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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0/03/21 00:55:41
Name nickyo
Subject [일반]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
대학을 나와야 사람이 된다며?


초등학교 때였다. 대입재수를 하다 고향에 끌려와 건설현장에서 일하던 외삼촌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네가 크면 시험도 없을 거고, 대학 안 나와도 사람 취급 받을 거다. 통일 되어서 군대 끌려갈 일도 없을 거다. 그 시절 나는 그 말을 철썩 같이 믿었다. 누가 뭐래도 내가 믿던 어른이 한 말이니까. 그러나 세상은 매년 내 말을 배신했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어 생각했다. 중학교 가면 시험이 없어지겠지. 중학교 3학년이 되어 생각했다. 수능제도는 바뀌겠지. 그렇게 고등학교 3학년 무렵, 그 시절 동심은 까맣게 잊고 수능공부를 했다. 여전히, 세상은 대학을 나와야만 사람 취급이었다.

아, 물론 군대도 안 없어졌다. 심지어 군대에서도, 대학 나온 애들은 ‘끕’을 다르게 쳐 줬다. 더 웃긴건, 대학이 다 대학이 아니라는 거였다. 외삼촌은 ‘타이틀’없이도 사람이 사람인 세상을 꿈꾸게 해 줬지만, 이젠 그 ‘타이틀’끼리도 ‘끕’이 생겨버렸다. 수능을보고, 대학에 붙고, 영장이 날아올 때에, 나는 괜시리 외삼촌이 야속하단 생각도 들었다.


사람이 되기까지, 과연 얼마?


밤 한 되 팔아봐야 이백 원이 남을 까 말까인데, 덤이라며 서너 개를 덥썩 집어가는 손님들을 보며, 이 밤을 몇 되를 더 팔아야 한 학기 등록금이 될까 생각하니, 아찔하다. 400만원씩 8학기를 다닐 일이, 터무니없이 섬뜩하다. 이 강의실에 밤을 다 채워봐야 그게 등록금 반값이나 될 것인가? 차마 손에 잡히지도 않는 숫자의 산이 무섭다. 사람이 되고프면 대학을 다니라 하고, 대학을 다니려면 돈을 내라 한다. 정 못 내겠으면 빌리라고, 빌려서 사람 되고, 사람 되서 갚으라고 말한다. 그들은 말하는 것이다.
빌리고, 갚으면, 될 것 아닌가.

차라리 나도 마늘과 쑥을 달라고 외치고 싶었다. 마늘과 쑥으로 100일 때운다고 절대 400만원이 나오지는 않으니까.. 밤보다는 좀 나은 시급 4000원짜리 카페에서 수업이 끝나고 일하고, 주말이 오면 일하고, 그래도 등록금은 나오지 않았다. 친구들과의 술자리를 피하고, 핸드폰 요금을 지불할 수 없어서 다들 있는 핸드폰마저 포기했는데. 내가 일주일에 버는 20만원 돈은, 마치 손 안에 든 물처럼 이곳저곳으로 새어나가곤 했다. 교통비라든가, 밥값이라든가. 다리에 바퀴랑 엔진이 달리는 세상이 오진 않으려나. 그런 막연한 기대 속에서, 나는 낡은 옷과 신발의 꾀죄죄한 사람으로서 남들만큼 공부라도 하기 위해 잠을 줄여야 했다. 안그러면 공부할 시간이 없었으니까. 이때 처음으로, 난 모든 어른들이 대단해 보였다. 만약 내가 다시 어릴 때로 돌아가 외삼촌을 만난다면, 난 그냥 사람도 되지 않고 평생 어린이로 살고 싶다고 하고 싶다. 생각보다 사람이 되는 길은, 곰과 호랑이가 마늘과 쑥만 먹는것보다도 어려운 것 같다.


그래. 노비도 사람은 사람이니까.



어디 한번 계산해 봤다. 난 문과라 수학을 잘 못하니까 삼천만원이라고 쳐봤다. 졸업할 때까지만 천만 원이 이자로 붙었다. 침이 목을 타고 꿀꺽, 넘어간다. 침을 삼키기가 무섭게 목이 바짝 말라왔다. 숫자가 공포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저 남들만큼만 잠을 자면서 사람되고 싶은 마음에 나라에서 빌려주는 돈을 받았는데, 받고나서 보니 목구녕 끝에 독극물을 찰랑이게 해 놓은 기분이 든다. 게다가 이 천하의 몹쓸 제도는, 군대에 가도 이자를 매긴다. 아, 좀, 너무하네. 취직하면 복리로 바뀌니까 내 애가 대학갈 때쯤이면 원금합해 1억. 아 깜깜하다. 이게 ‘사람’된다는 것인가. 돈 벌고, 돈 갚고, 내고, 갚고, 이게 ‘어른’이라는 것인가. 아니, 어른뿐만 아니라 어린이도 돈은 갚아야지. 그런데, 어른취급을 받으려면 돈이 들어야 하는 게 난 이상했다. 어른이라는 자격증은 국가에서 지정해주는 ‘대학’이라는 사설 교육기관을 통해 발급받는 자격증 같은 기분이 든다. 모두가 나에 대해 아는 것도 없는데, 난 졸업장하나로 어떤 사람인지 규정 당한다. 세상 사람들 전부가 인지함정에 빠져있다. 내가 명문 K대를 다닌다고 해서, 내가 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많은 기대해 부합하는 사람일까? 나는 그저 온전히 사람으로서 대접받고 싶었는데, 어느새 빛은 늘고 기대는 쌓여간다. 기껏 빛쟁이 대학생이 되었더니, 이제는 명문 대기업을 바라보는 시험들을 준비하라고 한다. 안그러면 사람이 될 수 없다고 한다. 대체 사람이 되려면 남은 관문이 몇 개일까. 무협지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다. 차라리 드래곤볼을 모으라고 하면 맘이라도 편할텐데.

이제 나는 삼촌이 틀렸단 걸 안다. 근데 삼촌이 틀리신 건, 대학을 안나와도 사람 취급 받을거라 생각하신 게 아니다. 나와 봐야, 우린 안 될 거야 삼촌. 사람이 되려면 대기업도 나와야 하고, 돈도 많이 많이 벌어서 번듯한 가정, 집, 차를 소유해야하고, 명품시계랑 정장정도는 입어 줘야 하잖아. 그래서 우린 안될꺼야. 우린 그냥 사람이 되고 싶을 뿐인데.. 만리장성일주가 별것 아니게 느껴질 정도로 이 삶은 고단하게 우리를 짓누른다. 아, 그래도 누군가는 말한다. ‘넌 그래도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게 다행이라고.’ 젠장, 부정 할 수가 없다. 그래 아프리카에서 익지도 않은 고기 한점 때문에 돌팔매질을 안하는게 어디니. 이걸 어디다 고마워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람취급은 못 받아도, 생물체의 유지를 위해서 필요한 조건은 어느정도 충족시켜 주니까. 우리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다른 마음. 다른 곳. 다른 생명체... 사람이 된 사람들은 다행히 다른 생명체를 위해 조금 더 세금을 내주기도 한다. 아, 대한민국 좋은 나라같아요.


추노를 피해 도망쳐!


대학을 나와도, 나오지 않아도 그 앞에 노인 것은 고단한 임금노예의 길. 사람이 된게 아니라 ‘준’사람이 되기 위한 발악. 결국 취업후상환제라 해봐야 노비문서일 뿐. 도망노비가 되기엔 쫒아올 [신용불량자]란 이름의 추노패가 무섭다. 사회가 날 신용불량자라는 타이틀을 달아주는 순간, 나는 그동안 쌓아온 모든 것을 잃겠지. 이미 이 레일위에 바퀴를 올린 순간 평행선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알았을 때에는 모든 게 계획대로 흘러 가게 되는 것 같다. 나는 추노에게 쫒기거나, 사람이 되거나, 좌절해서 다른 생명체가 되거나. 어쨌든 사람이 되려면, 누군가는 추노에게 쫒겨 찢기고, 누군가는 다른 생명체..가 되어주셔야 하겠구나. 태어난다고 사람이 아니라는 진실을 마주했을 때에, 나는 비로소 내가 어떤 곳에 떨어졌는지 이해했다. 영화에서 칼한자루 던져주고 살아남은 사람 한명만 나올 수 있다며 수많은 아이들을 가두는 그 장면이 오버랩되면서, 나는 내가 칼자루를 쥐었는지를 생각하다 닭살이 돋았다.

웬 낯선 외국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아~등록금 고지서가 요기잉네!
눤 자유의 모믜 아냐. 요태까지 그래와꼬, 아패로도 계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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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nProcessToken
10/03/21 01:13
수정 아이콘
저도 부모님에게 손한번 안벌리고 대학졸업을 했습니다.
주말알바에 주중에는 학교내 근로. 그리고 제일 중요한것은 장학금을 놓치면 안된다는 결박함.
뭐. 어찌 어찌 학자금 대출과 장학금으로 생활비는 알바로 때우면서 졸업을 했죠,
그리고 2년동안 학자금을 갚아야 했지만..
붉은악마
10/03/21 01:55
수정 아이콘
졸업은 1년전에 했지만..노가다, 약국, 고기집..전전긍긍하며 돈벌던 생각이 나네요. 다 몸을 쓰는 일이라..그럭저럭 학자금은 마련해서 다녔는데.. 처음에 학교 다니면서 주말알바 했는데 용돈벌이 수준밖에 안되서, 휴학하고 일하고 다녔는데...하여튼 대학생이 등록금 마련하는건 쉬운게 아닙니다.
Aphrodite
10/03/21 02:02
수정 아이콘
대학공부가 필요한 사람만 대학가는 그런 세상을 꿈꿉니다. 수천만원짜리 졸업장 받아봐야 '대졸인증' 외엔 아무런 의미도 없고...
coolasice
10/03/21 02:04
수정 아이콘
등록금 천만원 시대가 곧 오겠죠...빠르면 10년..늦어도 20년정도...
오히려..그렇게 되면 정말 대학공부가 필요한 사람 and 돈이 많은 사람 만 대학을 가게될까요...
박루미
10/03/21 02:31
수정 아이콘
논 자유으 모미 아냐~ 유후 윗 분의 말에는 10000% 공감합니다. 인생 = 빚 갚기
초록추억
10/03/21 03:05
수정 아이콘
중세나 근대 즈음에 유럽귀족 저택의 하인, 하녀들 이야기를 듣고
'아..불쌍하다..남의 종살이나 하고 살다니..'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요새 대기업사원이나
저때 하인들이나 이름만 바뀌었지 똑같은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게 말이죠,

전문직되어 봤자, 소설속에서 주인공 뒤치닥꺼리질하는 헛똑똑이에 불과하다는 생각도 드는게 말이죠,

이것참..저도 요새 하는 생각이, 민주국가 좋은 나라~자유경제풍요로운 나라~
이제 신분제란 존재치 않아!라고 가르쳐주시던 선생님, 누나, 언니, 형, 삼촌, 기타등등이
다 그렇게 밉거나 답답하거나 안타까운지 모르겠습니다.

x값에 '인간' 이라고 넣으면
y값에 '세상이 다 그렇지 뭐' 가 나오는건 당연한 거니까

수천년동안 인간-프로토타입 은 바뀐게 없으니 결국 세상은 바뀐게 없다고 가르쳐 주는게
인지상정이 아니라 인정이 살아 있는 아름다운 세상인 거겠죠.

아..술먹고 무슨...글 잘읽었습니다.(꾸벅)
10/03/21 03:10
수정 아이콘
문득 어느분의 등록금 반.... 약속이 생각납니다.
요즘만큼 그 약속을 안지켰다는 사실이 짜증나게 느껴진적이 없네요.
그 약속 하나만 지켰어도 전 이리 그 사람욕을 안했을 텐데 말이죠.(지켰어도 솔직히 어느정도는 욕할듯...)
최소한 장학금 안받고 방학때 하는 알바만으로 낼수 있을 정도만 되었어도 좋았을거란 생각을 한두번 한게 아니었죠.
그래도 할수 없죠. 제가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저에게 대학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으니까요.
현재 그 일을 하기위한 기본자격조건이 말이죠.(제 꿈은 작업치료사입니다.)
그래서 어느 분 말마따나 질 높은 교육을 받기 위해 내는 비싼 등록금... 아까워서라도 요즘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디어트
10/03/21 04:16
수정 아이콘
전 국립대를 다녀서 그런지 주위에선 다들 과외로 어떻게 매꾸긴 하던데, 물론 편의점 야간알바 하는 친구도 있습니다.
힘들어 보이긴 하더라고요
과제좀 하려하면 과외 가야되고, 수업시간에 자고있길래 어제 뭐했냐물어보면 알바했다 하고..

하물며 사립대라면 등록금은 저희의 거의 2~3배 정도로 아는데, 정말 그렇게 생활하시는 분들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듭니다.

전 정말 운이 좋아 아직까지 부모님께 등록금을 얻어쓰고 있지만
문득 저희 부모님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며, 과연 나는 내 자식에게 이런 정당한 권리를 챙길 기회를 줄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지금의 이 나라에서..
10/03/21 08:25
수정 아이콘
휴 .. 공감가네요 .
방어운전
10/03/21 08:42
수정 아이콘
저는 한학기 등록금이 140 이라..(180인데 장학금 40은 타기 쉬워서..)
그것도 학자금 대출해서 내고 있는데..

사립대 다니시는 분들 얼마나 힘들지 상상이 안갑니다.
오죽하면 사립대 다니는 학생들 보면 다 부자같다는 생각까지 들까요?

취업후상환제도. 홈피나 티비에 선전은 그럴 듯 하게 하더군요..사기꾼들..나쁜놈들 -_-
학생을 등쳐먹는 제도..
차라리 2년 휴학해서 빡~~~~세게 알바(4천만원은 모읍니다)하고 빚없이 졸업하는게
미래를 위해 더 좋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붉은악마
10/03/21 08:43
수정 아이콘
편의점 야간이라..몸 박살나기 딱 좋은 알바죠..저도 야간에 늦게 자는 편이라 우습게 봤는데..저녁 늦게 나가서 오전에 해 보면서 퇴근하는게 유쾌 하지는 않더군요. 몸이 뻐근하고, 쉽게 피로해지고..--;;
김성수
10/03/21 10:33
수정 아이콘
후... 같은 취업후상환제입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장학금인데.. 전액 장학금은 정말 너무 힘든 우리 학교더라고요..
사실 제게는 여태껏 남들과 다르게 키워온 창의력이라는 칼 한 자루 쥐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그렇게 겁나지는 않습니다;
기발한 비상구 및 꿈으로 향하는 길을 동시에 충족시킬만한 것들 하나씩은 가지고 살아야 돈 걱정 안 하고 공부 할 수가 있죠..

안 그러고 평범하게 해결하고 남들과 똑같이 살면 꿈은 진짜 머나먼 곳으로 가는거죠.
10/03/21 11:06
수정 아이콘
처음엔 부의 상속, 그 다음엔 지식의 상속, 그 다음엔 빚의 상속, 이젠 신분의 상속이죠. 슬픕니다. 대한민국.
신자유주의는 우리에게 월급쟁이 농노(not 노비)가 되라고 하네요...
게다가...내가 가진 아파트 값 올려줄 정부를 선택했는데, 도리어 내 자식의 내집마련을 막는 선택이 되어버렸죠...
세상에 공짜는 없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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