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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0/03/20 04:44:18
Name kaz
Subject [일반] 지붕킥 지훈을 위한 변명. (미리니름 있습니다.)
지붕킥이 끝났군요.
과연 그는 김병욱이었네요. 새드엔딩.

혹자는 과도한 러브라인으로 시트콤 본연의 모습을 상실했다고 비판하지만,
저는 그 러브라인 덕에 즐겁고 훈훈하게, 또 때로는 가슴 시리게 잘 봤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지붕킥이야말로 참 높은 완성도의 '한국형' 시트콤을 보여주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개인들에게 캐릭터를 부여하고 상황에 따른 캐릭터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웃음을 이끌어내는 '시트콤'적 재미의 근간에
가족과 사랑이라는 한국 사회가 중시하는 가치들을 녹여냈지요. 이전까지 미국 시트콤을 더 즐겨보던터라 그쪽 시트콤에서는
찾기 힘든 그런 느낌이 좋았습니다.  

일반적인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본격적으로 지훈의 이야기로 넘어가 볼까요. 요즘 들어 제 주위에서는 지훈의 변심(?)에
대한 논란이 뜨거웠습니다. 정음과 헤어진지 얼마 되었다고 세경에게...라던가, 준혁-세경 커플을 꿈꾸는 사람들은 또다시 세경을
흔들어놓는 지훈에게 분노를 표현하더군요. 거기에 대한 제 생각을 써볼까합니다.
이야기를 펼쳐나가기에 앞서, 지금부터 제가 하는 이야기들은 김병욱PD가 제시한 '텍스트'를 제 자신의 경험으로
분석하고 느낀 나름의 결론 혹은 생각입니다. 혹 여러분의 생각과 다르다면 이런 견해(라고 쓰고 소설이라고 읽는다)도 있구나 하고
너그럽게 봐주시길 바랍니다.

자, 지훈의 이야기.
왜 지훈은 세경에게 가지 말라고 했을까.

지훈은 기본적으로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인물입니다.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함에 있어서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지요.
책을 읽기 시작하면 옆에 누가 다가오거나 불러도 못 알아차리는 점, 정음이 그러지 말라고 해도 무작정 집 앞에 찾아와 기다린다는
점 등이 수없이 반복된 것을 생각하면 그는 확실히 개인주의적인 인물입니다. 물론 개인적이라는 특성이 이기적이다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분명 주위의 어려움을 목격하면 도우려고 애썼지요. 당사자가 도움이 필요없다고 해도, 본인이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돕습니다. 정음의 지갑에 돈을 넣어놓는다던가 세경에게 핸드폰을 강제로(?) 선물하던가 하지요. 하지만 이러한
도움은 상대방의 마음과 상황을 완전히 이해하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본인의 신념과 가치관에 있어서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라서 때로 상대방을 아프게 하기도 하고 오해를 사기도 하며 헛된 욕심을 품게 하기도 합니다. 한가지 더 주목할 것은
그는 도움을 제공한 이후에 그 도움에 대한 댓가를 전혀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는 것을 행했고, 그것으로
그 뿐. 더이상은 없습니다. 오히려 도운 것 자체를 잊어버릴 가능성이 큽니다.

병원 일로 바쁘지만 어찌보면 한결 같은 삶은 살던 지훈에게 2가지의 큰 사건이 발생합니다.
정음의 일방적인 이별선언 그리고 세경의 이민.
먼저 발생한 것도, 그리고 지훈의 심경에 더 큰 변화를 가져온 것도 물론 정음의 이별선언입니다.
아무리 돌아봐도 그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았을테죠. 시시껄렁한 농담을 해도, 병원 일 때문에 그녀를 방치해도
그는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아꼈죠. 그렇기 때문에 그녀의 진심도 충분히 느껴왔을 겁니다. 한 사람의 진심을 알 수 있는 건,
그 사람에게 진심을 주었을 때만 가능한 특권이니까요. 그런 지훈에게 그녀의 갑작스런 변심 고백은 충격 그 이상이었테죠.
별별 고민을 다 했을 것이고, 그런 고민의 과정에서 처음의 이성적인 판단은 사라지고 자신의 가치관과는 다른 갖가지 상상을
하게 됐을 겁니다.
나의 입장, 나의 생각이 아닌 그녀의 입장, 그녀의 생각.  
개인주의적인 지훈에게 있어서 흔치 않은 경험이었을테죠.
그러한 혼란 속에서, 지훈은 세경 아빠의 편지를 보게 됩니다.
  
사실 세경의 이민 자체는 지훈에게 있어서 큰 전환점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지훈에게 있어서 이전까지 세경은 힘든 상황에서도
열심히 살아가는 불쌍한 동생, 마치 친동생같은 느낌이었을테니 말이죠. 동생처럼 생각하던 세경의 이민은 아쉬운 일임은 분명하지만,
지훈의 개인주의적인 성격상 원래대로라면 그냥 그렇게 아쉬워하며 흘려보냈을 겁니다. 하지만 지훈은 지금 자신이 아닌 남을 생각하
는 시기에 있고, 그 두 사건의 만남은 그가 무의식적으로 느껴왔던 것, 하지만 그렇기에 너무 새로운 것을 깨닫게 합니다.

"그동안 저한테 주신 것들 감사드려요."
세경이 카드와 함께 두고간 LP판을 들으며 떠올립니다. 그녀의 표정, 그녀의 행동, 그녀의 이유, 그녀의 눈물, 그리고...
그녀와의 추억.
병원 휴게실에서 한동안 꼼짝도 못하고 선 채로 지훈은 깨닫습니다.
왜 그녀가 내 선물을 그렇게 받기 꺼려했는지,
왜 선물을 받으면 뭔가 돌려주려고 그렇게 노력했는지,
왜 잃어버린 목도리 하나에 그렇게 눈물흘리며 속상해했는지,

그리고 내가 그런 그녀에게 어떻게 행동해왔는지.

아팠을 겁니다.
어느 정도 자신을 피해자라고 생각하던 지훈에게 가해자로서의 자신은 믿기지 않는 현실이겠죠.
정음과의 이별로 인한 상처와 자신이 상처 준 세경 때문에,
그의 가슴 속은 혼란과 충격으로 시리게 타들어갑니다.

그렇기에 지훈은 세경을 붙잡고 싶었을 겁니다.
세경에 대한 사랑을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상처 준 세경을 이대로 떠나 보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대로 떠나 보내게 된다면, 자신이 받은 상처 또한 치료할 수도, 치료받을 수도 없다고 자신도 모르게 느끼고 있으니까요.

지훈은 너의 미래를 생각하라며 세경에게 가지 말라고 하지만, 세경은 이미 떠나기로 마음을 먹은 상태.
지훈은 덧붙입니다. "내가 너를 붙..."
이 끝내지 못한 말이 모든 것을 설명한다고 생각합니다.
붙잡아봐야 지훈은 세경에게 마음을 줄 수 없고, 오히려 붙잡는다는 말은 자신이 여태 주었던 상처들과 다를 바 없다는 것.
지훈이 할 수 있는 것은 떠나는 세경을 돕는 것 뿐이었겠죠.
  
마지막 회에서 인천공항으로 차를 타고 가면서 세경은 지훈에게 고백합니다.
무엇보다 이민 가기 싫었던 이유는 아저씨 때문이라고.
그리고 지훈은 이미 안다는 듯이 크게 놀라지 않습니다. 오직 보이는 것은 미안함, 먹먹한 표정.

"미안하다, 내가 한 말들 때문에, 그게 상처줄려고 한게 아니었는데..."

여기까지입니다.



사족) 저는 준혁-세경 커플이 이루어지길 참으로 갈망(?)했습니다. 그래서 세경의 마음을 흔드는 지훈을 참 미워했지요.
         그러다가 지훈이 LP를 들으며 세경과의 추억을 떠올리는 장면에서 그만 심하게 감정이입하고 말았습니다.
         네, 비슷한 경험이 있었지요. 그래서 제가 쓴 위의 글은 참으로 소설입니다. 제 경험, 시각으로 바라본 지붕킥 지훈편이죠.
         따라서 김병욱PD의 의도와 다를지도 모릅니다. 아마 다르겠죠. 그럼에도 이러한 소설을 올리는 이유는, 텍스트에 대한
         해석은 많으면 많을수록, 다양하면 다양할수록 좋다는 생각 때문....은 개뿔, 제가 즐겁기 때문입니다. 영화를 즐겁게 감상하기
         위해서는 좋은 영화도 물론 필요하지만, 영화가 끝난 후 감상을 나누며 여운을 함께 즐길 좋은 친구 또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여러분과 일면식도 없지만,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1人으로서 이렇게 감상을 남겨봅니다. 쓰는 동안 참으로 즐거웠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네요. 보시는 분 중에서 후에 지붕킥을 다시 보시면서 제 관점 혹은 소설을 생각하며 봐주시게 된다면
         무한한 영광으로 알겠습니다. 또 이미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시는, 혹은 비슷한 경험을 하셨던 분들은 다시 한번 그 감정의 타래를
         느끼며 미소지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본래 세경 이야기도 같이 다루려고 했지만 너무 루즈해질까봐(지금도 충분히 루즈한 것
         같아서-_-) 자릅니다.

사족2) 지붕킥 관련 글이 많아서 본래 댓글로 쓰려다가, 내용이 너무 길어져서 살 좀 더 붙여 글로 올립니다. 같은 주제의 글이
          너무 많이 올라온다고 느끼시는 분들께 죄송하다는 말 전하고 싶네요. 혹 관련댓글화를 원하신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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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3/20 04:56
수정 아이콘
잘 봤습니다.
전 하이킥은 하나도 안챙겨봤지만 귀신설인가 그거는 꽤 재밌더군요.......허허

네티즌들의 상상력이란..
장군보살
10/03/20 06:23
수정 아이콘
정말 여운이 남는 멋진 엔딩이었습니다. 그 시간이 멈춰진 흑백 장면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것입니다.

그 장면.. 다시 다시 생각해도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10/03/20 07:13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다양한 해석글이 올라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지붕킥 피디의 의도대로 흘러가는 느낌입니다. 전 괜찮았네요
헤르세
10/03/20 07:16
수정 아이콘
김병욱 피디가 이지훈의 세경에 대한 뒤늦은 자각이었다고 인터뷰했어요.
세경이에 대한 사랑을 뒤늦게 자각한 거라고..

개인적으로는 두 사람이 죽은 엔딩 자체는 충분히 이해할 만했습니다.
허무하긴 했지만 여운이 남는 엔딩이었죠.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세경의 말과 그대로 시간이 멈춰버린 채 흑백사진으로 변해버린 장면들..
근데 저는 세경이와 지훈이의 감정을 도무지 따라가지 못해서 엔딩이 이해가 안 됐어요.
그래서 아주 황당했고, 어이없었어요.

저는 지킥을 보는 내내 지훈이가 세경이에게 갖는 감정이 아주 특별하지만 이성적인 감정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이성적인 감정으로 볼 여지도 충분했지만, 정음이와 연애하는 모습이 너무 오래 묘사되면서 저는 그런 생각을 접었더랬죠.)
그리고 세경이가 열병처럼 앓는 지훈이에 대한 첫사랑과
타인에게 무심한 지훈이가 세경이에게 갖는 특별한 감정(제가 생각하기엔 모성이 가장 컸고, 가족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것도 타인에게, 그리고 심지어 가족들에게까지 무심한 지훈에게는 정말 특별한 감정이고요.)이 둘을 성장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중간중간 김병욱 피디가 말하는 그 '모호한 감정'을 보여 주는 이지훈 신들이
모호한 감정일 수도 있겠지만, 세경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세경이도 산골에서 내려와 세상에 부딪히며 고단한 시기에 첫사랑의 열병까지 앓게 되지만
그 첫사랑에 아파하면서 점차 성장해나가고
자신과 친한 언니와 연애하는 그 사람을 보면서 마음 아프지만, 그리고 깨끗이 잊을 수는 없겠지만 그 마음을 접는 법도 배우고
자신의 감정에 빠져 주변을 둘러보지 못했지만 문득 뒤돌아 봤을 때 자신만을 바라봐 주는 사람을 발견하면서
사랑을 주는 법뿐 아니라 받는 법도 알게 되고.. 그렇게 성장해나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준혁이가 자기를 좋아하는 걸 이미 알고 있다고 했을 때 좀 많이 놀랐긴 했지만
이내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굳이 거절하지 않고 의지하고 함께 해 왔던 모습이
지훈이를 완전히 잊고 준혁이를 좋아하게 됐다 뭐 이런 건 아니어도 어느 정도 준혁이를 마음으로 받아들인 거라고 생각했었죠.

나름 지킥의 감정선을 잘 따라왔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엔딩이 더욱 충격적이었죠.-_-
아, 나 뭐 본 거지.-_- 하는 이 기분.....-_-;;;
세경이는 순박한 산골소녀로만 생각했었는데
주인집 고딩이 자기 좋아하는 거 알면서도 웃어 주고, 설레게 하고, 놀아 주고 -_- 키스도 해 주고 -_-;;;
하지만 지훈이에 대한 마음은 여전히 그대로인 여자가 되어버렸고,
지훈이는 헤어진 여자친구 때문에 술 마시고 떡실신된 다음 날에 자기 좋아하는 여자 가지 말라고 붙잡더니
반지 들고 여자친구 만나러 가는 길에 다른 여자에 대한 마음을 '자각'하고는 눈물 흘리는 남자가 되어버렸죠.

엔딩신 연출 자체는 나쁘지 않았는데..
이렇게 제대로 극을 보지 못한 내가 바보인 건가 싶은 생각까지 들고 있어요.-_-;;;;
솔직히 너무 황당했고, 그동안 지킥에 대해 가졌던 모든 좋은 감정들이 부정 당하는 느낌까지 들어서...ㅜㅜ
정말 오랜만에 보는 시트콤이었는데 깊은 좌절만 저에게 남겨 주고 떠나 버렸네요 -0-
끝나고 여기저기 한참을 눈팅하면서
정말 괜찮은 리뷰 같은 거 몇 개 읽고 이해해 보려고 했는데
두 사람 간의 감정은 이해가 되는데 다른 인물들이 끼면 도저히 이해가 안 되더군요;
염나미。
10/03/20 07:44
수정 아이콘
미안해서운게아닐까요? 그냥 착한동생이 날 그렇게 좋아했다는걸 자신이 일방적으로 차인후에 한사람을 그리워하다보니 알게되서
자신이 그 고통을 아니까,,

세경이를 좋아해서는 그랬는건 아니라고 느꼈어요 전
forgotteness
10/03/20 08:57
수정 아이콘
차라리 이전회가 없었다면 마지막회가 조금 더 감정이입하는데는 좋았을듯 합니다...
125화는 그저 시청자들을 낚는 정도에 불가했네요...

125화는 작가의 주도하에...
마지막화는 피디의 주도하에...
각본을 쓰는 사람이 적어도 한명이 아닌듯한 일관성 없는 스토리에 시청자들이 삐딱선을 탄거죠...


이지훈 케릭터의 감정은...
윗 글에서 처럼 세경이에게 너무 미안하고 한편으로는 너무 고맙고 이런 저런 감정들을 느꼈을테죠...
(뒤늦게 사랑을 깨달아서라는건 너무 억측이 될듯 합니다...;;;)
크게 무리가 가는 설정은 아닙니다...

다만 개인적으로 죽이는 것보다는...
그냥 공항까지 배웅하고 돌아서는 이지훈을 마지막 모습으로 했으면 여러가지 감정선들이 잘 정리되었을테고...
무리가 없는 엔딩으로 갈 수 있었을듯 하지만...

피디가 평범한건 그렇게 선호하지 않나보네요...;;;


마지막으로 지붕킥에 대한 생각은...
피디가 처음과 마지막은 분명히 기획할때 부터 구상을 해두고 있었을듯 합니다...
중간 중간 중요한 스토리도 구상을 해두었겠죠...
(예를들면 이지훈과 세경이 레코드 점에서 음악을 듣는 장면 같은것들...)

하지만 그 나머지 부분은 애초의 시나리오 대로 흘러가지 않았던게 아닌가 싶네요...
그러다보니 지금의 엔딩으로 결말을 내버리기에는 돌이킬 수 없는 곳까지 이야기 자체가 뒤틀러져 버린게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피디는 그런 상황들을 접어두고 원래 엔딩대로 고집을 했으니...
시청자 입장에서는 개연성이 떨어져서 뭥미?...를 연발케 되는거죠...
10/03/20 09:38
수정 아이콘
가슴시린 러브라인...여운이 남는 새드앤딩.... 이런거를 하고싶은 피디라면 그냥 드라마나 영화 하는게 어떨까 싶네요. 시트콤이야 즐겁게 좀 웃으면서 보면 안돼나요.. 왜 그런걸 시트콤에서 하려고 하는지...
10/03/20 10:51
수정 아이콘
저도 방금 김병욱PD의 인터뷰를 보았습니다.
예상은 했었지만 역시 제 생각과는 다르군요. 오만하게 들으실까 걱정되지만 사실 전 개의치 않습니다.
텍스트를 만드는 것은 작가의 몫이지만 그것을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독자, 아니 시청자의 몫이니까요 :)

헤르세님이 말씀하신 세경과 지훈의 성장에 대한 부분에 저도 어느 정도 공감합니다.
특히 세경은 아무것도 모르는 산골 소녀에서 일련의 지붕킥 에피소드들을 겪으며 정말 많은 성장을 했지요.
하지만 그런 이유에서 헤르세님이 말씀하신 세경의 준혁에 대한 마음과 엔딩에 관한 견해에는 조금 생각을 달리합니다.

저는 세경이 준혁의 마음을 받아줬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지훈에 대한 마음 때문에 힘들어한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forgotteness님 말씀처럼 제대로 흘러가지 않은 시나리오 때문에 이야기가 뒤틀렸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설령 시나리오가 어그러졌다한들, 저에게는 퍽 유의미하게 다가왔습니다.

본래 글에 담으려고 했었던 내용인데, 세경은 89 혹은 90년생입니다. 21,2살 정도지요.
게다가 마지막 회에서 언급된 것처럼 지훈이 첫사랑입니다. 사랑에 서툰 소녀지요.
사랑이라는 것은 하면 할수록 어려운 것이지만, 첫사랑 시절에는 참, 정말 서툴지요. 돌아보면 얼굴이 빨개질만큼
창피하고 부끄러운 일 투성이입니다. (물론 그래서 더 소중한 추억입니다만.)

먼저 세경과 준혁의 경우부터 제 생각을 말하자면,
세경은 준혁의 마음을 알았지만, 준혁의 마음을 받아준 적이 없습니다. 준혁의 친절한 태도에 늘 고마워했지만, 지훈을
좋아하고 있을 땐, 항상 지훈이 먼저였고(영화 사건, 목도리 사건) 지훈에 대한 마음을 정리한 후에도 준혁을 받아드린 적이
없었다고 봅니다. 놀이공원은 이민간다는 것을 말하기 위한 장치였고, 대학교에서 손잡고 뛰어다니고 돌아오는 길에 키스한 것은
첫사랑시절 즈음에 흔한 rookie mistake였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 시절엔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도 서툴지만 누군가가 나를 좋아
했을 때의 처신도 서툴기 마련입니다. 그쪽에서 마음을 표현하지도 않았는데 '난 널 좋아하지 않으니 그만 좋아해줬으면 좋겠다' 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입니다, 그 시절엔. 그쪽에서 오해할만한 행동을 (더 이상) 하지 않는 게 최선입니다만, 세경의 경우엔
이민가기 직전이라는 상황에서 타협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상처받은 준혁과 떠나기 전에 화해하고 싶다는 마음이 캠퍼스에서 준혁의
손을 잡게 만들었고, 눈물을 흘리며 천천히 다가오는 준혁의 입술을 냉정하게 뿌리치지 못하게 한 것 아닐까요? 아직 사랑의 경험이
몇 번 없는 'rookie'들은 그러한 행동들이 얼마나 상대를 괴롭게 하는지 미처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죠. '이번 한 번인데, 이정도 쯤은
괜찮겠지', '거절하면 분위기가 이상해질텐데' 하는 생각들이 상대가 오해할만한 행동을 낳고, 어쩌면 흔히 말하는 어장관리로 발전하는
것이죠. 나중에 더 나이가 들고 경험이 생겼을 때(특히 역으로 당해봤을 때)가 되서야 그것이 서로에게 좋지 못한 행동이었구나,
'이정도'는 하면 안되는구나 하고 깨닫게 되니까요. 그리고 키스 후에 준혁과 세경이 뚜렷한 관계의 발전을 보여주지 않은 것으로 봐서
준혁 또한 세경이 자신의 마음을 받아줬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리고 지훈과 세경.
지훈이 묻습니다. 잃어버렸던 빨간 목도리, 그렇게 울면서 찾더니 다시 찾았을 땐 왜 그렇게 덤덤했어?
세경이 대답합니다. 겨울이 다 가서...
세경의 그 말을 똑똑한 지훈은 금세 이해했을 겁니다. 그래서 알았다며 보내주죠. 세경에게 지훈이라는 겨울은 이제 다 흘러갔
으니까요. 세경은 지훈의 차 속에서 그간의 마음을 고백하면서 말합니다. 아저씨 때문에 가장 가기 싫었다고, 막상 헤어지면
보고싶어서 못 견디게 될 것 같아서 힘들었다고. 세경은 지훈을 아직 마음에 담아두고 있지만, 그것을 지훈 앞에서 담담히 이야기
할만큼 성장했습니다. 좋아하는 사람과 꼭 이루어지지 않아도 좋다는 것. 세경이 지훈이라는 그녀의 한 season을 이겨내고 이민을
결정하면서 깨달은 것이지요. 예전엔 함께가 아니라는 사실 때문에 힘들어했던 그녀가 이제 떠나는 마당, 결코 함께가 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이 변화, 작아보이지만 실로 엄청난 것이란 것,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잠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
다는 그녀의 작은 욕심마저도 참으로 디테일하게 잘 잡았다고 봤습니다. 사랑이란 건 때론 한 컵의 요플레같아서 아무리 깔끔하게
끝내려고 해도 항상 잔여물을 남기곤 하니까요.

다 쓰고보니 뒤죽박죽이네요. 글도 그렇지만 제 마음도 그렇군요. 잊혀졌다고 생각했던, 없어졌다고 믿었던 감정들이, 추억들이
밀려오네요 하하. 그래요, 본 글에도 남겼듯이 어쩌면 김병욱PD 말대로 뒤늦은 사랑의 자각일 수도, 헤르세님 말씀대로 산골소녀의
영악한 머리굴림일수도, forforgotteness님 말씀대로 어긋난 시나리오 상의 문제일 수도, 그리고 하나님이 언급하신 귀신설이 맞을
수도 있겠죠. 각자의 마음 속에 그것이 유의미하게 남아 무언가 느낄 수 있게 해준다면 모두가 정답일 것입니다. 역시나 길어졌네요.
다시 한번 이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동료동료열매
10/03/20 20:17
수정 아이콘
뒤늦게 좋은 댓글 잘 읽어보았습니다. kaz님의 깔끔한 글을보니 저는 지훈-세경이 시트콤의 중심이라고 생각안했던 사람이라 앤딩에 어이가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이해가 .. 솔직히 안갑니다 ^^;
시트콤의 주인공 설정을 세경으로 해놓아서 그 노선을 따라가야 했다면, 중간에 황정음의 비중이 너무나도 커졌고, 윗분들이 댓글을 달아주신대로 작가와 PD의 노선이 달랐는지 어쨋는지 이야기가 뒤죽박죽 누가 주인공인지 모르게 진행되다가. 마지막 신에서 '아 딴애들은 다 됐고 지훈 세경 얘기였어' 라는 식의 불친절한 자기만의 앤딩, 꼭 봉테일감독의 mother를 보는듯해서 참 불편했습니다.
저는 보는 내내 지훈이 세경에 대한 감정은 단순한 동생 그이상 그이하도 아니었다고 여겼기에, 정말 저런 남자가 있다면 확 걷어차주고 싶은 감정을 느꼈습니다. 여자친구랑 헤어진지 얼마안됐는데, 알고보니 우리집에서 일하던 식모가 날좋아했네? 아 생각해보니 나도 네가 좋았어
...
개인적으로 이런 의견도 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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