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에서 게임 과몰입 방지 대책을 빌미로 게임을 '감시'하려는 행동이 날로 노골화되고 있습니다. 하기야 이 정부의 위정자들의 행동거지를 보면 최고 지도자부터 IT라는 부분에 대한 이미지와 아주 동떨어진 해프닝을 벌인 것부터 시작해서, 전 정부의 위정자와 비교된다는 이유로 한때 IT라는 말을 아예 모 신문에서 쓰지 말라는 식의 상식 밖의 요구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이들이 게이머에 대한 감시를 꿈꾸는 것은 그다지 놀라운 일도 아니겠죠.
물론 게임 과몰입 및 게임 중독은 분명히 사회문제이고 업계든 정부든 개인이든 다 신경써야 하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정부의 아주 간단하고 심각한 두 가지 근본적 헛점에 있습니다. 첫째는 IT 콘텐츠에 대한 이해도가 거의 없다는 것이고 둘째는 자신들의 통치행위를 위해서라면 국민의 자유 쯤은 헌신짝처럼 내버려도 된다는 개념의 소유자라는 것입니다.
요즘 문화부 등에서 게임에 대한 과몰입 운운하면서 대책이란답시고 내놓는 것들 중 대표적인 것이 피로도 시스템의 의무화인데, 그 방침을 천명하며 피로도 시스템 프로그램을 정부가 무료 제공하겠다는 이야기는 이 정부가 게임이라는 IT 콘텐츠에 대한 이해도가 정말 낙제점이라는 점을 증명하는 행동입니다. 장르와 게임 내 시스템에 따라 피로도를 적용할 필요가 있는 게임과, 적용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게임이 있고 설령 피로도를 감안할 필요성이 있는 게임이라 해도 정부가 배포하는 프로그램을 적용해 피로도를 맞추라는 거는 '웃기는 노릇'이죠. 음반마다 건전가요 넣으라는 철권통치 시절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습니다.
거기에 문화부 측이 과몰입 대책이란답시고 수립한 다른 대책들을 보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것을, 그것도 '정책안'이라고 내놓았는지에 대해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게임중독 대책 미흡한 업체에 과태료 추진이라는 서울경제의 기사를 보니 '이딴 걸 정책안이라고 내놨나'라는 느낌에 정말 한숨만 나오더군요.
어떤 내용들이 있는지 보겠습니다.
- 게임 이용자들은 6개월마다 주민등록번호 등을 통해 사용자 인증을 새로 해야 한다.
- 게임업체들은 게임 이용자들이 언제 어떤 게임을 얼마나 이용하는지 구체적인 실태조사를 실시해 6개월마다 문화부에 보고하고 이에 대한 과몰입방지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 문화부는 과몰입방지대책이 미흡한 게임업체에게는 과태료 부과 같은 조치를 취할 수 있다.
- 게임업체는 주민등록번호나 아이디(ID)를 입력하면 이용자들이 어떤 게임을 이용하는지 실태를 파악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하여야 한다(문화부 요구사항)
- 게임을 과도하게 하는 이용자에 대해서는 서비스를 강제로 차단하는 셧다운 제도 도입을 신중하게 검토한다.
제가 지어낸 말이 아니라 링크한 기사에 있는 내용을 요약해서 옮겨온 것입니다.
참으로 대단합니다. 국민들이 왜 게임에 몰입하게 되는가를 생각하고 근본적인 무언가를 강구하는 게 아니라 게임 과몰입과 게임 중독이 사회 문제로 불거지니까 게임과 관련된 부분을 국가가 감시하는 방법으로 말썽을 줄이겠다는 것이고, 그렇게 하기 위해 게이머들이나 게임업체의 자유는 밟아버려도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또한, 문화부의 요구사항을 업체들이 들어준다면 게임을 하는 사람을 국가에서 감시하는 것이 가능해지는데 그렇게 되면 게이머들을 예비 범죄자에 준하는 수준으로 취급하겠다는 이야기와 뭐가 다른지도 의문입니다. 게이머들이 무슨 게슈타포의 감시를 받는 유태인들입니까.
위의 항목들 중 과몰입방지대책이 미흡한 게임업체에게 과태료 부과조치를 한다는 것 정도가 그나마 타당성이 있을 수 있겠지만 게임 과몰입이 100% 게임업체의 책임으로 일어나는 게 아닌 한 이런 식의 편향된 행동은 게임 과몰입 문제의 해결에 도움이 안 되는 일이고 오히려 마음에 안 드는 업체를 밟아버리는 도구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지요.
저는 그래서 이 정부가 제대로 게임 과몰입을 금지할 수 있을 가능성은 1%도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정책안은 게임 과몰입을 해결한다는 빌미로, 게임을 좋아하는 이들을 타겟팅해서 '단지 게임을 즐긴다는 이유로' 부적격자 혹은 결함이 있는 자들로 몰아 규제하고 가둘 위험성도 있으며, 정부 입맛에 맞는 퍼포먼스를 하지 못하는 게임업체들은 과태료 부과 등으로 매질을 하겠다는 이야기로 생각됩니다.
무심코 던져진 짱돌에 맞아 죽는 개구리처럼 선의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으면 다행이고, 저런 액션들이 사문화되어 흐지부지된다 해도 헛돈과 헛힘만 쓰게 되는 것은 뻔할 뻔자입니다. 그나저나, 그러면 앞으로 게임 많이 한다고 남산에 끌려가 코렁탕 먹을 걱정 해야 하나요?
엿 같습니다.
- The xia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