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력이라 함은 대나무의 진액을 말하는데, 한방에서 약재로 쓰이는 물건이기도 합니다.
그럼 '고'는 무엇인가. '고'는 최고급의 소주에만 붙을 수 있는 표현, 즉 사람으로 치면 ~님. 에 해당하는
표현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죽력고는 예전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만들어 마시던 술이었다고 합니다. 술이라기보다는 약으로 사용될 정도로
효능이 좋은 술이었다고 하는데, 이런 술이 지금은 찾아보기조차 힘든 술이 된 까닭은...뭐 다들 아시겠죠.
*동학혁명운동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인 녹두장군 전봉준이 이 술을 마시고 상처를 치료했다는
전설 오브 레전드와 같은 이야기, 육당 최남선이 꼽은 평양의 감홍로와 전주의 이강고와 더불어
조선의 3대 명주로 꼽혔던 사례 등은 죽력고를 거론할 때 반드시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죽력고를 만드는 과정은 매우 어렵습니다. 제가 아는 바가 전부는 아니겠지만, 아는대로 옮겨 적어 보자면
3년생 대나무만을 골라서 베어낸 뒤, 그것을 잘게 쪼개어 커다란 항아리에 담습니다.
(잘게 쪼개는 이유는 그래야 항아리 안에 많이 들어가고, 뒤집었을 때 쏟아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항아리에 빽빽하게 쪼갠 대나무를 박아넣고 그 위를 다시 대나무로 덮습니다.
그리고 땅을 파고 그릇을 받친 뒤에 그 위에 항아리를 거꾸로 세웁니다.
거꾸로 세워진 항아리에 황토를 바르고 짚을 얹은 뒤 불을 지릅니다.
(불이 너무 세면 대나무가 타 버려 좋은 죽력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3일 후, 열기가 식으면 항아리를 치워내고 바닥에 놓았던 그릇에 모인 죽력을 꺼냅니다.
(수십 그루의 대나무에서 나오는 죽력의 양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적습니다')
이렇게 모은 죽력을 밑술, 약재와 함께 증류시켜 걸러내면, 드디어 죽력고가 완성됩니다.
작업시간만 꼬박 5일에서 일주일이 걸리는 인내의 술이자 기다림의 약인 죽력고.
말로 해도 이렇게 어려운데 실제로 도전이나 해 보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지 상상도 되지 않습니다.
죽력고 만들기가 이렇게 어렵지만 배워보고자 하는 사람들, 물건을 사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꽤 있습니다.
하지만 죽력고를 만드시는 태인 양조장의 송명섭 장인의 집은 사람들을 가르치실 형편도 안될뿐더러
물건 생산량도 얼마 되지 않습니다.
본래 이 술은 만들어질 수 없었던 술이었습니다. 술에 죽력을 섞는다는 것 자체가 법으로 금지되어있었기 때문이죠.
송명섭 선생님께서 서울과 전라도를 수백번 왔다갔다 하면서 죽력의 효능과 무해함, 역사성을 증명해내지
못했다면 아마도 이 술은 수많은 다른 술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의 역사에서 사라졌을 것입니다.
*여담이지만 송명섭 장인은 무형문화재로 지정은 되었으나 정부나 지방정부측에서의 지원은 받지 못하고 계십니다.
이 부분은 민감한 문제가 될 수 있으므로 더 언급하긴 어렵겠지만, 뭔가 안타깝다...는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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