써먹을수 있게된 것처럼요. 음... 그냥 현대 경제학이 시장을 예측하는것에 실패했다는것을 선언하기 위한 비유처럼 쓰인 문장일까요? 혹시 제가 모르는 블랙앤숄즈 모형에 관하여, 궁극의 신탁해석기라고 불리울만한, 그리고 결국 망했다고 할만한 스토리가 있는것인지 궁금합니다.
14/11/15 09:32
(시장에 대한 궁극의 신탁 해석기인 블랙앤숄즈 모형은 결국 망했지만)
위 표현은 수사에 불과하다는 것을 우선밝힙니다. 제가 설명하는 내용은 다 아시리라 보지만 덧붙여보겠습니다. 1.궁극의 신탁 해석기 옵션가격을 결정하는 블랙앤숄즈 모형이 파생금융공학이론의 효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90년대에 숄즈와 머튼이 참여한 전설적인 회사 LTCM이 블랙과 숄즈와 머튼이 공헌한 옵션의 체계적 가격결정이론에 근거한 자동 트레이드 시스템을 처음 도입해 선을 보였기 때문에 이런 표현을 했습니다. 1-1시장에 대한 여러 시장 중에서 금융시장은 정보가 시장행위자들에게 빠르게 공유되고 거래의 딜레이가 적어서 특히 경제의 수리적, 과학적 모델화에 적합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실물이 아닌 권리를 다루는 금융거래의 특성상 시간이 지나면서 거래가 국제적 성격을 띄어 전세계의 금융시장을 손쉽게 하나로 연결했고, 투자의 거대함으로 금융경제가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점차 강해지게 되었고, 실물 리스크를 다루는 헷지를 통해 가지인 파생금융경제가 뿌리인 실물경제를 흔드는 정도까지 왔지요. 시장에 대한 궁극의 신탁 해석기란 것은 이러한 금융시장공학을 열었다는 의미입니다. 2.결국 망했지만. 말씀해주신대로 공식은 수식이므로 망할 수는 없지요. LTCM은 국채차익 자동거래로 기적의 로우 리스크 하이리턴을 실현하며 거대한 부를 쓸어담고 솔즈와 머튼은 97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습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망해버립니다. 그들의 모형은 국가는 망하지 않는다는 과거로부터의 경험적 가정에 의거했는데 러시아가 망해 지불유예를 해버렸기 때문입니다. 세계경제는 2차 대공황 앞까지 치달았고 숄즈와 머튼은 부와 명성을 잃습니다. 그후로도 금융시장 계산의 발전은 고도의 금융기법으로 나타났지만 종종 개인의 파멸이나 서브 프라임 모기지 같은 전지구적 파국으로 이어지곤 했지요. 시장에서 과거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명확한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역사적 경험을 볼 때 상품가격의 미래를 예측하는 금융공학의 기초인 블랙앤숄즈 공식과 금융공학은 번영하는 미래를 보장해주는 부의 과학 같은 것은 아니었고 현실에선 잘 포장된 투기에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결국 망했다는 표현을 썼습니다. 표현을 그리 한 이유는 이상과 같습니다. 답글에서 많이 배웠습니다.(__) 블랙은 본래 경제학자가 아니고 물리학자였는데, 개인적으로 저는 자연계의 수리 모델을 사회현상에 적용하는데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실험실이 아니고 통제할 수 없는 통합적 대상을 상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필요한 사회적 조건을 제대로 반영한 공식인지 의문이 듭니다. 블랙앤숄즈 모형은 투자자의 위험선호도를 배제하는 논리적 전개를 하는 모델이었죠. 둘째, 시장의 행위자와 관찰자가 분리되기 어렵습니다. 셋째, 통제된 실험실이 아니라 현실에서, 그것도 기관이 개입된 금융이면 전지구적 레벨에서 사고를 감수해야 합니다. 넷째, 경제학 내부에서 인간의 선택 또는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모델화가 법칙 같은 확실한 근거를 갖는 것이 아닌데, 이것을 대충 퉁치고 넘어가서 자연과학에서 끌어온 수리공식을 전개하고 그 자체의 독립적 원리에 따라 어떤 시장결과를 연역하는 것은 일종의 분칠입니다. 이런 상황 하에서 경제학부 전공자보다 수학이나 공학 학부 전공자가 경제대학원이나 금융업계에서 더 대우받는 건 우연이 아닌 것 같습니다. 과학처럼 보일 요량이 아니라면 경제학에서 수식이 현실경제에 대한 경제적 직관을 말로 설명하는 문장을 압축하고 공리(攻利)에 대한 계산을 대략적으로 추정하고 그래프로 시각화 하는 것 외의 역할을 할 이유가 있는가 싶습니다.
14/11/15 22:55
주다스 페인님 글을 보면서 항상 공감하던 입장이었는데 이 글의 댓글에서 보여지는 스탠스는 살짝 공감하기 어렵네요. 통계를 내보지 않았지만 경제학은 자연과학에 근접하는 수준의 엄밀성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 경제학자들은 극소수라고 생각합니다.(정치인들은 반면 꽤 될 것 같네요) 기본적으로 경제학에서 모형을 검증할 때는 내적 정합성 뿐만 아니라 외적 적합성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기본적으로 이 학문이 사회과학에 발을 딛고 있는 것이죠.
또한 위대한 경제학자일수록 모형의 한계를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습니다. 경제학은 가정의 학문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모형은 언제나 비현실적인 가정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기본적인 가정에서 벗어나는 순간 그 설명력을 잃습니다. 이 기본적인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자체가 이미 경제학자라고 칭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따지고 보면 이론경제학은 특정 모형에 자연과학과 상응하는 절대적인 현실설명력의 권위를 부여한다기 보다는 모형을 통해서 어떤 가정들이 조합되었을 때 어떠한 결론이 나오는지에 대한 관찰을 통해 현실에서 어떤 통찰을 얻고자 하는 기반에 불과할 뿐입니다. 가령 세이의 법칙이 충족되는 시점에서는 고전경제학의 분석이 유의미하고, 유효수요의 원리가 적용되는 시점에서는 케인즈의 분석이 유의미한 것일 뿐 모든 시점에서 어느 하나의 이론이 타당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경제학에서 진행 되는 학파간 갈등은 "현실이 어떻게 생겼느냐"에 대해서 싸우는 것이지 모형 자체의 정합성 가지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경제학자들이 "경제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다시 말해 어떤 단답형처럼 옵티멀을 도출해내지 못하는 것은) 사실 근본적으로 현실 자체가 워낙에 거대한 복잡계이기 때문이지 특정 모형이 현실에 완벽하게 부합한다고 맹신해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언급하신 LTCM 사태와 같은 경우도 현실의 계량경제학적 데이터에 대한 맹신이 있었던 것이지 기본적으로 경제학을 자연과학 수준으로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는건 지나친 해석이라고 보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모형은 말 그대로 공리를 설정하고 연역적 추리를 바탕으로한 현실과 동떨어진 수학이지 현실 그 자체가 아니고 경제학자들도 그걸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이런 수학적인 모델이 경제학에서 필요한 이유는 딱 하나 도구적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즉, 의사소통의 편의 때문이죠. 가격이 경직적이거나 유동성 함정이 존재한다면 통화정책은 무용하다라는 논리를 모두가 알아먹을 수 있게 말하려면 물론 줄글로 써내려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만 그건 e=mc^2를 줄글로 증명해봐라랑 비슷한 수준의 비효율이기 때문에 수식을 쓰는 것일 뿐입니다. 의사소통의 편의라는 목적이 있음에도 수식을 사용하는 이유는 단지 자연과학 수준의 엄밀성을 갖춘 것처럼 위장하기 위함이라는 다른 의도가 있다고 해석하는 것은 지나친 억측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제학에서 수학이 쓰이는 유일한 이유는 여타 다른 자연과학과 마찬가지로 의사소통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지 그 자체에는 어떠한 가치도 없습니다. 블랙숄즈 모형을 예로 들어서 보자면 공리에 차익거래가 불가능하다는 가정을 넣고 옵션가격 책정에 가능한 두 가지 방식을 비교하여 결과적으로는 단일한 옵션 가격을 설정하는 것으로 해를 내는 것으로 그냥 특정한 옵션들의 가치를 구하는 방정식에 불과합니다. 다만 이걸 가지고 유럽피언 콜옵션의 해를 구하는데 그 과정에서 물리학에서 사용 됐던 수학적 방법론을 사용하여 해를 낸 것일 뿐이죠. 즉, 물리에서의 특성한 물질의 성질을 이용한게 아니라 방정식 자체가 물리학에서 특정 문제를 풀이하는 것과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었고 그 방법론을 사용해서 해를 구한 것 뿐입니다. "사물이 이렇게 움직이니 경제도 이렇게 움직이겠지" 하는 러프한 추측이 아니라 단순하게 말해서 수학문제 푸는데 공식을 이용한다는 것과 같은 느낌이죠.(다만 우리같은 범인은 그거랑 그게 같은 구조였다는 것을 꿈에도 눈치채지 못할 뿐이지만) 여기까지 논의를 진행해놓고 보면 주다스 페인님께서 주장하시는 것은 경제학은 수학이 의사소통의 도구로 사용될 가치가 없을 정도로 복잡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되는데 이것은 더더욱 동의할 수가 없는 내용입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가져올 방법은 전무하고 우리는 경제문제를 외면할 수 없기 때문에 러프한 해결책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러한 러프한 해결책이 인류 역사에 기여를 하지 못한 것도 아니었죠.(케인즈가 등장하기 전이었던 대공황 시기 미국 중앙은행이 했던 행동만 돌아봐도) 진중권 교수가 KBS 어떤 책 소개하는 프로그램에 나와서 장하준 교수와 토론할 때 진중권 교수가 박정희 추종자들 까는 논리로 거기있던 경제학자들을 까자 장하준 교수가 "우리는 그걸 주장하는게 아닙니다. 저희를 그렇게 몰지 마세요." 라고 항변 했던 것이 떠오릅니다. 경제학을 정치로 이용하거나 학문적으로 충분한 뒷받침 없지만 어쨌건 시장은 맹신하고 본다는 몇몇 경제학자들 때문에 경제학 전체를 무용의 학문으로 내모는 것 같아서 몇자 적어봤습니다. 애초에 월가에서 어떻게 돈을 그렇게 많이 벌어들이는지에 대해서 이해하려면 주류경제학 서적 100권 읽는 것보다 오히려 라이어스 포커 같은 책이나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같은 영화를 보는게 더 현실과 근접하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지금 금융자본주의의 폐해에 대해서 몇몇 경제학자들이 아니라 경제학 자체를 책망해야 한다면 정보비대칭이나, 정치적 입김, 제도의 헛점 등을 통해서 부당이득을 얻는 금융권 종사자들에 대해서 미리 경고하지 못하고 그런 구조를 극복할 경제적 유인체계를 짜지 못했다는 점 정도가 오히려 맞지 않을까 싶네요.
14/11/15 23:25
물론 그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합니다. "글라스-스티걸 법이 폐지될 때 경제학자들은 뭐하고 있었니?" 라는식의 반문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보지만 그렇다고 그 책임을 그들에게 전가할 수 없죠. 우선 경제학에서 폐지하자고 해서 폐지한 것도 아닐 뿐더러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이 분리되는 것은 경제학적으로 잘못된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소수의 부당이득을 옹호하려고 그런게 아니라 경제 전체를 염두해두고 학문적인 논리를 갖춰 주장한 것이니까요. 애초에 월가 스폰서 받은 정치인이나 경제학자들이 하자고 하는건 경제학이라기 보다는 정치적 도구에 가깝죠.
14/11/17 22:56
저는 경제학을 좋아하며, 또한 매우 가치있는 학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레벨에선 경제학을 몰라도 돈을 버는데 심각한 지장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근대 이후의 국가레벨에선 경제학 없이는 어떠한 정책도 시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유시장을 주장하는 쪽이든 아닌 쪽이든 경제가 국가정책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다는 것을 다들 알고 있고 실제로 경제학자들의 의견과 자문은 국가나 세계기구 레벨에서 정책을 시행할 때 반드시 참조됩니다. 오스트라안 학파 내의 가장 극단적인 분파조차 극단적인 자유시장을 만들기 위해선 우선 정부를 해체시켜야 하고, 이것이 정치적인 작업이 된다는 것을 이해못하는 학자는 없을 것입니다. 경제학 전공자 중에서 금융기관 같은 사적 기관 등으로 빠지는 경우를 제외하고서 전공을 살린다면 연구자로서 정책을 연구하거나 관료로서 정책집행을 수행하거나 정책을 수립하는 일을 하게되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왜 그렇게 말씀하는지 모르겠지만, 경제학에서 의사소통도구로서의 수리화의 가치는 제가 끝에 쓴 것처럼 저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제가 문제삼는 것은 물리학 같은 자연과학에서 모형 아이디어를 얻은 연역의 남용입니다. 그리고 신고전주의를 위시한 주류경제학은 자연과학에 근접하는 수준의 엄밀성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기 보단, 자연과학에 근접하는 수준의 수리적으로 독립적인 엄밀성을 추구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07년 까지 주류경제학에서 수리화에 대한 몰두와 가치 부여는 결코 비주류적인 것이거나 일회적인 현상은 아니었습니다. (문화사회정치를 저 너머로 두고 시장 그 자체의 수요와 공급의 역학에서 시작하는 수학과 통계라는 수리적 접근이 주류경제학과 비주류 경제학을 나누는 요건의 하나인 것을 봐도, 역사적 현실과는 다릅니다. 특별한 가치가 없는 그저 도구였다면 써도 그만 안써도 그만으로 취급했겠지요.) 오히려 이는 사회과학 분야에서 정점을 차지한 경제학의 영광이었고 또한 정치와 경제의 분리를 추구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블랙-숄즈 모형은 어쩌다보니 자연계와 일치하는 수학공식을 갖다 쓴 게 아니라, 수학자 바셀리에가 주가들이 브라운 운동을 한다는 가정을 하고, 여기서 발전한 이론들을 가다듬은 모형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블랙-숄즈 모형식의 유도엔 물리식이 들어간다고 하지요. 블랙앤숄즈 모형을 만든 물리학자 블랙처럼, 위대한 마셜은 본래 수학 전공자였고, 마셜의 신고전주의와 케인즈를 종합하고 이전의 수리적 모델을 종합한 폴 새뮤얼슨은 물리학자이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깊습니다. 신고전주의 또는 신고전주의종합 경제학파와 물리학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는 이론 미시경제학의 모형과 고전역학의 모형을 비교만 해보아도 알 수 잇습니다. ============= -밀로프스키 교수의 'More Heat than Light'에 관한 periskop의 글에서- 신고전파 경제학은 고전역학을 다음과 같은 의미로 대응하고자 하는 명시적 또는 암묵적 노력의 산물이었다: •입자 → 개인 •힘 → 한계효용 •에너지 → 효용(utility) •힘은 벡터량 → 한계효용도 벡터량 •에너지 총량은 입자에 가해지는 알짜힘(net force)의 경로적분값 → 효용 총량은 개인에 가해지는 알짜 한계효용의 적분값 •평형상태는 에너지가 극값(extremum)인 상태 → 균형상태는 효용이 극대화된 상태 •……(생략) 이처럼 물리학의 마당(場, field)개념이 경제학의 개념으로 천착되는 과정 하나하나가 끊어진 고리의 발견들이라 할 수 있다. 이 모두가 경제학을 사회물리학(social physics)으로 반석에 올리려는 시도였다. ============================= (그러므로, 고전역학의 정적인 모형에서 입자가 움직이는 상호작용으로 계가 평형을 이루는 것처럼, 폴 새뮤얼슨의 정적인 시장도 개인이 움직이는 상호작용으로 언제나 균형을 이루지요.) 저는 모형의 근본가정들에 대한 의문을 제시하고 싶습니다만 그것은 차지하고서라도 미시경제학의 방법론이 고전물리학의 근본가정에 상당한 영감을 받은 것은 자명하다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경제를 보는 모형이 그러한데, 경제학자들이 보는 경제적 현실은 모형과 다른 것이다라고 주장할 순 없습니다. 모형은 세상을 보는 렌즈입니다. 이 지점을 극복할 수 있는 이론가들은 많지 않습니다. 모형을 만드는 근본가정을 바꾸는 정도의 일을 하지 않는 한 경제학자는 기존 미시경제학의 전제위에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경제학이 고전역학을 넘는 최신 이론을 물리학이나 여타 자연과학에서 도입하든, 경제학 고유의 방법론을 찾아내든 수식은 계속해서 하나의 도구로 쓰일 수 있을 겁니다. 경제학의 수리화에 대한 제 입장은 두 가지가 충돌합니다. 하나는 지나친 수리화와 연역이 경제현실을 박제시킨다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수리화 없이 다루기 힘들 정도로 현실과 경제학이 복잡해졌다는 것입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타학문이나 일반인과의 의사소통을 막아버릴 정도로 경제학의 수리화-수식화가 심해져선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경제학의 수리화에 대한 저의 근본적인 지향은 경제현실의 드러난 특정 국면에서 인과사슬을 좁혀 부분적인 수식화를 하되, 연역이 가능한 보편 수리이론은 가능한 세우지 않는 것입니다. 저에겐 지금으로선 실험할 수 없는 경제현상에 대해 보편 수리이론을 세우려는 욕심을 내지 않는 것은 너무 당연해 보입니다. 마셜 같은 위대한 경제학자들이 경제학과 수리모델을 대하는 겸허함은 익히 아는 것이지만, 저는 일반적인 주류경제학자들이 과연 겸허했는가?라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주류경제학이 보편적인 수리적 이론을 세웠다는 자만심이 없었다면 경제사학이 경제학계 내부에서 소외되진 않았을 겁니다. 주류경제학은 LTCM과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실패하기 전까진 탐욕이라고 주장하지도 않았고 실패를 예견하지도 않았고 실패를 예방하지도 않았습니다. 소극적인 측면을 넘어서 보자면 반대한 주류경제학자를 찾기 보단 그 사태의 발달에 연관된 주류경제학자들을 찾는 게 더 빠를 것입니다. 그리고 저 정도의 관찰자가 뭐라고 하지 않더라도 경제학은 07년 이후로 독사가 한계에 부딪혀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을 겁니다.
14/11/18 20:16
우선 핸드폰으로 쓰는거라 글이 좀 난잡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 양해를 구하겠습니다.
먼저 하나 지적하고 싶은 것은 경제학이 현실에서 탈주하여 현실과 동떨어진 모형을 사용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경제학은 사후적 분석의 학문이 아니라 사전적 예측의 학문이 때문에 현실 설명력이 떨어지는 순간 그 권위를 잃습니다. 논리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cpam에 사형선고가 내려진것도 내재적 모순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경제현상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다는 이유 단 하나죠. 현실을 더 잘 설명하는 이론이 더 좋은 이론이라는 기본 전제가 있는한 경제학의 탈주는 불가능합니다. 주다스 페인님께서는 모형에 물리적 가설을 도입한다는 것에 대해서 반감을 가지시는 것도 현실세계와 경제이론의 단절을 염두에 두시고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제 설명이 좀 많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우선 모형은 현실을 그대로 옮겨올 수 없으므로 현실에서 관찰되는 경향성 에 주목할 수 밖에 없습니다. 가령 "인간은 합리적이다" 같은 류의 가정이 대표적이죠. 어떤 인간은 합리적이지 않을수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합리적으로 행동하기 마련이므로 이런식의 가정을 기반에 두고 모형을 전개해가죠. 마찬가지로 물리학에서 사용되는 법칙이 경제학에서 사용되는 가정에 들어오는건 이러한 경향성의 일치가 관측 될 때 입니다. 그 이유는 당연히 그게 아닌 경우 현실 설명력이 확보가 안되기 때문이겠죠. 블랙숄즈로 계속 설명하자면 브라운 운동은 주가의 랜덤워크를 표현하는데 수학적으로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결국 브라운 운동을 기반으로 한 가정이라기 보다는 랜덤워크의 수학적 표현을 물리학에서 빌려왔다고 보면 됩니다. 그렇다면 블랙숄즈의 가정에 대해서 주가가 무슨 물리세계의 법칙을 따르냐는 비판은 사실 더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현실 주가 움직임이 랜덤워크라는 가설을 따른다는 가정이 타당한 것이냐 하는 비판으로 변모하는 것이죠. 이때 주가는 랜덤워크를 따른다는 가설은 경험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충분히 받아들여질만한 가정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습니다. (사실 이 부분은 블랙숄즈 모형에 관해 블랙의 물리학자로서의 직관이 발휘되는 지점이 아닙니다. 너무 베이직 한 가정이기 때문에; 이후 이 모형의 응용하는 과정에서 물리의 방법론이 쓰이는데 저는 지레짐작으로 이 부분을 말씀하시는 줄 알고 사실은 그냥 수하공식 사용한거나 다름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 외에 언급하신 모형에 대해서는 제 짧은 식견이 닿지 않기 때문에 이와 구체적인 답을 할 수는 없지만 기본적으로 아무리 내부적으로 어렵고 직관에 동떨어진 수학을 사용한다 하더라도 그건 외부적으로 설명력을 확보하는게 목적이라는 기본전제를 따르기 때문에 탈주라고 보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갈수록 어렵고 복잡한 수학을 쓰는 이유는 경제학 자체가 지니고 있는 부족한 설명 능력을 어떻게든 발악해서 현실에 근접한 수준으로 올려놓으려는 시도라고 입니다. 과거 고전 경제학에서는 완전 예견, 합리적인 인간, 가격의 완전 신축 등 가정들을 보면 현실과 괴리감이 느껴지지만 심플하고 분석에 용이하죠. 하지만 경제가 복잡해지면서 이러한 가정들 역시 현실과 괴리가 생겨 현실과 더 부합하지만 더 복잡한 가정들을 첨가합니다. 케인즈의 경우는 저 중에서 "시점"과 "합리성" 이라는 가정을 세분화 시켜서 현실에 더 부합하게 바꿔놓은 케이스죠. 더 나아가 현재에 이르러서는 동태적 모형과 같은 복잡한 형태의 수학을 사용하게 되는 것도 결과적으로는 모형을 현실에 더 가깝게 만드려는 시도의 일환이겠죠. 결국 경제학은 가면갈수록 복잡해질 것이고 또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현실 자체가 항상 훨씬복잡하기 때문이죠. 다만 여기서 경제학 자체의 현실 설명력을 의심할 순 있습니다. 저런 발악을 하더라도 경제가 눈앞에서 폭망하는거 하나도 예측 못하는게 경제학이니까요. 저 개인적으로 말하자면 경제학 전공자가 아니기도 하지만 경제학을 한다는 사람에 대해서는 반감부터 생기는 선입견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단적으로 그들의 오만 때문이죠. 주다스 페인님께서 말씀하신 경제학의 문제점도 사실은 기본적인 경제학의 방법론 측면에서 볼 문제가 아니라 그냥 쉽게 말해서 쥐뿔도 아는게 없는데 모든걸 아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제학 신봉자들의 오만에서 비롯된다고 봅니다. 사실 거시경제학은 믿음의 학문이라는 말이 있듯이 학파간의 명확한 합의도 없는데 마치 자신의 분석이 정답인 마냥 떠들어대는건 확실히 문제입니다. 이건 비단 경제학자들의 문제만이 아니죠. 경제학은 하나도 모르면서 뭐만하면 시장을 교란시킨다는 명목하나로 모든 합리적인 기준을 갖춘 주장을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널렸으니까요. 그런데 이런 오만함은 경제학이 현실을 어떤 보편법칙으로 설명하려는 학문이기 때문은 아닙니다. 사실 경제학자의 관점에서 현재 경제학의 수준으로 경제를 보편법칙에 포섭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yes라고 답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이건 경제학이 자연과학과 같은 수준의 엄밀성을 갖고 있다고 믿는 것과 같은거죠. 다만 이런 오만함에도 불구하고 경제학은 그 나름대로의 효용이 있다는 점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싶었는데 오히려 그 부분에 대해서 더 잘 설명해주셨네요. 아무튼 결론적으로 정리하면 주류경제학이 모호하고 비계량적인 분석을 지양하면서 분화된 것은 그 자체로 보면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고(그 한계를 직시한다면), 자연과학에서 차용하는 가정들은 어쨌거나 현실에 발을 딛고 있어야 하는 경제학의 특성상 더 깊이 들여다보면 비약으로 여겨질 소지는 생각보다 적다는 것입니다. 추가로 수식에 관해서는 약간 서로의 개념정의가 달라서 오는 커뮤니케이션의 문제 같은데 제가 주장하는 것은 수식이 자연과학에서 왔건 아니건 "수식 사용"은 결국 커뮤니케이션 목적 그 이외의 목적으로 사용되는 경우는 없다는 것입니다. 수식이 지칭하는 바는 특정 가치를 대변하지만 "수식 사용" 그 자체는 어느 상황에서나 가치중립적인 도구라는거죠.
14/11/15 11:53
저같은 경우 말씀하신 사항에 관련해서
관찰되는 경제현상을 모사하는 '수학적인 모델'에 모델 이상의 의미가 부여될 수 있고, 그러한 일이 '경제현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과 '실패할 때'를 아는것이 '적용하면 안되는 상황'에 대해 알려주는 바가 적은것이 문제라고 봅니다. 물리법칙들은 '인간사회'를 포괄하는 것처럼 관찰되며, 의도한 결과던 의도하지 않은 결과던 '사회에서의 행위'들이 그에 영향을 주지는 않습니다. "당사의 견해에 배치"된다고 열역학 제2법칙이 바뀌는 일은 발생하지 않으며, "정부가 규제완화"로 해당 법칙을 변경해 주는일도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경제'는 사회적으로 규정되고, 구성되는 영역으로서 어떤 사회적인 결정, 인식 등에 따른 의도한결과/의도하지 않은 결과의 영향을 받습니다. 이와같은 '경제현상'의 특징은 위에서 제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는 기초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14/11/15 12:39
서브프라임 모기지나 LTCM의 몰락은 시장의 능력을 과소평가하고 탐욕을 부렸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입니다. 그래서 이건 시장의 실패가 아니라 시장이 비정상을 정상을 되돌리는 능력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례일 뿐만 아니라, 정부가 시장참여자들과 결탁해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했을 때 시장이 얼마나 무서운 철퇴를 내릴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경제학은 이미 시장의 절대적인 원칙들 - 공짜점심은 없다=로우 리스크 하이 리턴은 없다, 끊임없이 지속될 거품은 존재하지 않는다 - 등에 대해 밝혀냈습니다. 다만, 현실의 사람들이 당시 벌어지고 있던 일들에 눈을 감은 결과였다고 봐야 합니다.
14/11/15 14:38
시장에 시장참여자와 독립된 법칙이 있고 운행방식이 있다는 생각은 경제학보다는 신비학의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장기적으로는 어쨌든 균형이 달성된다는 말은 참 무기력하죠.
14/11/15 19:36
시장의 법칙은 시장참여자 기대가 모여 만들어지는 겁니다. 시장의 반작용을 보인다고 해서 반드시 장기균형으로 회귀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14/11/15 23:21
시장의 법칙이 시장참여자의 기대가 모여 만들어진 다 해도,
어떤 시장참여자의, 어떤 기대가, 얼마나 '반영'되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사회'와 그 자원배분에 대한 영향력다툼인 '정치'입니다.
14/11/15 14:00
잘 읽었습니다
경제학의 기본원리를 왜곡시켜 막대한 힘을 쌓아온 자들이 순순히 자기 것을 내어 놓으려 하지않기 때문에 그냥 우리네 흔해빠진 이웃들이 투사가 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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