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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7/21 02:40
거기서 죽을 정신력으로도 충분히 대단하다는 게 또 함정이죠 (...) 정유재란 기간 동안 걍 자살하거나 무작정 적진에 돌격 전사해도 뭐라하기 힘든 그런거요 크크
14/07/21 02:12
시마즈 얘기를 하시나 싶었는데 결국엔 기승전 장군님이네요 크크. 간만에 쓰신 장군님 이야기 잘 봤습니다.
저도 솔직히 자살? 까지는 아니라도 마지막 전투에서 좀 위험한 시도들을 하신건 아닐까 했는데, 이 글 보니 상황이 이해가 가네요.
14/07/21 02:43
분명 시작은 스테가마리 얘기하면서 노량판 시마즈의 후퇴라고 하고 '만나도 이런 놈을 만났네요'라고 할랬는데 말이죠 ㅠ 요시히로가 모든 걸 계획했을 것 같진 않지만 원래 저런식으로 싸웠다고요.
아무튼... 적이 도망가려 하니 더 급해지고 더 무리수를 두긴 했을 것 같긴합니다. 다만 그게 죽기 위해서가 아닌 명량에서 했던 것처럼 적을 죽이고 나라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겠죠 ㅠ 아아... 다시 보니까 차라리 죽는 게~ 이 부분부터 감정이 격해졌나봐요 =_=;;
14/07/21 02:50
생각해보면 시마즈 전통전술에는 츠리노부세도 있습니다.. 후퇴하면서 적을 끌여들여 활과 철포로 적의 장수만 저격하는 방법이죠.
게다가 장군님은 적을 격멸할 생각이었으니 아아... ㅠㅠ
14/07/21 03:07
류조지랑 싸울때 끌여들였다는 게 그건가요? 에고 또 새로운 용어가 ㅠ 전국시대도 다시 들여다봐야겠네요
아무튼.... 장군님 어찌 그렇게 가셨나요ㅠㅠ
14/07/21 02:35
일본 정치 시스템을 좀 알아야 되는거긴 한데.. 가마쿠라 막부 성립이후 일본은 2원제로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실권이 전혀 없지만 명예는 있는 조정(덴노) / 실권과 무력을 가진 막부(정이대장군) 그 이전에도 각 지방영주는 임명했습니다. 그중에서 슈고 다이묘는 막부가 임명하는 지방장관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일본이야 國이라고 이름붙은 지방으로 나누어지고 그 아래에 郡이 있고 그 군내에 성이 있었던거죠. 당연히 지방의 군권과 징세권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각 지방 守(카미)로 조정이 임명했었죠. 시나노카미,무사시노카미,이세노카미 뭐 이런거면 다 조정에서 내린 관직이고. 슈고가 붙으면 장군이 임명하는 관직입니다. 그 양쪽은 같으면서도 '미묘'하게 다릅니다... 그렇게 된거야 뭐 가마쿠라 이후 부터 아시카가까지 열심히 장군가가 삽질해준 덕분이구요 -_- 쉽게 설명하면 지방장관과 총독의 차이라고 해야하려나요.
14/07/21 02:29
자살설은 진짜로 말이 안되는게.. 그럴 분이면 해군을 다시 살려놓지도 못했겠죠. 어차피 죽을건데...
시마즈 다카히사는 방계출신입니다. 아버지인 다다요시가 분가에서 본가로 넘어온 첫 인물이죠. 그것때문에 내분이 일어나긴 합니다. 이 가문이 조총을 사용하는데 능숙했던건.. 휘하에 타네가시마 가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포르투갈에서 총포를 들여와 일본식으로 개량한 조총의 명칭은 이 가문의 이름을 따서 타네가시마입니다. 뭐 이것도 설이 있긴 하죠. 포르투갈인이 큐슈뿐만 아니라 사카이에도 갔을테니. 시마즈 4형제는 규슈내에서 만큼은 알려진 공적을 쌓았죠. 맏형인 요시히사는 내정에 진력하고(당주니까...) 요시히로야 임진왜란뿐만 아니라 남은게 너무 많아서 생략. 이에히사는 고작 6천명으로 큐슈 삼국의 하나인 류조지를 박살내버렸고.... 도시히사는 히데요시에게 끝까지 저항하다가 할복.. ㅠㅠ 사실 타이밍이 뭐 같았던게 그때 딱 모리도 쵸소카베도 히데요시 손에 집어넣은 상황이라 큐슈로 병력동원이 가능했던게 원인이었죠. 그렇게 손에 집어넣었던 가분 대부분이 에도 막부 성립때 다 상태가 안좋았던건... 이후야 세키가하라 전투의 결과로 영토가 대폭 축소.. 사쓰마번의 원류가 됩니다. 막말에 토쿠가와를 무너트리는 한축이 되지요. 이시다 미쓰나리와는 서로 데면데면.. 유력영주가 달랑 천명 데려오는 바람에 빡친거죠.. 그래서 총대장을 모리로 삼아놨더니 뒤통수를 빡... 천명밖에 동원 안한건 일단.. 본국이 멀어서..-_;;; 이게 제일 유력하긴 합니다. 정예라는 이유도 있지만요. 사이좋게 세키가하라에서 박살나고 적대하던 타치바나랑 사이좋게 귀국한건 안자랑... 체스토 하면 생각나는건... 이 동네가 유게에도 올라온 검술. 시현류가 생긴 동네라는거죠 크크크. 진짜 저런 무사들이 일제사격이후에 기합을 넣으면서 돌격해온다고 하면 참 무서울겁니다. 결론은 다 됐고 장군님 만만세.. 사실 신장이고 행장기고 귀신이고 뭐고 간에 수군 S,A급 장수들 다 발라서 뭐라 할말도 없습니다 크크크
14/07/21 02:51
정말 절대 그러실 분이 아닌 거죠 -)b
방계였군요. 휴; 각 가문들 이야기 알면 재밌긴한데 역시 복잡하네요ㅠ 타이밍이 참 희한하긴 해요 크크. 하필 딱 히데요시가 대군 모을 수 있는 타이밍이라니요. 큐슈 정벌과 오다와라 정벌은 히데요시 전국통일의 엔딩이죠 ㅠ 천명이 다 요시히로 위해 죽었던 걸 보면 그래도 정예 데리고 온 거 같은데 다 날리는 것도 좀 ㅡ.ㅡ 시마즈의 후퇴는 뭘 노린 걸까요? 퇴로가 아예 없진 않았을건데... 그냥 후퇴하면 가문에 피해 클테니 무시못하게 뜨거운 맛 보여준 걸까요? 시현류도 그렇고 참 마초적이란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장군님 만만세~~!!
14/07/21 02:55
구지 거기를 돌파한건.. 상대가 거기로 돌파할건 예상못하겠지? 거기가 최단거리야! 하고 돌파했다는 설이 지배적입니다 -_-;;;;;;;;
사쓰마 남자에게 우회란 없다.. 라고 하고 매번 포위전술로 적 말리는게 특기였던 사람이 할짓은 아니라고 보는데 말이죠~ "천명을 다 죽이더라도 사쓰마인의 용맹을 천하에 떨친다면 그걸로 됐어.." 이렇게 말할수 있는 사람들이죠 크크크 거긴 그랬던 시대이기도 했구요. 근데 그 여파를 보면.. 주력을 다 끌고온 모리는 쥬코쿠 10개국이 싹 날아가고 달랑 2개 남은 반면에.. 사쓰마는 남 큐슈를 거의 다 살렸죠. 예전에 먹은 가신들도 인정됐고.. 이런게 나비효과려나요~
14/07/21 03:06
저 동네는 영주가 죽으면 그냥 망하는거라서요.. 정예를 다 죽이고 조카를 제물로 삼아서라도
영주인 요시히로가 살아갔으니 성공이죠. 게다가 그 어려운 적중돌파도 성공했으니 이름도 남을거고..
14/07/21 11:43
http://rigvedawiki.net/r1/wiki.php/%EC%84%B8%ED%82%A4%EA%B0%80%ED%95%98%EB%9D%BC%20%EC%A0%84%ED%88%AC#s-4
여기 대략의 배치도가 나옵니다. (시마즈 요시히로 군대는 서쪽 하늘색 배치도의 정가운데 전열, 고니시 유키나가의 바로 옆에 위치해 있군요..) 세키가하라 전투 종반까지 명목상 총대장이었던 모리가문의 병력은 움직이지 않았고(배치도상 동쪽 산위의 파란색 병력들...) 고바야카와의 배반으로 3면이 포위된 상황 (뒤는 산) 그냥 가만히 있으면 전멸인 상황입니다. 이때 빈틈을 노리고 정면을 돌파해 이에야스 본군의 앞을 지나서 지도에 나오는 남동쪽 길을 따라 퇴각을 하기로 한거죠. 병력은 대부분 희생되었지만, 일단 다이묘는 살렸구요(..) 총 참가 1000명 -> 80 명이라지만, 시마즈병력이 탈출을 시도할때는 이미 300여명 정도만 남은 상황이었습니다. 300명 탈출 시도해서 80여명 남았으면, 그래도 꽤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겠죠. 이 300명이 돌격해서 돌파한 포위망이 최소 만명.. 단위입니다.(동군 총병력이 8만 + 배반한 병력까지 하면 최대 10만) 그 직후 여러가시 정황상.. 서군에 참가했던 많은 다이묘중에 시마즈 가문만 미미한 피해를 받고 그대로 유지를 합니다. (시마즈 요시히로만 당주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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