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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
밥 맥두걸은 의심이 많은 남자였다.
라디오 방송에서 그는 불 켜진 네 번째 집에 산다고 했지만, 사실 그가 사는 곳은 그 불 커진 네 번째 집이 한눈에 보이는 건너편에 있는 불 꺼진 여덟 번째 집이었다.
그는 매일 같이 하루 일과를 마치는 일곱 시부터 여덟 시까지 라디오 방송을 했다, 언제나 다른 사람의 접근을 기다렸지만, 아직 까지 한 번도 이루어진 적은 없었다.
그는 지금 마을 곳곳에 그가 직접 달아 놓은 CCTV의 모니터링 룸에 서 있었다. 괴물들의 습격이나 이방인의 방문, 그중 무엇인지는 그 자신도 몰랐지만, 그는 그렇게 늘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언제나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그가 낀 안경은 진하게 색이 입혀져 있어서 평소에는 표정을 잘 알아보기 어려웠지만, 어찌 된 일인지 오늘 그의 표정은 전에 없을 정도로 상기되어 있었다.
여러 대의 모니터 중 네 번째 집 앞에 설치된 카메라에 사람의 모습이 잡힌 것이다.
심지어 차임벨이 울리기까지 한다.
‘딩동딩동’
마른 침을 한번 꿀꺽 삼키는 맥두걸, 떨리는 손으로 네 번째 집에 연결된 인터콤의 수화기를 든다.
막상 수화기를 들었지만, 말을 잇진 못했다. 잠깐의 정적 끝에 수화기 너머의 사람이 오히려 먼저 말문을 연다.
“밥 맥두걸?”
“괜찮으면 이 문 좀 열어주겠어요?”
예상 외의 신사적인 요청, 화면 너머의 흑발 남자는 우호적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다, 말을 할 줄 안다고 그놈들이 아니란 증거가 될 수는 없으니까, 이 세상 어딘가에는 말을 할 수 있는 괴물도 있을지 모른다.
맥두걸은 인터콤 수화기를 끊지 않고 탁자에 놓아두었다, 이윽고 손을 뻗어 벽장에서 총을 꺼내 창가로 나와 그가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는다, 소음기가 달린 사냥총이었다.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고 가늠좌를 통해 그 사람의 오른쪽 어깻죽지를 노리고서 방아쇠를 당겼다.
“픽”
그 남자가 네 번째 집 문간에서 쓰러졌다. 그를 죽인 것인가?! 하지만, 이내 그 남자의 인기척이 들려온다, 신사적인 태도는 간데없고 욕지거리를 내뱉는다.
“으악, 젠장! 이 새끼 대체 뭐야?!!”
이제 약간의 확신이 섰다. 네 번째 집 문 앞에 있는 저 남자가 자연스럽게 아파하는 모습으로 보아 그놈들 중 하나는 아닐 가능성이 크며 설사 그놈들이라고 해도. 고무탄에 맞고 쓰러질 정도로 신체 능력은 평범했다, 즉 일대일로 싸우게 되더라도 총만 있다면 이길 수 있는 상대다.
난데없이 총을 맞은 빌리는 짜증이 아니라 당황함 때문에 생각지 않게 큰소리를 내뱉었다. 그의 어깨에는 총알이 뚫고 들어간 상처는 없었지만 대신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맞는 순간 고무탄임은 직감했지만, 그렇다고 총을 맞았다는 더러운 기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어깨를 부여잡고 있자, 굳게 닫힌 현관문이 열렸다, 인터콤에서 사람 목소리가 들린다.
“들어오시오, 미안합니다.”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열린다. 아픈 어깨를 부여잡고 경계하는 눈빛으로 불 켜진 연립 주택으로 들어가는 빌리, 환하게 불이 켜진 거실 곳곳에는 잘 정돈된 가구들이 놓여 있었고 모든 창문은 두꺼운 커튼이 가려져 있었다, 아니 커튼 같은 천으로 네 면을 모두 고정해 봉해져 있었다. 창틀이나 탁자는 모두 한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았는지 모두 뽀얗게 먼지가 앉아 있었다.
우선 아픈 어깨를 진정시키기 위해 나무 의자 하나를 꺼내어 거기에 앉았다, 그때 천장 한쪽 구석에 잘 보이지 않게 달렸던 스피커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맥두걸이었다 빌리는 질린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스피커 너머의 목소리가 물었다.
“당신 어디에서 온 거요?”
“어디라니, 이봐요 당신이 늘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했잖아요.”
“내 방송을 들었다고?”
“그래요, 99.17헤르츠에서 저녁 여덟 시만 되면 나오는 방송.”
“거짓말, 내 방송은 지역 방송국의 전파야, 이 근처에 사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매일 같이 들을 수가 없어.”
“그걸 내가 알게 뭡니까? 젠장, 여기까지 와서 또 그놈의 라디오 같은 목소리만 듣고 가라는 거요?”
잠시 정적, 맥두걸은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망설이는 듯했다. 빌리가 말한다.
“솔직하게, 의지할만한 곳인지 확인하러 온 겁니다, 이것 보세요 날 믿어 달라고는 안 할 테니 얼굴이라도 좀 보여봐요.”
스피커에서는 대답이 없다. 아픈 어깨가 신경 쓰이는지 인상을 찡그리는 빌리. 한동안 스피커 너머에서 대답이 없자 빌리는 멍든 어깨를 치료하기 위해서 집 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거실에서 이어진 모든 공간의 입구에는 자물쇠가 걸려 있었고, 거실 안의 수납장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기가 찬다는 듯이 얼굴을 찡그리는 빌리, 다시 의자에 앉았다. 이윽고 현관문에서 인기척이 들린다, 철컹 철컹하는 소리가 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순간 긴장했으나 어차피 지금 상황에서 불의의 일격을 당한다면 어쩔 방도가 없었다. 허리춤에 차고 있던 그의 유일한 무기인 테이저건으로 손을 뻗으려는 찰나, 현관문을 통해 중년 남자가 커다란 철제가방을 들고 들어왔다.
빌리의 예상과는 달리 현관에서 들어온 것은 한 사람이었다. 정황상 밥 맥두걸이 분명한 그 남자는 백 칠십을 갓 넘을 것 같은 키 조금 통통한 체격을 가졌고 지중해 사람같이 곱슬곱슬한 회색 머리를 하고 있었다. 그다지 거칠지 않은 피부에 진하게 새겨진 주름과 아래턱을 촘촘히 뒤덮은 잿빛 수염 자국은 그가 마흔을 훌쩍 넘겼을 거란 걸 말해주었다.
순간의 정적, 예상치 못한 상황에 빌리가 경계의 자세를 취한다, 이 의심 많아 보이는 남자가 이렇게 빨리 모습을 드러낼 줄 몰랐기 때문이다, 순간 맥두걸이 그가 가져온 가방에 손을 뻗는다,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키는 빌리, 이번엔 이에 놀란 맥두걸이 경직된다, 다시 천천히 가방으로 손을 뻗는 맥두걸, 가방을 가로로 바닥에 눕히고 몸을 굽혀 그것을 열었다.
딸각하고 가방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가방이 벌어진 방향이 빌리를 등졌기 때문에 아직 빌리는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아볼 수 없다, 빌리의 손은 예전부터 허리춤에 가 있었다, 조금만 움직이면 테이저 건을 뽑아 그 앞에 있는 남자에게 겨눌 수 있었다.
천천히 팔을 굽혀 가방 안에 있는 물건을 꺼내는 맥두걸, 빌리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힌다, 그 불편한 공기에 맥두걸이 한마디 던진다.
“여기는 내가 사는 곳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어요”
그리고는 빌리에게 자신이 꺼낸 물건을 보여주었다.
“얼 그레이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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